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권역 | 인도  / India

인도 공화국   Republic of India

정리 및 보고     임00/서00 선교사

 

 

Ⅰ. 일반현황

1. 개 관
•국명-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
•면적-3,287,782㎢(한반도의 15배, 세계 7위)
•인구-약 1,428,627,663명(2023년, UN. 세계 1위)
•수도-뉴델리/New Delhi
•주요 인사-대통령: 드라우파디 무르무(Droupadi Murmu, 2022.07.25 취임)
          총리: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2014. 5월 취임)
•국경일-1월 26일(헌법 발효일: Republic Day)
•기후-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열대 몬순형 기후
      3~6월(5월 평균기온 40℃), 우기: 7~9월, 건기: 10~2월로 대별
•언어-힌디어(헌법에서 인정하는 공용어는 힌디어를 포함하여 총 22개)
    - 영어는 공용어가 아니지만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회 각 분야에서 넓게 통용
•종교-힌두교 78.5%, 이슬람교 13.4%, 기독교/가톨릭 포함 4.3%, 시크교 1.9%, 불교 0.8%, 자이나교 0.4%, 기타 0.7%
•1인당 국민소득-$2,302(2022년, IMF)
•화폐 단위-루피(Rupee) ($1=Rs. 82, 2023년 10월 기준)
•문맹률-약 25.6%(2023년, CIA)

 


2. 전반적 특성
1) 다양성과 조화
인도의 국토는 서유럽 전체 크기와 비슷하고, 남한 면적의 33배에 해당하는 329만㎢이며, 인구는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가까운 14억 3천만 명에 달한다. 지방에 따라 상이한 기후와 풍토, 다양한 인종 구성, 헌법에 인정된 공식 언어만 해도 22종에 이르는 복잡한 언어분포, 힌두교 및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 극심한 빈부격차, 교육 수준의 차이, 그 외에 수천 년을 내려온 카스트 제도의 잔존 등으로 매우 복잡한 사회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이러한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가운데 수천 년에 걸친 전통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국가적, 사회적 조화와 정체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

 

2)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정치면에서 보면, 인도는 문자 그대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유권자 약 9억 명)이며, 높은 문맹률과 극심한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인내와 관용의 국민성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국민성이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비동맹주의 전통과 실용주의 외교 노선
인도는 초강대국의 세력권 확장 배격과 모든 국가와의 평화공존 추구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아, 좁게는 서남아 지역에서의 지도적 위치를 확고히 하고, 넓게는 비동맹 운동의 기수로서 제3세계에서의 지지 확보 강화를 대외관계의 주안점으로 삼았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신국제 질서 형성에 따라 다극화를 지향하며 실용주의 외교 노선에 따라 세계 모든 국가와 관계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나, 과거 개도국 세력을 대표하고자 했던 외교 노선도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4) 경제발전 잠재력
인도는 약 14억 3천만 인구 가운데 최대 4억 명에 달하는 구매력 있는 중산층을 갖춘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실질 구매력 평가 기준(PPP, 2023년 기준)에서 볼 때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미국국가정보위원회(NIC) 등 세계 주요 연구기관들은 인도의 젊고 풍부한 노동력,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전통, 과학기술 분야 우수성, 영어 사용 능력 등 중장기적 경제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도 경제가 21세기에 미국 및 중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3대 강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4년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 인민당(BJP) 정부 출범 이후 경제개혁을 적극 추진하면서 2022/23 회계연도에는 8.7%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향후 중국을 앞지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 경제국가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인도는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아직도 사회 분야, 인프라 분야, 경제의 대외 개방 정도 및 기업 환경 면에서 중국을 비롯한 여타 개도국에 비해 훨씬 열악한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모디 총리는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에 있다.

 

5) 종교와 카스트제도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국민 대다수가 아직 오랜 전통사회의 생활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바, 종교와 카스트 제도는 인도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가장 주된 요소로서,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종교(힌두교) 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힌두교가 생활에 밀착되어 있으며, 카스트 제도에 의한 차별은 헌법상 금지되어 있고 카스트 제도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도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카스트 제도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6) 지속적인 발전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인도는 많은 난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 거대한 나라에서 복잡다기한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해소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으나,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점차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도는 고도 경제성장 시현, 국제 민간 원자력 협력 확보를 통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인 위상 획득,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 추진 등 최근 세계적인 강대국의 하나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신장되고 있다.


