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권역 | 파키스탄  / Pakistan

 

선교지 소개

파키스탄   Kyrgyz Republic 

■ 정리 및 보고     김0미 선교사(파키스탄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1. 파키스탄 일반 개요

1) 일반사항

국명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수도

이슬라마바드

안규

약 2억 4,520만 (2024년, 세계 5위)

면적

796,095만㎢ (한반도의 약 3.5배)

민족 구성

펀잡 44.7%, 파슈툰 15.4%, 신디 14.1% 등

종교

이슬람교-국교 96.4%, 수니파 85~90%, 시아파 10~15%, 기독교 1.8%, 힌두교 1.1% 등

언어

공식-영어, 우르두어, 펀잡어 39%, 파슈툰어 18%, 신드어 15%, 발로치어 3% 등

1인당 GDP

1,596불 (2024년)

시차

한국보다 4시간 늦음

여행 경보 현황

2단계-황색경보, 여행자제 : 이슬라마바드, 페이살라바드, 라왈핀디, 라호르, 훈자, 길깃, 스카르두 지역

3단계-적색경보, 철수 권고 : 상기 외 전 지역

정부 형태

내각책임제(양원제)

상원 100명, 하원 342명

대통령 : 아리프 알비 (Arif Alvi), (18. 8월 취임)

총리 : 무하마드 샤바즈 샤리프 (22. 4월 취임)

 

 

2) 자연환경

남북 길이 1,600km, 동서 길이는 880km이다. 서쪽은 이란, 북쪽은 아프가니스탄, 북동쪽은 중국, 동쪽과 남동쪽은 인도, 남쪽은 아라비아해와 접해 있다. 파키스탄은 지형학적으로 대고원, 발루치스탄 고원, 인더스 평원, 사막지대의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최북단에 자리 잡은 대고원은 히말라야 및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카라코람산맥과 파미르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발 8,611m의 K2와 해발 8,126m의 낭가파르바트와 같은 세계 최고봉들을 포함하고 있다.

 

서부와 남서부를 이루는 발루치스탄 고원은 해발 약 300m의 중단된 고원으로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많은 산맥들이 가로지르고 있다. 동쪽으로 펼쳐진 면적 52만㎢의 인더스 평원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번창하는 농업 지역으로 파키스탄 북부 포트와르 고원 가장자리에서 남쪽으로 아라비아해까지 1,000∼1,100km 뻗어 있다.

남동부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탈·촐리스탄·타르 등의 사막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3개 사막은 모두 인도 서부 타르 사막의 북쪽 또는 서쪽 연장 지대이다. 주요 강은 남서쪽으로 흐르는 인더스강이며, 퀘타 지역과 북부 지역에서는 강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륙성 기후로 기온의 변화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강우량은 해마다 달라지며 홍수와 가뭄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파키스탄에는 석탄, 철광석, 크로마이트, 석고, 구리, 암염, 대리석 및 거의 개발되지 않은 다른 여러 가지 광물자원이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인 천연 가스는 세계 총 매장량 가운데 약 0.5%를 차지한다.

 

3) 국민

인종적인 특징은 서북부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던 아리아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파슈툰족(파탄족), 무갈인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랍인의 흔적도 남아 있다.

공식 언어는 우르두어와 영어이지만, 지역 방언의 특색도 강하다. 대표적인 언어는 인구의 절반이 사용하는 펀자브어이며, 그밖에 파슈토어, 신드어, 사라이크어, 우르두어, 발로치어가 있다. 98% 이상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며, 소수의 힌두교도와 기독교도가 있다.

 

파키스탄의 인구는 2023년 기준 2억 3,186만 318명이고, 인구밀도는 287명/㎢이다.   인구의 약 38%가 도시에서 살지만, 농촌 주민들이 인구가 많은 몇몇 도시로 이주해 주택 부족 현상이 생기고, 빈민가가 형성되었으며 교통난도 발생했다. 인구의 1/3가량이 15세 미만이다.

