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권역 | 가나  / Ghana

가나 공화국(Republic of Ghana)

맹재관, 안지은 선교사(가나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1. 가나 국기

아프리카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식민지 시대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적색은 독립 투쟁의 피를, 노란색은 미래의 희망을 나타내는 황금을, 녹색은 농업이 잘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에 있는 검은 별은 범아프리카주의 상징으로 아프리카 노예 문제 개선을 위해 힘썼던 마커스가비가 만든 흑인 수송선의 이름에서 왔다.


2. 기본 정보

  • 공식 명칭: 가나 공화국(Republic of Ghana)
  • 수도: 서부 아프리카
  • 위치: 아크라(Accra, 234만 명)
  • 인구: 3,107만 명('20, IMF)
  • 면적: 238,537㎢(한반도 1.1배)
  • 민족: Akan, Ewe족 외 100개의 부족으로 구성
  • 종교: 기독교(71%), 이슬람교(17.6%)
  • 언어: 영어(공용어), Twi어, Ewe어, 그 외에 70여 개의 부족 언어가 존재
  • 독립: 1957.3.6(영국에서 독립)
  • 화폐: 가나 세디, 1USD=5.86(2020.11월 기준)
  • 정부 형태: 공화국(대통령 중심제)
  • 대통령: 나나 아쿠포아도(Nana Akufo-Addo)
  • 부통령: 마하무두 바우미아(Mahamudu Bawumia)
  • 외교장관: 셜리 보치웨이(Shirley Ayorkor Botchwey)


3. 서아프리카에서의 위치

가나는 서아프리카의 위치하고 있으며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토고와 인접해 있다. 가나 근처에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쓰나 가나는 영어가 공용어다. 가나는 토고와 함께 독일 식민지에 속해 있었다가,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양분하면서 가나는 영국, 토고는 프랑스에 지배당했다.


4. 가나 역사

가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8세기경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그 시기부터, 이미 나이저강을 중심으로 농업을 행하던 원시 부족 공동체가 모여 살면서 지역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그 후, 지중해 및 이집트와의 지속적인 교류 덕분으로 북부의 문화와 종교, 물산이 전파되면서 소닌케족이 가나왕국을 세우게 되었다.


이후, 쇠망하는 가나제국을 멸망시키고 말리 지역을 중심으로 말리 제국을 건설하였다. 말리 제국은 농업이 번창하고 이슬람교를 믿었으며,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왕조들과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말리 제국이 독재자의 통치로 인해 쇠퇴하자 15~16세기, 서아프리카 지역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국인 '송가이 제국'이 이 일대를 접수하게 된다. 송가이 제국은 이슬람 교세를 더욱 확대하고 부패 척결을 비롯 정치, 농업 분야의 개혁을 감행함으로써 다시 한번 전성기를 불러왔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고 결국 왕위 계승 문제로 나라가 여러 소국으로 분열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 유럽 열강의 침략이 가장 먼저 닿았던 곳이 바로 지금의 가나 지역이다. 포르투갈은 대항해를 시작한 15세기 중엽, 가나 땅에 도착해 가나의 황금 원석을 착취해갔다. 17세기부터는 포르투갈이 쇠망하고 세계 해양패권을 장악한 네덜란드가 가나지역을 점령하고, 본격적인 노예무역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영국 프로이센, 독일에 이르는 여러 유럽 열강의 지배를 받으며 자원과 인력 수탈을 당하다가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실제로 가나가 독립한 해는 1957년으로 튀니지와 모로코에 비해 1년 늦지만, 북아프리카 이슬람 동맹이 아닌 나라로서는 가장 먼저라고 한다.


5. 가나 정치

1992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가나의 정치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대통령이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이다. 임기는 4년으로 보통선거로 선출되며, 입법부는 단원제로 4년 임기의 국회의원 230명으로 구성된다. 총선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며 주요 정당은 중도 우파 성향에 NPP, 신 애국당과 중도 좌파 성향에 NDC인 국립 민주의회가 팽팽한 여당 야당의 자리를 놓고 의석수를 차지하는 형국이다.


1957년 3월 6일 독립 이후 그해 12월 콰메 은크루마가 가나의 야당을 모두 하나로 통합했다. 또, 이듬해 은크루마는 위험인물로 간주하는 사람을 재판 없이 구금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학교, 도로, 보건 시설, 철도 등이 신설됨에 따라 국민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가나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아쿠포 아도는 가나의 6대 독립 운동가로 콰메 은크루마와는 다르게 실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2012년 총선이 있었으며, 2016년 12월 7일에 진행된 총선거는 존 드라마니 마하마의 실책으로 인해 NPP가 승리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사회는 NPP때보다 더 불안해졌으며 경제 침체도 동반되었기 때문이었다. NDC는 존 드라마니 마하마가, NPP는 나나 아쿠포 아도가 출마하여 NPP의 나나가 승리했고, 총선도 압승했다.