Ⅱ. 역사

1. 역사의 특징
인도는 다양한 인종, 종교, 생활풍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대륙과는 지리적으로 차단된 특수성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개성 있는 고유한 문화를 이루어 왔다. 5000년 이상의 긴 역사 중 정치적 통일을 이룬 시기는 마우리아 왕조(B.C.321~185), 굽타왕조(A.D. 380~606) 및 무굴왕조(A.D.1526~ 1858) 등 3개 왕조이며, 북서부지역은 외부 세력 침입의 통로가 되어 그리스, 훈족, 터키족 같은 외부 세력과의 항쟁 속에서 성쇠를 거듭하였으나, 데칸고원 등 남부지역은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외부 세력의 침입을 비교적 적게 받아 왔다.

 

2. 인도 역사


1) 인더스 문명(B.C. 3000~2000)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B.C. 3000~2500년경부터 약 500년간 번성한 고대 문명으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유적이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등에 버금가는 세련된 문화를 탄생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고도로 발달된 후기 청동기 문명의 단계로서, 종교는 다신교, 정치 체제는 제사장 중심의 공화제를 형성한다. 인더스강 유역의 최초 주민은 검은 피부와 납작한 코를 가진 프로토 오스트랄로이드(미얀마, 말레이계 인종)였으며,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은 그리스, 소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드라비다족이 이룩했다.

 

2) 아리안 문화(B.C. 2000~1000)
인도 문화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리안족이 인도 반도 침입 후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당시 페르시아에 정착해 있던 이들 인도-이란인 계통의 아리안족은 B.C. 2000~1500년경 인더스강 유역을 침입, 드라비다인을 정복했다. 이들 아리안족은 처음에는 북인도의 펀잡 지역에 정착했으나 서서히 갠지스강 유역을 따라 동부로 옮겨가 B.C. 800년에는 벵골 지역까지 이동하였으며, 정복 민족으로서 카스트의 상층부를 형성했다.


인도의 사회계급은 크게 ①승려 및 사제계급인 브라만 ②전사 및 권력 계급인 크샤트리아 ③상인 계급인 바이샤 ④노예계급인 수드라 ⑤불가촉민 등으로 분류된다. 아리안 문화에서는 신을 찬양하고 경건히 예배드리는 의식이 일찍 발달하였는데, 특히 사제 계급인 브라만 중심의 제사 의식과 신에 대한 찬양 등이 집대성된 리그베다 등 베다 문화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베다 시대(B.C. 1500~800)에 이어 우파니샤드와 같은 경전 및 마하 바라타, 라마야나와 같은 대서사시 등에 입각한 힌두교가 초기의 제례 중심의 형식주의적인 브라만교를 대체하게 되었다.

 

3) 도시국가의 형성
펀잡 지역에서 갠지스강 유역으로 진출한 아리안족은 서서히 도시 국가를 형성하여 B.C. 7세기경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지닌 도시 국가들을 건설했다. 특히 유명한 도시국가들로 코살라, 마가다, 비데하, 카시, 앙가, 아반티 등이 있었다. B.C. 7세기에 인도 북부에는 코살라, 중부에는 마가다, 남부에는 비데하 등이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여 상호 각축을 벌였다. 정복 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마가다 왕국은 알렉산더왕의 침입 때까지 난다 왕조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유지 하였으며, B.C. 500년경 불교 및 자이나교가 발생했다.

 

4) 마우리아 제국(B.C. 321~185)
마가다국의 크샤트리아 출신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B.C. 321년 난다 왕조를 멸망시키고, 마우리아 왕조를 건립,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는 벵골만에 이르는 인도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3대 왕인 아쇼카 대제(B.C. 272~232)는 지배 영역을 확대하여 남서부의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했다. 아쇼카 대제의 업적 중 특기할 만한 것은 불교진흥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점인데, 포교에 힘써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B.C. 185년 군사령관 출신 푸샤미트라가 마우리아 왕조를 멸망시키고 숭가왕조를 세웠으나, B.C. 70년에 다시 멸망했다.

