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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Republic of Romania)

by PAUL posted Ap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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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소개
루마니아 Republic of Romania
박만순 선교사


1. 개관

루마니아는 유럽 중앙에서부터 동유럽에 걸쳐 남쪽으로는 다뉴브(Danube)강 하류와 서쪽으로 카르페티아 산맥(Carpathian arch)과 흑해(Black Sea)를 경계로 하고 있다. 서쪽으로 헝가리, 세르비아와 국경을 접하며 동쪽에 몰도바,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불가리아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어 유럽 대륙과 중앙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면적이 234,391㎢인 루마니아는 북위 43°에서 49°, 동경 20°에서 30°의 범위에 속하며 동남부 유럽에서 가장 큰 국가이며 유럽에서는 12번째로 큰 국가이다. 남, 북한을 합친 한반도(228,943㎢) 영토보다 조금 크고 위도가 비슷하여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와 매우 흡사하다.


루마니아 기본 정보

  • 국명: 루마니아 (Romania, România) 
  • 수도: 부카레스트 (Bucharest, București)
  • 인구: 19,512,225명(2019년 3월 UN예측) 
  • 언어: 루마니아 어(română)
  • 민족: 루마니아인 88.9%, 헝가리인 6.5%, 로미(집시) 3.3%, 우크라이나인 0.2%, 독일인 0.2%(2011년 통계조사)
  • 종교: 루마니아 정교 81%, 가톨릭 4.3%, 개신교 5.4%, 안식일교 0.4%, 무교, 기타 2%(2011년 통계조사)
  • GDP: 12,668 USD(2019년 예측)
  • 통화: 레우(Romanian Leu, RON)

 

1) 역사
고대 루마니아 민족은 다치아인(Indo-European Geto-Dacians)이라고 하며 기원전 2세기의 트라키아계 에서 나왔다. 기원전 6~7세기에 헬라인들이 흑해 주변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에 고대 Histria, Tomis, Callatis 도시를 세웠는데 바로 그 지역이 루마니아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다치아인들이 살았던 지역이었다. 그 후 로마가 강성해져서 헬라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 다치아는 첫 통일국가를 세웠다. 루마니아인(루마니아어:로믄, român)이라는 말은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 Roma의 라틴어 표기로 로마누스(romanus)에서 유래되었다. 106년 다치아(Dacia) 왕국이 로마의 속주(州)로 병합된 이후, 다치아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민들은 카라칼(Caracalla) 황제가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212년에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계속되는 이주 민족들의 침입으로 271년 로마 제국의 군대와 행정부가 다치아에서 철수하였고 그 이후에 다치아에 정착하고 있던 로마인과 다치아인들의 혼합 민족이 되어 로마인(român)이 되었다. 따라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로마에서 기원하였다고 믿고 있다. 로마의 시조라고 알려진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 레무스 동상을 루마니아 시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세 루마니아는 Wallachia, Moldavia, Transylvania로 3분할 된 정교회 국가였고 15세기 이전까지 합스부르그 왕조 헝가리 왕의 지배를 받았다. 1861년 오스만 제국에 지배받던 Wallachia, Moldavia 공국이 합병하여 처음 루마니아 공국이 되었고 20년 후인 1881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독일계 합스브르그 왕 카롤 1세가 즉위하였다. 1848년 루마니아는 오스만 제국, 러시아 그리고 합스브르그 왕가로부터 처음 왕위를 회복하였으나 여전히 유럽 열강의 주도 아래 루마니아 군주를 선출하였다. 결국 군주로 선출된 알렉산드루 요안 쿠자는 1866년 자주적 국가로서의 독립을 쟁취하고 수도를 현재의 부쿠레슈티(Bucharest)에 세운다.
세계 1차대전 이후 소련과 나치 독일은 동유럽을 함께 분할하기로 하는 레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는다. 이 의정서에 의해 북부 루마니아는 소련의 통치에 들어가게 되고 1941년 소련 점령지역을 반환받기 위해 독일 나치와 연합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으나 결국 1944년 루마니아는 소련군에 점령되어 소련 군정에 들어간다.
1945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내각이 조직되고 다음 해 총선거에서 공산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소련군에 의해 최후의 국왕 미하이 1세가 폐위, 군주제를 폐지하고 1948년 공산주의 국가인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소련 공산당은 니콜라에 챠유체스쿠를 내세워 공산 독재 정권을 수립한다. 그의 정치는 국민을 도청과 친위대로 감시하고 억압하는 철권통치였다. 결국 챠우체스쿠의 개인 우상화 독재에 반발해 1989년 12월 "피의 혁명"이 일어났고 공산 정권은 무너졌다. 1990년 자유 총선거로 새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2007년 루마니아는 유럽 연합(European Union)에 가입하였다.


