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을의 단풍과 은행잎들이 곱게 옷을 갈아입고 있겠군요.
이곳은 아직 우기철이 계속되어서 매일 한 차례씩 비가 내립니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쿠바입국
전세계의 물가가 상승하는 분위기를 타고 이곳 코스타리카의 물가 역시 2-3배 정도 상승하여(쿠바는4배), 한국이나 미국보다 높아졌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쿠바 행 항공료 역시 안식년 전 운행하던 항공회사가 다른 나라(콜롬비아) 회사와 통합 되었고, 파나마를 경유하여, 요금도, 시간도 두 배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쿠바를 선교하시던 한 선교사님은 쿠바선교를 정리하고 과테말라로 선교지를 옮겼습니다. 저 역시 짧은 시간이었으나 선교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지만, 바울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발걸음을 옮긴 것 처럼, 다시 쿠바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침 이틀밤 아바나 호텔에서 숙박권을 포함하는 패키지 항공표를, 아주 저렴하게 쿠바선교 15년만에 처음으로 살 수 있어서(현재615불-1330불 항공료만, 그러나 특별패키지- 490불) ,쿠바를 향한 주님의 뜻을 다시 한 번 확신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1년 6개월 후에 도착한 쿠바, 습기와 함께 몸으로 먼저 느껴지는 더위, 군복 차림의 공항 직원들, 화장지가 없는 공항 화장실, 공항에서 학교를 가는 길목의, 재료가 없어서 항상 주문을 바꾸어야 하는 식당 등, 모두 변함이 없는,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반가운 쿠바 땅과 사람들 이었습니다 .
안식년동안 학교운영과 도둑사건
학생들은 제가 안식년을 잘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하여 자주 예배시간에 공동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학장님은, 안식년 동안 미국의 한 지인이 지원하여 학교는 운영되었다는 소식은, 잘못 전해진 것이라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한 선교단체에서 매년 5천불씩 지원을 했는데, 지난해에는 4천불 지원을 받았으며, 매월 1200$의(학생28명기준) 기금이 필요한 학교운영은 불가능하여, 학생들의 수업시간을 줄이고 오후에는, 파인애플 밭을 더 확장, 식사 대용이 될 수 있는 과일이나 식물들을 심는 등, 일을 했으며, 짐승도 키워서 팔고, 무엇보다도 봉고 운행을 거리에 따라서 돈을 받았으며, 여름캠프에,약 4천명이 참여하여 총 800$의 수입 등으로, 운영을 겨우 해 왔다고 합니다. 8명의 학생들이 졸업을 했고, 현재 20명의 학생이 남았으며 이번 학기 9월부터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수업을 시작했고, 학교는 운영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였으나, 더 이상 방법이 없어 계속 학생들을 줄여가는 중이라 말씀하시며, 1년동안 한국교회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도둑사건
학교 재정을 맡은 노엘 가족은 온 가족이 주일저녁예배까지 참석하는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작년12월 그날 역시 주일 저녁예배에 참석한 사이, 도둑이 들었으며, 제가 안식년 전에 기숙사 내부에 들어갈 옷장과 책상, 침대를 비롯 집기 비용을 지원한 3500$ 중 2500$과, 학교운영비 1000$ 과 고장 난 손목시계까지 도둑을 맞아, 다음날 학교 직원들과 일꾼들, 가족, 학생들모두 경찰서에 가서 지문 감식을 했습니다. 쿠바는 가계가 모두 정부의 것이며, 시내에 전당포는 한 곳이어서 경찰은 전당포 직원에게 미리 물건에 대하여 설명하고 신고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도둑은 그 다음날 학교에서 좀 떨어진 시내에 가서 침대, 냉장고, 세탁기 등 물건을 샀고, 잃어버린 고장 난 시계를 전당포에 팔기 위하여 갔으며, 경찰은 고장 난 시계를 통하여 도둑을 잡았으며, 감옥으로 보내져서 8년 형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도둑이 채포 된 다음날 도둑으로부터 모든 물건을 회수 했습니다. 