 

5) 쿠샨왕조(78~226)
A.D. 78년 박트리아 지방의 쿠샨족 카니슈카왕이 서쪽으로는 이란, 동쪽으로는 중국의 한나라, 남쪽으로는 인도 반도의 중심부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였으나, 226년 이란 지방에 기원을 둔 사산 왕조에 의해 멸망, 이후 인도는 많은 소국으로 분열되었다.
A.D. 100년경 대승불교가 발생했다.

 

6) 굽타왕조(320~606)
찬드라 굽타 1세가 굽타왕조를 세운 뒤, 찬드라 굽타 2세(380~413) 시대에 문화적 르네상스를 구가하였으며, 불교, 힌두교 및 자이나교 등이 융성, 부흥했다. 찬드라 굽타 2세 시대부터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훈족 등의 침입이 시작되어, 굽타왕조는 606년 훈족에 의하여 멸망하였고 훈족 등 중앙 아시아인은 라지푸트인으로 자칭하면서, 굽타왕조의 영토에 힌두 및 자이나교 왕국들을 건립하였다.

 

7) 군소왕국 및 이슬람 세력의 진출(11세기~16세기)
이 기간은 굽타왕조 후 건립된 구자라트, 벵갈, 바마니드, 오리사 등 현재의 주 정부 이름의 유래가 된 지역 군소왕국이 번영을 구가 하였으나, 점차 북서부 지역에서 진출해 온 돌궐 계통의 이슬람 세력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슬람 세력은 11세기부터 카슈미르로부터 남하하여 델리에 술탄령을 건립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마무르크 왕조(1206-1290), 칼지 왕조(1290-1320), 투구루크 왕조(1320-1413), 사이드 왕조(1414-1451), 로디 왕조(1451-1526)로 이어지면서, 무굴제국으로 계승되었다.

 

8) 무굴제국(1526-1858)
12세기 이후 몽골 계통의 이슬람의 인도 침입이 본격화되고 티무르의 5세손 바부르에 의해 1526년 이슬람 왕국인 무굴제국이 탄생했다. 악바르(1556-1605)와 아우랑제브(1658-1707)에 이르러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특히 샤 자한(1627~1658) 시기에는 이슬람 건축예술이 번성하여 타지마할, 아그라 성채, 델리의 레드 성채 등 건축물을 남겼다.


종교적으로는, 16세기 초 구루 나낙이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절충, 일신교인 시크교를 창시했다.
무굴제국은 1707년 아우랑제브 사후 후손에 의한 제국 분열, 지방토후의 발호,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약화되다가 1757년 영국이 프랑스와의 플라시 전투에서 승리하여 인도 경영을 본격화하고, 1857년 영국이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후 1858년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되었다.

 

9) 반영 독립투쟁과 건국
18세기 후반에 생겨난 많은 정치단체 중, 1885년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냉담한 반응에 대응하여 보이콧 및 스와데시 운동(국산품 장려 운동)이 전인도로 파급되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분할통치 정책을 취하여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간 대립을 조장하였으며, 1906년에는 국민회의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영국의 배후 지원을 받은 회교도 연맹을 결성하였다.


1차 대전 이후 인도 국민회의는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하에 영국이 제시한 자치령 지위를 거부하는 등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많은 인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고, 한편 회교도 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요구하였다. 2차 대전 후 영국은 인도에 독립을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방안을 제시한바, 동 제안을 국민회의가 수락함으로써 인도는 1947.8.15일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10) 독립 이후
1947.8.15일 독립과 함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초대 인도 총리에 취임한 후, 1949.11.26일 제헌의회에서 연방제와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헌법이 채택되고, 1950.1.26일 발효됨으로써 영연방 자치령의 지위에서 탈피했다.