2) 문화
루마니아 문화는 서유럽 문화와 라틴 문화 그리고 고대 다치아 문화 등 다양한 곳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서유럽과 동유럽을 연결하는 문화의 경유지로서 동, 서유럽의 다양하고 문화유산이 역사와 함께 보존되어 있다. 루마니아 문화는 550년간의 열강의 식민통치로 슬라브 문화와 라틴 문화, 합스부르크의 서구 문화 그리고 터키 문화가 혼합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언어가 그 문화의 절반 이상을 말해주듯이 라틴 문화이다. 슬라브 문화가 주류인 동유럽 국가 중 유일한 라틴 문화인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문화의 섬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라틴 문화 위에 동방정교회 문화가 성립되었다. 루마니아 정교회는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세력과의 긴 전쟁에서 생겨난 저항정신에서 비롯되었다. 한편 오스만 터키의 진출은 루마니아에 터키적인 문화를 심어 놓았다. 그들의 점령은 언어학적,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 주로 동부 지역에 이 문화적인 잔재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루마니아 서부지역은 헝가리, 독일계 합스부르그 왕조의 지배와 독일계 이주민의 영향으로 서구화된 문화를 가지게 된다. 나라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 헬라 유적, 로마의 유적에서부터 합스부르그 왕조의 중세 유럽, 오스만 제국의 다양한 문화적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정교회 문화는 루마니아인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문화이다. 루마니아인은 정교회 교회력(曆)을 지키며 살고 있으며 성탄절과 부활절은 가장 큰 교회 절기로 일주일의 휴일을 갖는다. 거의 모든 도시와 마을 중앙에 정교회 교회가 자리 잡고 있으며 길을 지나치다가 교회 십자가를 보게 되면 루마니아인들은 성호를 표한다.

 

터키 문화는 음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루마니아인들이 명절에 먹는 '사르말레(saremale)'라는 절인 양배추나 포도나무 잎에 고기와 쌀을 말아서 먹는 전통음식이지만 사실은 터키에서 유입되었다. 이름도 sarmak 이라는 '말다'라는 터키어에서 유래하였다. 차(tea)를 뜻하는 차이(ceai)와 국(soup)을 뜻하는 쵸르바(ciorba) 역시 각각 발음이 같은 터키어 çay와 çorba에서 유래되었다.
루마니아만 동유럽에서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루마니아어의 단어의 75% 라틴어 어원으로 로망스(Romance) 어족인 이탈리아어와 약 77%의 어휘 유사성을 갖는다. 루마니아가 EU 가입 후 많은 사람이 라틴어 계열의 언어를 사용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이주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루마니아인들은 시를 읽고 낭독하는 것을 좋아한다. 교회 예배 때에도 시를 낭독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3) 종교
루마니아는 종교성이 매우 강한 국가이다. 약 80% 이상의 인구가 정교회 신자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교회에 성실히 참석하고 있는 신자로 볼 수는 없다. 열정적인 정교회 신자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신앙생활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이며 결혼식, 장례식, 부활절, 크리스마스에만 교회에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오랫동안 루마니아를 관장하던 정교회 영향으로 다른 EU 국가에 비해서 국민들이 종교성이 강하고 보수적인 편이다. 2011년 루마니아인의 종교는 루마니아 정교 81%, 로마가톨릭 4.3%, 개신교 5.4%, 그리스정교 0.7%, 제칠일 안식일교 0.4%, 무교 0.2%, 기타 1.8%, 무응답 6.2%로 조사된 바 있다. 이때, 무슬림은 64,337명으로 통계 되었으며, 터키와 마주하는 흑해 주변의 루마니아 남동부 지역에 터키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작은 무슬림 마을도 있다.

