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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28 - 청빈의 순례자

by PAUL posted Apr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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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순례자의 거룩한 길

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28

청빈의 순례자

(엄두섭 :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 수도생활의 향기)

이동휘 목사

 

 프랜시스(1182~1226)는 팔백 년 전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아씨시라는 지역 포목상의 부자 아들로 태어났다. 상류층 청년들과 어울려 춤추며 노래하고 시를 쓰기도 하면서 호탕하게 놀았다. 부친의 상업에도 흥미와 능력을 나타내어 휴계자로서의 영리한 아들을 아버지는 만족스럽게 생각하였다. 전쟁이 벌어지자 17세의 혈기로 참전 중, 포로가 되어 일 년간 적진의 감옥에 있다가 석방되기도 하였다. 열병을 앓고 회복이 되던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교외 언덕길을 걷는 중 깊은 사색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허무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대상을 찾는 거룩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거울이 되려는 깊은 순례가 스물한 살인 그에게 고요히 찾아온 것이다. 친구들이 그의 이상한 행동에 점점 멀어지면서 야유하는 말에 "그렇다. 나는 너희가 상상조차 못 할 아름답고 깨끗한 신부를 생각하고 있다."로 응수하면서 주님께 더 접근해갔다. 황폐한 성 다미아노 교회에 자주 찾아가 "주 예수님 나를 비추소서. 어두움을 물리치소서!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애절한 기도를 드리는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프랜시스! 너는 내 집을 세워라. 내 집은 무너져가고 있다." 전 세계의 퇴락해 가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청결케 하라는 계시이지만, 그는 우선 사제의 허락을 받고 허술한 다미아노 교회당을 삼 년간 벽돌을 동냥하여서 말끔히 보수하였다. 그 외의 다른 성당도 역시 보수공사를 하였다. 배운 것 없는 무식한 사람이고 평신도에 불과한 키 작고 못생긴 인물이지만 그가 대 성자의 길에 오른 것은 몸으로 주님을 섬기며 따랐고 주님만 가르쳤기 때문이다.

 

"한번 그의 갈색 눈을 바라보는 사람은 교황으로부터 도둑과 살인 늑대, 새와 곤충들까지 감화를 받았고 인자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황 피오 11세는 또 하나의 예수, 예수 다음으로 추천할 분이라고 프랜시스를 극찬했다. 수도원이나 동굴 한 곳에 머물러 수도한 방법과는 달리 맨발과 해진 옷을 입고 구걸하는 탁발(托鉢) 수도사로 무소유의 길을 고독하게 걸었던 발길이었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감화시키고 약한 자를 돌보아주는 사랑의 돌격대였다. 프랜시스는 오늘도 그가 지은 유명한 태양의 노래와 평화의 노래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친숙한 친구이시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만족스럽다"(마 10:25)의 경지에 이른 기독교의 보배이며 성자 중의 성자이다.

어느 날 예배 중에 사제의 성경낭독 말씀을 예수님의 분부로 받아들였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 10:7, 9-10) 그는 즉시 결단하였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갈망하던 바이다." 외투를 벗어 버렸다. 지팡이도 내던지고 시골 사람들이 입는 갈색 옷으로 갈아입고 두건을 썼다. 새끼줄을 주워 허리에 동이고 맨발로 아씨시 거리에 나섰다.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단순한 이 말에 둘러선 군중이 감동을 받고 그를 따랐다. 처음에 세 명, 이어 십일 명이 되면서 '작은 형제단'이란 명칭을 걸고 침식을 같이했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거지가 되어 아이들의 비웃음을 받는 아들을 본 아버지는 그를 잡아 집으로 와서 지하실에 가두었다. 프랜시스는 입고 있던 옷까지 홀랑 벗어 던지고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고 하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가출했다. 아씨시 뒷산 스바지오 동굴에 들어가 기도에 열중하다가 거리로 뛰쳐나가 울며 외쳤다. 왜 우느냐는 물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못 견디게 합니다." 라며 흐느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는데 힘을 쓰고 절대 청빈, 순결, 순명을 실천하며 살았다. 둘씩 짝지어 전도하면서도 기쁨으로 노래하며 가난한 자를 돕고 나환자를 싸매 주면서 말씀을 실천하는 삶으로 많은 영혼을 건졌다. 말없이 시가지를 한 바퀴 돌고 와도 참회하는 자가 무수히 생겼다. 집도 없고 누울 침대도 없고 기도할 교회도 없는 철저한 거지 떼들이었다. 먹는 것은 그때마다 얻어다 먹는 거친 음식이었으나 대지가 우리의 식탁이라 하며 풀밭에 벌여 놓고 잔치의 나날을 보냈다. 로마에 가서 교황의 윤허를 받아 선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본의 아니게 교단이 되었다. 30세 때에는 아씨시 귀족의 딸 클라라(Clara)가 처음으로 제자가 되었고, 계속 들어오는 여성들을 위해 '자매단'을 창설하였고, 클라라가 지도자가 되었다. 제 1교단(남자 독신자), 제 2교단(여 독신자), 그리고 제 3교단으로 가정과 세속 생활을 하면서 프랜시스의 정시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여기엔 교황, 학자, 빈부귀천 모두의 사람들로 그 영향력은 대단한 세력이 되었다.