한편, 독립 당시부터 파키스탄과는 종교적, 영토적 분쟁으로 1947.10월, 1965.6월, 1971.12월 등 3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중국과는 국경 문제로 인해 1962년 전쟁을 겪는 등 주변국들과 마찰을 겪기도 했으나 비동맹주의와 균형 및 실용주의를 적절히 추진함으로써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시켜 왔다. 국내에서는 국민회의당(Indian National Congress)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추진해 오다가, 1990년 초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1991년 신경제 정책을 채택하여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실시했다. 1990년대 이후 국민 회의당과 인도 인민당(BJP: Bharatiya Janata Party)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들이 합종연횡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고 있으며, 경제개방 및 개혁의 성과로 꾸준히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다.

 

3. 독립 이후 정치 역사

1947.8.15일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인도 총리에 취임했다. 1952.5월 라젠드라 프라사드(Rajendra Prasad)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2014.5월 총선에서 힌두교 민족주의를 표방한 인도 인민당(Bhaharatiya Janata Party)이 대승을 거두어 모디(Narendra Modi) 정부가 출범하였으며, 2019.5월 선거에서도 인도 인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모디 총리가 연임하게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Ⅲ. 사회•문화

1. 사회
인도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 다양한 인종과 복잡한 언어, 힌두교 및 회교 등 상이한 종교, 극심한 빈부 격차와 높은 문맹률, 종교적 사회적 신분제도 등으로 이질성과 다양성을 갖춘 복합적인 사회이다.


1) 카스트(Caste) 제도
수천 년 동안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 해 온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고, 근대화 및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관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족이 인도를 정복한 후 소수집단인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색 또는 직업에 따라 승려계급인 브라만(Brahman), 군인·통치 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및 천민 계급인 수드라(Sudra)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 안에는 다시 수많은 subcaste가 있다. 최하층 계급으로는 불가촉민(untouchable)이 있다. 최초에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으나 오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불허 등 많은 금기를 가진 사회규범으로 굳어져 왔다. 엄격한 카스트제도 하에서 인도인들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의 행위규범을 준수해야 했는데, 예를 들어 브라만은 반드시 해가 지거나 뜰 때 기도를 해야 했고, 경전을 외워야 했다. 이러한 계급제도는 인도 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 데 도움이 된 면도 있다고 하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를 정체시켜 활력을 잃게 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

 

영국 식민 정부와 서구 선교사들, 마하트마 간디를 포함한 많은 사회개혁운동가들은 불가촉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면서 불가촉민들을 ‘신의 자식’이라는 뜻에서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고, 이들이 힌두 사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천민 보호에 앞장섰다.


오늘날 인도에는 1억 4천만 명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바, 정부에서는 입학, 취업시 일정비율을 하리잔에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하리잔 출신이 장관까지 된 경우도 있으나, 농촌에서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사 15%, 수드라와 기타 소외계급 40%, 불가촉민/지정 카스트 30%, 기타/지정 부족 15%

 

2) 인종
현재 인도의 인종은 7대 인종, 즉 Negrito(중앙아시아인), Proto-Australoid, Mongoloid, Alpine, Paleo-Mongoloid, Dravida족, 아리안족 등으로 분류된다. 이와 같은 7대 인종의 순수 혈통은 오늘날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이들의 다양한 혼혈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3)  언어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1,652개 언어가 있으며 이 중 22개 언어를 인도의 공용어로 헌법이 인정한다.
인구의 약 38.7%가 사용하고 있는 힌디어는 전국적 공용어이며, 약 15% 인구가 사용하는 영어는 22개 공용어에 해당하지 않으나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공용어로서, 비교적 학력이 높은 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4) 힌두 전통과 관습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힌두문화는 수 세기에 걸친 무굴제국 및 대영제국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외래문화를 흡수하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가운데 단일성을 유지하는 독특한 전통을 간직해 왔다.

