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요법의 효과

 

나이가 들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에 충격을 주어 질 좋은 사과를 맺었다 한다. 어떤 충격을 주었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었을까? 참 궁금하다. 과수원 농부는 나이 들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 나무에 녹슨 못을 여덟 개나 박았다. 그 해 가을에 맛있는 빨간 사과들을 풍성하게 맺었다. 녹슨 못을 박으니까 사과나무가 충격을 받아서 사과를 맺은 것이라고 한다. 고통을 통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있다. 열대어를 취미로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이 열대어를 열대지방에서 운반하여 가져오는 일은 쉽지가 않다고 한다. 운송하는 과정에 거의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고기를 죽이지 않고 잘 운반할 것인지 궁리한 결과, 열대어를 넣은 통에 사나운 고기를 몇 마리 넣어서 운반을 했더니 성공을 했다고 한다. 물론 얼마는 고기밥이 되어 겠지만어째서 성공을 했을까? 열대어들은 공격하는 사나운 놈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다 보니, 어느덧 도착지에 다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년 연하장을 가족사진을 넣어서 만드는데,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작년 12월 중순에 셋째 손자가 태어나서 사진을 찍을 기회를 놓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바지 시간이 되어서 준비도 없이 급하게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작은 아들 가족사진은 찍어 놓은 것으로 합성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다 만들어 놓은 연하장을 보고, 내가 충격을 받았다. 뚱뚱하여 터질 것 같은 나의 몸매와 칙칙한 옷차림, 자기관리에 이토록 무책임한 무감각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연하장 모두를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남편의 일을 망칠 수가 없었다.

 

며칠을 충격의 여운으로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렇게 내 몸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다고충격이 커서인지, 밥맛이 뚝- 떨어졌다. 밥을 반으로 줄이고 모든 간식을 없앴다. 조킹을 시작했다(가끔씩). 일주일이 지나니 1키로가 빠지고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더욱 박차를 가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작년이나 올해나 몸무게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 작년에 찍은 사진을 보고는 잘 넘어 갔는데, 이번에는 큰 충격을 받은 것인가? 이상해서 두 사진을 같이 놓고 비교 해 봤다. 그랬더니 몸 무게는 같았는데, 다른 것이 있었다. 작년에는 앉아서 손자를 안고 찍었고, 올해는 서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생머리가 조금 길게 내려와 얼굴을 덮었었고, 올해는 짧게 카트를 한 머리에 파마까지 해서 얼굴의 전면이 다 들어나 보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나의 사고를 점점 증진시켜 나갔다.  

 

내 몸을 늘 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을, 사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사진 속에 있는 모습은 나를 삼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했다. 보는 각도가 달랐기에 정확한 실체를 볼 수 있게 했다.  앉은 자세에서 손자를 무릎에 안고 있어 가리워 보이지 않았던 뱃살도 보게 되었고, 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얼굴을 숨겨 주었다. 물론 훌륭한 패션일수록 몸매의 약점을 숨기고 실체보다 더 멋있는 스타일을 연출해 주기도 한다. 실체와 다른 거짓된 자아상에 속아서 사는 방법을 연구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

 

나의 사고력은 방향을 돌려 내 속사람을 향했다. 나의 속사람은 정말 어떻게 생겼을까? 혹시 비만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너무나 말라 영양실조는 아닌가? 사진 속의 겉사람을 보듯이, 많은 가리개들로 가리워져 있지는 않은가? 가리개를 벗기고 난 모습을 본다면 얼만큼 충격을 받을까?  내 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이어갔다.

 

몸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무릎에 골다공증이 오고,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면 동맥경화가 오고, 당뇨도 생기니 조심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을 해주지만, 여전히 왕성한 식욕이란 놈을 이기지 못해 먹는다. 영적인 병원의 의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비만에 경고장을 보내시고, 왕성한 욕구를 죽이라고 명하시지만 식욕이란 놈은 좀처럼 항복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께서 빛으로 오신다. 그리고 빛 가운데 들어난 속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회개의 눈물이 폭풍과 함께 몰아쳐 온다.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너무나 가증스럽다. 되지도 못한 것이 된 줄로 알고 까불었다. 주님의 은혜가 고마워 주의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 제 잇속만 잔뜩 채웠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골라서 내 편만 사랑했다. 섬긴다고 하면서 받을 계산서는 이미 다 뽑아 놓았다. 약점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는 변호사 뺨친다. 성자가 다 된 듯이 행세하다가 누가 내 먹이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방 성난 사자로 변한다. 주의 사명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에 바빴다.

 

한심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의 한없는 나약함과 죄성에 치가 떨린다. 이렇게 해서 절망이라는 단어가 내게 이를 때, 그 분이 생각난다. , 위안이시며 희망이 되시는 주님. 그 분의 고마움에 또 한번의 통곡이 내 심장을 강타한다. 그리고 나면 그리도 어렵던 다이어트(영적)가 쉬워진다. 사랑하기가 쉬워진다. 사역하기가 너무나 재미가 있어진다. 사는 것이 신바람이 난다.

 

주님, 오늘 나의 속사람에게도 충격이 필요합니다. 사과나무는 녹슨 못이 8개가 필요했지만, 나의 속사람은 백 개쯤은 박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왠 만한 충격은 쉽게 넘겨버리는 강심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정말은 충격이 무섭습니다. 충격없이 주님 앞에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충격은 너무나 아프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내 모습을 다듬어 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고 한 고백처럼 내 스스로 십자가에 자아를 못박게 하소서. 작은 성령의 음성에도 소홀하지 않고 늘 자신을 살피게 하소서.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보며 영적 비만을 경계하게 하소서.

 

참된 속사람을 볼 수 없도록 가리개 노릇을 했던 모든 훈장들을 떼어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습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빛 가운데 전신이 들어난다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는 자아상을 만들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합니다. 홀로 주님 앞에 반듯이 서서, 해보다도 더 밝은 빛으로도 부끄럽지 않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죽을 것을이 해의 목표로 삼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일본에서 이인숙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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