 

■ 다정다감한 사람이면서도 그는 인정을 끊어야 했다. 눈이 밤새 소리 없이 내리는 밤, 가정이 하염없이 그리워 밖에 나가 미친 사람처럼 눈사람을 만들었다. 자기가 만든 눈사람을 세워놓고 "이것은 내 아내다, 이것은 내 아들딸이다" 하며 즐기다가 다음 날 아침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 가족을 보고 "어리석은 프랜시스야, 네 아내를 보아라. 네 아들딸들을 보아라. 무엇으로 먹이여 무엇으로 입히랴"고 말했다. 클라라가 프랜시스의 설교를 사모하여 와 달라고 하지만 잘 가지 않았다. 마지못해 가는 날이면 사부께서 오는 것을 영접하려고 부복해 있는 수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서 지정된 곳에 서서 주위에 재를 뿌리고 자기 머리에도 재를 뿌려 검둥이가 되어 설교를 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은 다 흙이다. 모든 것은 다 재요, 먼지다. 나 프랜시스도 먼지이고 재다" 하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 인정을 끊기 위해서다.

 

■ 무식한 무리였다. 제자 하나가 시편에 관한 책 한 권을 소유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허락하지 않았다. 책을 가지게 되면 서가가 필요하고 서가가 있으면 책상이 필요하고 책상이 있으면 방이 필요할 것이 아니냐" 말한다. 도미니코 수도회는 학문을 장려했지만, 프랜시스는 자신도 겨우 글자만 읽을 정도였다. 지식이 들어가면 교만해지고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성이 없어지는 염려를 한 것이다. 말년에 이 재단에 지식 있는 제자들이 많이 들어와 결국 프랜시스의 정신을 거역하여 교단의 위기가 왔다.

 

■ 이들은 선교 열로 뜨겁게 달궈진 사람들이다. 이탈리아 중부에서 시작된 운동이 삽시간에 남과 북으로 확산되었고, 십자군을 따라가 전도하기도 하였고 모슬렘 군대 앞에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했다. 제자 중 몇은 서쪽으로 달려가 스페인과 모로코에 가서 순교의 피를 흘렸다. 헝가리와 독일에 이어 알프스 산을 넘어 프랑스에도 갔다. 가는 곳마다 굶주림과 추방이었으나 용감한 이들 가운데 네 명의 제자들은 영국까지 건너가 그리스도를 전했다. 지금도 그의 향기가 지구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 성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불붙은 자였다. 인간은 물론 동물, 새, 늑대, 귀뚜라미, 태양, 달, 도둑까지도 모조리 사랑의 대상이었다. 프랜시스는 모든 것이 다 형제요 자매다. 우리 누님 달과 별, 형제 태양, 자매인 물, 형제 되는 불, 어머니 대지, 자매인 화초, 나의 누님 되는 죽음, 우리의 형제 자매인 새들, 청빈(가난)을 신부라 불렀다. 그에겐 미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형제들과 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랑의 잔치를 나누기로 했다. 그들이 음식을 먹기도 전에 황활 상태에 빠져 모두 영감에 취했다. 그때 그 근방 아씨시나 이웃마을 사람들은 멀리서 숲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불을 끄려고 달려왔다. 그러나 불은 없고 음식을 앞에 차려 놓고 그들이 황홀 상태에 있는 순견한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통곡하고 자연과 산천초목과 금수와 곤충까지도 사랑했다. 이탈리아 구비오 거리에 살인 늑대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밖에 나가지를 못했다. 의논 끝에 프랜시스를 불러왔다. 그는 늑대가 있는 곳에 찾아가서 "형제 늑대여!" 하고 불렀다. 늑대는 성인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순한 강아지 같이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그의 무릎에 올려 놓았다. 다시는 사람을 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한번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고 있는데 많은 제비 떼들이 몰려와 설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다. 그는 설교를 잠시 중단하고 손을 흔들며 제비들을 향해 "오, 자매 제비들! 지금은 내가 설교할 차례이니 내 설교가 끝나기까지는 자매들은 조용히 들어주기 바래요." 제비들은 그냥 조용해 졌다. 사랑의 법칙이다.