 

4) 경제

농업 부문에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생산 의욕이 저조한 소작인들이 대부분이라 농업 생산량은 계속 낮은 편이다. 주요 작물은 밀이며, 사탕수수도 널리 재배된다. 주요 수출 작물은 목화와 쌀이다. 가장 많은 가축은 염소와 양이며, 소, 들소, 낙타가 그다음으로 많다. 삼림은 전 국토 면적의 4%에 못 미치며, 벌채된 나무의 대부분이 연료로 사용된다. 

제조업은 GNP의 1/6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8을 고용한다. 주요 제품은 직물이며, 특히 면직물은 대표적인 수출품이기도 하다. 주요 수출품은 원면, 무명실, 면직물, 쌀, 피혁, 모직 융단을 일본,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지로 수출하며, 비()전기 기계류, 광유, 식용유, 곡류, 차량 등을 수입해 온다. 

파키스탄에는 실업이 만연되어 있다. 이민으로 숙련 노동력이 줄어들었으며, 전문가, 기술자, 의사 등이 부족하다.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이 주요 외환 수입원이다. 

 

5) 정치와 사회

여러 해 동안 군사정권의 지배가 계속되었으나 1988년 의회 선거에 의해 순수한 민간 정부가 다시 들어섰다. 1973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국회에서 다수의 의석을 얻은 정당의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하는 권한을 가진다. 1980년대에 이슬람법(샤리아)에 따라 판결하는 연방 샤리아 재판소가 세워졌다.

 

보건시설과 의료진이 부족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전염병이 널리 퍼져 있고, 식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전체 인구 중 1/4 정도만 읽고 쓸 줄 알며, 여성은 1/6에 그친다. 초등교육은 무상이지만 학교에 입학하는 아동은 학령기 아동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문맹률이 높아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통신매체 역할을 한다.

 

6) 문화

최근에 이슬람 이념이 강조되면서 이슬람 문화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우르두어권 문학에서 뛰어난 인물은 19, 20세기의 시인이며 철학자 무하마드 이크발로서 현대 파키스탄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칭송을 받고 있다.

 

7) 역사

발루치스탄 지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BC 3,500년경부터이다. BC 6∼5세기의 불교 문헌에는 인더스강 유역에 있었던 간다라 국()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BC 327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아케메니아 제국의 변경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간다라에 들어왔다. 뒤이어 BC 3, 2세기에 마우리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그 후 1, 2세기에는 쿠샨(쿠샤나)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힌두 문화 형성기(320∼540)에는 굽타 왕조가 인더스강 유역을 포함한 인도 북부 지역을 지배했다. 8세기에 처음으로 이슬람교도 정복자들이 발루치스탄에 들어왔고, 그 뒤로 이 지역에서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13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통합되면서 델리를 중심으로 한 술탄국이 생겨나 16세기 초까지 인도 대륙 대부분을 계속 지배했다. 1526∼1761년 무굴 왕조가 인도를 지배했다.

1757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 대부분을 지배했으나 1857년 벵골군 소속의 인도인 신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1858년 영국 정부가 관할하게 되었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금의 파키스탄(이슬람) 지역은 행정적으로 인도(대부분 힌두교 지역)의 일부였다. 인도 민족주의의 시작은 힌두교도가 지배적이었던 인도 의회(1885)와 전() 인도 이슬람 연맹(1906)을 통해서였다.

1857년 이후 10년간 이슬람교도들은 영국과의 협력을 추구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분할되자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이슬람 민족주의 지도자는 모하메드 알리 진나(1876∼1949)였다. 1940년 진나의 이슬람 연맹은 영국령 인도를 힌두 국가(인도)와 이슬람 국가(파키스탄)로 분할에 찬성했다. 1947년 8월 영연방에 속한 자치령으로서 파키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며 진나가 총독이 되었다. 

 

파키스탄은 인도 영토를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진 동 파키스탄과 서 파키스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카슈미르는 계속 분쟁지역으로 남아 이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긴장이 점점 고조되면서 1965년 인도와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다. 동 파키스탄에서는 벵골인 자치 요구로 1971년 동·서 파키스탄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인도군의 침입으로 동 파키스탄은 1972년 방글라데시라는 독립 국가로 분리되었으며, 서 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8) 한국과의 관계

1968년 1월 총영사관 수립에 합의한 뒤 양국 수도에 총영사관을 설치했으며, 정식 외교관계는 1983년 11월 7일 수립됐다. 북한과는 1972년 11월 9일 수교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합성 수지, 윤활유, 의약품, 건설 중장비, 석화학 제품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나프타, 면사, 주류, 순면 직물, 가죽 등이다. 

