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권역 | 동티모르  / East Timor

동티모르(TIMOR-LESTE)

김길용 노수잔(동티모르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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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상이 보이는 동티모르 바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있는 티모르섬은 아름다운 섬이다. 동티모르는 티모르섬의 동쪽 부분에 자리 잡은 공화국으로 정식 명칭은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처럼 이들도 동과 서가 분단되었다. 서티모르는 인도네이사로 편입이 되었고,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이 되었다. 국토면적은 14,974㎢이며, 인구는 129만 명이 살고 있다. 수도는 딜리(DILI)이며 동남아시아에서 필리핀과 함께 유일한 가톨릭 국가이다. 하지만 동티모르의 가톨릭은 정령 신앙이 더해진 혼합 카톨릭으로 정령을 숭배한다. 개신교는 2%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복음이 필요한 나라이다.

 

동티모르의 역사

1. 포르투갈 이전의 시대(1515년 이전)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티모르섬에는 기원전 4만~2만년 전에 최초로 사람이 거주를 시작했고, 기원전 3천 년 전에 멜라네시안들이 도착해 주로 산악지역에 거주하였으며 기원전 2,500년 경엔 프로토-말라이(proto-malay)계 부족이 남중국해 지역을 통해 흘러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포르투갈의 식민지배(1524년)

1515년경 포르투갈 상인들이 현재의 오에쿠시(Oecussi)시 (현재 인도네시아 영토인 서티모르 내에 위치한 동티모르의 별도 행정구역) 해안에 도착하여 주로 이 섬의 특산물인 백단목(sandalwood)을 유럽으로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티모르섬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524년 포르투갈은 티모르섬 전체를 식민지로 편입하였으며, 향료와 가구 제작에 인기가 있는 백단목을 실어내기 시작했다. 이후, 백단목이 고갈됨에 따라 1815년 경 커피를 들여와 개발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그 커피가 이 나라의 주산물이 되어 산속의 어려운 주민들의 생계를 해결해 주고 있다.

 

3. 티모르섬의 분할(19세기 후반)

포르투갈이 티모르섬 전체를 먼저 식민 지배하였으나,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한 네덜란드는 쿠팡(Kupang)을 중심으로 티모르섬의 서부지역을 차지했다. 이후 티모르섬을 두고 각축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19세기 후반, 포르투갈이 동티모르를 계속 지배하되 서티모르를 네덜란드에 양도하기로 서로 합의를 한다. (포르투갈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도 동티모르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전기, 상수도, 도로 건설 등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음)
현재 동티모르와 떨어져서 서티모르 내에 위치하고 있는 오에쿠시-암베노(Oecussi-Ambeno) 지역은 동·서 티모르 분할 합의 당시 포르투갈인들이 티모르섬에 최초로 정착한 지역이고, 서티모르 다수민족인 아토니(Atoni)족과 구별되는 테툼(Tetum)족의 근거지였던 관계로 동티모르에 편입된다. 동티모르와 서티모르 간에 민족, 역사, 문화적으로 근본적 차이는 별로 없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간 각축으로 동·서 티모르로 분할되면서, 동티모르에는 개신교와 이슬람이 거의 없는 반면, 서티모르에는 네덜란드의 지배 영향으로 개신교와 이슬람이 일부 있다.(서티모르 종교: 가톨릭 약 70%, 개신교 약 20%, 이슬람 약 10%)

 

4. 일본군, 티모르섬 점령(1942~45)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태평양 지역 제해권과 호주 점령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고 해안이 수심이 깊어 잠수함 기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티모르섬을 1942.2~1945.9월 간 점령하였다. 2만여 명의 일본군에 대항하여 20~30여 명의 호주군이 동티모르인들의 지원 하에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3년 반에 가까운 일본군 점령 기간에 약 5~6만여 명의 동티모르인들이 희생당하였으며 커피, 코코아, 고무 등의 작물이 황폐해졌다.

