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권역 | 일본  / Japan

일본(JAPAN)
전지석 유지연 선교사(일본)

 


 

 

• 일본이라는 나라
우리가 일본이라 부르는 나라 이름은 현지 발음으로는 니혼(にほん) 또는 닛뽄(にっぽん)이라고 불린다. 평상시에는 니혼이라 부르지만 닛뽄이라고 부를 때에는 왠지 약간의 애국심이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평소에는 “한국”이라 부르지만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에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우리 나라와 흡사한 표현이다. 나라 이름 하나 부르는 것만 봐도 한국과 참 비슷하다. 문법이 거의 같은 것은 물론이고 한자도 표현법도 참 가깝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가까운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다. 거리 또한 매우 가깝다.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인 대마도까지는 배편으로 1시간 조금 더 걸릴 정도이다. 수도 도쿄까지도 비행기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아침 비행기로 도쿄로 넘어가 점심으로 스시를 먹고 오후 비행기로 돌아와서 저녁 전에 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 얼마나 가까운가.

그런데도 우리는 일본을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른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국과의 역사적인 아픔들이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우리보다 부강하고(2015년도 1인당 GDP 38,215달러), 인구도 더 많고(약 1억2600만 명), 땅도 넓은(남한의 약 4배) 강대국이다 보니 탐탁지 않은 면도 있을 것이다. 일본을 직접 겪어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일본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 지식이 얕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정도이다.

가까이서 일본인들을 겪어 보면 참 불쌍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모든 일에 두려움이 있어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어려워하고, 실패하기도 두려워하고, 매사에 신중한 정도가 억눌려있는 인상을 같게 한다. 이러한 일본인들이 형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중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은 일본에 빈번한 자연재해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 자연재해
일본은 지리적으로 다양한 자연재해를 격을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갖췄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한국에서는 겪기 힘든 지진, 화산, 해일 등의 자연재해이다. 일본 열도는 4개의 플레이트 위에 위치해 지반이 극히 불안정하다. 그렇다 보니 세계에서 발생하는 진도 6.0 이상의 지진 중 5분의 1이 일본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도 2만 명 가까운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나왔다. 지진에 의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사망자의 대부분은 지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해일에 의한 피해자들이다.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일본은 옛날부터 해일의 피해를 간간히 입었었는데 오래된 문헌에도 그 피해의 정도가 기록되어있을 정도다. 멀리로는 해안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까지 해일이 밀려 들어왔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 생생한 현장들이 이번 동일본대지진을 통해서 생생하게 포착되었는데, 이는 사람의 존재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실감하게 한다.

최근에 일어난 화산분화로는 2014년 온타께산(御嶽山)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분화로 인해 58명이 사망한 바 있다. 이러한 분화의 잠재성을 가진 활화산이 일본에 110개가 있다. 이는 소규모 분화에 속하는데, 반면 대규모 분화는 과거 2000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계산을 하면 38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과거 100년간은 대규모 분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고, 300년간 잠잠한 후지 산 분화설이 일어나는 등 화산 활동에 대한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만약 후지 산이 분화하게 되면 상공으로 올라간 화산재는 편서풍을 타고 수도권 일대를 덮게 된다. 300년 전 후지 산 분화와 동등한 분화가 지금 일어난다면 예상되는 경제적 피해는 25조 원에 상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토속신앙으로 발전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자연은 사람이 섬기고 달래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또한, 이러한 자연재해 앞에 체념하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랜 세월 자연재해와 공존해오며 내면에 심어진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일본인 특유의 억눌림 또한 이러한 자연재해 앞에서 하찮고 나약한 존재로서의 자의식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정치 및 경제
일본은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라는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현대적인 헌법을 가지고 군주인 천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헌법에 규정한 대로 정치에는 직접적으로는 관여하지 않는다. 실질적인 정치적 최고 결정자인 내각총리대신은 간접투표로 선출되며 천황에 의해서 임명을 받는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 형태는 패전 이후에 제정된 것인데 이는 매우 안정적으로 일본을 이끌어 왔다. 일본인의 천성이 권위자에 대해 복종적이기 때문에 정치의 형태나 구조와 무관하게 안정성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화(和)를 중요시하는 일본인의 가치 구조는 그 어떠한 정치적인 결정에도 크게 반항하지 않고 순종하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본인들에게 최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지금 대면하고 있는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인 안보보안법 때문이다. 아베 정권을 필두로 자민당은 10개의 관련 법안을 개정하여 일본이 자위권을 행세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려고 시도한다. 즉 일본이 직접적인 위협에 놓여 있지 않더라고 잠재적인 위협이 있다고 판단되는 동맹국의 전쟁에 참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이 법안을 두고 일본은 법안을 찬성하는 우익적인 성향의 파와 개정법안을 “전쟁법”이라 부르며 반대하는 좌익적인 성향의 파로 2분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서는 보기 드문 몸싸움까지도 벌어진 바 있고, 정치에 무관심한 청년들까지도 조직적으로 시위활동을 하는 등 일본 국내 정치의 가장 뜨거운 감자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패전 이후 일체의 전쟁권을 포기함을 헌법에 명시하고 세계평화의 선구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해 온 일본의 노력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

 

• 종교
일본은 헌법 제20조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통계상 가장 비율이 높은 신도교와 불교를 합친 종교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150% 정도가 된다고 하니, 한 명 평균 1.5개의 종교를 소유하고 있는 계산이다. 다른 관점에서는, 일본 인구의 70% 이상의 사람들은 신도교와 불교 둘 다 믿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1년 평균 100개가 넘는 신흥종교들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일본에 존재하는 알려진 종교단체만 해도 22만 개가 넘으며 이들 중 80% 정도가 신도계 혹은 불교계 종교단체들이다.

