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슬림이다'
시리아 출신인 아흐메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복음에 대한 관심을 표출한다.
20살때에 레바논에 직업을 찾아서 건너와서 부루즈 함무드(시리아,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대거 거주 하는 베이루트 내부 지역) 가족 형제와 살면서 나흐르 메이트 라는 지역에 건축 계통 회사를 다닌다. 그에게는 필리핀 여자 친구가 있어서 자연스레 필리핀 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문제는 언어 문제로 소통이 원할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교회 사람들도 아흐메드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랍어 소통자가 필요했다.
감사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주일에 회사 일이 없으면 온다는 것이다.
이슬람 안에도 예수(잇싸로 말한) 가 선지자로 있기에 자기 딴애는 부담이 없다고 하며 아랍어 성경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잘 읽지를 못한 듯 싶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뭐가 차이가 있나를 묻자 그는 잘 모른다.
가볍게 나는 이슬람은 '선행'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 다고 믿고, 기독교는 '믿음' 즉 예수님이 구세주 임을 믿고 삶을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과 이슬람 창시자인 모함메드와의 차이점도 설명하니 점점 대화가 깊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나의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는 시리아인으로서 여러 불이익과 불편함이 레바논에 많다. 단지 국적 때문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 한다는 것은 나의 국적이 땅, 사탄에 속한 곳에서 하나님 나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신분과 대우도 다르고 삶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죄와 사망의 문제를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해결이 가능한지, 그것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말씀이 서서히 무르익는다.
1988년에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되었고 지금까지 내 삶이 어떻게 변화되고 더 좋은,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간증을 했더니 그도 그것을 동경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첫번은 필리핀 성도들 지중해에서 세례식 때에 처음 만났다. 그때는 짧은 대화만 했으나 이번 부턴 진지한 대화들이 시작이 되었다.
그가 바로보는 기독교, 정교회에 대한 첫 질문은 왜 여자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찬양, 예배를 드리나?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낫시티를 입고 교회에 오는가? 이른바 하의 실종..
무슬림으로서 그는 교인들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다. 일종의 하나님을 망령되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인듯 싶다. 특히 레바논 정교회, 카톨릭, 개신교 성도들이 옷차림새에 대해서도 나 또한 불편함이 있었는데, 아흐메드도 그것을 말한다.
얼마전 레바논 남부 지역에 이슬람 배경 형제들도 비슷한 질문을 여러차례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외모, 외형, 눈에 보이는 신앙생활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아흐메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보신다. 진정으로 그분을 만나고 싶어하는지, 그분을 구세주로 여기는지, 창조자, 전능자, 인도자 되시는 그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더 중요시 여긴다 라고 말씀을 나눠주었다.
우리에겐 예수님의 이름이 있기에 또한 삶의 변화, 풍성함이 있다. 문제는 내가 국적, 하나님 나라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마치 당신이 시리아인으로 레바논에서 살면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별, 부당함, 제한된 직업기회, 적은 수입...
그의 눈에는 호기심으로 가득함을 볼 수 있었다. 사역훈련세미나 강의가 교회에서 이제 막 시작해야 했기에 우리의 대화는 다음으로 미뤄졌는데, 주님께서 그 형제의 마음을 만지심을 발견했다.
충분한 관계 형성과 형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들이 적절하게 해결되는 것이 중요함을 발견한다. 적절한 예화와 이야기가 필요하다. 또한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만났을 때에 말씀하셨던 모습, 지혜, 복음이 필요하다.
주님이 나에게 이러한 기회를 자주 나에게 주신다.
앞으로를 준비하게끔 훈련과 경험을 주시는 것을 발견한다. 더욱더 준비해서 복음전도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원하심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 다양한 사람들, 경로, 과정, 방법을 활용하셔서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신다. 그 다양한 주님의 사역이 이곳 레바논에선 더욱 실감난다.
나는 하나를 계획, 기대를 했는데 주님은 기대를 초월하는 다양하고 많은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심에 겸손해 지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양한다.
이러한 주님의 움직임과 일군들이 준비되어 동역하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