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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26 - 참 목자의 순례자

by PAUL posted Dec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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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순례자의 거룩한 길

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26

참 목자의 순례자

이동휘 목사

 

1. 참된 목자의 상을 만든다(리처드 백스터: 참된 목자)

 

1) 자신을 성찰하면서

구세주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선포하면서도, 정작 당신은 그분을 무시하여 그분이 주시는 구원은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멸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지옥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지. 많은 사람이 지금 지옥에 엄연히 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리라. 귀한 옷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어 주지만 자기는 누더기를 입고 지내는 신세와 같다. 많은 요리사가 귀한 음식들을 장만하면서도 자신은 손가락만 빨고 있는 셈이다. 이 면에서 바울은 지혜로웠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유능한 설교자가 된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성화 되지 못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더 끔찍한 것은 설교자이면서 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설교문을 쓸 때 자신의 고소장을 친히 쓰는 셈이다. 자신을 대적하기 위해 연구하고 설교하고 정죄하고 있는 가련함이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설교자들은 가장 불행한 피조물이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거룩한 직업을 가졌다 해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계 3:17) 자들이 가장 눈멀고 벌거벗은 존재들인 경우가 많다. 손에 생명의 빵을 움켜쥔 채 굶어 죽는 사람이다. 아하!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설교자들이 된 목사들, 이런 중생하지 못한 목사들이 바로 교회의 재난인 것이다.

 

2)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뜨겁게 매어 달리자. 자신의 마음이 냉랭한데 어떻게 청중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설교는 아주 세심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삶은 경솔하게 살았단 말인가. 설교를 정확히 하려고 많은 연구를 하지만 정작 설교대로 정확히 살려는 연구는 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목회의 목적을 강대상 위에서만 성취할 것이라면 성도의 눈에도 그런 사람으로만 보일 것이다. 죄를 꾸짖기는 쉬워도 죄를 이기기는 힘들다. 우리 스스로 상당한 자질을 갖춘 사람인 양 오히려 교만하고 경솔하며 게으른 쪽을 택하지 않았는지. 설교자는 마땅히 진리를 들어내어 확신을 주면서 불가항력적인 빛을 청중에게 비춰주고, 진리가 그 마음에 박혀 진리를 택하든지, 아니면 정죄를 받든 지 결판을 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3) 성직자도 인간의 연약성을 모두 가졌다.

설교자도 일반 교인과 똑같이 타락한 본성과 죄악의 경향을 가졌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은,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게 하나님을 싫어하고 어색해한다. 무분별하고 제멋대로의 격정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다. 자존심과 증오와 수많은 반역이 있다. 사소한 일에도 어리석게도 유혹을 받고 무절제한 욕구들이 있다. 결심들이 약해지고 낙담도 한다. 목회자들도 아담의 후손일 뿐 아니라 죄인들이다. 당신의 믿을 수 없는 마음이 당신을 크게 속일 것이다. 지금은 완전히 죽은 듯하고 뿌리째 뽑혔다 하는 죄의 본성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 것이다.

 

4) 다른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큰 유혹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탄이 성직자들을 더 집요하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두움의 왕자들을 대적하는 지도자라면, 하나님께서 사탄에 대해 참지 않으시는 것 못지않게, 사탄 또한 역시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것이다. 사탄은 자신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기로 약속한 사람들에 대해 마음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에게 말이다. 사탄은 우리를 미워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더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전쟁터의 장군이고 우리 구원의 대장이시며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사탄의 나라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그리스도에 있는 일반 사병들보다 그리스도의 군대의 지도자들은 더 싫어한다. 사탄이 보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지도자들이 쓰러진다면 그리스도의 군사들도 섬멸할 수 있다는 것을 사탄도 잘 알고 있다. 사탄은 그런 전술을 오랫동안 시도해 왔다. 사탄은 큰 양이든 작은 양이든 양을 공격하지 않고 목자들만 쳐서 양 떼들을 흩으려 한다. 이런 식으로 사탄은 큰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이 방식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사탄은 당신을 넘어뜨리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가장 은밀하게 환심을 사려고 하면서 끊임없이 애걸복걸하다가 당신을 급습할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사탄의 약삭빠른 잔꾀에 넘어갈 수가 있다. 사탄은 당신보다 훨씬 박식한 학자이며 더 영민한 논객이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고후 11:14)하여 속인다. 사탄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 안에 들어와서 당신의 발을 넘어뜨릴 것이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낚싯줄에 걸려 있을 것이고 그것을 보지도 못할 것이다. 욥을 넘어뜨리려고 달려든 교활한 그가 당신에게 무슨 행동인들 못 하겠는가. 이리하여 삼손처럼 힘을 빼고 눈을 뽑고 마지막에는 조롱거리로 삼을 것이다.(삿 16:21)

