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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y Paul posted Aug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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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소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발칸반도 민족의 용광로-
 

 

 

 

BOSNIA AND HERZEGOVINA
 

 

 

 

 
 

 

 

 

 
 

 

 

 

발칸반도 민족의 용광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
 

 

 

 

파란색 바탕 가운데에는 노란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으며 노란색 삼각형 빗변에는 7개의 하얀색 별과 위아래로 잘려진 1개의 하얀색 별이 그려져 있다. 파란색과 노란색은 유럽기를 바탕으로 한 색으로,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은 중립과 평화를 의미한다.
삼각형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토의 모양을, 삼각형의 세 개의 변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는 세 민족인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을 의미한다. 파란색과 하얀색 별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럽의 일원임을 의미하며 노란색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구성하는 세 민족이 서로 협력하면서 아름다운 미래의 희망을 함께 창조한다는 뜻을 의미한다.

 

 

 

 
 

 

 

 

 
 

 

 

 

국가 개요
 

 

 

 

? 국명: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e i Hercegovine)
? 위치: 발칸반도 북서부
? 수도: 사라예보(Sarajevo)
? 환율: 1마르카(KM)에 700원 (2014. 12. 20기준)
? 언어: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 면적: 51,129km²(124위)
? 인구: 3,791,622명 (130위, 2015년 기준)
? 인종: 보스니아인 48%, 세르비아인 37%, 크로아티아인14%
? 기후: 북부지역 대륙성 산악기후, 남부지역 지중해성기후
? 종교: 보스니안 무슬림 48%, 세르비아 정교회 36%, 크로아티아 가톨릭 14%, 개신교 1%, 기타 1%
? 정체: 연방제 공화국
? 의회형태: 연방제 상하양원제
? 국가원수: 지부코 부디미르
? 정부총리: 네르민 닉시치
? 독립일: 1992. 4. 5.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
? 1인당 GDP: $4,660(2009년 통계치)
? 시차: CET(UTC+1) 한국보다는 8시간 느림(하절기 서머타임으로 7시간)

 

 

 

 
 

 

 

 

민족구성 및 종교

 

 

 

제2차 세계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연방제가 실시될 때 주요민족을 기초로 한 다른 5개 공화국과는 달리 이 공화국만이 지역(보스니아 중북부지역), 헤르체고비나(남부지역)를 기초로 하여 성립되었다.
따라서 현재에도 슬라브계 보스니안48%, 세르비아계37%, 크로아티아계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민족은 각각 이슬람교(48%), 세르비아정교(36%), 가톨릭(14%), 개신교(1%)를 신봉하고 있다. 언어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문자는 서로 다른 라틴문자와 키릴문자(러시아 문자와 유사)가 각각 사용되고 있다.

 

 

 

 
 

 

 

 

기후

 

 

 

보스니아의 날씨는 남부 헤르체고비나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매우 덥고 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그리고 사라예보를 중심으로 북부지역은 대륙성 산악기후로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날씨를 보인다. 북부지역은 목축업이 발달하였고 울창한 삼림이 분포되어 목재를 수출하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18-20도 정도이고, 강수량은 연평균 1,000~1,200mm 정도이다.

 

 

 

 
 

 

 

 

의료시설

 

 

 

보스니아의 의료서비스는 수도 사라예보와 북부자치공화국인 RS(Republic of Spraska)의 행정수도인 바냐루카에 대형병원이 있고 중소도시에 병원 및 보건소가 산재해 있다. 의료수준은 높은 편이고 도시마다 좋은 의사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이 진료를 받을 때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므로 진료비가 비싼 편이고, 외국인 선교사들은 사라예보 시내 외곽에 주둔한 미군부대의 군병원에서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특별한 풍토병은 없지만 물로 인한 피부병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심한 편은 아니고, 약국에서 모든 처방약을 구비하고 있어서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

 

 

 

 
 

 

 

 

대중교통
 

 

 

 

교통은 도심의 시내버스와 전철이 각 구간마다 연결이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외곽으로 나가는 시외버스나 기차는 하루에 몇 편이 안 되는 불편함이 있다. 전철의 요금은 1.5마르카(한화 약1,050원)이고 교통요금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택시는 시내의 구간요금(4마르카, 한화 약 2,800원)이 동일하고 다만 시내를 벗어나서 외곽으로 나갈 때 할증요금이 붙어서 비싼 편이다.

