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3개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사역하십니까? 얼마동안 사역하셨습니까? 왜 선교사가 되셨나요?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000에 온 지는 4년 차 되었고요, 그전에는 필리핀, 사우디, 오만 등지에서 사역했습니다. 우리 큰 아이가 올해 17살인데 그 아이 1살 때 선교지로 나왔으니 벌써 16년이 되었네요. 아! 그리고 제가 선교사가 된 동기는 단순히 전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28살 청년 때, 태어나 처음으로 직장동료 부인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갔습니다. 그 시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3년째 투병생활 할 때였습니다. 아직은 장래가 창창한 큰 자식 살려보겠다고 신통하다는 무당 굿부터 명약, 명의를 찾아다니며 애쓰시는 어머니가 불쌍해 마지막으로 교회라는 곳에 한 번 가보고 생을 마감하겠다는 심산이 컸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의사도 모든 가족도 솔직히 나 자신도 믿지 못할 치유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덤으로 얻은 인생이니 나를 위해 살지 말고 생명의 은인을 위해 살자 결단하고 그분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 방법도 몰랐지만 내가 만난 주님을 전했습니다. 지하철, 아파트, 학교, 시장통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도했습니다. 대상과 장소, 때를 가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들도 다 주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중인, 남묘호렌게쿄, 무당, 심지어는 스님도 무릎 끊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때로는 달갑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열어 주었던 아파트 철문을 갑자기 닫아 손가락이 잘릴 뻔도 했습니다.
그래도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대부분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낙심하고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먼 나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전해줄 사람이 없어서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 충격과 함께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이렇게 가는 사람이 ‘선교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간에 신학을 하고 결혼도 해서 한 살 된 아이도 있었습니다.
오직 전도에만 관심이 있어 거의 모든 전도 훈련은 다 받았지만 선교사가 되기 위한 언어나 선교 훈련은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섬기던 교회서 나의 전도 열정을 보고 필리핀 민다나오 최남단 ‘제너럴 산토스’라는 곳에 선교사로 파송해 주었습니다. 선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듯 아무런 준비도 되지 못한 사람을 민다나오 밀림 숲 속으로 파송한 교회와 별 불만없이 남편 따라가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민다나오 도착 후 다음 날부터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것으로부터 선교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건축 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 민다나오를 거처 ‘팔라완’ 외딴 섬에 들어갔습니다. 현지인보다 못한 타갈로그와 영어 실력이지만 열심히 전도해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곁에서 보고 있던 경력 많은 선교사님은 우리 가족이 사는 것을 보니 뭔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선교 훈련을 받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바울 선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이름도 유명한 바울 선교회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자질도 자격도 없는 자가 감히 바울 선교회 식구가 되었으니 어쩌면 불치병을 치유 받은 것보다 더 큰 은혜였습니다.
큰 빚을 진 자이니 더욱 복음이 필요한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마지막 땅끝 중동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동에서도 이슬람이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든든한 선교회가 내 등 뒤에 있고 또한 선교 시작부터 여러가지 고난을 많이 경험한 터라 배짱도 두둑해져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사우디를 금방이라도 다 복음화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몇 날이 못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파는 커녕 현지인을 만나면 여러 가지 거짓말로 신분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수족이 다 묶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 같은 내 모습이 한심했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이곳까지 왔나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가장 큰 괴로움은 전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었습니다. 전도하고 싶어 선교사가 되었는데 오히려 선교사가 되어 전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착각 속에 시작된 저의 전도열전은 오만을 거처 000까지 벌써 1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선교라는 것이 인내 훈련이요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가게 됩니다.
지나고 보니 오늘 내가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요 은혜인 것을 알게 됩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이 땅에 있어야 할 이유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니 이것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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