 

5) 세상이 우리를 보고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이 실족하는 것을 지켜보는 눈들이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실족하면 세상에 곧 알려질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죄지을 수 있다 해도, 여러분은 그럴 수 없다. 여러분의 실수를 지켜보고 허물에 대하여 기꺼이 말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도리어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 죄를 억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람들이 악한 마음에서 이런 일을 한다 해도 결국은 유익을 얻는 것이다. 허물이 발견되지 않으면 허물을 조작까지 할 작정으로 당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언덕 위에 세워진 등불이다. 숨을 생각을 하지 마라. 당신들이 짓는 죄는 끔찍한 진노를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언약궤를 운반하는 당신은 하는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하나라도 조심해야 한다.

 

6) 지도자는 군사의 지휘권을 맡은 자들이다.

가장 치열한 접전지로 이끌고 가야 한다. 적들의 전략과 돌격전에 대해서도 병사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자신을 돌봐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도 돌봐야 한다. 당신이 실패하면 당신과 병사 모두 죽는다. 당신의 적이 교활하기 때문에 당신도 현명해야 한다. 적들이 늘 깨어있기에 당신도 깨어있어야 한다. 당신의 적은 악랄하고 폭력적이고 지치지 않은 까닭에 당신도 불굴의 의지로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 당신은 많은 적들 가운데 언제나 포위되어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일부만 주의할 수가 없다.

우리가 대적하여 싸워야 할 대상은 한 영혼 안에 있는 사악한 세계이다. 사탄의 밀사들은 그들에게 와서 열 번이나 스무 번 속삭인다. 그런 까닭으로 몇몇 성도들은 두드러진 변화를 나타낸 후에도 세상의 영화에 취해서 다시 예전에 즐기던 덫에 걸리곤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안전을 위해 세운 목자들의 인도와 지도를, 교만하게 무시하는 방만한 신자들은 어미 닭의 품을 뿔뿔이 떠난 닭들과 같다. 지옥의 솔개들은 이런 자들을 낚아채 간다. 맡겨주신 사역을 소홀히 한다면, 이런 처절한 실패를 거듭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택한 필수적인 사역이기도 하기에, 더 힘을 얻어야만 한다. 그럴듯한 설교만으로는 신실한 목회자라고 자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괴롭다고 피하면 적들은 쫓아오고 내가 쫓아가면 그들은 피하는 법이다. 당신이 양이나 돼지의 소유자로 짐승을 친다면, 그들이 길을 잃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양들은, 선정된 세대의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인데 어찌 이들을 잃을 수 있겠는가.

 

7) 당신은 그리스도를 연구하고 설교하면서 살아간다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성도들에게 먹이는 특권을 맡았다. 우리는 거의 다른 일은 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과 영광에 대해 연구하고 말하며 기도와 찬양을 일로 삼고 우리가 하는 일은 고상하고 영적인 일이다. 우리의 장서들이 주는 그 탁월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원할 때마다 그렇게 수많은 현자와 친구로 사귀는(독서 중) 은총을 누린다. 사역들은 양 떼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이고 그리스도의 집을 다스릴 자들이다(고전 4:1). 그분의 양 떼를 먹일 때 그분은 우리를 궁핍한 데에 그냥 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엘리야를 먹이신 것(왕상 17:6)보다 더 빠르게 우리를 먹여 주신다. 원수에 포위되었을 때는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신다.(눅 21:15)

 

8)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사도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라 했다. 고대 박사 중 한 사람은 “오! 만약 그리스도께서 깨지기 쉬운 작은 유리컵에 자신의 피를 조금만 받아 맡기시기만 해도,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아주 세심하게 주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자들을 맡기셨다면, 내가 책임을 지고 아주 세심하게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볼만한 가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게으른 목회자들이 짓는 죄가 결코 작은 허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을 것이다. 게으른 목회자들이 누워있는 한,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헛되이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귀하게 값 주고 사신 영혼들을 잃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영혼들을 위해 죽었건만, 왜 너는 그들을 돌보려하지 않느냐? 그들은 내가 피 흘릴 가치는 있어도, 너희들이 수고할만한 가치는 없는 사람들이냐?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눅 19:10)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왔건만, 왜 너희들은 잃은 자를 찾으려 옆집이나 거리나 이웃 마을로 가지 않느냐? 내가 행한 것에 비하면, 너희의 낮아짐과 수고는 너무나 작구나! 나는 이처럼 스스로 낮아졌건만, 너는 네 영광을 받기 위해 일을 하는구나. 나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고통을 받았으며, 이제는 너를 나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삼으려고 하건만, 왜 너는 네 손에 맡겨진 작은 일도 하려 하지 않느냐?”