 

5. 포르투갈의 식민지 포기 및 독립선언(1975)

02.jpg포르투갈은 경제적으로 별로 가치가 없는 동티모르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 아프리카 지역 포르투갈 식민지국들의 분리 독립 및 세계적인 탈 식민지화 추세에 따라 포르투갈은 동티모르를 독립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1971년부터 동티모르에 자치권을 부여했다.
1974년 포르투갈의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는 등 포르투갈은 자국 내 사정으로 동티모르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는 가운데, 티모르민주연합(UDT)과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FRETILIN)은 연합하여 독립을 준비하였으나, 1975.8.11일 UDT가 포르투갈과 FRETILIN을 축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고 약 3천 명의 희생자를 내고 실패했다. 이후 다수의 UDT 당원은 서티모르로, 포르투갈인들은 딜리에서 아따우로 섬으로 도피를 한 가운데 1975.11.28일 FRETILIN을 중심으로 '동티모르민주공화국(Republica Democratica de Timor Leste; RDTL)'을 선포하였다.

 

6. 인도네시아의 강점(1975~1999)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묵인하에 동티모르가 독립을 선언한 지 10일째 되는 날인 1975.12.7일 6만여 명의 주민을 학살하며 동티모르를 침공해 1976.7.17일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편입시켰다. 인도네시아는 유엔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1983~1997간 괄목할 만한 투자를 지속함으로써, 연평균 6%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나, 포르투갈과는 달리 직접 지배를 통해 동티모르인들의 문화와 민족 정체성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7. 동티모르의 독립투쟁

03.jpg1975년 인도네시아의 무력점령 이후 동티모르는 무장 세력인 동티모르 민족해방군(FALINTIL)을 중심으로 침략군에 대항하였으나 인도네시아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 초기 사령관인 로바르토(Lobato)가 사살된 후, 명맥만 유지하던 동티모르 민족해방군은 1979년 샤나나 구스마웅이 사령관직을 맡은 뒤 군사 전선, 외교 전선, 조직을 갖추고 체계적인 저항을 했다.(샤나나 구스마웅, 투옥 후에는 마탄 루악(Matan Ruak)을 중심으로 무장 투쟁 전개)
2) 산타쿠르즈 대학살(1991.11.12)
1991년 인도네시아군은 포르투갈의 의회 대표단에 대해 동티모르 방문허가를 하였으나 최종 순간에 취소하였다. 이를 항의하기 위하여 시위하던 독립파 청년 "세바스치아웅 고메스"가 인도네시아군 총격에 사망하였다. 무덤에 꽃을 놓는 동티모르 관습에 따라 고메스의 장례 2주일째 되는 날인 1991.11.12일 수천 명의 주민이 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고메스의 유해가 안장된 산타쿠르즈 묘지를 향해 행진했다. 이때 인도네시아군의 무차별 발포로 273명이 사망하고, 250여 명이 실종, 3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동티모르에 와 있던 외신기자에 의해 동티모르의 인권상황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8. 동티모르 독립결정 및 인도네시아군 철수(1999.8~9)

04.png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물러난 후,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 동티모르의 "인도네시아의 통치권 아래 자치"와 "완전 분리 독립"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 UN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에 기울여온 경제개발 및 지원 그리고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를 통한 선전 활동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이 독립 대신 자치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1999. 8.30일 유엔 감시하에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 동티모르의 독립이 결정되었다.
주민투표 결과 독립이 발표되자, 친 인도네시아 자치파 민병대는 무자비한 살상과 방화, 약탈을 자행하여 1,000~2,000명이 희생되고 전국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약 25만 명의 동티모르인들이 서티모르 등지로 피난을 갔다.
인도네시아군은 1999.11.1일 완전 철수하고, 호주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이 동티모르에 진입함으로써 24년간의 인도네시아 지배가 사실상 종료되었다.

 

9. 유엔 과도정부와 독립 실현(1999.9 ~ 2002.5.20)

•1999.10.25. 동티모르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유엔 과도행정기구가 설치되고, 2001. 8. 30.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2002.4.14. 초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샤나나 구스마옹(Xanana Gusmão)이 82.7%의 득표율로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2.5.20. 독립선포(헌법상 독립기념일은 1975.11.28)와 함께 공식적으로 국명을 Timor-Leste로 결정하고 코피 아난 UN사무총장,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독립 선포 일에 새로운 국기 및 국가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동티모르 국기

