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선교회 제44기 훈련선교사 소개
김강현 훈련선교사
이제 한 달 이 조금 넘게 이곳 만경수련원에서 훈련 중인 저는 춘천에서 온 바울선교회 44기 김강현 훈련선교사입니다. 먼저 한 달여 동안 지내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글로 나눌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저를 위한 소개를 A4 한 장 가득 무얼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해보니 주님께서 주님을 만나고 선교사로 부르심에 대해 정리해 나누면 그거면 족하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아닌 나를 만나주신 주님을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저는 그 순간에도 제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선교적 소명은 ‘한국교회’ 첫 시작에 대한 고민에서부터였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해주고, 믿게 해준 현장이었는데, 그 시작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후 서양인 선교사님들에 의해 한국교회가 출발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분들의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면서 복음의 빚진 마음이 생겨 저 역시 복음이 없는 땅으로 가 전하는 것 거기서부터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랜 꿈이었던 선교사가 되는 길, 그동안 살아지는 데로 사는 것이 주님의 인도라고 착각하며 그저 매 순간 주어지는 삶 앞에 열심으로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원했으니 주님께서 알아서 인도해주시고, 자연스럽게 선교적 소명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며 알았습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살아지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단 이후, 저는 지금 이곳 만경수련원에서 바울선교회 44기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선교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여기서 훈련받는 우리 바울선교회 44기처럼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많은 훈련선교사님 들도 계실 것입니다. 선배 선교사님들의 업적과 역사를 보며 깨닫고 배우는 시간입니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살아내고 준비해야 하는 선교사로서 지금의 현실에선 또 어떠한 선교를 할 수 있을지, 주님 오실 날을 앞당길 수 있을지 고민하며 오늘도 이곳 만경수련원에서 주어진 사명과 과제 앞에 열심히 달려 나가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선교회는 물론 44기 선교사님들과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교와 관련해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든든한 동역자님들과 앞으로의 훈련 기간 누구 하나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 앞으로는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땅에서의 시간 함께 동역해 나아가길 소원합니다.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승식 훈련선교사
안녕하세요! 저는 44기 훈련생 김승식입니다. 전주에 살고 있고 무지개 언약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는 개척한 지 약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성도는 몇 되지 않지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는 교회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20살까지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나갔지만, 그 이후 객지를 돌아다니면서 교회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8년 전쯤 지금 무지개 언약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목사님 뜻에 합하여 선교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심게 되었습니다. 인도를 시작해 중국 이렇게 선교를 하게 되었는데, 5년 전에 목사님이 인도에 세운 교회 및 인도에 있는 목사님들을 만나기 위해 권사님과 3명이 함께 인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 목사님들을 만나고, 그곳의 성도들과 아이들 이렇게 보면서 많은 감정이 오고 갔습니다. 첸나이 지역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하고, 많은 사람이 병에 노출되어 있으며, 무더위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힌두교와 계급 사회로 일반 시민들의 삶은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보며,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너무나도 큰 은혜를 주셨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도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생명력이 있고, 언어는 다르지만 그들의 기도 음성이 뭉클했습니다. 그들의 바라보는 시선 속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모든 게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 혼자 누리는 이 행복이 과연 정당한가? 나에게 남은 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하며 사는 게 행복일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혼자만 누려도 되는 걸까? 이러한 생각들이 들면서 기도를 하는데 작년 새해 작정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밤 중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많은 아이와 함께 웃으며 같이 기도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선교에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훈련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원래 본업을 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제일 기쁘고 즐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나만 간직하는 것이 아닌 남은 인생을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러면서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바울선교회에 지원하여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쓰신다하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순종하는 신실한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갈 그 길들을 생각하면 벅차고, 기대됩니다. 그 기대 속에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 걸어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종찬/김보람(하연, 하율) 훈련선교사