• 재외동포 현황 : 673명(‘22 외교부)     

- 국내 체류 파키스탄인 : 12,410명(‘21년)

• 인적교류

- 방파 한국인 : 850명(‘20년)(코로나 이전: 약 4,000명)

- 방한 파키스탄인 : 2,951명(‘21년) (코로나 이전: 약 18,000명)

 

9) 무슬림 국가 중 유일한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

파키스탄은 인도의 핵 개발에 큰 자극을 받고 핵 개발에 돌입하여 1998년 핵 실험으로 핵 보유국으로 100개가 넘는 핵 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1965년 인도와의 카슈미르 분쟁에서 패배하고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도 연달아 패한 데다가 1974년에 인도가 최초의 핵 실험을 감행하자 파키스탄군과 정계는 공포에 질렸다. 1979년 이스라엘과의 협력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을 조달해서 1998년에 핵 실험을 성공했다. 제1의 주적 인도와의 분쟁에서 파키스탄군은 전반적인 국력과 군사력이 열세이나, 인도에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핵이다.

 

중국과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일환으로 2013년부터 중국은 파키스탄에 도로, 철도, 송유관 등을 대규모로 지어주고 ‘과다르항’의 이용권을 취득했고, 일대일로 계획에 따라 들여온 차관 탓에 국가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파키스탄은 현재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우방의 지원과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으로 경제 붕괴를 막아내고 있다. 

 

 

2. 파키스탄 선교 개요와 상황들 

파키스탄은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이슬람 인구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1858년부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인도가 1947년 독립하면서 무슬림들이 다수를 이루던 인도 북서부와 동북부 지역에서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이 이루어졌다. 이후 언어와 종족의 차이가 컸던 동 파키스탄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로 재차 독립했다. 개신교 선교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파키스탄 지역에서도 카스트 제도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은 상위 카스트 계층보다는 불가촉천민 위주로 전파되었다.

 

1) 하층민에게 전해진 복음

파키스탄 개신교 선교는 영국성공회 선교회(CMS)를 통해 시작됐다. 1850년 카라치(Karachi)에 성공회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110년이 지나 1960년에 처음으로 교구 관할 파키스탄인 주교가 세워졌다. 1873년 카라치에서 선교를 시작한 감리교는 점차 파키스탄 동부의 펀자브(Punjab) 지역에서 쭈흐라(Chuhra, 불가촉천민)라 불리는 하층민에게 복음 전도를 본격화했다. 초기 선교사들은 상위 카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개종시켜 하위 카스트에까지 영향력이 미치길 기대했지만, 종교적 세계관과 연결된 카스트 제도를 뚫어내지 못했고 결국 전도의 방향은 하층민들에게로 향했다.

또한 하층민들도 기독교로 개종을 통해 카스트에서 벗어날 희망을 가지면서 파키스탄 기독교는 부흥기를 맞이한다. 기독교인 대다수는 카치 아바디(katchi abadi)라 불리는 도시의 빈민가와 기독교 개종자의 사회경제적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던 집단 거주지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길거리 청소나 더러운 일을 하는 소수 하층민이라는 인식 속에 무시와 차별을 받고 있다.

