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23)
기도와 지원에 감사드리며 소식을 드립니다.
귀국
지난달 급한 치료를 위해 예정했던 한국방문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다녀오질 못했습니다. 외과시술이 필요했던 송 선교사의 급성 지방종 제거는 이곳 병원에서 잘 해결하질 못하여 한국에 들어가 치료하려고 했으나 이마저 여의찮게 되어 부득불 집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살이 스스로 곪아 찢어져서 손으로 짜내어 덩이가 피와 함께 밖으로 빠져나와 뿌리가 제거되었고 상처 부위에 흉터를 남겼는데 이것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곳의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 감염 우려로 여타 병원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없었던 상황이 오히려 하늘의 기적 같은 치료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 저작 장애가 심해 장 선교사의 치아 3곳이 급한 치료가 필요했었는데 이곳 치과에서 한꺼번에 2개를 동시에 뽑아내는 바람에 출혈과 두개골 쪽 상한 뼈를 깎아 내느라 곤란한 상황을 맞을 뻔하였지만 여러 날 항생제를 먹으면서 무난히 회복하였습니다. 나머지 한 곳(어금니)은 치료를 받기가 조심스러워서 다음번 귀국 시에 해결하기로 했고 견뎌보기로 하였습니다. 급하고 필요했을 때에 제때에 귀국하여 치료를 받지 못해 낙심되고 사기도 좀 저하되었지만, 우리보다 더 어렵고 힘든 가정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동병상련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귀국경비로 쓰려던 재정으로 집세와 생활비를 해결하고 쌀과 식량 등을 조금 더 구입해 코로나 여파로 어려워진 이곳 어려운 사람들에게 연말 기간에도 계속해서 나누어줄 수 있었기에 대신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기도로 걱정해 주신 동지들께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잠 17:17).
A국
상상도 하지 못했던 A국의 특별검역체제와 육로국경봉쇄조치는 2년 전부터 재연장이 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첫 코로나 확산 기간을 맞았을 때만 해도 그곳에 예약해 둔 월세 집과 언어학원 등 일정을 연기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오래 계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질 못했었습니다. 사실상 인구대비 코로나 감염률과 치사율이 올 한해 세계최고수준이었던 G국에서 그동안 몇 차례의 코로나 유사증상을 겪었으나 동역자들의 기도와 배려로, 하늘의 놀라우신 공급하심과 보호를 받으며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QT 묵상을 하다가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회상하게 되었는데 짙은 계절의 영향인지 마음속에 밀려드는 설명할 수 없는 진한 여운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보냄을 받은 땅은 코카서스 3국 중 유일한 산유국이자 지난번 전쟁의 승전국 A국이지만 전쟁 후유증으로 10만에 가까운 국내 난민이 발생한 춥고 가난한 패전국 A국의 처연한 상황이 자주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코로나 변이 재확산으로 여전히 예측 힘든 상황으로 시간이 흘러가고는 있지만, 이 겨울 남은 사역과 인내의 시간이 다 흐르고 나면 어디를 향하던 전보다 더한 평안과 감사로 향후 여정을 맞이하리라 생각됩니다. 하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잠 16:9).
30년
언제나 신혼일 것만 같았는데 저희 부부도 어느새 결혼 30년 차를 보내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예쁜 야생화를 보면 꽃부터 꺾으려 들던 혈기 충천한 20~30대와 뿌리째 뽑아와 내 집 마당에 심으려 들던 탐욕스러운 40~50대를 외지고 낯선 선교지에 나와 우여곡절 함께 보내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 그리고 천천히 익어감을 허락하신 하늘의 은총에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꽃을 손대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 자리에서 한껏 느끼고 다시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여유로운 60~70대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소망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보니, 자식은 일찌감치 독립하여 떠나 보냈고 우리 두 사람이 다시 신혼 때처럼 매일 매일 운명처럼 마주하고 있습니다. 허물 많은 두 죄인이 이토록 오랜 시간 어떻게 함께 잘 지내올 수 있었는지 그저 의아하고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번 귀국길에 들어가게 되면 갯벌이 아름다운 순천만에 내려가 그곳 가을을 산책하면서 결혼기념을 함께 하려고 했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기념일엔 30년 전 신혼여행 때에 했던 것처럼 배낭 하나씩 메고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서로의 지나온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전 4:9~12).
송구영신
지난 세월 믿음 선교의 가르침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실천적 교훈들을 몸소 익히며 배울 수 있게 하신 하늘의 은총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코로나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었던 지난 2년 동안의 시간은 생존을 위한 많은 연단과 교훈들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인내하고 감사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어디까지 사랑하며 믿음으로 생존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기간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찬찬히 돌아보니 베푸신 하늘의 은혜가 크고 깊습니다. 어느덧 기술 문명의 총화가 집약된 특이점(Singularity) 도래의 현실에서 다시 한번 변화의 물살이 가속되고 있는 세상을 숨 가쁘게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 도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국경을 넘나들어야 하는 비자 문제나 창의적 접근문제가 초월 되는 메타버스의 시대로 빠르게 변화되리라 예견되지만, 소유와 쾌락을 향한 인간 탐욕의 끝없는 경쟁으로 결국엔 미완에 그치고야 말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삶의 시작과 끝을 쥐고 계신 하늘의 생명 창조질서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상황을 맞아 오갈 수 없는 어정쩡한 중간영역에서 어쩔 수 없이 매일 드리다시피 한 예배 생활은 지난 기간 선교지에서 드렸던 그것보다도 간절했고 그 날 수도 더 많았습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매일 입으로 고백하게 하셨고, 성경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도록 하셨으며, 매일매일 말씀을 묵상토록 하셨고 사랑 없는 죄인인 가련한 우리의 모습을 똑바로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 무엇이기 이전에 신실한 성도로 먼저 거듭나야겠다는 결심을 앞서게 합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을 부지중에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랜 코로나의 피로감 속에서도 기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동역자분들께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대상 16:34).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도 늘 평안 강건하소서.
2021년 12월 30일
코카서스에서 장OO, 송OO 드림
기도제목
- A국의 방역과 출입국상황이 호전되게 하시고 복음전파사역의 인도하심을 위해
- 겨울 사역활동과 향후 개척에 대한 준비와 인도하심(언어/비자/재정/건강)을 위해
- 창의적 접근에 지혜와 용기를 내려주시고 가족의 영 육 간 강건함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