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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Republic of The Gambia)

by PAUL posted Aug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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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 (Republic of The Gambia)

정혜영 선교사

 

감비아 소개

감비아(The Gambia)는 아프리카 서안에 있는 국가로서, 국가 공식 명은 감비아 공화국(Republic of the Gambia)이다. 대서양 연안과 접해 있는 감비아 강 하구를 제외하고는 세네갈에 둘러싸여 있다. 1965년 2월 18일에 영국 연방 자치령으로부터 독립했으며, 인종은 수단계 흑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다수를 이루며 공용어로서는 영어가 사용되고 있다. 농사가 주된 산업으로서 땅콩 재배가 전체 농사의 93% 이상을 차지하며 어업 및 건기 동안의 서비스업에 의존하고 있다. 지하자원은 빈약한 편으로 최근에 해안서 석유가 발견되었으나 매장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감비아는 주변국들과는 달리 내전이 없었던 나라로서 비교적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1. 일반 정보

1) 역사, 정치

감비아 지역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아랍 상인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고, 동시에 감비아가 이슬람화된 첫 시기도 1066년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초에 오늘날 감비아라고 불리는 대부분이 말리의 종속국이었다가 14세기 중엽에는 포르투갈에 의해 해안 지역이 지배를 받았다. 이후 1588년에 포르투갈 황제 안토니오(Antonio)는 영국 상인에게 감비아 강에서의 무역 독점권을 팔았고, 이 허가권은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17세기 말엽에서 18세기 동안 내내, 영국과 프랑스는 감비아 강과 세네갈 지역의 정치, 무역적인 패권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1783년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영국이 감비아 강 유역을 장악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국경이 형성되었다. 15세기 이후, 3세기 동안에 감비아 지역으로부터 3백만여 명의 노예들이 생겨났었고 이들은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예무역으로 거래되었다. 노예들의 대부분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에 의해 유럽 사람들에게 팔렸는데 종족 전쟁 등에 의해 생긴 포로들이거나, 빚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납치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 감비아는 소설 <뿌리>에 나오는 쿤타킨테의 고향으로 주프레 마을과 쿤타킨테 섬(James Island)은 유네스코(UNESCO) 지정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1906년 이후에 감비아에서 노예무역 제도가 폐지되었다.

1962년에 국회가 조직되어 임시로 운영되었으며 이후 1965년 2월 18일 독립하였고, 독립할 당시의 수상이었던 다우다 자와라(Dawda Jawara)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70년 4월 24일 영국 연방에 속한 공화국이 되었고 다우다 대통령은 1994년까지 재임하였다. 1981년 쿠데타가 있었는데 세네갈의 개입으로 실패하였으나, 이는 1982년 감비아와 세네갈이 세네감비아 연방을 결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세네감비아는 1989년 해체되어 세네갈과 감비아로 다시 분리되었다. 이후 1994년에 쿠데타를 주도한 야히야 자메(Yahya Jammeh)가 집권하였고, 1997년 선거를 통해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야히야 자메 대통령은 2016년 6월 현재까지도 장기 집권하고 있으며 2016년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감비아는 공화국 제로서 대통령제에 기초한 의회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15년 12월 정부는 감비아를 ‘이슬람 국가’로 정식 선포하였으나 현재까지는 입법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2) 사회 환경 및 경제

감비아의 인구는 196만여 명(2013년 통계)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평균 연령이 19.7세이고 평균 수명은 63.82세로 통계 되어 있다. 인구 증가율은 2.34%를 나타낸다. 주요 종족으로는 만딩고, 월러프, 졸라, 풀라 등의 4개 부족이 주 종족이며 24개의 소수 종족이 분포되어 살고 있다. 인구의 40% 이상이 만딩고이며 이들의 99%는 이슬람교도들이다. 또한, 인구의 80~90% 정도가 만딩고를 사용하고 있으며 도시 상업어로서는 월러프가 사용된다. 영어는 공식 언어로서 학교, 기관 및 관공서 등에서 사용되며 최근 청년들을 상대로 더욱 확대되어 가는 추세이다. 행정구역은 도시 1개 지역과 지방 5개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고온 다습한 우기(7~10월)와 고온 건조한 건기(11~6월)로 구분된다.

 

감비아는 시장경제 체제로서 주요 산업은 농업과 서비스업이다. 전체 노동 인구의 약 7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체 GDP(Gross Domestic Product:국내총생산)의 29%를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농업은 땅콩과 쌀이 주산물이며 수출품이다. 서비스업은 주로 관광업으로서 유럽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한다. 또한, 부존 산업으로는 어업과 수산업 및 임업이 있다. 감비아의 상업 영역은 주로 레바논 사람들이 잡고 있는데 최근에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이 상업 영역에서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건설업과 생필품에 주력하고 있다. 감비아의 화폐단위는 달라시(Dalasi)로 1달러 대비 43달라시이다.