 

■그들은 버리는 것으로 일생을 살았다. 부모와 가정을 버리고 편안함과 일상의 권리를 버렸다. 종말에는 프랜시스 교단의 모든 권리까지,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까지 뒤에 놓고 그 정든 공동체를 떠나 베르나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식 있는 자들과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 단체에 들어오고 허술한 체제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면서부터 평화스러운 집단에 사탄의 입김이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분쟁이 심화되자 가룟 유다라 부를 자들이 교단을 장악했다. 스승은 그에게 지도자 직을 인계하고 그 앞에 부복해 복종을 서약하는 치욕을 당했다. 제자들은 고아가 된 듯 울었다. 우리 성자는 이것까지도 묵묵히 버리고 예수님처럼 살기 원하는 자발적 버림을 단행하고 다시 굴속을 향했다. 제자들도 그 정신대로 살았다. 어느 날 제자들은 형제들이 살던 오두막에 지나가던 마부가 나귀를 끌고 들어왔을 때, 나귀 형제를 위하여 집을 양보하자며 비워주었다. 아내까지 두지 못한 고독한 자들이라기보다는 청빈 양과 결혼했노라 하는 낭만적인 신앙세계를 열어나갔다. 정열적이고 야릇한 감정으로 주님을 사랑했고, 가난과 무소유를 사랑했다. 버림으로 빈궁한 자가 아니라 차원 높은 영의 자산으로 채움 받았다.

 

■ 예수님의 성흔(聖痕)을 몸에 지닌 자다. 매일 기도와 명상에 잠기는 가운데 신비한 체험을 많이 가졌다. 특별히 두 가지 소원을 드렸다. 간악한 죄인들까지 감히 용납하여 참아 용서하며 십자가까지 지신 주님의 극진한 사랑을 품게 해 주시라는 소원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다섯 가지 상처를 몸에 주시어 십자가 고난을 감촉하게 해 주시라는 간구였다. 과연 주님은 나타나셔서 다섯 곳에 상처를 주셨다. 황홀한 환상 속 체험이 지난 후 뼈가 끊어지는 통증이 그의 양손과 양발 그리고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그 후부터 운명할 때까지 흐르는 피가 속옷에서 겉옷까지 적시곤 했다. 아픔 가운데 솟는 큰 기쁨을 체험하면서도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 갔고, 보행도 어려웠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고 감내할 수 없는 슬픔 또한 맛보았다." 오직 주님만을 사무치게 사모하며 그 은총속에 파묻히고 싶었던 것이다. 시력도 약해져 소경이 되었고 위궤양으로 고통당했다. 오로지 주님만 흠모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주님과 좀 더 거리를 좁혀가는 심정으로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말을 오히려 자주 했다. 그의 생활은 모두 기도였다. "그는 참으로 기도했다기보다는 그 자신이 기도였다."(체르노)

 

■ 그는 찬송과 감사의 사람이다. 클라라의 간호를 받는 중에, 식사하려는 순간 그는 홀연 황홀경에 빠져 "찬양을 받으실 주여!"라고 소리쳤다. 즉흥적으로 그 유명한 태양의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일부가 찬송가에 있다. 매일 태양의 노래만을 반복하여 부르며 세월을 보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찬송의 밤이었다. 형제들이 설교하러 갈 때와 파송될 때 그리고 설교 후에 이 노래를 불렀다. 기독교 문학의 역작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임종 때가 다가와 의사가 얼마 살 수 없음을 알려주자 "오! 나의 누님 되는 죽음아! 나는 진심으로 그대를 환영하노라." 즉시 제자 안젤로와 레오를 불러 태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그는 어떤 상황에도 감사와 찬양을 춤추게 하였다. 측은하리만치 매일 고행을 하고 교회 입구 계단 위에서 이불 없이 잠자는 형편 속에서도 언제나 노래했다. 그들의 쾌활한 모습에 벙어리도 웃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즐거운 일상을 보냈다. 밤새껏 성자의 울부짖는 기도 내용은 "오! 주여, 나의 전부여!" 감격의 연속이었다. 1226년 10월 3일 최후가 가까웠을 때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가난 중에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서 옷을 벗겨 누님인 흙 위에 내려 뉘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해 질 무렵 요청한 수난의 성구 낭독이 끝나자 시편 142편을 힘차게 노래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 주님을 찬양하며 영원하 나라로 입성한 것이다. 그의 시신은 조르지오 지하 성당에 안치되었다.