 

•출생 관습 - 어린아이에게 꿀과 기(ghee : 일종의 버터)를 먹이고 장수와 부 및 지혜를 기원하는 만트라(주문)를 외우며 이름 짓는 양식은 출생 후 11일 되는 날에 행해진다.
•결혼 관습 - 1995년 힌두 결혼법은 근친혼을 금하고 있다.(부계 5세대, 모계 3세대)  신랑이 신부의 오른손을 잡고 성화 주위를 오른쪽으로 7번 돌아 걸어감으로써 부부로 인정되는 의식을 거행하며, 결혼지참금 제도(다우리)와 점성술에 기초한 궁합을 따르는 관습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신랑 측에서 신부 측의 결혼지참금이 부족하다고 신부를 학대하거나 심지어 죽이는 극단적인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가 있고, 결혼 이후에도 시댁의 반복된 지참금 요구와 학대에 저항하여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여성들도 등장하고 있다.
•장례 관습 - 장남이 장례식을 주관하며 10일 동안은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기름과 물을
바친다. 주기(週忌)에 의식을 거행한다.

 

2. 문화


1) 베다 문화(B.C. 2000~500)
아리안족의 침입 후 형성된 베다 문화는 인도의 종교·사회·관습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힌두교를 탄생시켰으며, 베다(Veda), 마하바라타(Mahabharata), 라마야나(Ramayana), 푸라나(Purana)와 같은 대 서사시적인 경전을 발전시켰다. 
힌두문화는 건축·조각·회화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 번창했으며 힌두사원 등 많은 기념비적인 힌두문화 유물을 남겼다.

 

2) 불교문화(B.C. 500~A.D. 1100)
불교문화 전성기는 B.C. 3세기 아쇼카 대제 시대로 산치 대탑, 보드 가야의 대탑, 녹야원의 석탑, 아잔타·엘로라 동굴 조각 및 건축 예술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중국, 한국 및 동남아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

 

3) 이슬람문화(A.D. 1100~1600)
이슬람문화는 특히 건축에서 페르시아 및 힌두의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조화를 이룬 대표적 양식으로, 초기의 상호배척을 점차 극복하고 상호 간의 종교적 관용이 정착하면서 우르두어의 탄생 등 언어, 문화,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4) 서구문화의 영향(A.D. 1700~1947)
250년에 걸친 영국 지배하에서 인도 예술은 특히 전통 회화 분야에서 서구 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영어의 도입과 함께 생활양식의 변화와 문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힌두문화는 상당 부분 그대로 전승되었다.

 

5) 독립 이후(A.D. 1947~현재)
독립 이후, 전통문화 창달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등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지원과 문화재 발굴, 보존, 전시 등을 위한 박물관, 문화재 관리국 등 국가행정기관을 통하여 현대 문화와 전통문화를 조화시켜 나가고 있다.

 

3. 교 육
교육의 기본정책은 지역 간의 교육격차 해소, 전 계층 간의 균등한 교육 기회, 국가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자원 개발 등에 목표를 두고 14세까지의 무상 의무교육, 영어, 힌디어 및 주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 GNP의 6% 교육투자 등을 위해 중앙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 노력하고 있다. 학교 교육은 10+2+3의 15년 과정의 교육제도로서 1968년도 채택 후 현재 거의 모든 주가 이를 실시하고 있다.(공대는 10+2+4의 16년 과정을 유지함)  교육은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함께 담당하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델리 대학교 및 네루대학교 등 13개 종합대학, 13개의 인도공과대학(IIT :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및 중요 연구기관을 대학승인위원회(UGC : University Grants Commission)를 통하여 직접 관장하고 그 외 초·중등교육 및 대학 등 모든 교육은 주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 다양한 언어, 복잡한 문화, 사회적 배경으로 초·중등 교과서는 각 주 정부에서 제작·보급하고 있는바, 전국적으로 초·중등교육의 동질성(Uniformity of Standard)을 유지하기 위해 국립교육연구개발위원회(NCERT)가 영어·힌디어로 교과서를 제작하며, 각 주는 이를 모델로 삼아 교과서를 제작·발행하고 있다.

 

1) 초등학교
1~5학년(6~11세)의 초등학교 교육은 모든 주가 무상으로 실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연방정부는 전국 취학아동 수를 95%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중학교
6~8학년(12~14세)의 중학 과정은 대부분의 주에서 교육비 보조금 지급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정부는 헌법에 규정한 최하층 계급에 속하는 아동들에게는 중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3) 고등학교
9~12학년의 고등학교 교육은 반 이상의 주 정부가 교육비 보조금 지급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4) 대학교
13~15학년의 대학 교육은 유상교육으로 정부는 대학승인위원회(UGC)를 통해 대학 교육을 관장하고 있다.