위 통계자료만 봐서는 일본인들은 매우 종교적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그럴까? 일본의 각 기관이 일본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식조사(2008년도)에 의하면 “신앙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인 30%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1950년대에 실시한 동일한 의식조사 결과 64%의 사람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숫자이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이러한 조사를 해온 결과 50년대부터 서서히 낮아진 “신앙인”의 비중은 2008년도 통계의 20%대 중반까지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은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는 이들의 적어도 절반은 “가족이 믿기 때문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을 한다. 즉, 가족의 종교로서 믿음을 가진 것이지 개인적인 신앙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현대의 일본인들은 패전 이후 서서히 종교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였고, 일 년에 단 한 번의 하츠모오데(初詣, 신년 첫 신사참배)와 일 년에 두 번의 오히간(お彼岸, 조상의 묘를 공양함)을 행함으로 종교인으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4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일본인 전체로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종교를 믿는가?” 질문에 1990년대 후반에는 5~6%의 대학생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했으나 2010년도에 들어서는 7%대까지 늘어났고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출판된 종교적인 내용을 다룬 만화(예수와 석가모니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낸 “세인트 오니상” 등)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봐서도 젊은 층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간략한 일본 선교의 역사
처음 기독교가 일본에 소개된 것은 1549년, 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같은 해 8월 15일 카고시마에서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자극을 받아 로마 가톨릭 예수회에서 해외선교사를 파송, 자비에르를 중국으로 보내려고 했다. 아직 선교의 문이 열리지 않은 중국 입국을 기다리며 잠시 머물기 위해 들린 일본에서 오히려 그의 사역은 큰 성과를 이루게 된다. 자비에르의 포교활동을 시작으로 일본은 짧은 시간에 당시 인구의 3~4%까지 기독교인이 성장하였으나 새롭게 등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에 금교령을 내리고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 이어서 토쿠가와 이에야스도 1614년에 금교령을 내려 선교사들과 신자들을 국외로 추방시켰다. 단가제도 등을 통헤 모든 국민을 사원에 등록시킴으로 기독교인의 씨를 말리려고 시도하였고, 이후 200수 십년 간 박해를 가했다. 첫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859년 무렵. 개신교 감독교회로의 존 리킨스와 차닝 윌리암스가 나가사키 항에 상륙하면서다. 이때부터 다양한 교단의 수많은 선교사가 일본 땅을 밟고 복음의 씨앗을 계속해서 뿌리고 있다.


• 일본 교회의 현황과 선교의 과제
일본 교회 현황을 매년 통계하는 크리스천 정보 북에 의하면 2014년 현재 일본에는 7,940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이는 전년 대비 8개 감소한 숫자로 최근의 감소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추정하는 교인 수는 약 50만 명(전체인구의 0.4%)으로 이 또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한 숫자이다. 일본 전체 인구가 감소추세이기 때문에 교회와 교인 수의 감소는 인구 감소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일본 교회는 최근 몇 년 정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교회당 평균 교인 수는 63.4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몇몇 대형교회에 의해서 숫자가 많이 부풀려진 것으로 실질적인 평범한 일본교회의 평균 교인 수는 20수명으로 보는 것이 옳다. 전체 교회 중 20명 이하의 교회가 65%, 30명 이하의 교회가 90% 가깝다는 통계(2010년)를 봐도 평범한 일본 교회가 30명을 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30명을 넘기 힘든 일본 교회의 현황을 고려한다면 30명 이하의 소규모 교회를 계속해서 늘려나가는 것이 오히려 일본 교회의 전체적인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대그룹보다 소그룹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성향과 일본 목회자들의 기량을 감안했을 때에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또는 지역의 필요를 중심으로 연합하는 교회의 형태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는 교회들도 있다. 이는 지역 교회가 연합하여 유치원, 노인 복지시설, 예식장과 납골당등을 운영하여 지역 주민과 밀착된 관계를 형성, 유지하며 전도로 연결하려는 시도이다.

지금 일본에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전도 지향적 교회의 형태가 연구되어야 할 시기이다. 젊은 층의 종교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하나님께서 일본 부흥을 위해 심고 계신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일본 선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문화와 언어적 배경이 가까운 한국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인 아픔을 뛰어넘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환경을 일본은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일본의 억눌린 영혼들을 케어하고 주님께로 이끌어올 사명자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찾고 계신다.


참고 자료 :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 다락원, “일본선교 1&의 벽을 깨라” 예영, “宣敎の革新を求めて” 東京基督敎大學國際宣敎センタ一, “宗務時報No.113” 文化庁文化部総務課, 일본 기상청, 搖れる日本列島(http://jisin.jpn.org)


정리 및 보고
전지석, 유지연 선교사(일본주재 바울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