 

루마니아의 정교회는 공식적인 국교로 인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국가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볼 때 거의 국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루마니아 정교회 신부의 경우 정부에서 60%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있으며 정부 기관에 정교회 신부들이 고용되어 있어서 사목 활동 이외에도 국가 정책의 감사 업무를 하고 있다.


4) 경제
루마니아는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던 농업 국가였다. 그러나 1945년 소련의 지배 아래 농지 개혁을 실시하여 집단 농업화 되었고 대부분의 농지가 협동조합에 흡수되었다. 2년 후 독재자 챠우체스쿠에 의해 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농지가 국유화되는 한편 전략적으로 공업화를 추구하면서 농업의 쇠퇴를 겪었다. 그 후 민주화를 이룬 1991년 토지가 전 소유자에게 돌아갔으나 국가 전체 농지의 규모에 비하면 루마니아 농업은 다시 부흥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루마니아 내 철광석과 소량의 원유가 생산되고 있으며 몇 개 도시에 정유 시설이 있다. 그 외 기계 산업, 시멘트 및 제재 공공은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뚜렷한 국가 역량 산업은 없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혁명 후 유럽경제공동체(EC)의 경제 원조가 시작되고 경제 개방으로 문호를 확대하였으나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불안정이 오래 지속되었다. 1998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세를 면치 못하다가 점차 회복되면서 2,000년에 1.6% 성장을 보이고 2004년 8%의 큰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2007년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경제 부흥의 꿈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러나 전망과 달리 유럽연합 가입 후 수년 동안 경제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2012년 0.6% 경제 성장률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루마니아 경제는 장기적인 회복세에 있다. 2016년 루마니아는 5.2%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였고 , 2017년에는 7%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2019년 경제성장률은 예년 대비 조금 하락할 것이지만 여전히 좋은 경제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루마니아 경제는 1차, 2차 산업이 활발하지 못하고 3차 서비스업에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경제 규모와 경제 성장에 비해 매우 낮은 임금은 높은 임금 상승률을 기록함에도 충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비교적 임금이 높고 노동시장이 개방된 주변 EU 국가에 많은 루마니아인이 진출하여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루마니아에 유로화가 유입되고 있다.


5) 사회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라틴계 민족인 루마니아인은 유난히 강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강한 민족의식은 산지, 임야, 평야, 바다와 같은 균형 있는 지형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되도록 모든 생산물을 자급자족하는 소비성향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루마니아인들은 소박하면서도 성격은 밝고 쾌활한 편이며 이러한 기질은 발칸 제국들의 향락 성향과 라틴계 특유의 낙천성에 기인하고 있다.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은 학력, 외모, 상호이해의 순이며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의 경우 20~24세, 여자의 경우 20세 이하로 한국보다는 조혼이며 이혼율도 20.2%로 높은 편이다. 대부분 자녀는 2명이 일반적이나 예외적으로 다산의 가족도 있는데 부모와 같이 혹은 별거를 하는 것이 반반 정도이다. 소득수준이 낮아 전통적으로 맞벌이가 생활화되어 있어 전체 노동력 중 비율은 남자가 57.4%, 여자가 42.8%를 점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치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고 우범 지역이나 여행 제한 구역 등 특별히 위험한 지역은 없다. 그러나 수도 부쿠레슈티와 흑해 항구도시인 콘스탄짜는 다른 도시에 비해 위험지역으로 구분될 수는 있다. 테러 및 극악 범죄 단체 등에 대한 구체적 자료는 미비한 편이다. 테러 및 살인 등 강력 범죄 행위는 거의 없는 편이나 최근 러시아 마피아 등의 범죄조직과 연결된 단체 조직이 있다.