먼저 바울선교회 44기로 훈련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김종찬, 김보람 가정이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김하연(8살), 김하율(6살) 두 자녀가 함께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주북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바울선교회 선교사 훈련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선교사로서의 비전을 품게 된 저와 그런 저를 만난 아내는 선교사의 길을 함께 걷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당시 저희는 장모님께서 암으로 인해 위독하신 상황이 오면서 양가 부모님들의 결정 가운데 대학교에 다니던 중 일찍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저희는 우선, 제가 대학원까지 모두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에 선교사 훈련에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두 자녀를 키우게 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서 교회에서 2년 차를 섬기던 작년 여름에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하나님의 사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항상 선교사로 나가려고 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언젠가 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목사님, 선교사로 언제 나가시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에도 수없이 듣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나간다고 하면서 언제까지 그렇게 미루고만 있을 거니?”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사인을 보내셨고, 이를 아내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이제 정말 선교사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걱정과 고민들로 쉽게 결정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함께 기도하며 이듬해에 바울선교회 선교사 훈련을 신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결단하고 교회사역도 정리하고 훈련을 준비하기만 하면 되는데, 또다시 서류 접수를 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굳이 훈련을 받아야 하냐?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 그냥 내년으로 미루면 안 되냐?’ 등의 수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정말 올해는 포기하고 내년에 신청하기로 아내와 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년이 아닌 올해에 저희가 바울 선교사로 훈련받기를 원하셨나 봅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면서, 저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심정으로 서류 접수가 마감되기 직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서류 접수를 하고 나서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44기 국내훈련을 시작하며 함께 훈련을 받게 된 44기 동기 선교사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이 시기에 부르신 이유가 분명히 있겠구나! 하나님께서는 꼭 지금 이 시기에 우리를 부르셨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시구나!’라는 기대와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국내훈련을 시작한 지 이제 약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벌써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물론 두 자녀와 함께 합숙하며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저희를 정금과 같이 단련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훈련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희도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선교사 가정으로 준비되기를 소망합니다.♣
신세계/하나래 훈련선교사
저 신세계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 선교를 나가고 싶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주님을 만났고, 성인만 되면 바로 해외 미전도 종족 어디든지 나가 바울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목사안수를 받고 선교를 나가야 한다는 권유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끝까지 성실하지 못하고 끝내 방황의 길로 빠졌습니다. 목사 안수는커녕 신학교에서 편입을 하고 사회에 묻혀 일반 사람들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나라의 사람들이 계속 저의 심장을 건드렸습니다. 애통한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전문인 선교를 준비하고는 있지만, 어떤 은사나, 실력도 없어서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7대 정신을 배우며 청사진이 아닌 백사진으로 온 것이 잘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걱정은 고민거리가 아닌 기도거리로 주님께 내어드리고 이제는 제가 가장 행복해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고 함께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백사진으로 가는 것이 더 기쁩니다. 구름기둥이 가는 곳까지만 가고 구름기둥이 멈추면 저도 멈추면 되니까요. 혼자 떠나려고 했던 저에게 지혜로운 아내와의 만남을 허락해주셔서, 지금은 둘이 하나가 되는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내를 보면 마치 하얀 스케치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아내는 ‘주님이 다 해주시겠지!’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배웁니다. 지금은 코로나라는 시기에 이렇게 선교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 하늘길이 열릴지 안 열릴지 모르니까 더 떨리고 설렙니다. 앞길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과 아내와 함께 걸으며 가기에 더 기대되며 즐거울 뿐입니다.
저 하나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헌신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단기선교를 다니다가 여러 이유로 ‘시니어 선교사’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던 차에 다니는 교회 국내 단기선교 스탭 공동체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스탭으로 선교를 준비하며 서로의 감정을 확실하게 알게 되어 진지한 만남을 놓고 기도하고 있을 때 저에게 강하게 주시는 두 마음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이 사람을 배우자로 세우시고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함께 떠나라고 하시는구나!’였고 두 번째는, ‘하나님 만나는 그날,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나에게로 데리고 왔구나”라는 이 칭찬 한마디를 듣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계획하심 안에 기도하며 만나게 하신 배우자라고 확신했기에 남편의 비전이 저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교의 비전이 확실하며 저와 즐겁게 선교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사람과 함께 지금 이곳 만경수련원에 와 있습니다.