비록 현대의 가나는 공화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추장의 권력이 행정, 입법, 사법 권력의 축이었으며 여전히 지역뿐 아니라 중앙 정치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를 치프턴시(Chietaincy)라고 부르며 현재 헌법 또한 이 제도를 뒷받침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아샨티 왕국의 중심지인 쿠마시에서는 6주에 한 번씩 아콰시다이(Akwasidae) 축제가 열리는데, 소규모에서 대규모까지 수많은 왕국의 추장들이 모여 켄테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금으로 된 다양한 장신구를 자랑하며 행진한다. 지역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춤과 음악 또한 공연된다. 추장들은 한자리에 모여 앉아 더바(Durbar)라고 불리는 회의를 열어 다양한 지역의 안건을 처리한다.

 

6. 가나 경제와 산업

가나의 경제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한다. 가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어서 아프리카에서 금을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며, 다이아몬드와 망간, 철광석, 석유등도 생산한다. 2013년 기준으로 가나 전체의 노동력 가운데 53.6%가 농업에 종사했으며, 주요 수출 품목인 카카오를 비롯해 알곡 작물로 옥수수와 플란틴, 벼 등을 재배한다. 가나는 2017년 기준으로 코트디부아르에 이어서 세계에서 카카오를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다.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농촌 인구의 37.9%, 도시 인구의 10.6%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다. 아크라에 있는 코토카 국제공항은 가나의 허브 공항으로 다른 아프리카 나라와 유럽, 미국과의 항공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 GDP: 671억불('19, World Bank)
  • 1인당 GDP: 2,223불('19, World Bank)
  • 교역 규모: 278억불('19, IMF)
  • 수출: 152억불(금, 원유, 코코아 등)
  • 수입: 126억불(자본제, 정제유, 식료품 등)
  • 화폐 단위: Ghanaian Cedi
  • ※ US $1 = 5.86 GHS(2020.11월)


가나는 아프리카 내륙국 중에서는 정치체제가 안정된 편에 속하고 부패 인식 지수는 이탈리아보다도 높은 국가로 현재는 GDP가 낮은 편이나 앞으로는 아프리카 내에서는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다.


7. 최근 주요 정세

  • 2012.12.7: 대선 및 총선 결과, Mahama 대통령 재선 및 NDC가 여당 유지 NDC 148석, NPP 122석, 기타 정당 또는 무소속이 5석을 차지
  • 2012.12월: 대선에서 승리한 Mahama 대통령 정권하에서 '15년 IMF 구제금융 상황 초래. 금, 카카오, 원유 가격 하락, '12년 선거 이후 방만한 재정 운영 등으로 '13년 말부터 세디화 가치급락, 재정적자(GDP의 67.1%) 및 최근 전력난 악화로 잦은 단전 발생. IMF는 가나에 '15.4월-'18.3월간 총 6억 6,420만 SDR 규모(9억 1,800만 불)의 확대 금융 지원 중
  • 2016.12.7: 대선 및 총선 실시, 제1야당(NPP)의 Akufo-Addo 후보 당선, NPP가 국회  275개 의석 중 160석을 차지하여 안정적 정치 기반 마련
  • 2017.1월: Akufo-Addo 대통령 취임 이후 1지역 1공장(One District One Factory) 정책, IMF 구제금융 조기 졸업 추진, 적극적 외국투자유치 등을 통해 안정적 정국 운영 중
  • 2019.7월: 아프리카대륙 자유 무역지대(AfCFTA) 협정 사무국 유치
  • 2020.12월: 대선 및 총선


8. 가나 주요 인물

1)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실질적인 가나의 독립을 이끌어낸 지도자, 콰메 은크루마는 1960년 가나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재임기간 동안 독재정치로 인해 가나의 정치를 혼란으로 이끈 인물이다. 가나는 독립 이후 불안정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고 1990년이 될 때까지 수차례 쿠데타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1992년 헌정 복귀가 완료되었다. 1960년 7월 1일에 은크루마가 가나의 초대 대통령으로 올랐다. 오늘날 가나에서는 3월 6일을 독립기념일로, 7월 1일을 공화국의 날로 기념한다. 은크루마는 아프리카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범아프리카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미국의 링컨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범아프리카주의를 접했고, 1960년대에 마커스 가비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윌리엄 에드워드 부르크하르트 두 보이스등의 주장을 국정 운영 방침으로 삼아 비동맹 운동의 결성을 이끌었으며, 콰메 은크루마 사상 연구소를 세우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을 가르쳤다. 오늘날 가나에서는 은크루마의 생일인 9월 21일을 설립자의 날로 공휴일로 지정하고 은크루마를 기린다. 