 

2) 현지 교회 현황

파키스탄의 인구 2억 3천5백만 명에서 기독교 인구는 약 2%에 그치고 있고, 그 중 개신교가 58%, 가톨릭 27%, 독립 교단이 15%를 차지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개신교는 약 140만 명의 교인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교회(Church of Pakistan, CoP)이다. 이 교단은 1970년에 성공회, 감리교, 루터교, 씨알코트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연합체의 형식으로 발족했다. 파키스탄 장로교(Presbyterian Church of Pakistan, PCP)는 현재 약 50만 명의 교인과 340여 개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 가톨릭은 1594년 라호르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을 시작으로 선교를 시작했고, 현재는 약 125개의 성당과 100만 명의 신자가 있다. 이 외에도 오순절 교회와 구세군, 침례교회들도 190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전국 단위로 파키스탄 교회 협의회(NCCP)가 결성되었다. NCCP는 세계 기독연대(CWS)와 같은 기독교 연합단체뿐 아니라 NGO 들과 손을 잡고 파키스탄에서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소외된 약자들을 보호하고 구호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3) 기독교인을 향한 차별과 핍박

1956년 헌법을 개정해 이슬람 공화국으로 출범했고, 1970년대 말부터 이슬람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기독교를 비롯한 소수 종교에 대한 차별과 핍박이 심해졌다.

1986년 군사 독재자였던 지아울하크(Zia-ul-Haq) 대통령은 이슬람화 정책의 일환으로 무함마드를 모독한 사람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신성모독법을 개정했다. 실제로 1996년 10월 아유브 마시(Ayub Masih)는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2002년에 무죄로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시아 비비(Asia Bibi)는 2014년에 최초로 사형 선고를 받은 기독교 여성이 되었고, 2018년 10월에 무죄로 석방돼 캐나다로 망명했다. 신성모독법에 의한 무리한 기소와 사회적 폭력, 방화, 핍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23년 8월에도 펀자브주, 자란왈라(Jaranwala)시에서 폭력과 방화로 인해 세인트존(St. John’s) 성당과 연합 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구세군교회(The Salvation Army Church) 등 20여 곳의 교회가 불태워졌다. 

‘거룩의 땅’(Pak=holy, stan=land)이라는 의미를 가진 파키스탄은 독립 후에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에 걸쳐 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거룩’라는 의미는 종교적으로 이슬람이라는 의미로 변해가고 있다. 

 

4) 2022년 대홍수로 빈곤 인구 급증

2022년 8월 말,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기록한 대홍수로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약 3,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어린이 350명을 포함해 1,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약 287,000가구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662,000가구는 절반 이상의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며, 17,566곳의 학교가 심각한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5) 끊이지 않는 테러와 신성모독법 강화로 불안 고조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 위주로 이슬람 무장 단체들의 테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17세의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가 14세의 나이로 여성 인권과 교육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던 2012년 탈레반에 의해 총격 테러를 당한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파키스탄 사회는 신성모독법이 강화되면서 더 불안해지는 상황이다. 파키스탄 사회정의센터(CSJ)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20년까지 최소 1,855명이 신성모독법과 관련한 이유로 기소되었다. 1987년에 19건에 불과하던 기소가 2020년에는 200건으로 증가해 이 법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경쟁자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회 여러 계층에서 제기한 신성모독법에 대한 반발과 비난 속에서도 2023년 8월 7일, 신성모독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이 상원을 통과해 앞으로 파키스탄 사회의 불안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6) 소수 약자들을 향한 핍박과 차별 심각

2014년 2월, 파키스탄 탈레반은 카이버-파크툰화(KPK) 주의 산간 지역인 치트랄(Chitral)에서 약 3,500명이 모여 살고 있는 칼라시족(Kalash)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을 가한 적이 있다. 이처럼 파키스탄에서는 기독교인과 힌두교인뿐 아니라 소수 종교인들 모두가 개종의 위협과 이로 인한 범죄, 사회적 차별의 위험에 처해 있다. 

소수 종교의 미성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와 결혼, 강제 개종으로 이어지는 범죄는 심각한 수준에 달해 있다. 2018년과 2019년 두 해 동안 파키스탄 전역에서 중국 남성들의 신부로 팔려 간 소녀들은 629명이나 되었다. 해마다 약 1천 명의 소수 종교의 소녀들이 납치되어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특히 여성은 아버지, 형제, 남편의 소유물로 간주하면서 더 큰 차별과 학대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7) 고통당한 이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파키스탄 교회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은 가난한 사람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또한 종교적 소수자인 이들은 무슬림들에게 차별받고 폭력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이웃과 친구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파키스탄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고난 속에서 연단된 신앙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 신앙은 사랑과 용서와 긍휼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통받고 상처 입고 갈 곳을 잃은 자들에게 여전히 힘이 되고 있다.