동티모르.jpg동티모르의 국기는 2002년 5월 20일에 제정되었다. 빨간색 바탕에 깃대 쪽으로 노란색 테두리를 두른 검은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으며, 검은색 삼각형 안에는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다. 빨간색은 나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노란색은 동티모르 역사의 식민지 통치의 흔적을, 검은색은 반계몽주의의 극복 필요성을 의미하며, 별은 밝은 빛의 길잡이를, 하얀색은 평화를 의미한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을 때는 포르투갈의 국기가 공식적으로 쓰였다. 포르투갈은 영국처럼 식민지에 별도의 기를 만들고 이를 쓰기보다는 포르투갈 본국의 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왕정 시대의 포르투갈과 공화국 시대의 포르투갈 기간 국기 도안의 변경이 있었으며, 포르투갈의 국기에 문장을 덧붙여 동티모르 기를 만드는 안이 있었지만, 제안에 그쳤으며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1960년대에 동티모르의 독립운동단체인 티모르 해방 전선의 기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붉은색, 검은색, 노란색의 색깔 배색과 별의 사용 등, 현 동티모르 국기의 출발점이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동티모르 국장

05.png동티모르의 국장은 2007년 1월 18일에 제정되었다. 국장 안쪽에는 라멜라우 산의 형상을 한 피라미드 모양의 빨간색 방패가 그려져 있으며, 빨간색 방패 안에는 노란색 얇은 가장자리가 그려져 있다. 노란색 가장자리 안에는 검은색 바탕 위쪽에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으며, 별 아래에는 다섯 개의 하얀색 빛줄기가 그려져 있다. 빛줄기 아래에는 노란색 톱니바퀴가 그려져 있으며, 톱니바퀴 위쪽에는 펼쳐져 있는 빨간색 책이 올려져 있다. 톱니바퀴 왼쪽에는 노란색 옥수수가 장식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노란색 벼 이삭이 장식되어 있다. 톱니바퀴 아래쪽에는 검은색 소총(AK-47)이 놓여 있으며, 소총 앞에는 노란색 화살이, 화살 아래에는 노란색 활이 놓여 있다. 라멜라우 산 아래에 있는 하얀색 리본에는 동티모르의 나라 표어인 "단결, 행동, 진보" (Unidade, Acção, Progresso) 라는 문구가 포르투갈어로 쓰여 있다. 국장 바깥쪽으로 나온 고리 위쪽에는 동티모르동티모르의 공식 명칭인 "동티모르 민주 공화국" ("República Democrática de Timor-Leste") 이라는 문구가 포르투갈어로 쓰여 있으며, 고리 아래쪽에는 공식 명칭의 포르투갈어 약칭인 "RDTL"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라멜라우 산은 권력의 분리, 독립과 주권의 원칙을, 별과 빛 줄기는 동티모르 국민의 평화를 향한 길잡이를 의미한다. 톱니바퀴, 펼쳐져 있는 책, 옥수수, 벼 이삭은 진보하는 동티모르 국민의 지식과 능력을, 소총, 활, 화살은 동티모르 국민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저항을 상징한다.

독립 후 있었던 주요 사건

가톨릭 계 시위(2005.4-5)

정치와 교육을 분리하는 헌법에 의거, 공립학교 교과과정에서 가톨릭 교육을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전환토록 하는 알카티리 총리의 결정에 반대하는 범 가톨릭계 시위가 발생했다. 2005.4.19일부터 3주간 전국각지에서 가톨릭계(국민의 90% 이상) 수천 명이 딜리에 집결하여 알카티리 총리(이슬람계)의 퇴진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샤나나 구스마웅 대통령의 중재와 정부, 가톨릭 양측의 해결 노력으로 구스마웅 대통령 앞에서 총리와 Ricardo 딜리 주교, Basilio 바우카우 주교가 공동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시위가 종결되었다. (공동선언문: 동티모르 독립 및 국가발전에 있어 종교의 지대한 역할을 인정하고 종전과 같이 종교교육을 학교 정규 과정에 포함)
표면적으로는 종교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에서 제외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알카티리 총리 및 정부의 실정을 비난하는 시위로 평가되었다.