 

2) 코피 아난(Kofi Atta Annan)
가나 출신으로 또 잘 알려진 인물로는 2018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한 유엔의 7대 사무총장 ‘코피 아난’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정치인, 외교관, 경제학자이며 유엔 사무총장 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으며 2001년 가나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골드 코스트에서 유력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금요일에 태어난 소년’이라는 의미인 ‘코피’라는 이름을 가졌다. 태어날 때부터 식민지 상황을 몸소 느끼며 성장했지만, 변화는 가능하다라는 것을 믿고, 미국에서 학사를, 스위스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으며 세계보건기구에서 행정예산 담당관으로 유엔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세월이 흘러 1990년 이라크에 억류된 외국인 석방을 위해 후세인과 협상을 해서 900여 명의 유엔 직원을 포함해 외국인 구류자의 협상을 성공 시켜 인정을 받고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시 유엔 개혁, 에이즈 확산 방지, 빈곤 퇴치, 아프리카 내전 등의 지역 분쟁 중재 등의 성과를 냈다고 한다.

 

3) 마이클 에시엔(Michael Essien)
가나는 축구를 상당히 잘하기로 유명하다. 2005년부터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빅 클럽인 첼시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마이클 에시엔 선수가 가장 유명한 가나 출신 축구선수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도 축구를 굉장히 사랑해서, 이곳 사람들은 돌멩이 4개로 골대를 만들어놓고 아무 곳에서나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나의 피파 랭킹은 37위로, 코트디부아르에 이어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2위에 해당하는 높은 순위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9. 가나 종교

종교는 대략 남부 기독교 70%, 북부 이슬람 30%로 양분되어 있다. 기독교는 내부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각자의 세력을 이루고 있으며 다만 가톨릭 인구는 소폭 감소하는 추세고 개신교 중에서는 오순절교회가 성장세가 제일 크다. 감리회 인구도 상당한 세력이 있다. 소수이지만 콥트 정교회 신자들도 있다. 2번째로 큰 종교는 이슬람교로, 가나에서 가장 주류인 이슬람 신앙은 말리키 학파 배경의 온건한 수니파 이슬람이다. 소수의 아흐마디야, 시아파(강경파) 무슬림들도 있다. 기독교인들은 남부와 중부에, 무슬림들은 대부분 북부에 산다. 다만 기독교인 중에서도 콥트 정교회 신자들은 무슬림들처럼 대다수가 북부에 산다. 가나의 무슬림들은 자녀들을 근대적 학교에 보내거나 서구식 교육을 지양하고 이슬람 종교교육만 시켜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한다. 가나의 이슬람 인구는 1960년 센서스에서는 25% 수준이었는데 2000년 통계에서는 15%까지 줄었다가 2010년대 이후로 증가 추세에 있다.
 

10. 가나 선교 현황

가나는 크게 기독교, 이슬람, 토속신앙을 가진 나라이다. 침략 후 유럽 제국주의와 함께 기독교가 아프리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보의 부족과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의 질병과 기후로 대부분의 선교사는 그곳에서 순교하였고 기독교는 주춤했다. 남겨진 기독교는 뿌리를 내렸으나 든든하지 못하였다.


가나를 반으로 나눈다면 북쪽은 이슬람이 왕성하고 남쪽은 기독교가 왕성하다. 가나의 대부분의 상권은 중동의 레바논 이슬람 계열의 사람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게 이슬람의 인구가 늘다 보니 가나에도 "라마단"이라는 이슬람 종교일이 공휴일로 채택되었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전략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주 조직적이고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기독교인인 우리들이 볼 때는 경계의 대상이다.


거의 큰 교회들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고 큰 성장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교회가 중부 이남을 중심으로 포진되어 있으며 북부의 무슬림 지역에는 소수의 교회들이 개척되어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큰 성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많은 사역자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 상황은 시골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제자훈련과 믿음의 지도자 양성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교회의 임원은 그 마을의 여러 개의 술집을 관할하며 술의 맛을 봐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시골에는 올바르게 복음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므로 그 부분을 미신적인 부분들이 채워지게 되기도 한다. 한 마을의 주주(무당과 흡사)가 교회에서 예언을 하기도 하고 기독교인이라도 아프면 주주를 찾아가서 빌기도 한다. 또한 외형적으로 급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술사에게 능력을 받아 교회에서 각종 은사를 행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교회가 교회다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곳이 많아 이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할 사역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11. 기도 제목

  1. 독립 후 안정되고 공정한 민주주의 개발에 있어 좋은 토대를 이루지 못했으며 권력자들이 본인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바르게 세워질 수 있도록
  2. 이슬람 지역인 북부에 세워진 교회들이 매우 열악하고 성경적인 진리에 따른 기독교의 세계관보다는 정령숭배 사상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음으로 이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건강하게 세워지도록
  3. 심각한 은사주의와 명목상인 남부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온전히 깨닫고 복음을 전하고 성령께서 더 많은 무슬림을 예수님께 이끄시는 사역에 자신을 헌신하도록
  4. 북부 무슬림 사역을 위한 더 많은 선교사가 보내지도록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행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