경찰이 물건을 돌려주면, 쿠바는 물건이 귀하므로, 산 값을 그대로 받고 다시 팔 수가 있으므로, 물건을 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였으나, 경찰이 물건을 돌려 주지 않음으로 학교측은 경찰서에 소송서를 제출했습니다(제가 확인함). 현재 약 1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나, 물건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지문감식까지 하며 공공연하게 수사를 한 것이어서 경찰이 불법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경찰은 정부로 정부는 정부 상점에서 다시 민간인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화를 내기보다 웃기만(?) 하는 저를 보고, 노엘과 학장님이 이상한 듯 바라보아서, 제가 학장님과 노엘에게 경찰, 정부가 더 큰 도둑이니, 다시 외국인과의 신뢰문제와, 이 사건으로 외국인이 쿠바를 보는 쿠바의 위상 문제 등을 설명하며, 한 번 더 소송을 청구하고, 응답이 없으면, 잃어버린 것은 잊어버리고, 그대신 학교 입장으로 그 도둑을 용서하고 풀어 줄 것의 요청 서류를 경찰서에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교로서, 감옥에서 나오도록 선처를 피해자인 우리가 부탁 드리면, 경찰도, 도둑도, 정부도, 감동을 받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남기면, 그 돈으로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엘도 학장님도 감동을 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숙사 집기는 여기저기에서 나무들을 주워다가, 목수인 학생이, 다른 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만들어 아쉬운 대로 학생들은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대책으로 학교는 금고를 놓는 곳을 안전한 곳으로 했지만, 다시는 학교가 이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신학교지원
비록 10월에 쿠바에 들어갔으나, 9월부터 지원을 시작하였으며, 1월부터 학생들을 28명으로 증가하도록 하였습니다 (현재 학생 20명, 정교수 2명 ,시간강사 4명분 4주). 또한 학장님과 대화도중, 학생들이 주말 교회 봉사를 떠나는데, 교통비도, 주말 양식도 없는 상황을 알게 되었고, 학생들 20명에게 모두 용돈을 지원했으며, 한국에서 가져온 구충제와, 머리핀, 랜튼 기능이 있는 열쇠고리 등을 선물로 나누었습니다. 헌금과 헌물로 함께 해 주신 사랑에, 학생들과 학장님은 하나님께 그리고 후원해 주시는 한국 교회 앞에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한국교회가 지원하여 지은 기숙사 건물, 제 방에서 처음으로 잠을 잤습니다. 한국의 기후에 익숙해져서 인지, 밤 습기에 목이 잠기더니 다음날부터 감기가 심하게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수아레스 (Israel Suarez) ; 닉네임 : 삐치(Pichy)의 시디(C.D)
안식년 전, 기숙사 옆을 지나갈 떄 기타를 치며 노래 소리를 듣고 확인해보니, 다른 학생들에게 묻혀있던 평소에 조용한 삐치였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났으나, 음악이 좋아서 그때그때 작사 작곡한 것이라며, 19곡을 보여 주어서, 저는 학생들을 소집한 후 그의 콘서트를 열어 주었고, 부분적으로 수정 작업을 함께 한 후, 350$(약380000원)을 지원하여 삐치의 시디를 추진해 놓고 안식년이 가졌습니다. 삐치는 그 사이 시디를 완성하여 총회에서 시디를 선보였으며, 이후, 각 교회에서 복음성가로 불리워 지고 있습니다. 학교 졸업식 행사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고, 학교 매 식사 시간 전에 음식에 대한 감사의 찬양에도 삐치의 노래가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후원해 주신 한국교회께 감사를 드립니다.