 

동티모르 개관

• 국명: 동티모르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
국명이 2002.5.20 독립과 동시에 "East Timor"에서 포르투갈어 표기인 "Timor-Leste"로 공식 변경되었으나, 국제적으로는 "East Timor"로 통용


• 위치: 자카르타 동방 2,000km 지점에 위치한 티모르섬의 동부


• 면적: 14,874㎢ / 세계 160위 CIA The World Factbook (남한의 약 1/6, 강원도 크기)


• 인구: 약 1,291,358명 / 세계 157위 CIA The World Factbook 2017.07.
- 수도: 딜리(약 20만 명)
- 재외동포 수: 120여 명(2015.4월.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관)


• 언어: 포르투갈어, 테툼어


• 종교: 로마가톨릭 97.6%, 개신교 2%, 무슬림 0.2%, 기타 0.2% (CIA 2015 est.)


• 시차: 우리 시간과 동일


• 독립일: 1975.11.28(포르투갈 식민지로부터 독립 선포), 사실상 2002.5.20 독립국으로 탄생


• 정부형태: 의원내각제
- 대통령이 형식적인 총리 해임권 보유, 총리가 헌법상 정부 수반


• 주요 인사
- 대통령: Francisco "Lu-Olo" Guterres(2017.5 취임)
- 총 리: Rui Maria de Araujo(2015.2)
- 외교부 장관: Hernani Coelho(2015.2)


• 의회: 단원제(65석, 2017. 7월 총선실시)


• 주요 정당

- FRETILIN(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CNRT(티모르재건국민회의), PD(민주당), PSD(사회민주당), ASDT(티모르사회민주연합), 현재 CNRT는 PD, PSD, ASDT 등과 함께 의회 다수연합(AMP)을 수립


• 경제 현황
- 물가상승률: 0.6%(2017, EIU)
- 국내 총생산 GDP: 27억$ (세계 161위)
- 1인당 GDP: 2,190$ (세계 137위)
- 1일 $0.55 이하 소득 비율: 42%


• 전기 보급률: 36.6%(도시 82.3%, 농촌 20.3%)


• 화폐: 미국달러


• 공휴일
- 1.1 New Year's Day 새해
- 2.12 Eid Al-ADHA 이슬람교 대속일(UN 공휴일)
- 4.18 Good Friday 부활절 전 예수 수난 성 금요일
- 5.01 Labour Day 노동절
- 5.20 Independence Restoration Day 독립 기념일
- 8.15 Ascension 예수 승천 축일
- 8.30 Popular Consultation Day 독립결정투표 기념일
- 11.1 All Souls/Saints Day 성인 대 축일
- 11.12 Santa Cruz Massacre 산타크루즈 대학살 추모일
- 11.25 Eid Al-Fitr Observance 이슬람교 금식(라마단) 종료 축제일
- 12.8 Immaculate Conception 성모마리아 잉태일
- 12.25 Chrismas Day 성탄절 외


• 병원(국립병원): Guido Valadares National Hospital(딜리 시내 1개 있음)
- 의료시설이 매우 열악하며, 딜리내 응급 치료시설도 제한적임. 의사가 부족하며 심각한 부상을 당할 시에는 호주 또는 싱가포르로 응급 후송을 실시 할 수도 있지만, 상당한 비용이 청구됨.


• 언론
- 신문: STL(Suara Timor Lorosae) (일간, 주로 테툼어로 기사 게재, 일부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 기사 게재), Timor Post(일간, STL과 같이 주로 테툼어로 기사 게재)
- TV: RTTL(주간에는 주로 포르투갈 방송을 받아 방송하고, 테툼어로 현지 뉴스 위주 방송)
- 라디오: 공영방송 PBS(딜리)와 지방 Community 별로 16개의 비영리 방송국, 국제기독방송 네트워크 1개 방송국 및 외국 라디오 5개 방송국 등


• 주요자원: 석유, 가스


• 주요 수출품: 커피


• 국방: 방위군(F-FDTL)이 담당, 현 규모는 800여 명 수준임
- 2006.4 해고군인 사태로 750여 명이 해고되어 충원 조치 중


• 국제기구 가입: UN(2002.9.27, 191번째 회원국), World Bank, IMF, ADB, CPLP(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IOC, UNESCO, UNDP, WHO, UNICEF, ESCAP, LDC, ICC 등
- 현재 ASEAN 가입을 목표로 적극적인 외교 전개 중


