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호[07.01∼02월]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by admin posted Jan 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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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 하나이다” 소리 지르며 분노하는 한 선지자는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 하냐”(욘 4:9)는 하나님의 온유한 질문에 신경질적인 답변을 서슴없이 내 뱉는다. 요나는 화풀이를 발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대들었다. 날씨는 화롯불처럼 뜨거운데 무슨 오기로 나무를 벌레로 갉아 먹게 하여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이 나은”(욘 4:8) 푸대접을 받느냐는 거의 발광적 수준이다. 메마른 의무에만 묶인 참담한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답변을 들려주셨다.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 하냐”(욘 4:10,11). 자기가 전도해서 40일이면 멸망될 생명들이 구원 얻은 아슬아슬한 열매들인데도 자기편 자기 족이 아니라는 편협한 애국심 때문에 미움을 버리지 못하고 반대편은 모두 죽어야 한다는 증오가 밑바닥에 깔린 것이다. 포악한 적들까지도 품고 사랑하신다는 창조자 하나님의 깊은 뜻을 가련한 선지자는 전혀 몰랐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은 불편한 몇 가지를 높이 들고 성질 낼 자격을 충분히 가진 것처럼 꼿꼿한 반응만 보였다. 자신의 실수는 전혀 계산하기 싫어하는 가증한 인간의 간교함이 정당한 원망으로 포장하고 나온다. 오! 비열한 죄인들이여!

사실 그는 마땅히 백 번 천 번 감사만 말해야 할 사람이다. 구약에서는 최초의 선교사로 선출된 특혜를 받은 사람이다. 자격은 철저히 미달인데도 하나님의 신임이었다. 오늘날 앗시리아 종족들은 그때 니느웨 선교로 100% 기독교인이 되었단다. 또한 물고기 뱃속에 삼켜 먹이로 녹아질 한심한 자를 기적으로 살려 3일 만에 부활한 예수님의 예표가 되는 예언적 선지자가 되는 남다른 축복도 받았다. 정면으로 고집 부려 도망친 사명 없는 삯꾼을 두 번 다시 불러 재기시키는 특수한 사랑까지도 과분하게 받은 행운아다. 징벌 받을까 무서워 겨우 하룻길을 돌면서 외친 성깔 있는 설교였지만 왕과 백성 모두가 회개하고 짐승까지 금식하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져 베드로의 설교에 삼천 명이 통곡하는 대사건과 견줄 만 한 대부흥사로서의 흔적도 남겼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 할꼬”(시116:12) 란 감격만 간직할 은총 받은 선지자이다. 바로 우리 모두가 비밀스러운 복을 넘치게 받은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하나의 불평이라도 과(過)하다”고 울먹인 성자처럼 우리 다 같이 그렇게 말했어야만 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20). 성질 급한 우리 각자에게 타일러 주신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 37:8)고 경고 하신다. 감정이 폭발 되었다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방어책까지도 제시해 주신다. 그 비결은 “해지도록 분을 품지 않음”(엡 4:26)에 있다. 즉시 풀라는 말이다. 독기를 품고 죄를 지어 저주 받을까 싶어서다. “이것까지 참아라!”(눅 22:51)는 우리 주님의 인내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리라. 참을 수 없는 바로 그것까지도 참아야 한다는 어명이시다. 단 한 가지 아덴성의 우상을 보고 분개했던 바울의 의분(義憤)만은 제외하고 말이다.


이동휘목사(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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