 

8) 갈 곳 잃은 이주민(난민)들을 끌어안는 파키스탄 교회

파키스탄에는 두 형태의 이주민이 늘고 있다. 하나는 도시로 이주하는 농촌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주해 오는 난민들이다. 도시화율 37%를 넘어선 파키스탄은 카라치(Karachi)와 라호르(Lahore)의 인구가 각각 1천만 명을 넘고, 도시 전체 인구는 약 8천9백만 명에 달한다. 이렇게 도시로 유입된 농촌 인구들은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 인플레이션 심화로 도리어 이들은 빈민자로 전락하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지난 4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입된 난민 13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9) 2023년 6월, 지난 6개월 동안 13,000명 파키스탄 떠나

지난 6월, 난민들을 태우고 리비아에서 출발한 배가 그리스 앞 바다에 침몰하면서 600명 이상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중 300여 명이 파키스탄인이었다. 인플레이션이 40%를 넘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이민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말 파키스탄의 리서치 기관인 PIDE BASICS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젊은이 62%가 이민을 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2022년 7,000명에 그쳤던 이민자 수가 2023년 1월부터 6월까지 13,000명으로 늘어났다.

 

10) 파키스탄에 기독교가전해진 시기

파키스탄에 기독교가 전해진 시기는 영국 식민 치하였던 19세기 말이었다. 당시 파키스탄은 인도에 속해 있었다. 1947년 파키스탄이 힌두교가 다수인 인도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때, 파키스탄 독립 지도자였던 무함마드 알리 지나(Muhammad Ali Jinnah)는 기독교인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약속해 주었다.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교육, 국방, 공무원직의 5%를 기독교인들에게 할당해 주었다. 하지만 1972년 이슬람이 파키스탄의 국교가 된 이후, 이 할당제는 무시되었고, 많은 기독교 학교는 정부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91년 이슬람법이 파키스탄의 최고법이 되자, 1860년 모든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신성모독법이 이슬람만을 위한 것으로 축소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파키스탄에는 신성모독죄로 사형에 처한 이들의 수가 최소 16명, 종신형은 20명에 이른다. 2000년대 초 무장단체와 급진주의 단체가 부상하면서 그러잖아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를 당하였던 기독교인들의 국외 탈출이 증가하였다.

2013년 85명의 희생자를 남긴 페샤와르(Peshawar)()에 있는 모든 성도 교회(All Saints Church)를 향한 자살 폭탄 테러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악의 기독교 박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으로 파키스탄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분노와 열악한 상황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11) 신성모독으로 촉발된폭력 사태로 교회20여 곳 피해 입어

2023년 8월 16일, 파키스탄 펀자브주() 자란왈라(Jaranwala) 시에서 신성모독을 이유로 무슬림 폭도들이 기독교 가정과 교회를 공격하고 불을 질렀다. 폭력 사태는 이슬람을 모욕하는 문구가 적힌 코란 몇 장이 순복음성회(Full Gospel Assemblies)의 교인인 라자(Raja)와 로키(Rocky) 형제의 사진과 함께 발견되면서 촉발됐다. 두 형제는 혐의가 조작된 것이라고 부인했지만, 1천 명이 넘는 폭도들은 8월 16일 오전 10시쯤 순복음 성회를 비롯해 인근에 있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인트존(St. John’s) 성당과 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구세군교회(The Salvation Army Church)도 불에 타 폐허가 됐다. 이날 폭도들의 방화와 약탈, 건물 파괴 등의 손해를 입은 교회는 20여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회만 아니라 100채가 넘는 집과 상점들이 폭도들에 의해 불타고 파괴됐다고 전했다. 특히 이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 5천여 명은 대부분 가난한 청소 노동자들이어서 이번 사태로 삶이 더욱 피폐해져 안타까움이 더 커지고 있다. 경찰 당국은 기물 파손 행위와 관련하여 150명 이상을 체포했고, 신성모독 혐의로 라자와 로키 형제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 정부는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200만 루피(24,000달러)의 보상금을 제공하고, 손실을 본 교회들을 모두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맺는 말

