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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칼럼]바울의 선교와 바울선교회 | 이성춘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20.06.30 17: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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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본부장 칼럼

바울의 선교와 바울선교회

글·이성춘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바울선교회는 바울을 선교사의 모델을 삼고, 믿음선교를 감당하는 선교회입니다. 우리는 사도, 선교사, 교사, 복음전도자, 이방인의 제사장인 바울을 바라보고 살아온 선교사들입니다. 바울과 초대교회를 따르는 바울선교회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선교사의 위생

행 16:21에 의하면, 바울과 그 일행은 “로마사람들인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풍습을 전한다”는 악의적인 고소를 당하고 체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오해한 것이며, 그 부작용에게만 눈여겨 본 로마인들이 자행한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우리는 현지인들이 원하지 않는, 불편한 것들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자신 안에 현지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화나 풍습, 심지어 질병,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현지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선교의 위생, 보건이란 용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개신교 선교 초기나 선교사는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전까지, 현지에서 무서운 맹수의 희생자가 되기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아주 작은 모기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대로 선교사, 또는 서구인은 현지인들을 총칼로 위협하고, 죽이기 전에 외부자들인 자신들의 몸안에 있는 균으로 현지인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보급했고, 현지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습니다. 중남미에서 유럽인들이 전파한 질병으로 인해 죽은 숫자가 총칼로 죽은 숫자보다 더 많았다고 중고등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유럽의 선교사는 유럽을 떠나면서, “선교지에 도착한 후에 우리 중 절반 이상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두려워하지말고, 위축되지 말고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 달라” 요청을 하면서,  자기들의 장례식을 위해 관을 준비하고 그 관에 생필품을 담고 현지로 가지고 갔습니다. 


현지에서 낫선 병을 보급하였지만, 자신들은 그 병에 면역을 가지고 있었던 선교사들은 유행병에도 죽지 않고 건재하여 신이라는 추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행 14:11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는 현지에서 세균과, 말라리아의 희생자가 되었고, 또 그곳에서 유럽의 질병의 보균자로 현지인들을 희생시키는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피해들로부터 벗어나는 위생적인 선교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들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을 묻는 자들에게 답변이 되는 선교사

오늘,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중병을 앓고 있으며,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고, 하늘길과 모든 관계들이 단절되어버린 사회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중지되고 멈추어버렸습니다. 한인 선교사가 현지를 떠나 한국으로 도피했다는 말보다는 현지에서 선교사들이 코로나에 걸려가고 있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의 때에 우린 어떤 사람들입니까? 먼저 절망에 빠지는 사람인가요? 아니며 자신을 넘어서서 이웃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인가요? 저도 바울선교회의 국제본부장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 이곳 독일땅에서 정리해야할 여러가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관들은 문을 닫혔고 대면 회의도 제약을 받아, 27년간의 외국생활, 선교사의 삶을 정리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강한 내성보다는 내상이 쌓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복음성가를 듣게 되었고, 그 가사들을 통해서 위로와 용기를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을 선교사님들을 위로할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 로마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정부와 사회지도층이 로마를 포기하고 떠나버렸습니다. 로마는 암흑과 절망의 사회가 되었고. 사회적 안전망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때에 윤리적으로 거룩한 도덕성을 지닌, 그래서 더 면역성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사회적 공백을 매우고 새로운 사회의 안전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시신을 불태워 주었고, 쓰려져 있는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을 주었고, 남은 아이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절망 가운데에 있는 사회를 지탱시켜주는 새로운 대체세력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로서 우리는 개인의 절망을 넘어서 사회의 소망이 되어야합니다. 상실된 마음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복음으로 나아가는, 건강한 위생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연결망을 통한 교회와 선교사역