• 최근 주요정세
- '15. 2월 Rui Maria de Araujo 신임 총리가 출범하고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정부가 구성되어 안정적 정국 운영을 위한 초석이 마련
- 동티모르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보이나, 높은 수입 의존도로 인해 2013년, 2014년 무역수지가 연속 적자
- 동티모르 정부는 '2011-2030 장기개발전략(Strategic Development Plan)'에 따라 국가의 기본 인프라 구축 진행 중
- 2017년 3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FRETILIN 총재 프란시스코 구테레스(일명 루올로Lu-Olo)가 57.1%, 과반수 이상 득표하여 제4대 동티모르 대통령에 당선됨(2017년 5월 취임).
- 2017년 3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동티모르의 역내 예비회원국(Regional Prospective Member) 지위 승인
- 2017년 7월 총선 실시
- 2017.10.19. 동티모르 정부의 향후 5개년 국정 운영 계획이 국회 야당의 반대로 부결됨에 따라 동티모르 국내 정치 상황은 향후 수개월간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폭력범죄 등 치안상태도 악화할 것으로 예상됨.

 

국명의 유래

"티모르"라는 섬 이름은 마인어로 동쪽이라는 뜻의 "Timur"에서 유래하였다. 동티모르라는 나라 이름은 "동쪽의 동쪽"이라는 동어반복이 된다.(한때 인도네시아에서는 Timor Timur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표현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포르투갈식 표현이다. 공식 명칭인 Timor-Leste에서도 나타나듯, "티모르(동쪽)"에서도 동쪽에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 계연에선 이런 표현이 자주 있다. 좋은 예로 일랑일랑(Ylang-Ylang, 꽃 중의 꽃)이 있다.

필자는 티모르섬 국명의 유래를 통해 태양이 뜨는 동쪽의 동쪽에 위치한 동티모르가 남태평양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동방의 태양 동티모르'라고 별명을 지었다.

 

동티모르의 지리

06.png동티모르의 동서 길이는 256Km, 최대폭 92Km이며, 지형은 섬 중앙부에 위치한 타타마일라우(Tatamailau) 산(2,963m)을 정점으로 라멜라우(Ramelau) 산맥이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북부지역은 경사가 급하며, 강수량이 적은 편이나, 남부지역은 경사가 완만하며 강수량이 많아 농업에 유리한 편이다. 토질은 퇴적층이 거의 없으며 전체적으로 척박하다. 국토는 특성에 따라 산악지역(mountainous area), 주로 남부 해안선에 자리 잡은 다습 저지대(moist lowland areas), 주로 북부 해안선에 자리 잡은 건조 저지대(arid lowland areas), 해안지대(marine and coastal areas), 도시 지역(urban areas)의 6개 생태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연안 해심은 깊은 편이고, 티모르섬 남쪽에 위치한 티모르해는 최고 심도가 2,500~3,000m에 달한다.

 

동티모르의 자연과 주민

07.jpg(27번째 주가 된 기념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세운 27m 높이 예수상)

 

국토 면적은 14,874㎢로 동남아시아에서 브루나이 다음으로 작은 국가이다. 행정구역상 총 13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티모르 북쪽에 위치한 오에쿠시(Oecussi)주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인도네시아로 편입되어 있을 시기의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령의 27번째 주인 동(東)누사텡가라티무르주의 한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 인도네시아와 가장 가깝지만, 호주 대륙과도 인접해 있기 때문에 호주로부터 기후적 영향을 받는다. 호주로부터 불어오는 고온 건조한 사막 열풍의 영향으로 인해 농업이나 목축업이 발달할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또한, 지형적으로 국토 중앙은 구릉과 산지로 덮여 있다.