 

3) 문화

감비아 문화는 아프리카 문화적 토양에 이슬람의 문화가 융합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감비아인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문화는 인사이다. 인사 방법은 찾아온 손님이나 인사를 건네는 쪽이 먼저 손을 내밀며 ‘살람 알레이꿈’하면, ‘알레이꿈 살람’이라 말하며 인사를 받는다. 인사문화는 이슬람의 문화와는 조금 다른 편이지만, 여자들의 경우에는 여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지양하는데 이는 여자가 주도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악수는 보통 동성끼리 주고받는 인사법으로 반가우면 손이나 팔을 만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어른을 대할 때의 인사는 예의와 격식을 차려 인사해야 한다. 감비아에서 여자들이 바지를 입는 것을 금기시했었는데 이는, 바지는 창녀들이 입었던 것으로 그들의 직업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인식되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바지를 입은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감비아 여성들은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를 입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감비아인들은 격식 있게 차려입는 것을 좋아하며 옷이나 외모를 통해 자신들을 나타내려 하는 경향이 있다. 감비아인이 외국인에 대해 가지는 시선과 태도는 외견상 호의적이다. 특별히 유럽 사람들이나 백인들과는 친구가 되길 원한다.

동양인에 대한 인식은 때로는 호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감비안 특히나 만딩고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감비아에서의 금기사항들은 인종에 대한 발언, 이슬람에 대한 비판 발언 등이 있다.

감비아인들은 다른 서아프리카 나라 사람들에 비해 유순한 편에 속한다. 이러한 성향은 서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겪은 종족 간의 갈등 및 내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20여 년 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는 현 대통령의 영향도 있다. 현 대통령이 20여 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고 있어 외견상 나라가 안전하며 안정적이고 질서가 있다.

 

2. 종교

1) 종교현황

감비아의 종교 분포는 이슬람교 94%, 기독교 3%(0.9%), 토속신앙 3%로 나타나며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의 성향은 온순한 편이다. 감비아는 사회, 문화적으로 그리고 2015년 12월 이후로는 정치적으로도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이슬람 국가로 선포한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국가들로부터의 원조에 기인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감비아에는 많은 모스크가 있으며 지역마다 수많은 기도처가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 국가로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식 기념일을 모두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슬람의 명절은 라마단과 라마단이 끝나는 꼬리떼와 희생절인 토바스키가 있다. 기독교의 명절은 부활절, 예수 승천일, 성탄절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명절은 국경일이다.

 

감비아의 이슬람 역사는 9~10C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랍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이 처음으로 전해졌다. 이후 14C에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만딩고족은 모리타니아의 무슬림으로서 이들은 14C에 한 손에 코란과 한 손에 칼을 들고 호전적인 포교 활동을 펼쳤다. 많은 종족이 처음에는 이슬람교를 거부함으로써 손가락이나 발가락 및 신체 일부가 잘려나갔다. 이후에 많은 종족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는데 가장 극심하게 반대했던 졸라 부족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극심한 핍박으로 인해 졸라 부족은 이슬람으로의 집단 개종은 물론 종족까지 만딩고로 바꾸었다. 그 결과로 현재 감비아는 만딩고가 가장 많은 인구 분포를 가지고 있다.

 

감비아인들의 이슬람은 민속 이슬람적 성향이 강하며 현세적 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근본 이슬람처럼 히잡을 두르거나 펀잡을 입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슬람 성향에 따라 의복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슬람보다 토속 신앙적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족들도 있는데, 졸라 종족이 가장 대표적이다. 감비아인들에게는 종교성이 많고 종교 이야기에 흥미와 관심이 있어서 복음을 듣지만, 자신의 종교를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종교는 곧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종교를 떠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감비아의 가톨릭은 포르투갈을 통해 들어왔고, 영국 식민지 중에는 영국 성공회와 감리교가 그리고 최근에는 개신교 선교가 진행 중이다.

감비아 교회의 특징은 훈련된 성직자가 적다는 것과 교회에 십자가가 없다는 것이다.

 

2) 기독교 선교 상황

로만 가톨릭을 포함하여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3%에 해당한다. 영국 성공회와 감리교 및 로만 가톨릭의 선교는 영국 식민지 시대와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1962년의 국회 조직과 함께 기독교 미션 조직(Christian Mission Council)이 국회의 한 부분으로 조직되었지만, 현재는 그 역할이 미비하고 개신교의 허입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현재 감비아는 선교사 비자를 내주지 않는 국가이다. 하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선교활동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선교단체는 NGO로 등록되어 있다. 즉, 선교사들을 통해서 사회의 필요들을 충족하고자 하는데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NGO로 등록할 경우,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감비아를 철수할 경우 NGO로 등록되어 있던 공적 재산은 현지인 또는 정부에게 양도해야 한다.