 

5) 기타 교육
15~25세 대상 청소년을 위한 1~2년 과정의 직업기술 훈련학교, 15~35세에 해당하는 약 1억 4천만 명의 인구를 대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성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4. 종교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등 4개 종교의 발생지이며 이슬람교, 기독교, 배화교, 유대교 등 다양한 외래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종교(힌두교)는 인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종교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종교는 인도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바, 종교는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헌법은 모든 종교에 대한 무차별, 신앙의 절대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보장받는다고 하지만 힌두교 등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를 제외한 외래 종교에 대하여는 매우 배타적이며, 힌두교도들의 타 종교로의 개종을 금지하는 주 정부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인도의 종교 인구 분포는 힌두교 78.5%, 이슬람교 13.4%, 기독교 4.3%, 시크교 1.9%, 불교 0.8%, 자이나교 0.4%, 기타 0.7%이다.

 

1) 힌두교
힌두교는 B.C. 2000년경 아리안족 침입 후 최고 경전 베다(Veda)가 집대성되면서 정치, 사회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이슬람교 등 이교도의 수 세기 동안에 걸친 침략 속에서도 이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드라비다족의 토속신앙, 아리안족의 자연신 숭배 등에 바탕을 둔 다신교인 힌두교는 외래사상과 종교 등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특징으로 하며 생활 경험, 도덕, 사회관습, 규범의 총체로서 다르마(Dharma, 정의 또는 의무)에 따른 수도 생활과 최고 정신을 탐구하는 고도의 생활 철학적 종교이다. 소를 신성시하고 카스트제도를 정착시킨 힌두교는 해외 전파보다는 인도인의 종교로 존속하길 바라는 성향을 띠고 있다. 현재 약 10억 2천만 명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힌두교는 인도 사회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종교이다.

 

2) 이슬람교
A.D. 11세기 이슬람 세력의 인도 서북부 침입으로 술탄 왕조가 성립되면서 전래되었고 무굴제국 전성기에 델리를 중심으로 번성하였으며, 현재 약 2억 명의 신도를 가진 인도 제2의 종교이다. 이슬람교는 술탄 왕조에 의한 힌두교 탄압으로 때때로 힌두교와 충돌해 왔으나 상호 교류 속에 공존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건축, 회화 등 인도 문화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현재 힌두교와 예민한 갈등 관계에 있다.

 

3) 기독교
A.D. 1세기 St. Thomas에 의해 처음 전래된 기독교는 영국통치 시대에 케랄라, 타밀나두 등 주로 인도 남부지방에 뿌리를 내렸다. 인도에서 기독교라 함은 일반적으로 가톨릭이라고 생각하며 개신교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기독교인의 약 70%가 가톨릭이며 약 30%가 개신교이다. 가톨릭은 힌두와 혼합되어 엄격하게 기독교로 분리할 수 없으며, 개신교 중 약 6%만이 복음주의적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4) 시크교
A.D. 16세기 구루 나낙(Guru Nanak)에 의해 창시된 힌두교의 개혁 종교인 시크교는 주로 펀잡주와 델리에 분포되어 있다.

 

5) 불교, 자이나교
B.C. 3세기~A.D. 5세기까지 번창한 불교는 주로 마하라슈트라주에 분포되어 있으며, 불교와 함께 힌두교로부터 유래된 자이나교는 특히 비폭력, 살생 금지를 주된 이상으로 하고 있다.