 

인구는 약 1,291,358명(세계 157위)이다. 주요 종족은 테툼(Tetum)족으로 인구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이외 말레이계와 파푸아계의 주민 및 기타 36개 종족이 거주한다. 수도인 딜리(Dili)에는 약 20만 명이 거주한다.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국민의 97.6%가 가톨릭을 신봉하고 있으나 무속신앙과 정령신앙 등 토속신앙이 공존하고 있으며, 내륙지방으로 갈수록 토속신앙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동티모르는 대가족이 한집에서 많이 산다. 집이라야 양철로 지붕을 덮고, 야자수 나뭇잎의 줄기로 엮어서 만든 것으로 벽과 칸막이를 한다. 그리고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침대가 전부이다. 집안 바닥은 대부분이 흙 그대로이다. 가부장제로 씨족이 모여서 2~3대가 대부분 같은 집, 또는 떨어져 살아도 바로 옆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자식은 한 가정에 8명 정도이며, 아들을 선호하는 가정이 많다. 아들이 딸보다 노동력이 강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 아이들이 많은 것은(심지어는 10명이 넘는 가정도 있다.) 피임방법을 모르는 것도 원인이지만, 인구 전체가 거의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피임하지 않거나, 임신하면 낙태를 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동티모르 전통사회는 서로 고립된 채 교류가 별로 없었던 관계로 마을 공동체의 역할과 촌장 역할이 중요시되었다. 촌장은 마을 공동체의 원로이자 지도자로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였고, 지방 행정조직이 갖추어진 지금에도 촌장의 권위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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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 년간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결과 포르투갈 문화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낙천적이며, 노래와 춤을 즐기는 편이다.
또한, 25년간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받은 결과, 인도네시아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층이 현 동티모르에서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생필품이 인도네시아에서 유입되고 있는 등 경제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영향권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군과 경찰에 대해 일종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으나,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는 편이다.

 

언어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 450여 년, 인도네시아의 지배 25년으로 인해 동티모르는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의 사람들(노인층)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대의 사람들(청 · 장년 층)은 인도네시아어(바하사)를 말한다. 독립 후에 태어난 사람(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나라에서 공용어로 포르투갈어를 선택해 학교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약 150여 명의 교사를 파견, 포르투갈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나, 국민 중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15%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UN과 NGO 단체, 외국인들의 영향으로 영어를 말하기도 하며 집에서는 부족어인 테툼어를 말한다. 테툼어는 동사의 시제가 불완전하고 3,000여 단어로 구성된 단순한 언어체계를 갖고 있어 교육에 부적합한 언어이다. 포르투갈어가 공용어로 자리 잡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딜리에서는 4개의 언어(포르투갈어, 떼뚬어, 인도네시아어와 영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딜리 외 다른 지역은 부족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보건

딜리에 국립병원이 하나 있고, 타지방은 클리닉이 있으나 의료시설과 의사가 충분하지 못하여 환자를 제대로 처치하기가 어렵다.(외국인들이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함) 현지인 약국 및 사설병원이 딜리 시내 여러 곳에 생겼으나, 위생상태가 불량하여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간염, 결핵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출처: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관)

 

위기상황

동티모르가 세계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식량 확보가 어려워 어린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만성적인 영양결핍 상태에 놓여 있는 등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을 인용, 보도했다. 옥스팜은 동티모르의 조사 대상 가구의 70%가 식량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1년 중 절반을 굶주림에 시달리는 등 식량 위기가 가속화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는 5세 이하의 어린이가 59%에 달했으며 어느 지역은 전체 가구 수의 90%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동티모르의 쌀값은 기후변화와 세계적인 식량 부족으로 인해 올해 들어 두 배나 폭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옥스팜 호주지부의 앤드류 휴잇 국장은 '동티모르에 대한 긴급 식량 지원과 함께 농업 부문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출처: 동티모르 어린이 절반 영양실조; 옥스펌 - 연합뉴스 2008.10.20)

UN에서 발행하는 MIT 신문에 의하면 동티모르 전체 국민의 49%가 일일 80센트 이하의 돈으로 살고 있고 가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1년 통계에 의하면 일일 1불 이하의 돈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전체 국민의 68%라는 신문 보도를 한 적이 있다. 2012년에는 동티모르가 세계 3위의 영양실조 국가라고 기재 되었다.


왜 이리 가난할까? 가스도 있는 나라가 공장이 하나도 없다. 모든 생활필수품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공장이 들어오지를 않는다. 국가 위치가 동떨어져 있고, 가난하여 전혀 내수를 기대할 수 없고, 국민이 기업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고, 교육 수준이 낮고, 국내 기반 시설과 전기와 기타 인프라가 지극히 열악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기업이 들어와 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적 준비가 미비하여 몇몇 기업가가 진출을 생각하고 방문하였다가 전부 포기한다.