오,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아들의 피가 게으른 목회자들을 고발할 때, 그 목회자들이 느낄 엄청난 당혹감을 생각해야 하리라.

 

9) 눈물과 겸손으로 자기 통회를(행 20:19)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무언가는 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도 자신이 직접 돌봐야 하는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설교자는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고 회개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해야 하며, 설교자는 눈물과 애통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울부짖고 애통해 하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하며, 설교자는 죄를 호통치고, 그 죄를 벗어버리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하며, 설교자는 의무를 전하기만 하고, 그 사명을 실천하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10) 바울처럼 헌신 된 목회자로

양초는 불 켜는 데 사용되듯이 우리 몸은 주를 위해 소진돼야 한다. 사람들이 천국 가는 길을 밝혀야 한다. 세네카(Seneca)는 “어떤 사람이 거기에 있다고 해서 그가 거기에 오랫동안 사는 것은 아니다. 단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도 많은 영혼이 도와 달라고 소리치고, 죽음은 우리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데, 사냥이나 사격이나 볼링 같은 오락으로, 또는 이와 유사한 취미생활로 온종일 시간을 보내거나, 함께 앉아서 공허한 대화를 한 시간씩이나 하거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거나, 정치나 사교적인 목적으로 목양 지를 팽개치고 관심을 목양 밖에 두는 것이 진노의 대상이 아닐까? 어떻게 감히 한가로이 잡담이나 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전염병이 창궐하고 수많은 사람이 의사의 도움을 갈구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의사가 많은 휴식과 오락을 즐길 수 있을까? 환자들의 귀중한 목숨이 의사의 즐거운 휴식보다 중하지 않을까. 성도들의 영혼 역시 귀중한 보화이다.

한 도시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적들은 그 도시를 급습할 기회만 엿보고, 계속 수류탄을 던지며 도시에 불을 지르려 하고 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성문을 지키고 또 다른 사람은 긴박한 상황에 불을 끄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가히 휴식을 주어 보낼 수 있겠는가?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고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목사의 외도! 용납할 수 없는 중죄다.

성경을 살펴보면,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죄까지도 고백한 것을 볼 수 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죄까지도 고백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했다(스 10:1). 다니엘도 자신의 죄를 자복했다(단 9:4). 자신의 게으름에 측은한 마음이 들고 재를 뒤집어쓰고 태만의 죄를 회개하면서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야 할 우리가 도리어 뻔뻔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설교를 들으면서 존다는 사실도 심각하다. 잠자고 있는 설교자는 웬만해서는 졸린 죄인들을 깨울 수 없다. 성도들의 냉랭함은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들의 교만은 성도들의 교만보다 더 치명적이고 더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

 

2. 주님의 것이 되기까지(IBLP_KOREA: 파인애플 스토리)

이 내용은 네덜란드 영 뉴기니에서 7년에 걸쳐 일어난 실제 이야기다.

원주민을 위해 일하는 선교사가 파인애플을 들여와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100그루 정도 구해 왔다. 원주민 한 사람을 고용해서 모두 심게 했다. 물론 정당한 품삯을 주고 여러 날 일한 대가로 원하는 물건이나 소금도 주었다. 3년 후에 열매가 보였다. 열매가 익게 될 때 나가보았는데 익은 것을 다 따갔다. ‘익기 전에 훔쳐라.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다 가져가 버린다.’ 이것이 원주민들의 특기다. 선교사는 화가 났다. “이봐요! 난 이 파인애플을 3년 동안이나 기다려 왔는데 하나도 먹지 못했어요. 또다시 훔쳐 가면 병원 문을 닫을 줄 알아요.” 선교사 아내는 병원을 운영하면서 약을 무료로 주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질병을 치료해주고 목숨이 위태로운 아이들을 살려 주었다. 그러나 남은 파인애플 역시 익는 족족 다 따가기는 여전했다. 단호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병원 문을 닫아버렸다. 먹고 싶은 파인애플을 먹지 못한 섭섭함도 함께 있었다. 원주민들은 병든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고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목숨이 하찮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악성 폐렴에 걸린 사람들은 기침을 하며 약을 달라고 애걸하였다. “안돼요, 파인애플을 훔쳐간 것 벌써 잊었어요?” “저는 안 훔쳤어요, 다른 사람이 훔쳤어요.” 기침이 심해지자 더욱 졸랐다. 더 버틸 수 없어서 다시 문을 열었다. 병원 문을 열자 그들은 또다시 파인애플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에이, 파렴치한 사람들!

