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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칼럼]바우리 광야길에서 | 김태현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18.02.22 18: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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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본부장 칼럼

바우리 광야길에서

김태현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광야는 우리나라 지형에선 낯선 곳임에도, 성서에 익숙한 우리들은 광야가 이색적인 느낌이 안 든다. 오히려 우리 곁에 있다는 1)기시감(旣視感)마저 든다. 그만큼 우리의 삶의과정이 광야와 2)유비(類比)되기 때문일 것이다. 광야는 처음 시작의 책인 창세기에서부터 익숙한 지형으로 다가온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의 넓은 평원으로 풍요롭고 기름진 이집트 같은 곳이었다.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게 했다. 그 과정이 험난한 광야의 삶이었다. 광야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루기 위해 밀어 넣는 상징적인 땅이 되었다.

 

광야는 광활하고 위험한 곳이다. 불뱀과 전갈이 있고 초목과 물이 없는 메마른 곳이다. 수원(水原)이 땅에 있지 않아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는 곳이다. 씨를 뿌릴 수 없어 농사가 불가능한 땅이다. 따라서, 그곳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책임진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그 사실을 배우지 못하면 초조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주위의 자원을 이용하여 자신의 힘으로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을 경험한다면 광야도 안식의 땅이요. 축복의 땅이 될 것이다. 광야는 전혀 삶의 방식이 다른 곳이다. 공급의 근원이 위에 있고 땅에 있지 않다는 것을 철저히 배우는 곳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그곳으로 인도하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프랑스 인류학자 테오도르 모노(Theodore Monod)는 「사막의 순례자」라는 책을 통해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 통과하는 광야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광야는 나약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광야는 생략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광야는 하루 2.5ℓ의 물, 간소한 음식, 몇 마디의 말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그곳은 영혼을 조각하는 곳, 육체를 단련하는 곳이다."

 

바울선교회의 모태는 전주안디옥교회이다. 일명 깡통교회는 32년 전에 바우리를 낳아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키운 열매가 오늘의 바울선교회가 되었다. 아들은 부모의 깊은 만족이 된다. 아들은 아비의 생명 확장이기 때문이다. 바우리는 전주안디옥교회가 쏟은 헌신의 수고를 기억한다. 바우리는 그 사랑의 빚을 안고 선교 일생을 살게 될 것이다. 전주안디옥교회는 여전히 분에 넘치는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깊이 감사드린다. 애석하게도 이전처럼 선교후원을 할 수 없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바우리를 위한 후원체계를 약간 수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소식은 어떤 이에게는 바닥이 흔들리는(catastrophe) 경험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믿음의 기회가 되어 본래 믿음의 자리로 곧게 서(直立)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바우리에게는 광야 길로 들어서는 고난의 행군을 의미할 수 있다. 광야 길에서 우리 방식이 아닌 오로지 하늘의 뜻을 따라 공급하시는 손길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선뜻 농사지을 수 있다면 측량도 하고, 계산도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광야는 우리의 노력의 산물이 허락되지 않는다. 온통 황량한 광야뿐이다. 전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오로지 보이는 것은 하늘 뿐이다. 위로부터 공급하심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우리의 믿음선교는 더욱 빛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광야 40년 동안 뒤돌아보며 내린 결론은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고 증언한다. 우리의 광야 여정 끝에도 이런 경험적 간증으로 넘쳐날 것을 확신한다.

 

바우리의 근간은 믿음선교다. 이 믿음선교를 흔드는 외적 요인은 너무 많다. 명석한 머리와 영특한 계산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믿음 선교만이 향후 한국선교의 대안이라고 증거하자. 이 기회에 바우리는 한국선교까지 짊어질 책임의식을 가져보자. 이사야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 43:18)고 호소한다. 마치 상처를 입은 동물이 안전한 동굴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상처를 핥듯이 인간은 힘들때면 과거 아름다운 시간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 안에서 위로를 받고 그 시절의 마음 상태로 현실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전의 영광과 수치는 모두 지나가고,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현재에 한다. 지금 여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이 산 신앙이다. 다시 이사야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에 주목하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 광야 길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묵묵히 그 분과 동행하고 그분이 주시는 대로 받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때 주님은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라고 약속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몰락했던 수많은 역사를 기억하자. 지금이야말로 바우리를 위한 은혜의 때요, 변화의 때가 될 것이다. 역사를 보면 빈틈없이 강고해보였던 기반도 한순간에 와해되어 최후를 맞았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승리자가 태도가 아니다. 인간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하신다. 이참에 익숙하고 타성에 젖은 삶을 청산하자. 광야 길의 순례자로 다시 한번 바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자.

 

국제본부장 김태현

 

1) 기시감(旣視感) : 한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

2) 유비(類比) : 맞대어 비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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