 

 

 

 
 

 

 

 

주거환경

 

 

 

주거환경은 대부분의 주택들이 낡은 건물들이 많지만 최근 새롭게 건물을 보수하며 증축하고 있다. 그리고 사라예보를 중심으로 대도시 아파트 월세는 보통 방2개인 집이 350~360유로 정도이고, 그 외 중소도시는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한 편이다. 보통 주택을 구입할 때 집에 필요한 세탁기나 냉장고, 가스렌지는 주인이 구비하여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너무 낡은 것은 본인이 새것으로 구입하는 대신 집세를 조금 낮추어서 들어갈 수 있다. 정격전압은 220v를 사용하고 전기료는 우리나라보다 10% 정도 약간 비싼 편이다.
보스니아는 농업과 목축업이 전통적으로 발달한 편이어서 낙농제품이나 야채,과일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공산품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조금 더 비싼 편이다. 일반 쇼핑몰도 도시마다 있고 한국처럼 모든 매장에 물건들이 잘 정리되고 구비되어 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수입된 가전제품과 약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으며 마을마다 재래시장은 일주일에 한번 열린다.

 

 

 

 
 

 

 

 

음식

 

 

 

현지인이 주로 먹는 음식은 일반적으로 아침에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과 빵과 베이컨을 먹는다. 즐겨 마시는 커피는 한국인이 마시기엔 너무 쓴 맛일 수 있다. 그리고 부렉(Burek)은 보스니아인들이 즐겨먹는 전통빵이고 체바피(보스니아식 케밥)는 어디서나 손쉽게 먹을 수 있다. 가격은 보통 4마르카(한화 2,800원)정도이다. 대표적인 음식은 콩요리인 그라하(Grah)로 우리의 된장찌개처럼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즐겨먹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 요리도 발달되어 있고, 종교적 특성에 따라 무슬림들과 정교도들이 선호하는 음식도 차이를 보인다.

 

 

 

 
 

 

 

 

일반 생활수준 및 교육
 

 

 

 

수도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의 한 달 4인기준 생활비는 대략적으로 집세와 각종 세금 및 부식비를 합쳐 약 1,080유로 정도이다.
보스니아의 교육수준은 거의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데 지금 보스니아의 실업률이 약 50%를 넘어서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도시마다 단과대학이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종합대학개념이 아니어서 각 도시의 특성화에 따라 단과대학이 위치하고 있다. 사라예보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사설 학원이 있지만 타도시는 개별 과외를 하는 현지인들을 통해서만 언어를 배울 수 있다.
학제는 9월초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6월부터 8월까지가 방학기간이다. 교육시스템은 공교육은 초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고등학교 과정은 각 산업학과가 있어서 자동차정비학과, 요리학과, 웨이터학과, 컴퓨터정보학과등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 되어있다. 일반 식당에서 웨이터를 하려면 고등학교에서 웨이터학과를 졸업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근무할 수 있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 및 경제

 

 

 

보스니아의 공식 수도는 사라예보이다.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면서 1992~1995년까지 3년간의 내전을 겪었고 각 민족별로 세 명의 대통령이 돌아가며 이끄는 중앙 정부로 1국가 2체제이다. 현재 국가수반은 지부코 부디미르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대통령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크로아티아계 출신의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연한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이슬람교도계 Bosniak/ 카톨릭계 Croat이 연합한 보스니아연방(Federacija)이고, 진한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정교회 세르비아계 지역인 스룹스카 공화국(Republika Spraska)으로 행정 구역이 나눠져 사라예보와 북부 바냐루카 두 도시에 각 청사를 두고 두 개의 정부가 운영되고 있다.(1국가 2체제)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이슬람과 정교회의 영향력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경제는 주로 목재 수출과 해외 친지 송금, 외국 원조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고, 전쟁 중 수많은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내전 후 지금까지 복구 과정에서 극심한 부정부패가 이어져 실업률이 50%(실제로는 60%)에 이르면서 매관 매직이 만연되어 있다.
1인당 GNP는 정확한 통계가 불가능하다는데 그만큼 현지로 송금해서 들어오는 돈을 추적해서 수치화 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다만 현재 추정치로는 1,000달러에서 많게는 4,000달러를 1인당 GNP 통계로 본다. 특히 아랍 국가들의 이슬람교도 원조가 내전이후 계속되고 있고 많은 오일머니가 흘러 들어오고 있다. 특별히 최근 들어 각 도시마다 경제 투자를 빌미로 터키 정부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사라예보의 구시가지는 거의 70%까지 이슬람화되어 터키식 생활과 많은 터키 이민자들이 그들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이슬람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사라예보 시내 호텔 레스토랑에서 술을 전혀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역사

 

 

 

