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권역 | 사이프러스  / Cyprus

사이프러스 Republic of Cyprus

이반아바 선교사(사이프러스)

 


 


1. 국가 개요

국가명: 사이프러스 공화국(Republic of Cyprus)
수도: 니코시아(Nicosia)
독립일: 1960년 8월 16일
정치: 대통령 중심제, 5년 임기, 한 번 연임 가능
인구: 118만 명-남 89만 명, 북 29만 명 
민족 구성: 그리스계 73%, 터키계 24%, 마론나이트, 아르메니안, 기타
국토 면적: 9,251㎢ (남한 면적에 비해 11배 정도 작음)
1인당 GDP: $30,663 (한국:$34,994, 2022 IMF 기준)
종교: 정교회-남, 이슬람-북, 마론교(천주교), 개신교
언어: 그리스어, 영어-남, 터키어-북
화폐: 유로-남, 터키 리라-북
기후: 지중해성 해양 기후
위치: 지중해 동부 끝
기타: 유럽연합 회원국, 분단국가


2. 역사

사이프러스는 1960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역사 속에서 강대국의 식민지로 살아왔다. 


과거 로마, 비잔틴, 중세와 오토만 시대를 거쳐 마지막으로 영국의 식민지까지 독립 국가로 살아가지 못했는데 이는 사이프러스가 작은 섬이면서도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항상 점령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립 국가가 된 이후에는 1974년 남북 분단, 2004년 유럽 연합(EU) 가입 등 변화하는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분단/자유 왕래/통일 협상

사이프러스가 독립을 한 이후 같이 섞여 살고 있던 그리스계와 터키계 사이프러스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인구의 77%를 차지한 그리스계 사람들이 사이프러스의 원래 주인임을 주장하며 터키계 사람들(인구의 18%)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생기며 많은 터키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핍박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74년 사이프러스에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가 사이프러스를 그리스에 통합시키려고 하자 그동안 터키계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던 터키가 쿠데타 명분을 내세워 군사 개입을 하여 사이프러스를 침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많은 그리스계 사람들이 터키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실향민이 되었다.

 

결국 터키계 사람들은 북쪽으로 그리스계 사람들은 남쪽으로 강제적으로 흩어지게 되어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이프러스는 버퍼 존(buffer zone, 완충지대) 또는 그린라인(green line)이라는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분단 국가로 살고 있다.

 

남북 사이프러스는 1974년 이래로 완전 분단이 되어 서로 왕래할 수 없었고 그동안 북 사이프러스는 1983년에 북사이프러스 터키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북사이프러스는 UN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 무역이 제한받고 있어 사실상 고립되어 있다. 이렇게 분단되어 있던 사이프러스는 2003년 남북이 합의하여 서로 왕래를 할 수 있도록 분단선을 개방하였고 지금까지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통일을 위해 유엔의 중재 아래 오랫동안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4. 경제

사이프러스 경제는 관광 및 서비스업, 외국인 투자, 선박 관련 등에 많이 의존한다. 농산물은 풍부하지만 공산품, 에너지 등 많은 것을 수입에 의존한다. 한때 사이프러스가 조세 피난처 또는 돈세탁 국가로 알려져 있었고 돈을 받고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파는 나라로 인식이 안 좋았던 배경에는 외국 자본을 들여오기 위해 법이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연합에 가입한 후로는 법이 강화되어 이러한 이미지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지금은 관광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자를 통해 많은 외국인과 자본이 사이프러스에 유입되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별히 사이프러스 주변 바다에서 발견된 원유와 천연가스 탐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매장량의 규모에 따라 앞으로 사이프러스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 성경과 사이프러스

구약 성경 창세기(창 10:4)부터 시작해서 여러 곳에서(민 24:24, 단 11:30, 렘 2:10, 겔 27:6) 깃딤(Kittim)이 나오는데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이프러스에 있는 깃딤이 유력한 후보들 중 하나이다. 실제로 사이프러스의 깃딤은 오래전부터 해상권을 가진 제법 강한 왕국으로 존재해 왔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구브로라고 불린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의 첫 방문지가 사이프러스이고 바보에서는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였다.(행 13)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설립에 구브로 사람이 큰 역할을 했으며(행 11:19-21 )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살라미)으로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초대 사역자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바나바가 사이프러스에서 순교하였고 그의 무덤이 살라미에 있으며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도 사이프러스로 건너와 오랜 세월 사역하다가 다시 죽어 사이프러스(라나카)에 묻혀 그의 무덤이 있다. 