지난 8월 16일 신성모독을 이유로 자란왈라의 교회들과 성도들의 집들이 방화되는 그날 이후로, 멀리 떨어진 레힘야르칸의 외국인인 우리 팀들은 그날부터 일주일을 집안에만 갇혀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외출 금지 지시를 경찰로부터 받았고, 그 이후로는 시장에 갈 때도 총을 든 경비원을 대동하고 나가야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절대 다수의 무슬림들이 소수의 무고한 기독교인과 교회를 핍박과 탄압의 도구로 이용하는 신성 모독법의 현실 앞에서 이 법이 빨리 없어지도록 함께 두 손을 모았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배운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녀의 장래를 생각하고 종교적 자유가 있는 외국으로 이민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종교적인 긴장의 상태가 생길 때마다 우리 소수의 약자인 기독교인들과 교회, 우리 외국인들은 늘 불안과 긴장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코로나와 중국과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여파로 파키스탄 경제는 국가부도의 위기 앞에서 주위 동맹국과 IMF의 도움 속에서 풍전등화의 상황과 몇 년 전에 비해 모든 것이 2배로 뛰어버린 고물가로 가난한 국민들만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4년 2월 8일로 예정된 총선에서도 평화롭게 진행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선출되어 국민을 위한 정치와 경제 회복이 되기를 기도한다. 영국 식민지로 인해 아직도 국가 공공기관에서는 영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파키스탄의 소수 기독교인이지만, 잘 훈련되면 주위 중동지역과 다른 나라의 현지인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에 파키스탄 교회가 사용될 수 있다. 파키스탄은 선교 전략 상 선교 요충지의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이다.

 

지난 코로나 시간에 세계 곳곳이 봉쇄되고 사역의 문들이 다 닫혀있을 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친히 하셨고, 한국의 세브란스 병원과 교회와 성도들의 코로나 구호 물자들을 통해서, 파키스탄 북부 산악지대의 수많은 미전도 종족과 무슬림 속에서 파키스탄 현지 사역자들이 마스크와 구호물자를 나누면서 그들과 접촉점을 갖게 되고, 기쁜 소식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고, 주께로 돌아오는 무슬림들을 보면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파키스탄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서 사역하는 우리들의 눈에는 이곳에 추수할 곡식들이 너무 많음을 이곳저곳에서 듣게 된다. 더 많은 추수꾼이 필요한 곳이 바로 파키스탄이다. 더 많은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비자를 못 받아 떠나야 하는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오늘도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주어진 영혼들을 섬기는 일에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살고 있다. 오늘도 맡겨주신 학교 호스텔(Hostel; 기숙사) 아이들의 이름들을 불러가며 기도하고 그들이 불모지 같은 이 땅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독교인 리더들로 양육되도록 주인 되시는 주님께 올려드리고 맡겨드린다. 

 

파키스탄으로 오기 전에 있던, 아프리카 소말리아는 무슬림이 99.9%인 강한 무슬림 국가였다. 시골 오지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며 영육 간에 열악한 환경에서 보냈고, 눈에 보이는 사역의 열매도 없던 시간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동행과 보호하심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 파키스탄도 동일한 무슬림 국가이지만 여러 나라 선교사님이 기도하며 팀 사역을 하고 있어서 선교 생활이 더 안정되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족한 종을 통해서도 이 땅의 어린 영혼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

 

 

기도 제목

1. 2월 8일 파키스탄 총선이 평화롭게 이루어지고 합당한 자들이 선출되도록

2. 국가 파산 위기의 경제가 IMF 아래서 잘 관리되어 경제 성장과 빈부 격차가 줄어들도록 

3. 소수의 약자인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도구인 ‘신성모독죄’가 파키스탄 법에서 사라지도록

4. 추수할 곡식들이 무르익은 이 땅에 추수할 일꾼들을 더 많이 보내주시도록

5. 억압과 눌림 속의 파키스탄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말씀 안에서의 부흥과 쇄신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