 

루마니아는 충실한 사회보장제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비교적 건실한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나, 의료기술은 서유럽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 사회 복지제도로는 국민의료보험을 통해 무상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실업 수당, 질병 수당, 출산 수당, 산재 수당, 가족 수당, 노령 수당, 장애자 연금, 산재 장애자 연금, 유족연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루마니아 내 가장 큰 사회 문제는 사회적 편견과 인종 차별 그리고 쉽게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집시 문제라 할 수 있다. 집시는 인도 북부지역에서 기원한 코카서스 인종의 한 집단으로 계속적인 이주를 통해 인도를 떠나 11세기에는 페르시아에, 14세기 초에는 유럽 남동부에,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유럽에 거주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시의 전체 인구를 추산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나 전 세계적으로 약 2000만~3000만 명에 달하고 루마니아에는 30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차대전 당시 나찌의 이른바 "집시 청소"라는 집시 대학살로 인해 많은 집시가 서유럽에서부터 동유럽으로 유입되었다. 이어 루마니아의 공산 정권 시절, 선전 정치의 일환으로 집시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이 시행되자 수많은 집시가 루마니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프로그램 없이 받아들여진 집시들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당시 군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각 지방에 버려져 이주하게 되었다. 그 후 이들은 생존을 위한 범죄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편견을 받고, 차별받으면서 점점 고립되어 갔다. 민주화 이후 더욱더 근본적으로 다른 루마니아 민족과 전혀 융화되지 못한 채 엄청난 천시를 받는 민족이 되었다. 이들은 루마니아 시민권이 있는 루마니아 국민이면서도 루마니아인이라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를 로미(romi)라고 부르고, 천민처럼 불릴 때는 찌간(țigan)으로 불린다.

 

극도로 빈곤한 환경에 사는 집시들은 취업의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으며, 10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하는 조혼의 나쁜 관습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부모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자녀를 범죄 조직에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린 소년, 소녀들은 구걸이나 소매치기를 무감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빈곤의 경제는 집시 지역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에 보내진 어린이들은 범죄자로 길러지기도 하고 소년범으로 경찰에 체포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매춘부가 되기도 한다. 루마니아의 인신매매 근절 기관에서는 집시 미성년자들의 범죄 건수가 2009년에 176건, 2010년에는 307건으로 1년 동안 거의 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 하지만 집시 중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시의 왕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2. 기독교 선교

1) 개신교 역사
루마니아 정교회 전승에 의하면 사도 안드레가 AD. 2세기경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뉴브강 하류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실의 신빙성은 당시 다뉴브강 하류 지역에 최초 루마니아인들의 조상인 다치아인들의 도시들이 발굴됨으로 알 수 있다. 사도 안드레가 전한 복음은 라틴어로 다뉴브강 북쪽에 전파되었고 4세기에 첫 라틴 주교좌(cathedra) 가 루마니아에 생긴다. 따라서 9세기 슬라브 성향의 동방 정교회가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라틴어로 복음이 전해졌고 또한 라틴 주교좌(cathedra)까지 설치되었기 때문에 라틴어 예전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루마니아인들은 사도로부터 직접 복음을 전승받았다는 자부심과 함께 정교회 신앙을 고수하고 있다. 루마니아 정교회는 1054년 로마와 비잔틴으로부터 독립하였다. 9~10세기에 로마 가톨릭도 전해지기 시작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 가톨릭(Eastern-rite Cathoric Church)으로 있다가 1750년 루마니아 정교회로 귀속되었다.