5. 관습
인도 사회의 전통적 위계질서를 규정해 온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족이 토착민들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독특한 계급제도로서 소속 카스트에 의해 개인의 신분, 직업 등 사회적 위치가 결정된다. 오늘날 이 제도는 국내법상 폐지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결혼, 교육, 직업 선택 등 개인의 전반적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주요 요인이다. 정부는 독립 이래 하위 카스트들에 대한 교육, 직업 혜택을 헌법에 명시하고, 이들에 대한 혜택을 늘려감으로써 카스트제도의 완화 내지 폐지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당들은 카스트를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어, 카스트 제도가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의 기본 교리의 일부로서, 다른 종교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인도인들은 카스트제도를 악습으로는 보고 있으나 종교와 밀착된 점에서 단시일 내 폐지가 어려울 전망이며, 또한 대도시보다는 지방에서 강하며, 특히 관혼상제 등의 예식과 친목 교류는 동일 카스트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카스트 제도하에서는 개인의 직업이동이 흔하지 않다. 인도인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사원이나 집안에서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다. 힌두교는 다신교로서 교리나 성찰보다는 수많은 제신들의 형상화(우상)를 통한 의식이 주요 신앙생활을 이루고 있으며, 도덕률이나 내세구원보다는 개인의 현세구복에 치중 하고 있다. 오랜 카스트제도 하에서 묵묵히 순종해 온 생활 태도, 불교의 자비와 관용적 사상, 장기에 걸친 이민족의 지배 등의 영향에 기인하는 관용적 태도, 생명 존중 사상, 무저항주의 같은 평화주의 사상이 인도인들의 생활 저변에 깔려있으며, 마하트마 간디가 제창한 비폭력주의도 이러한 전통적 사상의 계승 내지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힌두 등 종교, 종파 간 갈등 분규가 발생하는 경우 폭력 사태로 변질되기 쉬우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도인들은 전통과 관습을 존중,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보수적 풍속을 벗어나는 외국인은 풍속사범으로 체포, 처벌하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금주 제도를 실시하는 주가 있으며 일반 식당에서도 금주일이 있고, 판매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주류 판매는 호텔이나 규모가 큰 대중식당에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성들은 복장 법령에 따라 공적 활동 시 반드시 전통의상인 사리 또는 사르와르 카미즈를 입어야 하며, 일반대학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전통 의상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다.


Ⅳ. 인도의 기독교 역사

1. 기독교의 전래
인도에 기독교가 최초로 전래된 것은 서기 55년경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 사도가 인도에 도착하면서부터이다. 도마는 뱃길을 통해 인도의 동부 및 서부 연안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이들 도마 기독교인들을 나스라니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나사렛 예수를 믿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인도의 교회 공동체는 나중에 페르시아에서 온 가톨릭 주교들의 교도권 아래 들어가게 된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대략 4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2. 초기 선교(가톨릭)
1307년경 중국 선교사로 파견된 몬테코르비노의 요한은 프란치스코 회원이었으며, 그는 페르시아에서 출발해 뱃길을 통해 인도로 가서 1291년 마드라스 지역 또는 ‘도마 지역’에 도착하였다. 요한은 그곳에서 13개월 동안 사람들을 상대로 설교하였으며, 약 백여 명에게 세례를 집전하였다. 요한은 마일라풀에서 배를 타고 1294년 중국에 도착하여 수도 칸발리크(오늘날의 베이징)에 당도하였다. 포르데노네의 오도릭 수사는 1321년에 인도에 도착하였으며, 말라바르, 판다라니(캘리컷에서 북쪽으로 20m), 크랑가노어, 쿨람 또는 퀼론 등을 방문하였다. 더 나아가 실론과 마드라스 인근에 있는 도마 성당까지 방문하였으며, 그는 이곳에 성 도마의 유해가 묻혀있다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뒤이어 도미니코회에서 파견한 선교사 요르다누스 카탈라니 신부가 1321~1322년 인도를 방문하였으며, 인도의 서부 해안에서 그는 로마로 서신을 보내 순교한 네 명의 수도자를 가톨릭 양식에 따라 매장하였다고 보고한 기록이 남아 있다. 

 

3. 개신교의 선교 역사 


1) 식민지 시대(1706~1946)
인도가 식민 통치를 받는 동안 유럽 선교사들에 의한 타 문화권 선교는 1706년 '근대선교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독일의 지겐발크가 남인도의 타밀나두 지역으로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이후에 많은 독일 선교사가 인도의 타밀나두 지역으로 들어와서 독일 선교사들에 의한 타밀어 성경번역 교회 개척, 신학교 설립을 통한 지도자 양성 등의 사역이 진행되었다. 