 

■ 그를 빛나게 하는 일화가 있다. 성자가 어느 날 교황을 뵙기를 청했다. 신부가 프랜시스가 찾아와 뵙기를 청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들어오면 자기를 훈계할 것으로 생각한 교황은 아주 성가신 태도로 엉뚱한 명령을 내린다. "로마시에 가서 화장실 청소나 하라고 해!" 신부는 그대로 가서 전했다. 우리의 성자는 "예!" 하고 되돌아가 로마의 집집을 찾아가 화장실을 청소했다. 그는 불의를 성토하고 정의로 과격하게 맞서는 기존의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불의도 사랑으로 이겼다. 오만에는 겸손으로 응수했다. 태만에는 육체노동으로, 사치에는 걸인으로, 학문에는 무식으로 대했다. 부패한 세상을 원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혁의 칼날을 갈지도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사랑했다. 주님만 본받았다. 참 승자의 모습이요 승리자의 비범함이다. "그는 사랑, 겸손, 순종, 순결, 청빈, 단순, 봉사의 거문고 줄을 계속 흔들어 타면서 그 시대 사람들을 황홀케 하고 경건에 젖어 살게 했다."(엄두섭) 22년간의 짧은 사역과 44세에 별세하신 성인이지만 800년간 그의 향기는 지금도 온 세계에 감미롭게 흐르며 우리를 매혹시키고 있다.

 

■ 그의 유언

길을 갈 때 주의 이름으로 두 사람씩 길을 가되 몸가짐을 조심하라. 특히 침묵을 지키고 하나님과 속삭일 것이며 게으르고 무익한 말을 주고받는 일을 피하라.

여행할 때에 수도실에 있을 때와 똑같이 수도자답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묻는 사람에게 겸손하게 대답하라. 핍박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모욕이나 중상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라.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그대들 안에서 그대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믿으라.

형제들이 청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세상도 그들을 버린다. 그러나 그들이 귀부인 청빈에 애착해 있으면 세상은 그들을 길러 줄 것이다.

내 마음에서부터 사랑하는 형제들아, 무슨 명령을 듣거든 곧 순종하여라. 불가능하다, 어떠하다고 이의를 말하지 말라.

자기 때문에 그 누구도 노엽게 하거나 분개하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상한 자를 돌봐주고 분열된 것을 일치시키고 잘못에 빠진 자를 돌아서게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악마의 것처럼 여겨졌던 자가 그 어느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리라.

나는 형제들이 성경 배우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그것을 핑계로 기도를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기도를 쉬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를 원한다. 또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배운 바를 실행에 옮기는 일, 남에게도 실행을 권면하는 일에 전심하기를 바란다.

형제들아, 주께서는 가느다란 음성으로 나를 부르시고 단순한 길로 나를 인도하셨다.

주께서는 나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안녕히! 자녀들아, 주님을 더욱 경외하고 언제나 주님 안에 살도록 하여라.

 

성녀 클라라와의 영적인 사랑

어머니와 함께 산 조르지오 성당 사순절 예배에 참석한 클라라는 거지 같은 프랜시스의 설교를 듣고 감격하여 첫 여제자가 되었다. 클라라의 눈에는 프랜시스가 불타는 스랍천사 같이 보였다. 불을 뿜는 것 같은 그의 말, 그리스도의 복음적 청빈과 사랑을 듣는 그녀는 그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때 나이 18세였고, 60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42년간 순결을 지켰다. 귀족의 출신으로 많은 보석과 화려한 옷을 걸치고 온 그녀에게 옷을 모두 벗기고 무릎 꿇은 클라라의 긴 머리를 프랜시스는 친히 싹둑 잘랐다. 조잡하고 거친 고행복을 대신 입히고 삭발한 버리에 수건을 씌워 그 밤으로 수도원으로 데리고 갔다. 클라라가 가출한 지 16일 후에는 영국 황제의 청혼을 받은 바 있는 동생 아그네스도 가출하여 수녀 생활을 따랐다. 이후 처녀들이 늘어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 만 50명 이상이 되었고 클라라가 중심이 되어 스승의 뜻을 받들어 살았다.