마침내 누가 파렴치한 짓을 하는지 알아냈다. 파인애플을 심은 사람이다. 그를 불러 꾸짖었다. 그러나 “내 손이 심었으니, 내 입이 먹어야지요.” 당당하다. 원주민들에게는 품삯의 개념이 없다. “아니, 저 파인애플은 내 거야. 네게 품삯을 주었잖아?” 원주민들은 파인애플이 왜 자기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심은 사람이 임자라는 깊은 의식이다. “좋아, 여기 있는 파인애플을 다 줄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자네거야. 그쪽 파인애플을 익으면 자네가 갖고, 이쪽 파인애플이 익으면 내가 갖는 거야.” 일꾼은 그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으나 계속 없어졌다. 모든 원주민에게 다 주고 새로 구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이 파인애플 나무를 다 여러분에게 주고 나는 처음부터 시작할 거요. 밭을 새로 일구어서 옮겨 가세요. 여러분 거라면 내 밭에 둘 필요가 없어요. 나도 새 나무를 심어야 하니까요” 그들이 말한다. “그렇다면 품삯을 주어야지요. 나무를 옮겨 심어 달라 했잖아요.” 좋소, 하루 치 품삯을 줄 것이니 전부 옮겨 가세요.” 그러자 그들은 다시 청한다. “우리는 아직 밭이 없어요. 우리가 밭을 일구는 품삯을 주세요.” 그냥 화가 나서 “관둬!”라고 소리쳤다. 사람을 시켜 멀쩡한 나무를 다 뿌리째 뽑아 쓰레기에 버렸다. 새 묘목을 드디어 사 왔고 그들에게 말했다. “자, 모두 잘 들어요. 이 묘목을 심는 품삯을 주겠어요. 그러니까 이 파인애플은 나와 내 가족이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도 먹을 수 없어요.” 말하자 “그건 안 돼요. 우리가 심으면 우리가 먹어야지요.” 다시 제안했다. 이 칼을 주지요. 원주민들은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 칼을 주고 자기는 파인애플을 먹겠데..” 동의가 이뤄졌다. 계속 3년간 일깨워 주었다. “자. 이 파인애플은 누가 먹죠?” “당신이요” 맞아요. “그 칼 가지고 있지요? 잘 보관하세요.” 칼을 잃어버리면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다짐을 자주 했다. 마침내 3년이 되어 파인애플이 익기 시작했다. 부부는 기쁨으로 기다렸다.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렸다. 그러나 과일이 익자마자 그 열매를 예전처럼 모두 도둑맞았다. 밤에 들어와 훔쳐간 것이다.

절망한 저들은 다시 병원 문을 닫을 수는 없고 상점문을 닫았다. “여러분이 내 파인애플을 훔쳐갔으니 상점문을 열지 않겠습니다.” 상점에서 소금, 성냥, 낚싯바늘 등을 사 간다. 상점문을 닫자 “이제 소금이 없으니 여길 떠나는 것이 좋겠어. 저 사람과 함께 살아봤자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 없잖아. 우리가 살던 밀림 속으로 가자” 라며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파인애플을 혼자 먹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이 파인애플 먹는 일이라면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 않소.” 사람들이 없으니 선교할 일도 없어졌다. 심부름꾼에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상점문을 연다고 돌아오도록 전하라 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독일산 셰퍼드! 원주민들이 무서워했다. 개가 그들보다 더 좋은 것 먹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그들이 없을 때 개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개는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원주민들이 얼씬도 못 했다. 그런데 상점문을 닫을 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이다. 원주민의 말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개는 효과가 없었다. 셰퍼드는 동네 개와 어울리더니 거칠고 사나운 잡종 개를 낳아 자랐다. 동네 수의사는 말한다. “선교사님! 애들이든 누구든 그 개에게 물리면 난 치료 못 해요” 개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개가 없어지자 사람들은 돌아왔지만, 파인애플은 없어졌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인데?” 고민이 다시 온다.