 

사이프러스는 복음을 접하기 전에는 우상 숭배의 섬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출생지답게 아프로디테의 신전뿐만 아니라 아폴로 신전 등이 유적지에 거대한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섬이 복음을 받아들인 바나바의 후예로서 신앙의 자부심을 갖고 과거 아랍 정복 때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기독교 국가로 굳건히 서 있다. 


6. 기독교 상황

남사이프러스는 정교회 국가이다. 독립 후 초대 대통령으로 정교회 수장(archbishop)이 당선되었고 국가의 중요 행사 때는 정교회 예배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정교회가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아기가 태어나면 4~5개월 후 세례를 받고 이때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대부 또는 대모가 후견인의 역할을 한다. 결혼이나 장례식의 경우 정교회 교회에서 주로 하게 되는데 특별히 정교회 사제의 서명이 중요하며 이것 없이는 가족묘에 장사할 수 없다. 이렇게 정교회가 정치와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2000년 이상 기독교를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명목상의 기독교인으로 남아있다.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숫자는 계속 줄고 있고 일 년에 몇 번 부활절, 성탄절, 성인의 날 등 특별한 날에 만 참석하는 것이 점차 고착되고 있다. 정교회인들에게는 예수의 보혈보다는 성모나 성인들을 통한 은혜를 강하게 믿고 있다. 현재 정교회는 젊은이들의 이탈, 그리고 정치와 관련된 교회의 부패, 동성애 등을 비롯한 반기독교 적인 이슈들로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북사이프러스는 이슬람 국가이며 정교회는 남아있지 않다. 과거 분단 전 세워졌던 정교회 교회들은 모스코로 바뀌었거나 방치되어 폐허가 된 곳이 많으며 유명한 정교회 교회나 수도원 몇 곳만이 관광객을 위해 보전되고 있을 정도이다. 북사이프러스의 이슬람은 본토 터키의 이슬람에 비해 자유적이다. 

 

정교회 다음으로 천주교 계열인 마론 교회(Maronite church)가 있다. 이들은 중세시기부터 사이프러스에 이주해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오늘날 레바논의 마론 교회와 같은 계열이다. 이들은 사이프러스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archbishop이 있어 사이프러스 마론 교회를 대표하고 있다.

사이프러스의 개신교는 아주 미약한 상태다. 사이프러스 현지인 교회(Greek Cypriot church), 국제 교회(international church), 영국 성공회 교회(Anglican church), 이주민 교회들(아랍, 이란, 필리핀, 스리랑카, 불가리아인 교회 등)이 있지만 숫자는 많지 않으며 대부분이 10~30명 정도의 작은 교회들이다. 그리고 교회들이 목회자가 부족하여 평신도들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많으며 안타깝게도 교회가 쉽게 분열하는 모습을 본다. 북사이프러스에도 성공회 교회와 국제 교회들이 몇 개 존재한다.

 

사이프러스에 몰몬교, 여호와증인, 제 칠일 안식교회 등 이단들도 활발하게 전도하고 있고 정교회나 개신교인들 중에 이들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7. 사이프러스의 선교적 전망

사이프러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정학적인 위치가 선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초대 교회 당시 사이프러스 섬은 오늘날의 터키, 시리아, 이스라엘, 레바논, 이집트, 그리스 등 주변 나라들과 해상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를 하고 있었고 복음 전파도 이 길을 따라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지금도 중동 및 북 아프리카(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선교에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다. 현재 사이프러스에 거주하고 있는 사역자들의 대부분이 아랍 선교에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 바울이와 협력하고 있는 셋 세븐 위성 방송국도 사이프러스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지정학적인 위치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사이프러스가 정교회 기독교 국가라는 점이다.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있고 안전이 보장되어 선교의 거점이 될 수 있었다. 과거 아랍 선교의 중심지는 레바논이었다. 그리스도인이 국민의 다수이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곳에 많은 선교 단체들이 거주하였지만 내전으로 인해 사회가 불안해지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지금은 무슬림 수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끊임없는 테러와 여러 위험에 노출되자 결국 선교 단체들이 레바논을 떠나 사이프러스로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사이프러스가 주변 지역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정교회와 개신교의 부흥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형식적인 기독교 국가의 모습으로 침체되어 가기보다는 초대 교회 때처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주변 아랍 선교를 감당하는 사이프러스 교회가 되어야 한다.


8. 기도 제목

  1. 사이프러스 남북이 미움과 증오를 넘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도록
  2. 사이프러스가 교회가 초대 교회 때처럼 주변 국가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3. 사이프러스 정교회와 개신교 교회가 영적으로 각성하고 부흥하도록
  4. 사이프러스에 거점을 두고 사역하는 선교 단체와 사역자들이 서로 연합하며 전략적으로 아랍 선교를 잘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