 

감비아에서 선교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행정적으로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는 없다. 왜냐하면, 선교사 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감비아에 있는 선교사는 총 80여 명 미만으로 서양 선교사들은 영국 감리교 선교사가 일부 있고, 예수전도단 및 북아메리카의 선교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Abe Mission의 선교사들이 있고 WEC이 있다. 최근에 30여 년의 선교를 접고 감비아를 떠난 미국 남 침례교 선교사들도 있다. 또한, 제3세계권 선교사로는 브라질 선교사 1가정과 나이지리아에서 케냐, 가나, 나이지리아인 등으로 조직된 갈보리 미션 소속의 선교사가 12여 명이 있다. 그리고 WEC에 소속되어 있는 선교사들을 포함하여 한국 선교사 14가정이 있다.

 

감비아에서의 선교사역은 의료, 교육, 농업 및 기술과 연계한 교회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슬람의 배경에서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고 성급하게 열매를 보려는 선교 사역은 지양되어야 한다. 미취학 연령부터 시작하는 교육은 대학까지의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역으로서 오랜 시간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기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슬람과 아프리카의 문화로 인해 스승에 대한 권위가 높기에 교육의 장 안에서 복음의 접촉점이 가능하다.

감비아에서의 가장 큰 복음의 장애요인은 그들의

종교를 포함한 문화이다. 기독교로 개종한다 해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다시금 자신의 이슬람 사회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는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얼마나 강한 제자로 양육하느냐 하는 것에 선교의 초점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감비아에서의 성경 보급과 기독교 문서에 대한 보급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일단은 수요가 많지 않고 부족어로 기록된 성경과 기독교 자료보다는 영어로 기록된 것을 더욱 선호한다. 감비아 성서공회가 있고 수십 년간 부족어 번역을 통해 성경책을 완성해도 읽지 않으려는 문제가 있다. 부족 어 성경으로는 만딩고와 졸라 신약본이 있다.

 

3) 감비아 교회의 현황과 선교 과제

감비아는 이슬람 국가이며 인구의 90%가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중심으로 교회들이 존재한다. 수도인 반줄과 해안지역을 중심으로는 성당과 성공회 및 감리교회들이 있고, 현재 가장 큰 번화가인 콤보 지역에는 여러 교회가 있다. 콤보 지역에는 규모가 큰 교회들이 여러 개 있는데, 구성원들은 대부분 주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온 이주민들이고 감비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교회를 다니는 감비아인들은 소수 종족들이며 주 종족 중에서는 졸라와 풀라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월러프와 만딩고는 교회에서 만나기 어렵다.

 

감비아 교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훈련된 교사의 부족과 교육받은 신학생 및 목회자의 부족을 들 수 있다. 감비아에서 선교역사가 오래된 WEC(50년)이 최근 신학교 프로젝트를 가지고 준비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지는 않다. 사람을 훈련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지만, 고무적인 것은 주요 부족 중심으로 현지인 복음전도자들이 생겨난다는 것과 선교를 위한 컴퍼런스 등의 모임 등이 있다는 것이다.

감비아 교회의 선교 과제 중 중요한 것은 문화, 종교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아프리카적 토양을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이라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형식적이고 가시적인 이슬람의 요소를 삶의 영역 안에서 깨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감비아 문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슬람과 아프리카 문화 안에서 형성된 거짓과 음란의 문화를 복음을 통해 어떻게 회개와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기독교 문화 안으로 끌어안아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다. 지금 감비아에서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문맹 교육에서 시작해 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및 정식학교까지의 다양한 선교적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선교사의 무덤’이라 불렸던 서아프리카는 다른 아프리카 지역보다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서 가시적 선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지역은 아니다. 그리고 감비아는 서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작은 영토와 인구 및 자원과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있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선교사들이 있다. 무더운 날씨와 뜨거운 태양 그리고 말라리아 등의 질병 및 완고한 이슬람이 늘 눈에 보이지만, 이 땅을 사랑하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고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이 분명 존재하는 곳이다. 억눌린 이 땅의 영혼들을 사랑하며 돌보고 주님께로 이끌어 갈 믿음의 사람을 주님은 오늘도 찾고 계시며 부르고 계신다. 그 부르심이 들리지 않는가?

 

3. 기도제목

1) 감비아의 모든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넘쳐나며 특별히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2) 감비아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욱 많이 보내주시고 감비아 땅에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자들이 계속 늘어날 수 있도록

3) 감비아와 감비아 영혼들을 사랑하는 현지인 지도자들이 더욱 생겨날 수 있도록

4) 감비아 교회가 주님의 말씀으로 더욱 굳건해지며 삶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정리 및 보고

정혜영 선교사

(감비아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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