책작업
쿠바에는 아직 기독교 역사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습니다.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잘 감당하는 휄릭스 부부에게 이 작업을 함께 할 것을 권했습니다. 스페인통치기간부터 현대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작업하는 것인데, 제가 네 단계로 역사를 구분하여, 연구주제와 제목을 알려준 후, 그들이 자료를 구하고, 인터뷰를 할 것 등의 시간 계획을 함께 세웠으며, 다음 방문에서 그 내용으로 그룹 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업이 잘 되면 쿠바 기독교 역사서가 처음으로 우리 신학교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어린이 입양지원
전도그룹의 7가정 가정의 어린이들을 한 가정당 한 달 10$(U.S.D)씩 9월부터 지원하였으며, 매월 잔액 약22$은 (환률 변동에 따라 다름-매월 총 10만원,현재환률 1080원기준) 이들 7가정이 1년1회 전가족모임(전도그룹,목회자 훈련)의 경비로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목사님과 지원하는 아이들 이름입니다. Pastor Yusniel Yu – Caleb Yu (hijo) – 유스니엘 목사님과 그 아들, 갈렙 Pastor Yem Cruz - Alma (hija) –잼 목사님과 그 딸, 알마 Pastor Javier Carballo –Yanaris Carballo (hija)- 하비에르 목사님과 그 딸, 쟈나리스Pastor Luis Manuel – EliAni (hija) – 루이스 목사님과 그 딸, 엘리아니Pastor Manflet Roguez –Brenda Rodriguez(hija)- 망플렛 목사님과 그 딸, 브랜다Pastor Midael Perez – Benitza Peres (hija)- 미다엘 목사님과 그 딸, 베닠사 Pastor Misael Perez – Aaron y Ebenecer Perez ( Hija)- 미사엘 목사님과 그 딸, 아론이 아이들이 쿠바에서 주님의 귀한 복음의 일꾼들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교회건축지원
안식년 전까지, 총110개 교회가 헌금되었으며, 56개 반(56,500$) 가정교회 재건축을 마쳤으며, 총 잔액 : 53,500$ 중 5개(5,000$) 교회건축을 지원하였습니다-
1) 미라 훌로레스 비에호 교회(Mira flores viejos ),
2) 엔뜨랑꼐 오바스 교회(entranque de ovas),
3) 엘 치꼬 교회(El chico),
4) el paleuque(엘 빨레우꼐 교회),
5) 싼따 크루스 교회(Santa Cruz). 총 110개 중 61개반 (61,500$) 지원 하였으며, 총 잔액 : 48개 반( 48,500$ ) 이 남았는데, 10월 강성림 권사님 2개 지원으로, 총 잔액 : 50개반(50 500$)이남았습니다. 지원한 교회가 잘 완공이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구원받는 영혼이 날마다 증가하도록 ,그리고 지원할 교회가 잘 선별되고 이 일을 협력하는 사무엘, 라우델 목사님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오벳의 대학입학과 카메라 선물
학장님의 아들 오벳은 영문과에 입학하여, 프랑스어를 부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내향적이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던 오벳은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원했으나, 학장님의 형편은 선물 해 줄 수 없었고, 비록 중고이지만, 제가 쓰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하자, 그 다음날 교수님들부터 친구, 학교 전경 등 500장의 사진을 찍어서 부모님께 보여드려서 학장님이 매우 고마워 했습니다.일반대학을 졸업한 후 오벳은 신학교에 입학할 계획입니다.
아바나 호텔과 유스니엘 목사님 가족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쿠바 선교 15년 만에 기대와 설렘으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특별세일패키지), 바로 맞은편에는 캐네디 대통령이나 외국 정상들이 방문하면 거하는 호텔이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머문 호텔은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으며, 졸졸 새는 샤워기는 감기를 더 심하게 했지만, 수영장도 레스토랑도 있어 쿠바의 또다른 세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스니엘 목사님 가족이 호텔로 찾아왔습니다. 아들 갈렙은 임신했을 떄부터 보아왔는데, 1년반이 지났으나 저를 기억하여 기분이 좋았고 반가웠습니다. 시내에 나가서 물가조사를 마친 후,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갈렙은 현재 4살인데, 어른이 먹는 음식의 양을 똑같이 먹었으며, 피자집, 아이스크림 집을 연이어 갔는데, 피자 한판,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먹었습니다. 유스니엘 목사님의 아내는 의사인데 아이가 생기면서 매월 20불 받던 의사 직을 그만두고(2013년현재도 의사월급 20$), 신학을 한 후 지금은 사모님으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아내에게 선물과 함께 차비를 손에 쥐어 주니, 눈물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비록 감기로 잠을 이룰 수 없었으나, 그래도 호텔에서의 마음의 여유와, 하룻 동안의 갈렙의 환하게 즐거워하던 모습이 기쁨을 주었습니다 .