6세기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7세기 이후 슬라브족이 대거 이주, 슬라브계의 크로아티아 왕국의 통치를 받았다. 9∼10세기경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후에도 줄곧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양자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보스니아 역사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이슬람터키인(투르크)이 발칸 반도로 밀려들면서부터였다. 15세기 전반 보스니아를 정복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이 지역의 세르비아 민족에게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강요하고 한편으로는 많은 무슬림을 이주시켰다. 오스만 제국의 압박과 생활상의 편의 및 실리도모를 위해 보스니아에 거주한 정교도들인 세르비아인 중 일부는 이 시기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이 때문에 훗날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가 혈통으로는 동일한 세르비아계 무슬림을 더 잔혹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보스니아는 별다른 문제없이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를 받았으나, 1878년 베를린 회의의 결정에 따라 지역전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리 하에 편입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의 사전양해를 얻어 보스니아를 합병하자 세르비아가 격렬히 반발했고, 당시의 삼국동맹-삼국협상의 경쟁 구도와 대립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결국 1914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제국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계 테러 조직인 검은 손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보스니아 지역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 왕국에 병합되었고, 이후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하게 된다. 그러나 민족적, 종교적으로 상이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결속력이 떨어졌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크로아티아계가 떨어져 나가 세계대전의 전쟁터가 되었다. 이 때 보스니아의 험악한 지형은 티토가 이끈 공산 게릴라가 활동하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독립 공화국으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편입되었고, 이 때 사라예보가 정식 수도로 정해졌다.
90년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공중분해, 연방을 이루고 있던 옆나라인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의 독립선언과 성공에 자극을 받아 국내 무슬림계 주민과 크로아티아계 주민이 협력하여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세르비아계가 격렬히 반발, 분리 독립반대 무장투쟁에 돌입하자 유고 연방의 종주국인 세르비아가 내전에 개입하였다.

 

 

 

 
 

 

 

 

보스니아 내전(1992년~1995년)

 

 

 

아무런 전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전쟁이 갑자기 발생하게 된 원인은 유고 연방군 및 세르비아 민병대에게 공격을 받던 크로아티아가 유고 연방군의 대공세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보스니아 내전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쟁초기 세르비아 민병대는 거의 양민학살급으로 무슬림계와 크로아티아계를 말살하였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는 인종청소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세르비아계 주민의 무장투쟁과 민간인 학살은 1945년 이후 약 반세기 만의 인종말살전쟁으로 비화되면서 국제적 파문을 일으켰지만, 별로 건질 것이 없는 보스니아 내전에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굼뜬 반응만을 보여주면서 비극은 확산되었다. 이는 국제사회가 인의도덕보다 냉정한 실리에 움직이는 세계라는 점을 너무나 극명히 보여주었다. 더욱이 '인도적'이라는 이름을 걸고 내전에 직접 개입해 병력은 파병하고 지나치게 '인도적'이라는 명분에 목을 매면서 중립을 지켜 사태악화에 일조하는 무능함까지 보여주었다.
내전은 보스니아 무슬림계, 크로아티아계가 연합해 세르비아계에 대항하는 구조였다. 아주 잠깐 크로아티아계가 무슬림계에 전쟁을 선포하기는 했으나 본국인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유고 연방군에 의한 폭격상황에 처해 있었던데다 세르비아계가 보스니아에서 보스니안무슬림계와 크로아티아계를 박멸하느냐 마느냐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세 화해하고 세르비아계에 대항했다.
그러나 NATO군이 직접 개입하기 전까지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유고 연방군에게 처절할 정도로 희생을 당해야 했다. 그나마 전멸당하지 않았던 이유는 UN평화유지군 및 NATO가 민간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한 것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어쩔 수 없이 NATO가 보스니안 무슬림계, 크로아티아계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한 이후다. 결국 갈등이 수습되지 않고 계속 커지자 보다 못한 미국이 나서서 무력중재에 돌입했다. 먼저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주요거점에 집중폭격을 가해 크로아티아계, 무슬림계가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유고 연방군에 반격을 할 수 있게 도와 전세를 바꾼 후, 러시아, 독일 등을 끼워 넣어 구색을 맞춘 UN의 조정을 거쳐 1995년 데이턴 협정에 따라 휴전 및 내전종식이 합의되었다.
이에 따라 보스니아계 무슬림의 공화국과 세르비아계의 스라브스카 공화국 등 2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 공화제가 국체(國體)로 선택되었으나, 옆 나라인 세르비아의 정치상황이 요동칠 때마다 보스니아 정국도 불안해졌다. 사실 데이턴 협정의 핵심내용은 '이 협정을 어길 경우 협정을 깨뜨린 쪽은 미국과 NATO가 철저하게 공격할 것이다'라는 협박이었다. 협정조인 자체가 미국에서,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분쟁 당사자들이 조인한 것이라서 그 후 충분히 내전이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내전이 재발하지 않고 국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민족적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고, 정치형태도 세 민족을 대표하는 3명의 대통령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정치의 수장을 맡고 있어서 정치적인 담합과 부정축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역사교과서에서도 민족간 교육내용에 따라 상대방 민족을 테러리스트로 가르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에 들어가는 세금이 과다하여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지나친 세무조사로 인한 착취로 허위장부를 작성하여 보고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다.
지난 2014년 2월에는 보스니아의 북동부에 위치한 투즐라시(市)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 시위는 수도 사라예보까지 확산되어서 시위대가 정부청사를 향해 투석을 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원인은 지나치게 높은 실업률로 인해서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거의 취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실업률 수치가 사실상 60%에 달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현재 보스니아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정체성의 문제이다. 한 나라안에 세 민족이 얽혀 있다보니 세르비아계 민족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르비아로 말하고 크로아티계는 크로아티아를 자신들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남부 모스타르로 가면서 도로 옆 가정집들에 크로아티아 국기가 걸려있는 것이 많이 보이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급진이슬람전사 무자헤딘(Mujahidin)과 ISIS의 회유와 포섭의 대상이 이곳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무슬림들을 타겟으로 하여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국BBC의 뉴스 리포팅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는데 이곳 보스니아의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갖고 무엇인가를 시도하기를 점점 기피하고 있다. 오직 현실적인 이익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서 종교적으로도 영적으로 젊은이들을 이끌어갈 힘을 잃고 있다.

