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호[2009.03~04] 그래도 내 방법은 통한다

by 바울선교 posted Mar 03,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래도 내 방법은 통한다
갈 길은 조급하고 적군은 집 마당까지 밀려와 군사들은 동요되어 떨고 있는데 오늘따라 사무엘 선지자는 시간 맞춰 오지 않는다. 답답한 나머지 왕이라는 당당한 자세로, 그러나 할 수 없이 제사를 주관하는 월권을 행하고 말았다(삼상 13:9). 이 일로 사울왕은 신성 모독죄를 지었고 버림받은 곁길을 택한 비운의 왕이 되었다. 하나님의 손에서 통제권을 빼앗아 인간의 법을 세워 ‘우리 왕 만세! ’를 부른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스라엘 임금은 힘을 잃은 것이다. 조급하다고 하나님의 방법을 함부로 무시한 서글픈 댓가였다.
풋풋한 싱그러움의 멋쟁이에게도, 지략과 경험이 풍부한 모사와 미국 대통령에게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여전히 내 방법은 네게도 통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 9). 대가들의 글을 곱씹다보면 인간욕구가 내면세계를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가 드디어 짜릿한 흥분이 생긴다. 답답하게만 보이는 이천 년이나 써먹은 원시적인 성경원리를 살며시 밀어내고 싶어진다. 드디어 현대 조류에 편승되는 변질을 흡수하고야 만다. 괄호 밖 외도로 재미를 줍는다. 이 해묵은 때가 몸에 누적되고 체질화되어 싹싹 벗겨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도피할 수 없는 골목까지 온 것이다. 세상 풍속이 비곗덩어리 같이 온몸을 포장하고 있다. 이중인격의 살덩어리, 탐욕과 나태함의 썩은 피가 탁류처럼 흐른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는 복음의 승리를 자기와 인류를 대표해서 청탁했지만 예수님의 고집은 친히 십자가에서의 희생으로만(벧전 2:24) 결판을 낸 것이다. 그 뒤를 이은 바울사도도 십자가 이외의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 십자가 사상에 맞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걸출한 업적을 남긴 정품 선교사가 되었다. 성경 진리대로만 살고 집행하는 외고집이었다. 하나님과 교회와 그리고 책임져야 할 생명들을 높여주고 오히려 자기는 그들의 발에 짓밟히는 일에 익숙했다. 모세도 십자가와 거의 맞먹는 겸손을 처세술로 삼았다. “이 사람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3:14). 당장 이스라엘 백성을 결판내실 것 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얼굴을 환하게 풀어드릴 수 있었던 비결은 “나는 죽어도 좋으니 차라리 나를 지옥불에 던지시고 저들만은 제발 살려 주옵소서”(출 32:32). 모래바닥에 엎드려 울먹이는 모세의 처절한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이다.
늦지 않았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녹슨 문도 삐꺽거리며 열리는 법이다. 아브라함은 칠십오 세에 시작했다. 내면 깊은 곳에 자물쇠가 부서지는 천둥소리가 들리도록 하라.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몽땅 모조리 변했다. 영성은 예수님 닮는 거란다. 예수님 걷는 길을 같이 걷는 거란다. 예수님과 통하지 않으면 만사 불통이다. 영혼의 급소에 칼을 대라. 말씀의 칼이요 무릎 꿇음의 비장한 칼이요 사명에 대한 벌떡 일어섬의 칼이다. 돌싱(이혼한 싱글)처럼 주님과 아예 거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 주님을 꼭 껴안아라. 특별한 기쁨과 방법을 끌어낼 줄 알았던 수도사들을 흠모하라. 이마에서 피로 얼룩진 진땀을 토해 내시면서 밤새 울부짖었던 예수님의 핵심적인 기도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였다.
그렇다. 오직 주님의 방법 그것이다. 할렐루야!


이동휘 목사(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