 

안식년이 되어 선교사는 고국에 와서 베이직 세미나에 참석했다. 거기서 우리가 가진 것 모두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가진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진리다. “더 잃을 것도 없어. 어차피 못 먹는 파인애플이니 그 밭을 하나님께 드려야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관리하시는가를 보고 싶었다.

어느 날 밤에 밭에 나가 기도했다. “주님! 나는 이 열매를 얻으려고 싸워 왔습니다. 내 권리를 내세웠습니다. 이제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밭을 드립니다. 열매를 주시든 안 주시든 상관없습니다.” 파인애플밭을 하나님께 드렸고 원주민들은 여전히 훔쳐갔다. “하나님도 이 사람들을 막지 못하시네요.”

어느 날 원주민들이 찾아와서 말한다. “투완! 드디어 그리스도인이 되었군요. 그렇죠?” ‘여보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우리가 파인애플을 훔쳐도 화를 안 내니까요.” 한 젊은이가 다시 묻는다. “왜 이제 더는 화를 안 내시는 거예요?” “내가 이 밭을 주어버렸거든. 그 밭은 더는 내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훔친 파인애플도 내 것이 아니니 더는 화를 낼 필요가 없지.” 또 다른 친구가 “그 밭을 누구에게 주었는데요?” 너한테~~? 서로 자기들끼리 쳐다본다. “그 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마을에 가서 알렸다. “이봐 우리가 훔치고 있는 파인애플이 누구의 것을 훔치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해? 투완이 파인애플 밭을 하나님께 드렸데!” 원주민들은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사냥을 가도 한 마리도 안 잡히더라...어쩐지 애들이 아프더라... 어쩐지 고기가 안 잡히더라... 어쩐지 여자들이 아이를 못 낳더라... 그들이 말했다. “그 밭이 하나님 것이라면 더 이상 훔치면 안 되잖아?”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는 파인애플을 훔치지 아니했다. 파인애플은 익어가자 원주민들이 와서 알려주었다. “투완 당신의 파인애플이 다 익었어요.” “내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것이에요.” “그렇지만 그냥 두면 썩어버릴 텐데요, 지금 따는 것이 나을 거예요.”

그래서 자기 파인애플을 몇 개 따고서는 다 가져가게 했다. 파인애플을 두고 기도했다.

“주님, 이제 당신의 파인애플을 먹습니다. 저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원주민들은 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내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하자 저들도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원주민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원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다른 것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 하루는 아들이 병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데려가신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날 밤 아들은 열이 내리고 치유되었다. 원주민들은 여러 가지 고장 난 물건을 고쳐 달라고 가져왔다. “하나님 제시간은 주님의 것입니다. 냄비랑 삽을 고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투완이 그리스도인이 됐어. 우리한테 사랑하라고 말만 하더니 이제 정말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했어~.”

우연히 레위기 서를 보게 됐다. 과목을 심거든 3년 동안 먹지 말고 4년째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 먹으라는 순서다(레 19:23-25). 원주민들이 화낸 이유를 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3. 세속적 목회자와 거룩한 목회자

1) 넓은 길, 멸망으로 가는 목회자와 좁은 길, 좁은 문, 영생 길로 가는 목회자(마7:13-14)

2) 삯꾼으로 일하는 자와 목자로 일하는 자(요 10:11-12)

3) 자기가 필요한 곳에 가는 자와 주님께서 필요한 곳에 가는 자(행 16:10)

4) 살도록 충성하는 자와 죽도록 충성하는 자(계 2:10)

5) 직분에 충성하는 자와 예수님께 충성하는 자(히 3:2)

6)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와 자신을 먼저 가르치는 자(딤전 4:15)

7) 내가 주인으로 일하는 자와 예수님을 주인 삼고 일하는 자(마 24:45)

8) 인간의 수단을 쓰는 자와 예수님 원리대로 사는 자(살전 2:5)

9) 주님을 위해 일하는 자와 주님과 함께 일하는 자(고전 3:9)

10) 설교자로 사는 자와 예배자로 사는 자(요 4:23)

11) 남의 허물만 꾸짖는 자와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자(고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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