동티모르는 가난 때문에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없고 아이들은 많지만(15세 이하 인구가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 전문 교사가 없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가난을 해결함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

 

동티모르의 결혼과 장례문화

1)결혼식

11.jpg동티모르인들의 결혼식은 1~3개월 전부터 식장, 음식, 초대 등 준비를 하고, 친척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곳에는 결혼식장이 없다. 대부분 성당에서 신부의 주례로 거행되지만, 일부는 집이나 큰 강당 혹은, 식당을 빌려서 하는 경우도 있다. 신랑은 결혼하기 전에 신부의 아버지에게 벨리즈(Belis)라고 하는 결혼 지참금을 지급해야 한다.
통상 U$ 1,700~2,000 정도이며, 이 지참금은 부유하지 못한 신랑에게는 큰 부담이므로 지참금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에는 남녀가 도망을 가서 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지참금 전통은 동티모르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동티모르에는 커피를 만드는 소규모 가내 수공업 외에는 산업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전국에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공장이 없으니 고용도 없다. 일터가 없는 청년이 U$ 2,000을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는 하루 U$ 1이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 전체인구의 60%가 넘는다. 지구상 최빈국 중 하나이다. 죽도록 고생해서 번 돈으로 신부를 사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결혼을 하면 여자를 종을 부리듯이 마구 부려먹는다. 일을 시키는 것은 물론, 때로는 마구 구타를 한다.
요즈음은 이런 여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UN을 포함하여 주재국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정부가 관여하는 사업장이나 공공 기관에서는 여성을 30% 이상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출처: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관) 또한, 동티모르는 친족간의 결혼과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나라이다. 특이한 것은 결혼 후에 남편이 다른 부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부인이 선택하고 결정을 한다. 결혼식 날짜도 첫 번째 부인이 결정한다.

 

2)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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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세운 묘 / 집 마당에 있는 묘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고, 옷을 갈아 입힌 후 집에서 2~3일 모시고 애도를 표시하다가 공동묘지에 매장한다. 최근에는 천주교 주교의 지시로 사망 24시간 이내에 매장하게 되어 있다. 매장 후에도 3일, 1주일, 1개월, 3, 6, 9개월, 1년이 될 때마다 추모 미사 후 묘지에 꽃을 바치고, 친척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부모가 사망했을 때에는 1년 동안 검은색 옷을 입고, 1년이 되는 날 검은 옷을 벗으며 성대한 잔치를 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토속적 정령신앙의 영향을 받아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같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이 죽은 자리에 묘를 모시는 경우가 있다. 특히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가 그렇다. 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길옆에 십자가를 세우고 꽃을 올려놓은 무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로뿐 아니라 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옆에 여기저기 십자가가 있고 돌무덤이 있다. (출처: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관)
공동묘지를 사용하기 전에는 집 마당에 매장하고 묘를 세웠다. 하지만 지하수를 사용하는 동티모르에서 위생과 건강상의 문제가 있음을 알고 정부와 가톨릭교회에서 이를 금지하여 현재는 공동묘지에 매장한다. 집 마당에 묘지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종교적 상황

정령신앙(精靈信仰)과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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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마일라우 산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 / 산 정상에 세운 마리아상

 

종교는 대부분이 가톨릭이다.(97.6%) 나머지는 개신교가 2%, 무슬림이 0.2%, 기타 0.2%등. 인도네시아 통치 시대의 1992년 조사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4%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독립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무원 등이 동티모르에서 퇴거하면서 이슬람교도의 비율은 큰 폭으로 저하했다. 한편, 독립운동 등 정신면에서 계속 유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뢰도는 높아졌으며,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CCA), 세계교회협의회(WCC)도 인도네시아 교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동티모르의 모든 공립학교에 종교교육(가톨릭)이 의무교육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면 단위로 소형 성당이, 조그만 마을에도 작은성당(공소)이 있다. 읍 단위로는 수백 명이 미사를 볼 수 있는 대형 성당이 한 개 이상 있다. 또한, 가톨릭 신부가 학교와 지역주민,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가톨릭이 98%에 가깝다고 하지만, 딜리 시 외곽을 포함하여 전국에 정령신앙이 널리 퍼져 있따. 이는 인간과 동물은 물론 나무와 돌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신앙으로 주술의 힘에 의해 영혼이 다른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믿는 것이다.