15년만에 만난 감리교 감독과 므녜까 할머니
15년전 처음 쿠바에 방문했을 때 감리교감독의 교회에 방문했었는데, 숙소 근처에 감리교가 있었고, 그분에 대하여 질문을 드리니, 택시로 10분 거리의 교회에서 지금도 감리교 감독으로 섬기고 있음을 확인한 후, 리까르도 목사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교회는 가득 차 있었으며, 멀리서 보았지만, 역시 15년 전 목사님의 모습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15년 전 좋은 정보를 잘 안내해 주어, 쿠바 신학교에서 선교를 해 왔으며, 오늘은 확인 차 택시를 대기시켜 놓았으므로, 다음 방문때, 식사를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인사를 드리니, 기억 난다며, 당시 일을 잠깐 반갑게 나누었고, 그때는 교인이 약 100명도 채 안되었는데, 이제는 300명이 넘는다고 은근히 자랑도 하시고 명함도 주시며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셔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교회에서 나온 후 기억을 더듬어, 후스또와 므녜까 부부의 집을 찾았습니다. 이 집은 당시 호텔 외에는 외국인이 거할 수 없었으며, 민간인 집에 머물면 벌금 또한 과중했으나, 호텔은 비쌌을 뿐만아니라, 첫 방문에서 민간인들의 삶을 보고 답사하는 것이 중요하여, 거주했던 민간인, 후스또 집이었습니다. 15년년 전과는 다르게 화장실 변기는 꼭지를 누르면 물이 나오지만, 여전히 화장지 대신 신문지와 종이 혹은 천이 있었습니다. 쿠바 사람들은 아직 중산층 이상이어도 화장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15년 전에 제가 잠을 잤던 바로 그 방에 환자가 되어 옆구리에 호스를 끼고 누워 있었으며, 목욕도 다른 사람이 수건으로 씻겨주는 모습이었으나 얼굴은 곱고, 꺠끗하고 정신도 또렷했습니다. 할머니 므녜까는, 저를 보고, 당시 스페인어 3개월 현재형만 공부한 후 답사를 온 상태였으므로, 언어가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페인어 찬송을 보지 않고, 교회에서도 양로원에서도 잘 불렀다며, 아직도 종교비자가 없으면 교회나 공공 기관에서 찬양, 설교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었고, 겁도 없이 그렇게 행동했던 저의 모습을 이야기 하시며, 자신은 많이 두려웠다고 그 당시의 상황을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도 교통이 자유롭게 연결이 되지 않는 쿠바의 상황과 바쁜 일정을 핑계로 좀 더 일찍 찾아오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1년만 일찍 찾아왔더라면, 할아버지도 만났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누워있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린 후, 헌금을 쥐어주며 다음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 드리고, 꼭 그때까지 건강 회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했을 떄 므녜까도 ,저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습니다 .므녜까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쿠바 선교에서 강의는 하지 못했습니다 .강의는 종교비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며, 종교비자는 65일전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한국에서 돌아온 후 신학교 지원 상황이 급하여 65일 전에 입국을 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정지되었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하였으며, 학교측과 다음학기에 강의 시간을 설정하고, 돌아와서 곧바로 종교비자를 신청했습니다. 언어 감각 회복으로 매일 스페인어 성경을 읽고, 강의 원고 보강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언어의 감각이 잘 돌아와서 강의 준비가 잘 되고, 비자가 잘 나오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오늘도 쿠바 선교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시며,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한국교회와 성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루 한번 꼭 쿠바와 부족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 저도 부족하지만 여러 동역자님들의 교회와 가정을 위하여 기도들 드립니다 .
2013년 11월 7일 임00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