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나님 지금 우리는 어둠에 처해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과 진리, 생명이시나 우리 기독인들은이 세상에 존재하는 각종 정치 이론들과 철학들, 그리고 신학 이론들로 서로의 주장으로 인해 혼란스럽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복수의 고리를 십자가로 끊어 셨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사랑이 식어가며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용서하지 못함으로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점철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기독인들이 여러 논리와 주장, 사상들로 인해 목표와 방향을 잘못 잡아 길을 잃은 양같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가난에 울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신음과 고함 소리는 우루과이에서도,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세상 곳곳에서 들려 오고 있습니다.
1. 그럴수록 정신을 차리고 마음에 사랑과 기쁨을 심어야 합니다.
화가 차 있는 사람은 화는 점점 자라나 자기 자신과 이웃을 위험에 빠트리기 쉽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면 자기 논리로 폭력마저도 정당화 시키고 이웃을 헤치기 쉽습니다.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은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다가 심해지면 자해나 자살로 나아갑니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현재 한국민은 성격이 점점 급해지고 있고 화를 너무 쉽고 내며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뭉쳐서 정부 기관에 항의하고 심지어 공권력마저 무시해 버리는 경향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해야 할 때임을 느낍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합니다. 분노는 자라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되면 마음 속의 숨은 죄가 밖으로 노출되어 태어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릅니다.
2. 교만하면 분노와 슬픔의 씨가 들어 옵니다.
아무리 각종 경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라 해도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원인과 이유를 찾아 변명을 하고 사회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경제적 부로 인해, 교회당 크기로 인해, 선교사 수적 성장으로 인해 등등 이유로 교만해진 우리의 악을 발견하고 눈물과 금식, 기도로 지금 당장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도록 삶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3. 기독인들이 거룩한 사람으로 바꾸어지고 십자가를 져야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습니다. 화를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욕심과 감정대로 움직인다는 증거요 옛사람이 나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화를 잘 내는 한국인이라는 뜻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전속력으로 잘리는 자동차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누구에게 바르게 살아라고 주장하기 앞서, 먼저 기독인들 스스로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요나의 표적외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머물렀던 요나 선지자의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십자가의 희생과 3일간 무덤에 머무셨던 예수님의 죽으심을 말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가 죄에 대해 죽어야 이웃이 삽니다. 하나님 다시 한번 우리에게 영적 정화를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 아멘”
개신교 기독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면 이 나라가 어디로 달려가겠습니까 개신교인 한 사람이 변화되면 가정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일상 삶 가운데서 거룩하게 살고 사랑 가득히 겸손과 경외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4. 각자 자기 마음 안을 말씀으로 비추어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부정적인 생각인지 긍정적 생각인지 어둡고 나쁜 방향으로 이끄는 감정들인지 밝고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감정들인지 살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 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고 자기의 생각과 욕심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자기를 위해 우주가 존재하는 듯 착각합니다. 내 뜻과 고집대로 안되면 화를 내며 남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긍휼과 사랑이 없고 이론적이고 변론적이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차겁고도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으로 변합니다.
5.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합시다.
교회에서 모여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만 골방 기도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세상 쾌락이나 욕심으로 인해 오염된 생각과 감정을 정화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떤 일 즉 돈 버는 일이나 어떤 배움의 것들, 사회 지위 추구 등등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예배나 기도를 드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이 고요하고 세상에서의 명예나 물질을 많이 가지려는 욕심 등 각종 오염에서 정화되어야 바른 예배가 되고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될 것은 침묵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일 그 자체를 기도로 오해하는 일입니다. 침묵이나 고요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고요함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염려 근심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대화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6. 떠오르는 생각들은 반드시 말씀으로 성령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내 안에 떠 오르는 생각들은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선인지 악인지 하나님께로 왔는지 마귀나 내 욕심에서 오는 것인지 모든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기도하고 기다리면 성령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다가온 생각들의 근원이 어디인지 가르쳐 주시고 영 분별하는 은사도 주시고 삶에서의 지혜를 주십니다.
7. 상식과 사랑이 없는 믿음은 맹신이나 두려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랑과 상식이 없는 믿음은 병든 믿음인 고로 사람들을 왜곡시키고 다음의 두 가지 방향으로 이끕니다. 하나는 지나친 맹신이나 광신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과신하여 지나친 용기를 내기 쉽습니다. 또 하나는 아예 믿음이 작아져서 부족한 믿음에 그쳐 겁이 많아지고 미래 생활 염려로 두려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8.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 마음 안에 거하시나 세상에 기울어진 기독인들 마음은 물질주의와 세상 번영, 세상 소음에 혼탁 되어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자기 생각인지 마귀 소리인지 하나님의 소리인지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절실하게 하나님의 계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왜 갈증을 느낍니까 몸의 70%로 구성된 물이 운동이나 일로 인해 땀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즉 몸에 물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왜 성령충만을 사모합니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우리 안에 죄가 가득 찼기에 잡생각으로 인해 우리 영혼이 우리 생각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9. 지금은 오로지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물질적 성장, 축척한 부, 번영을 좋은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착각하던 삶에서 어서 깨어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내 안에 차 오른 육신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할 때입니다. 그 얼굴을 찾으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찾으면 하나님과 나 사이 신격과 인격, 두 존재가 친밀감을 회복하면, 비가 오듯 바다에 물이 가득하듯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로, 영혼은 영적 생수로 인한, 하나님 계시의 말씀으로 인한 시원함을 얻습니다. 양심과 우리 안에 거하는 영적 기관들(영혼 안의 기관들 즉 기억, 직관, 사랑, 상상, 추리, 수리, 지성, 감정, 의지, 등등)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분, 창조주 하나님과 만났다는 내적 확신, 그리고 사랑 가득한 경외감으로 차 내적 변화가 일어나며 삶이 바뀌게 됩니다. 기독인들이 내적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이것이 세상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