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삶-예수님의 이야기
글·권대호 목사(전주 목원교회 담임, 바울선교회 이사)
창세기 37장 이후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야기라고 하여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삶 자체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위하여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창 37:3)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채색옷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케토넷 파심(כְּתֹנֶת פַּסִּים)이라는 말인데, 이 케토넷 파심은 손을 덮고 발까지 끌리는 옷을 말합니다. 이 옷은 일을 감독하는 감독자나 귀족들이 입는 옷이고 이 집의 상속자라는 의미로 입는 옷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장자권의 상징인 케토넷 파심-채색옷을 입혔는데 케토넷이라는 말이 성경 창세기 3장 21절에 보면 ‘가죽옷’이라는 말이 케노넷 오르라는 말입니다. 이 가죽옷-케토넷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예표인데 요셉이 그 케토넷 옷을 입고 자기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이 양을 칠 때에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창 37: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도덕적 관점으로만 보면 성경이 말하려는 진짜 의도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이 본문도 요셉이 고자질했다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잘못을 지적했듯이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지적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공생애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 종교 지도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23)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지적하게 됩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합니다.(마 26:3~4) 이렇듯이 요셉에게 잘못을 지적받았던 형제들 또한 요셉을 죽이기로 꾀합니다.(창 37:18) 그래서 결국 형제들에 의하여 요셉은 은 이십에 팔려 가게 되고(창 37:28), 결국 보디발 집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게 되고(마 26:14~15)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동생을 팔아버린 요셉의 형제들이 흉년으로 아사 직전에 요셉에 의하여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은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50:21)라고 하면서 끝까지 형제들과 그 자녀들을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백성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을 책임져 주시는 은혜도 주십니다. 이렇게 요셉의 삶은 예수님의 구원의 이야기로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요셉의 삶이 어떻게 예수님의 이야기로 써 내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의 삶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순종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데 그들에게 보내겠다(창 37:13)고 말합니다. 이 명령은 요셉이 순종하기에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고 그래서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지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창 37:13)라고 하면서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순종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충성하게 됩니다. 요셉은 야곱의 말대로 형들을 찾아서 세겜에까지 갑니다. 그러나 이미 형들은 세겜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포기하고 그냥 돌아올 만한데 요셉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형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래서 형들을 도단에서 만나게 됩니다.(창37:17) 이렇게 요셉은 순종하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 주신 일은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은 많은데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은 적은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 일을 맡겨 주면, 순종을 하여 열심히 감당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과 환경은 변하게 되어져 있고 그러면서 점점 변해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요셉은 순종하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나님이 써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순종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죄의 이야기인가? 사탄에게 패배하여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인가? 아니면 요셉처럼 구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인가? 오늘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70가족이, 애굽과 근동의 사람들이 살아나게 된 구원의 역사가 요셉의 삶 가운데 써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야기도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셔서 구약을 완성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이야기로 가득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서 케토넷-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구원의 역사-불신자를 위한 기도, 불신자를 위한 섬김, 불신자를 주께로 인도하는 구원의 이야기가 써 내려가고, 특히 우리 선교사님에게 부르심의 땅에서 구원의 이야기가 써 내려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구원의 이야기로 가득한 삶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