지겐발크(2006년)와 윌리암 케리(1993년)기념 우표
1793년에는 '근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케리가 북인도의 웨스트 벵갈 지역으로 들어온 이후 많은 영국선교사가 이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윌리암 케리는 수많은 인도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였고, 신학교를 포함한 대학교 설립으로 지도자 양성에 힘썼으며 사회개혁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2) 독립 이후 남인도 선교사들의 타 문화권 선교 시대(1947~1990)
식민지 시대 속에서 활약했던 유럽의 선교사들이 고국으로 철수하면서 1960년대부터 남인도의 자국민 선교사들에 의한 북인도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현재에도 북인도에서 활약하는 많은 선교단체와 교회 지도자들이 케랄라와 타밀나두 두 개 주 출신인 경우가 많다. 북인도 선교는 인도 사회 속에서 소외되었던 부족들과 낮은 카스트 그룹들 속에서 왕성한 사역이 이뤄졌다. 도시 선교가 상대적으로 미약했으며, 남인도의 예배 형태와 문화가 북인도에서 강조되는 약점을 가지기도 하였다.

 

3) 북인도 선교지도자들에 의한 북인도 선교 시대 (1991년 이후)
1991년부터 북인도의 여러 지역에서 교회 개척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고, 도시 속의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의 도전이 나타났으나 교회에 대한 핍박도 증가하게 되었다. 효과적인 북인도 선교를 위해 적절한 예배의 형태, 다양한 카스트에 따른 접근방식,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제자 훈련 방식, 교회 개척 운동 등 북인도의 문화에 적합한 전략이 필요하다.

 


Ⅴ. 현 정부(MODI)와 힌두교 민족주의

2014년 나렌드라모디(Narendra Modi) 총리가 집권에 성공하면서 인도의 민족주의(Hindu nationalism) 조직을 이끌고 있는 국민 의용단(RSS, Rashtriya Swayamsevak Sangh)을 정치 세력화하여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인도에는 힌두교 민족주의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힌두교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의 지지를 받아 활발하게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힌두교 급진주의자들이 기독교를 이질적인 종교 집단, 인도의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집단으로 간주하면서 보수적인 힌두들을 동원하여 기독교를 핍박하고 기독교 공동체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납치, 성추행, 강간, 인신매매, 폭력, 살인, 공동체로부터의 강제 추방 등을 일삼는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자원, 식량, 식수, 재산 상속, 교육, 일자리, 여행을 극히 제한하며, 공동체로부터의 강제 추방, 투옥 등과 함께 폭력, 살인 등을 저지르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예배당 파괴 또는 방화, 목회자 폭행, 살인, 예배 방해, 협박, 투옥, 성도들의 가옥을 방화하는 등 박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특히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 더욱 심한 박해를 받을 뿐만 아니라 개종 반대법 시행으로 기독교로의 개종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외국인은 인도에서 종교활동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선교사들이 사업자 비자, 취업비자, 방문비자, 학생비자 등 입국 가능한 비자를 받아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선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을 감시하고 발각될 경우 인도에서 즉시 추방하고 다시 입국할 수 없도록 비자를 발급하지 않으며, 입국 거절 등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선교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시작된 선교사에 대한 감시와 추방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선교사들이 갑작스럽게 인도를 떠나면서 사역의 방치, 사역의 연속성 부재, 사역의 이양 등 여러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오픈도어선교회에 의하면 인도는 기독교 박해지수가 세계 11위(2022년)이며, 박해 점수도 100점 만점에 82~83점으로 높은 지수를 나타내고 있다.


인도를 위한 기도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도의 지도자들을 많이 세워주소서.
2. 인도 선교 사역에 막힘이 없게 하시고 사역에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소서.
3.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게 해 주시고 박해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소서.
4.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5. 교회와 기독교 사역에 대한 현 정부의 규제 강화와 통제, 힌두교 근본주의 단체들과 반기독교 시민단체들의 감시와 핍박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큰 믿음과 성령 충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