오순절을 경험하고 예루살렘교회의 태동을 목격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복음을 가지고 자신들의 거주지로 돌아갔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구브로인과 구레네의 이주민이 중심으로 한 이주민교회였고, 가족들의 고향방문과 고향에서의 안디옥방문으로 복음이 가족 연결망을 통해서 전파 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은 낯선 지역이 아닌, 안디옥교교회의 구성원들의 고향,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행인 마가가 떠나고 바울과 바나바가 방문했던 지역들도 바울이 안디옥으로 부름을 받기 전에 복음을 전했던 지역인 비시디아 안디옥이었습니다. 새로운 곳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 아닌, 익숙한 곳, 구면의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예루살렘과 안디옥과 로마에서의 초대교회들은 가정을 통한 교류, 직장 생활과 근무지 이동 등, 주둔 군인들의 배치, 무역로를 통한 상업활동의 사회적 연결망,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첫번째 선교여행 경비를 안디옥교회가 아닌 가족, 친척들을 통해서 조달했습니다. 구브로의 구리광산에서의 수입은 선교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비량으로 조달했지만, 로마로 향한 여행에서는 화해하게 된 가족들의 후원, 유산으로 감당했다고 봅니다.


바울 선교사들은 선교후원에 있어서 전주안디옥교회와 후원교회들의 헌신과 섬김에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님들의 선교적 열정, 믿음의 순종에 의해 큰 위로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의 기초적인 네트워크가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활성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교사 각 가정들과 출신지역의 지역교회들과 지인들, 성인 엠케이들이 바우리 안에서 상호 연결되어 졌으면 합니다. 선교사들은 고향, 출석했던, 시무했던 이전의 교회들이 선교사를 위한 중보기도에 초대해야 합니다. 성장한 엠케이 자녀들이 선교사적 마음으로 물질, 시간, 재능을 기부, 기여하고 선교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바우리 가족들끼리 공동생활은 못해도 공동 사역을 이루어가는 소통과 친밀함이 더욱 단단해졌으면 합니다. 먼저 도착하고 이루어놓은 기초위에,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바울의 신임들의 선교가 이루어지며, 팀사역, 협력사역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바울의 선교전략
바울의 사역을 보면, 바울은 복음을 개인에게도 전했지만, 중심지역에 예배공동체를 세우고, 지도력을 세우고, 주변으로 확산되어 가는 전략을 이루어갔습니다. 그리고 떠나 있을 때에는 사람을 보내거나 서신을 보내어서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신앙을 견고하게 해 주었습니다. 교회개척과 교회 갱신을 동시에 시도하였습니다. 초대교회 300년 동안 핍박이 있었지만, 복음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교회건축은 없었지만, 정통복음을 사수하는 신학활동과 복음을 전하는 문서선교 활동은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예배공동체는 각 가정의 거실에서 태동되었고, 15~20여 명, 더 크게는 30~40명이 모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선교 역사 130년이 지난 현재 국내와 선교지에 엄청난 교회의 건물과 재산을 형성한 교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교지에서 20명~30명을 위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신학교도 선교지에서 이 숫자를 새롭게 모집하거나 등록하게 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건축은 쉬워도 사람을 결실하는 일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을 얻는 일에, 제자를 삼고,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일에 더욱 힘써야하고 활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현지인 선교사를 세우는 일에 각 선교사님들이 동참하여 공동의 과제를 이루어가는 선교회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코로나이전과 이후의 삶의 변화에 촛점을 맞추어, 이제는 비대면, 비접촉, 온라인의 상의 사역, 삶을 살아가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발맞추어 가는 바울 선교회, 선교사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익명의 선교사

빌 1,14 에 보면,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형제 중 다수 곧 익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정통 복음, 신조를 사수했습니다. 익명의 선교사로서, 노예들이 여주인에게, 가정교사로서 주인의 아들들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군인으로 파견지에서, 상인으로 무역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변화, 사회개발은 지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면이 있지만, 복음전도는 약한자, 낮은 계층을 통해서 확산되어 갔습니다.


바우리 가족들은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유명한 자로서가 아니라, 약한 자, 익명의 선교사와 같은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로서 섬기며 살아온 분들입니다. 중앙이 아닌 변두리, 온전한 건물이 아닌 깡통으로부터 시작된 선교회입니다. 바우리 선교사도, 바우리 이사님들도 모두다 익명이기를 원하고, 작은 자 이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진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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