영산으로 불리는 따따마일라우(Tatamailau) 산을 오르면 정령신앙의 제를 지내는 곳을 만나 볼 수 있다. 10월 말, 우기가 오기 전에 적당한 날을 선택하여 먼저 정령신앙 전통에 따라 소, 돼지 등 동물을 잡아 제단에 피를 뿌리고 주술사의 주문에 따라 산신제를 올린다. 그 다음에 신부가 미사를 오린다고 한다.

 

마탄독(Matandook) : 주술을 행하는 '주술사'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마을을 다니다 보면 종종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사람을 치료한다는 주술사에 대한 광고를 볼 수 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도 흔히 점을 보고 병을 고치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주술사를 찾아간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주술사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어 자신들의 병을 치료한다고 믿는다. 또한, 주술사는 사람들에게 탈리스마라는 물건을 나누어 준다. 탈리스마는 흔히 볼 수 있는 돌이나 칼, 동물의 피부나 뼈, 나무 조각 등이다. 이러한 물건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고 지갑이나 주머니에 하나씩 넣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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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 룰릭(Una Lulik) : '신령한 집' 혹은 '신성한 집'이라 불리는 집으로 마을의 입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우마 룰릭은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집이다. 마을에 이 집을 짓고 돼지 5마리와 암염소 5마리를 제물로 바쳐 조상 신을 부르는 제사의식을 행한다. 그리고마을이나 지역에 지식과 경험이 많은 원로들이 제물로 바친 동물의 간에 쓰인 내용을 읽음으로써 조상의 영혼들이 자신들의 제사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그 집에 거주할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토테미즘(동물숭배) : 동티모르인들은 어려서부터 '악어 신화'를 들으며 자란다. 먼 옛날 소년과 악어가 살았다. 소년은 악어를 도와주고 악어도 소년을 도와준다. 훗날 악어는 죽게 되었고, 그 죽은 악어의 등은 산이 되고 몸은 티모르의 언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악어는 티모르섬이 되어 자기를 구해준 소년과 가족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는 내용의 신화다. 그래서 티모르 사람들은 악어를 자신들의 조상이라 믿는다.

17.png그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악어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가장 강하게 믿고 악어를 숭배하며 신성시한다. 악어에게 음식을 바치고 제사는 지낸다. 심지어 악어를 죽이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고 악어를 죽이거나 먹는 일이 없다. 오히려 바닷가에서 악어에게 물려 죽은 사람에게 조상님이 화가 나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며 그 바다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정령신앙과 혼합된 가톨릭이 문화와 의식 속에 깊숙이 깃들어 있는 동티모르인들은 개신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닐 경우 저주를 하고 관계를 끊어 고립을 시키는 등의 핍박을 하고 있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2%미만 이라는 개신교인 수를 통해 동티모르가 영적으로 열악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97%)가 가톨릭 신자라고 말을 하지만 형식적인 종교일 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손에 들고 읽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번역된 성경은 사람들이 읽기에 너무 어렵게 되어 있어 읽히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성경번역선교회(UBF) 선교사들을 통해 성경을 번역하고 있으나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고, 여러 부족의 언어로 번역을 해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동티모르는 복음의 황무지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바라기는 정령신앙과 혼합된 가톨릭에 붙들린 이 나라 곳곳에 주님의 온전한 복음이 전파되고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기를, 이 나라에 수 많은 교회와 주의 종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동티모르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여러 언어(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 영어)권 나라들로 나아가 복음의 빛을 비추는 선교사들이 되기를 동치모르가 진정한 '동방의 태양'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동티모르를 위한 기도제목

  1. 복음의 능력으로 동티모르에 뿌리내린 정령숭배가 무너지도록
  2. 하나님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도록
  3. 정부가 안정을 찾고 정직과 공의로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4.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도록
  5. 가난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6. 동티모르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선교사에게 하나님의 지헤와 능력이 함께하시도록

 

정리 및 보고

김길용/노수잔 선교사

(동티모르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출처: 위키백과, 네이버, CIA The World Factbook,
옥스펌: 연합뉴스, 외교부, 주 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