 

프랜시스의 클라라에 대한 신뢰는 배신당하지 아니하여 청빈이 생활의 본질이 되었다. 청빈의 특권을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지켜나갔다. 철저한 포기와 일탈 정신으로 무장했다. 가난한 자로 철저하기 위해 이 세상의 온갖 것을 철저히 버렸다. 가난한 자매들이 사는 세계는 지상의 세계가 아니고 주님의 세계다. 마치 고국을 향해 가는 도중에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이 자기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이 세상을 스쳐 지나간다. 개인적으로 무소유일 뿐 아니라 공동체로도 무소유다. 교황 그레고리는 가냘픈 여자들의 단체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주려하고 수녀원을 위해 재산을 마련하도록 하려 했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평생 청빈의 특권을 유지하였다. 이들의 삶은 가난하다기보다는 참혹했다. 자매 중 누군가가 너무 남루한 옷을 입으면 클라라는 자기 옷과 바꾸어 입었다. 클라라의 침상은 한 다발의 포도 넝쿨이었다. 병들어 앓고 있을 때는 약간의 짚을 깔았다. 최후에는 가마니에다 머리 둘 베개를 짚으로 만들었다. 수도원 생활은, 확실하고 안정된 수입의 보장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탁발할 때도 큰 빵보다는 부스러기 빵을 즐거이 받았다. 어느 해 성탄절 날, 병으로 있는 중에 혼자 짚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혼자 누워서 아기 예수의 일을 생각했다. 클라라는 마음속으로 베들레헴 예수 곁에 가 있었다. 그때 아기 예수의 누운 말 구유를 보았다. 겸손하시고 가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다. 주님의 고난과 가난에 참예하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현재 누워계신 주님의 초라함을 본 것이다.

 

그녀의 기도는 간절했다. 정신과 마음을 언제나 하나님께 쏟아붓고 하나님만 계속 주목했다. "어머니 성 클라라는 낮에도 밤에도 계속 기도에 파묻혀 있었습니다."(벤베누티 자매) "취침 전에 기도하고 나서도 클라라 님은 눈물에 젖어 오랜 시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깊은 밤중에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그 시간 무렵에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이라면서요." 주님의 거룩한 상처를 바라보면서는, 쓴 몰약의 생각을 넘치게 했다. 고통하시는 그리스도의 눈물을 그녀도 흘렸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고난에 자기 자신을 동참시키며 깊은 슬픔으로 괴로워했다. 그리스도는 클라라 곁에 계셨다. 주님은 그녀에게 현실에 구체적으로 언제나 살아계시는 분이셨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그 십자가 처형에 참례하고 있었다. 절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셨다. 때때로 기도하다가 마루에 얼굴을 대고 부복하여 눈물을 흘렸다. 침대에 엎드려서도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일로 생각이 가득 차 밤을 새워가며 거기에 몰입해 있었다. 숭고한 기도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더욱 빛났고 입에서는 감미로운 말이 넘쳐 나왔다.

 

프랜시스의 장례행렬이 산 조르지오 성당까지 가는 사랑하는 사부(師父)를, 한 번 더 보게 하려는 배려로 도중에 수녀원에 들러 잠시 머물렀다. 창살 밖에서 관 뚜껑을 열었다. 눈물에 젖어 바라보며 "아버지여, 아버지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불행한 우리를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아아! 우리를 꽃 피게 한 위대한 아버지를 빼앗아 가고 멀리멀리 데려가십니까? 비정한 죽음이여!"

 

그녀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자기 영혼에게 스스로 말했다.

"안심하고 출발하시오. 그대의 나그넷길에는 착하신 길 안내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시오. 그대를 창조하신 분이 그대를 거룩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머니가 아들을 지키듯, 언제나 그대를 보호하시고, 친절하게 보호해주셨습니다. 주여, 축복받으소서. 내 영혼을 지으신 당신은!"

임종은 지켜보는 수녀에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영광의 왕이 당신에게도 보입니까?" 라고 말한 후 영원한 휴식의 나라로 들어갔다.

 

앨빈 토플러는 제 5의 물결은 영성이라고 단언한다. 미래사회는 영성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도 말한다. 파편 조각처럼 철저히 망가져 총체적으로 멍든 우주를 다른 어떤것들로는 도저히 원상 복구될 수 없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영성 회복만이 피곤해진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회생시키는 해법이고 에너지라고 강조하고 싶다. 프래시스의 강렬하고도 순결한 영성이 지구 곳곳에 그리고 우리의 미세한 세포 속에까지 스며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