첫 결혼기념일을 이곳 만경수련원에서 동기들과 함께 보낸 1년 차 신혼부부입니다. 소개 글이라 온통 좋은 이야기뿐이지만, 사실 글 속에 못 담은, 치열하게 부딪치며 맞춰가는 부분도 참 많은 부부입니다. 저희 부부가 성경이 말하는 부부의 모습으로 가정을 세워가기를 소망하며 가정공동체를 말씀으로 잘 세워 교회공동체도 말씀으로 잘 세워갈 수 있는 은혜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기쁨으로 함께 동참하고 싶은 서로가 은혜 가운데 만나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참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감사함을 잃지 않으며 선교훈련과 선교에 임하겠습니다. 선교지로 나가기 전에, 훈련기간을 통해 저희 부부가 주님 쓰시기에 준비된 종으로 잘 다듬어지기를, 서로에게 먼저 성경 스승이 되어보려 노력하는 부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승리 훈련선교사
코로나에, 바울선교회 최초로 만경수련원에서, 요즘 몇 년 사이 보기 힘든 평균나이 33세인 44기 훈련생들과 훈련을 받으면서 요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훈련원에 오시는 많은 선교사님께서도 참 특별한 기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1년 동안 단기 선교 간 언니를 만나기 위해 필리핀에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대학생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선교 훈련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고 심방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항생제 한 알이 없어 죽어가는 현지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었습니다.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주님 제가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기도를 했는데 그때 간호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셔서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하여 5년 동안 간호사로 근무했습니다. 매일 정해진 일들을 소화하며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기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전이 있어 간호학과에 입학하였지만, 대학교 때는 많은 양의 공부 분량과 실습으로, 취업해서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일상들로 은혜가 떨어질 쯤이면 단기선교를 가서 충전하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장기 선교는 나이 들어 은퇴 후 나가고 그전에는 단기선교 다니며 돈을 모아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일 년 전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제 신앙은 언제 떨어진 지도 모르게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복음이 뭐냐고 물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주중 예배, 주일 예배 안 빠지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이 정도면 그래도 밑바닥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제가 얼마나 죄인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과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아픔 속에서 답답해하고 있던 어느 날, 퇴근길에 극동방송을 통해 들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음이 마음에 비수와 같이 꽂혀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만 신경 썼지 정작 주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늘 주님은 저를 기다리고 계셨고 제가 주님께 달려가자 저를 안아주시며 죄로 더러워진 옷 대신 새 옷을 입혀주심을 경험하여 비로소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회개시키신 후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고 관계가 회복되니 주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마침 그때 수련회를 통해 '다윗과 같이 이 시대 골리앗 앞에서 주님 편에 설 사람 없나요?'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마음이 뜨거워졌고 20대의 마지막, 젊음을 하나님께 드리자는 마음으로 바울선교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매일 매일 울리는 확진자 안내 문자로 시끄러운 도시와 달리 이곳은 소 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루를 마무리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과 주님 안에서의 참 평안함을 느끼며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이때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선교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아직 싱글이어서 두려움과 걱정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믿으며 끝까지 사명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곳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선교사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미영 훈련선교사
이십 대에 한 선교단체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비전을 모른 척하고 지낸 세월이 10년이 넘어갈 때 즈음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로 평생 살겠노라 서원했던 것들을 내 삶의 모든 방향에서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30대 중반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두렵고, 주저함이 컸던 터라 이 나이에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겠느냐며 귀 닫고, 눈 닫고, 그저 한 달 고정으로 들어오는 월급으로 나를 꾸미고, 내 만족을 위해 살기 바빴습니다.
청년부에는 늘 좋은 언니, 일 잘하는 사람, 성실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통했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교회의 사역을 섬기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대하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저 예수님만 아시는 나의 곪아버린 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겉모습만 포장하기 바빴습니다. 그것이 청년부에서 섬겼던 모든 사역 가운데서 여실히 드러났고, 그 가증스럽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주님 앞에 대면하게 되면서부터 영적 탈진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느 한 사람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에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래서 간 여행에서는 멍하게 아무 생각 없이 있든지, 아니면 하루 8시간 10시간을 걸어 다니며 어디든 발 닿는 곳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 언어가 다르고 어떤 곳은 생김새도 다른 이 사람들은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가는지 눈으로 보기도 하고, 현지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서 그곳에서 정착하시며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시는 모습들도 바라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20대에 섬겼던 티벳민족과 그곳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을 생각하며 선교사의 삶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교사의 부르심 앞에 참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36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나를 소개 할 만한 것이라고는 직장 하나 있는 것이 전부인데 주님은 이 직장까지 내려놓고 나오라 하시니 그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계산기를 꺼내어 선교사로 나가게 되면 학비와 생활비 등 이것저것 계산하기 바빴습니다.