 

1919년 처음 침례교 선교사가 와서 개신교 복음이 전해지고 1942년 교단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1944년 공산당의 집권으로 심각한 위험에 빠졌었다. 1989년 혁명 후 루마니아 서부 트란슬바니아 지방에 한 해 동안 200여개의 침례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는 침례교 교단은 침례교 연합(Baptist Union)과 독립 침례교(Independent Baptist)가 있다. 오순절 교단은 1920년경 루마니아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다. 1950년에 공식적으로 교단으로 인정되었다. 루마니아 북부 지방에 오순절 운동이 활발히 퍼지면서 인구의 2%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수체아바 지방에는 인구의 7%가 오순절 교인이 되었다. 이 지역은 문화, 관광 지역으로 공산주의 정권 시절에도 서구 선교사들이 관광객으로 쉽게 방문할 수 있었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차 세계 대전 후에 두 그룹의 형제교(Brethren, Crestin dupa Evaghelie)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스위스 형제단"으로 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가족적인 경향이 강해서 씨족 공동체적인 루마니아 동부 몰도바 지방에서 잘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두 그룹이 존재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형제교단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두 번째 형제교단은 유아세례를 인정하는 것으로 구분 짓고 있다. 하지만 교단으로서 독립한 것은 혁명 후 최근의 일이다. 정확한 전파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70여년으로 알려진다.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모두 한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89년 혁명 후 세워졌다. 정식 교단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종교 법인체로 등록되어 있다.


2) 선교 현황
루마니아는 전체 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복음주의 교회의 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소수의 나라 중 하나이다. 사실 복음주의 교회만 다른 주요 종교 사이에서 성장하고 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영국,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선교사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선교사가 파송되어 지속적인 교회 개척이 이루어져 약 6,000개의 복음주의 교회가 세워진 바 있다.

 

<표 2 루마니아 기독교 현황>

 

교단 수

비율

교인 수

성장률

개신교

24

6.64%

14,060,000명

0.3%

독립교단

21

0.82%

173,000명

2.0%

앵글리칸

1

0.01%

1,000명

1.3%

가톨릭

2

5.28%

1,118,000명

-0.9%

정교회

9

87.14

18,464,000명

-0.4%

기타

3

0.08%

169,000명

0.8%

이중등록

            

-3.72%

-789,000명

0.0%

2010년 Operation World 보고에 의하면 루마니아 복음주의 교회는 5.4%로 조사되었고 2.3%의 년 성장률을 보였다. 기독교인의 세부 비율과 교인 성장률 은 표2와 같다. 현재 루마니아 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교단은 오순절 교회와 침례교 교단이다. 그 외 형제단 교회와 구세군 및 독립 교단의 교회들이 있다. 한편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제칠일 안식일교 등 이단들의 활동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간혹 한국의 이단들도 한국 문화를 도구로 루마니아 내에서의 이단 선교활동이 감지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복음주의 교회는 루마니아 전반에 골고루 세워지지 못하고 몇 도시에 집중된 경향을 보인다. 서유럽 교회의 접근과 원조가 용이한 루마니아 서북부 지역에는 개신교 교회의 성장이 뚜렷하고 여러 대형 교회가 있는 반면 동남쪽 지역의 약 7,000여 개 마을은 여전히 개신교 교회가 전혀 없다.
루마니아 집시 커뮤니티 내의 개신교 활동도 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사회적 차별로 고립돼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독특한 응집력을 지니고 있다.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외국의 선교사에 의해 루마니아에 교회가 세워질 때 가장 크게 반응하였던 사람들이 로미(집시)들이었지만 사실은 서방 교회의 원조와 물질적 도움 때문이었다. 간혹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작은 마을 단위에서의 이단 교회 활동이 감지되고 있다.

 

루마니아 방송, 미디어 사역은 활발한 편이다. 방송 허가 취득이 쉽지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사역은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Voice of the Gospel이 FM 라디오에서, Alfa Omega TV, Credo 등 텔레비전 방송으로 사역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제칠일안식일교 방송, 정교회 방송 사이에서 올바른 채널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다.