 

 

 

 
 

 

 

 

보스니아인의 가치관(價値觀) 및 세계관(世界觀) 이해

 

 

 

보스니아인들의 가치관은 자신들의 민족성과 연결되어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조국에 대한 소속감의 결여와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내전을 통하여 몸으로 체득한 것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과 힘든 일이나 깊이 사고하고 고민하는 것을 기피한다.
그래서 깊은 사색에서 오는 자신의 영성을 갖는 것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성경공부와 제자양육을 하는 것은 정말 오랜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도 그들의 삶속에서 주님의 삶을 따르려는 노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50년이 넘는 공산주의 사고를 체득하면서 유물론적 사고와 물질만능주의가 그들에게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리고 민족간 내전으로 인한 상처와 증오가 불신을 낳았고 상대방을 깊이 신뢰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이 복음을 수용하는 것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스니아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통해서 형성된 자신들의 세계관이 변화와 혁신을 싫어하는 보수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문화 우월주의로 인하여 외국문화와 외국인을 배척하는 성향이 강하다. 다른 동유럽권과 비교하여 볼 때 조금 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이 사업을 하기에도 문화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차별과 규제를 받고 있고 복음을 전하기에도 영적으로 매우 척박한 곳이다. 최근 급진 이슬람과격주의자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보스니아정부의 강경한 정책으로 인해 외국인의 비자심사와 절차가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우리의 비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스니아민족의 삶은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영적으로도 황폐하며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세 민족간 분열과 증오로 깊은 내전의 상흔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어떠한 소망도 갖지 못하고 현실 안주에만 집착하는 영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하여 그리스도 사랑을 전할 수 있을지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보스니아민족의 가치관 및 세계관을 이해하면서 종교는 단지 하나의 삶의 방식일 뿐 실제적인 신념과 신앙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음의 수용성이 매우 약함을 깨닫게 된다. 이들에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를 간구하며 삶에 동기를 부여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 알의 밀알로 썩고자 한다.

 

 

 

 
 

 

 

 

기도 제목
 

 

 

 

1) 급진 이슬람과격주의자들과 ISIS의 타겟이 되는 보스니안 청년들을 지켜 주시고 점점 어려워지는 비자심사가 잘 통과되도록
 

 

 

 

2)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전국 각 도시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현지선교사님들이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사역하도록
 

 

 

 

3) 교회와 교인들이 구습을 따르지 않고 제자도의 삶을 능력있게 살아가도록
 

 

 

 

4)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국민을 대표하는 리더들이 정의를 추구하는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5) 전후에 민족간 반목이 더욱 심화되는 중에 주님의 통치로 화해와 통합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6) 우리 가정이 이 곳에서 화해자로 서며 늘 예배할 수 있도록
 

 

 

 

 
 

 

 

 

정리 및 보고 : 강요한 이은주 선교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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