“주님!? 저는 언제 연애하고 언제 결혼하죠?” 계산기를 손에 들고 울상을 지었습니다. 청년의 뭣도 모르던 때, 독신으로 살겠노라 말하고 다녔던 기도를 들으시며 독신의 은사를 주셨을까 봐 겁도 났습니다.
“두려운 걸음마다 주가 동행하니 주 의지하며 오늘을 걷네.. 주의 신실한 소망을 깊이 담으며 주 예수의 풍요를 채워가네.. 하나님의 자녀로 명예 지켜가며 깊어진 삶을 주께 드리네···.” 마커스의 ”깊어진 삶을 주께“ 라는 찬양을 듣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그렇게 많이 입었음에도 저는 또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계산기나 두드리며 현실만 고집하는 못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 고백을 기점으로 결혼도, 재정도, 앞으로의 모든 삶도 주님께 의탁하며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 내가 꽉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은 후 주님께서는 또 한 번 내 삶을 은혜로 모든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43기 동료 선교사님을 소개로 42기의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한 청년(김현식 선교사)을 소개받게 되었고, 그렇게 추운 겨울과 봄을 지나 더운 여름을 맞이할 즈음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지 60일이 조금 지나 신혼을 이곳 만경 수련원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42기를 은혜롭게 졸업한 남편을 끌고 들어와 더 은혜로운 44기 훈련을 함께 받는 중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과제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강의, 코로나로 인한 주말 합숙까지 겹쳐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만 4개월 동안 받게 되는 이 훈련을 통해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온전한 도구로 다듬어지길 소망합니다.♣
장성훈/김주신 훈련선교사
안녕하세요. 저희 부부는 이제 곧 결혼 3년 차로,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지원한 장성훈, 김주신 입니다. 아내 김주신은 일본 MK로 부모님께서는 바울선교회 13기 선교사이시고, 남편 장성훈은 청년 때부터 장기선교사로 헌신하여 선교의 꿈을 갖고 이제는 그 꿈을 아내와 함께 펼치기 위해 바울선교회 44기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내 김주신은 대학 졸업 후 지난 10여 년간 일본 도쿄에 위치한 국제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섬겼습니다. 각 교사와 스탭 분들이 신실하게 교사의 자리를 지키며 학교의 비전을 감당해 가시는 모습이 큰 도전이 되어, 맡겨주신 자리를 충실히 감당하려고 노력해 왔고, 미래에도 선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일본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지키기 원하는 마음으로 임해 왔습니다.
남편 장성훈은 고등학교 시절 새벽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게 만났던 일을 계기로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선교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선교학을 공부하고 필리핀 바기오에서 사역하며 신학대학원에 재학하던 중, 현지교회의 협력 선교사로 계시던 분을 통해 일본에 있던 아내를 소개받았습니다. 이미 선교사 자녀로 선교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내를 만나고 한국 교단에 소속되어 목회자로서 사역을 하기 위해 2017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목회학 석사 과정을 끝내고 이제는 아내와 함께 선교사로서의 길을 가고자 바울선교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각오는 선교훈련 기간 동안 개별체가 아닌 한가정을 이룬 부부로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고자 합니다.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여 늘 개입하시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정하여 주시는 주님 따라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소망합니다.
선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단독적인 사역보다는 바울선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교회의 믿음선교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단련되고 성화됨을 날마다 체험하며 현재 44기 훈련선교사님들과 함께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 개개인이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한 걸음도 빼놓지 않으시고 동행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앞으로는 저희 부부가 한 가정에서 하나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목회와 교육을 통해서 복음전파와 복음 전수에 전력을 다하여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