3) 선교적 과제
루마니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 사도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고 전승해 온 종교적 자부심과 민족주의적 정교회 신념이 강할 뿐 아니라 종교성인 높은 민족이다. 개신교를 포함하여 자신이 기독교인(Christian)이라고 응답하는 사람은 어느 조사에도 96%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 중 신실한 정교회 신앙을 갖은 사람들에 비해 신앙생활을 거의 하지 않는 문화적 정교회 교인이 월등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지는 루마니아 정교회 역사와 종교적 자부심 때문에 루마니아의 개신교(neo-Protestant)를 이단시 여긴다는 점은 늘 개신교 선교의 어려움이 되어 왔다. 루마니아 국민은 사후에 묘지에 안장되기 위해서는 정교회 신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정교회 신부가 자신이 개신교 교인인 이유로 사후에 원하는 곳에 안치되지 못하고 아주 멀리 사람이 잘 모르는 묘지에 묻히게 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루마니아 사회에서의 정교회 영향력은 국민의 삶에 밀접히 닿아 있어 개신교 세례를 받고 개신교 교인이 되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다. 초등교육에는 의무적으로 종교 수업을 받아야 한다. 다른 종교를 갖지 않은 대부분의 루마니아 초등학생은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서 정교회 교육을 받는다.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은 자신의 종교 행사 및 예배에 참석했다는 증명서를 받아가면 정교회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형성된 주류 정교회 문화에 위축된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개신교 교인의 전도 활동과 선교 활동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물질주의는 기독교 선교에 오랫동안 큰 독소가 되어왔다. 공산정권 붕괴 이후로 물질적 필요에 민감했던 루마니아인들은 서방 교회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서방 교회의 막대한 자본 원조의 모양새를 갖춘 사역은 지역 교회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고 외부 자본 의존도를 높여 건강한 신앙의 토양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루마니아에서는 여전히 참가비가 있는 컨퍼런스, 세미나, 수련회는 거의 외면 받고 있으며 오히려 이단들이 제공하는 무료 세미나에도 가난한 교단, 교회들은 거리낌 없이 반응하고 있다.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건강한 신앙의 환경에서 교회가 성장하도록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집시들이 루마니아 주류 문화와 정교회 문화와 밀접하지 않은 점은 집시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편견과 멸시를 받던 이들은 콧대 높은 백인 루마니아인들 보다 복음에 쉽게 반응한다. 하지만 집시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리더십의 개발이 크게 요구된다.

 

루마니아 내 선교사들에 의한 교회 설립은 더 이상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질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교회에 참석하는 시대는 오래전에 끝나 이제는 어느 정도 풍요를 누리는 정통 기독교인 유럽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선교단체들도 교회와의 협력 사역을 개발하거나 사회 운동 및 지역 개발, 문화 등에서 접촉점을 찾고 있다.

 

한편, 루마니아는 개신교는 오랫동안 여러 교단과의 연합이 절실히 요구되어 왔으나 큰 결실을 이루지 못하였다. 루마니아의 양대 교단인 오순절 교단과 침례 교단은 서로의 사역에 무관심하고 연합 사역에 큰 관심이 없다. 게다가 같은 교단, 교회 안에서도 루마니아인, 헝가리인, 집시 등 각 민족 그룹 간에도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연합하도록 돕는 역할은 다른 나라에서 파송되어 루마니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것이다.

 

안타깝게도 루마니아 교회는 어린이 청소년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전도에 대한 관심은 차치하더라도 어린이 성경 공부 교제와 신앙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 미비한 실정에 있다. 이것은 비용의 문제일 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청소년의 꿈이라는 것은 고작 주변 서유럽 나라에 가서 돈 버는 것이고 희망이 없는 루마니아를 탈출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신앙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3. 루마니아를 위한 기도제목

  1. 국가 전체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사라지도록
  2. 루마니아 교단, 교회가 성령 안에서 연합 운동이 이루어지고 하나가 되어 성장하도록
  3. 교회와 선교단체들의 활발한 협력이 이루어져 전도에 진전을 이루도록
  4. 루마니아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개신교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도록
  5. 루마니아 교회가 물질주의에서 벗어나고 이단에 대한 영적 분별력을 갖추도록
  6.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콘스탄짜(현재 사역 중) 지역에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도록
  7. 부모 중 한 명의 해외 노동으로 인한 이혼, 편 부모, 결손 가정이 빈번한 루마니아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고 상처받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치유되도록

 

정리 및 보고
박만순 선교사
루마니아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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