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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30 - 천국등정의 순례자

by PAUL posted Sep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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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순례자의 거룩한 길

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30

천국등정의 순례자

이동휘 목사

 

천국을 향한 거룩한 발길(요한 클리마쿠스 :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가톨릭에 단테의 신곡, 기독교에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있다면, 정교회엔 요한 클리마쿠스의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가 꼽힌다. 그는 7세기 인물로(579~649) 시내 산 근처의 해안에서 태어나 40년간 수도원에서 독거생활을 하였다. 30개의 사다리를 거쳐 천국에 이르는 명작으로 정교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야곱의 사다리(창 28:12)를 상징한다.

 

제 1사다리 : 삶을 부인하는 것

세상과의 결별, 삶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니 힘껏 경주해야 한다. 임종의 날에 수확한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서는 안된다. 원정이 끝날 때 자신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거룩한 경기에 서둘러 참례해야 한다. 전쟁터에서 용감한 투사를 대적하는 자는 없는 법이다.

 

제 2사다리 : 이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어떤 것에 염려한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마귀의 절대적 목표는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도록 하신 것이다.(마 8:22)

 

제 3사다리 : 유랑 생활에 관하여

유랑생활은 하나님께 매달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떠나는 것이다. 죄와 관련된 곳들은 마치 전염병을 피하듯이 피해야 한다. 롯의 아내를 본받지 말고 롯을 본받아야 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마 6:24) 내세에 영원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벌떼처럼 달려오는 인정을 망설이지 말고 차단해야 한다. 우리는 천국과 세상을 동시에 볼 수 없다. 세속적인 교제는 선한 성품을 파괴한다.

시선을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돌리지 말라.

 

제 4사다리 : 순종

순종의 경기장에 들어선 이후로는 그분이 나를 판단하도록 맡기라. 중상과 모욕 속에서도 평정을 누릴 수 있는 달인이 된 것이다. 언젠가 한 형제가 이웃을 비방했는데, 수도원장은 그를 쫓아냈다. "나는 이곳에 눈에 보이는 마귀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존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 형제가 이웃을 비판하거나 한가하게 잡담하는 것을 보고 경건한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숙할 것을 표시했다. 그래도 험담을 하자 그 잡담하는 형제 앞에 납죽 엎드렸다가 떠나갔다.

알렉산드리아 이시도어라는 사람이 수도원에 들어왔다. 수도원장은 순종하는 법을 배우라 했다. 그는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나는 쇳덩이가 대장장이에게 복종하듯이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대답했다.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는 수도원 문 앞에 서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여,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간질병자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꿇어 엎드려 7년 동안 문 앞에서 겸손의 삶을 살았다. 시선을 아래에 두어 생각을 낮추고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부탁드렸고, 그러하므로 참 수도사가 되었다.

마게도니우스 부주교가 외출했다가 정한 날짜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자 원장은 그를 부주교직에서 해임하여 낮은 수련수사의 지위로 강등시켰다. 그는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40일이 지난 후 원래의 지위로 복귀되었다. 하루 뒤 그는 원장을 찾아와 '알라'고 간청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고, 원장도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겸손을 위해 벌을 받으려 한 것이다. 그의 소원은 받아들여져 평수사로 살게 되었고, 그렇게 살면서도 평강이 넘쳤다. "나는 지금처럼 내면의 갈등을 느끼지 않고 거룩한 빛의 달콤함을 느끼며 지낸 적이 없습니다."

거룩한 성인 메나스가 수도원장실에 들어와 가르침을 구했다. 원장은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려고 엎드린 채 그냥 두었다가 성무일과가 끝난 다음에야 축복해 주었다. 엎드려 있는 동안 잠이 들었느냐 물으니 '엎드린 동안 시편 전부를 암송했다'고 말했다.

논쟁을 원하는 당신의 입을 억제하라. 당신의 입은 폭군이다. 당신은 하루에 일곱번씩 일흔번 그것과 싸워야 한다. 정신을 영혼에 고정하고 망치로 내려쳐야 한다. 정신이 동요됨이 없이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매 순간 생명수를 마시듯이 단숨에 조롱을 들이켜야 한다.

대화 중에 비록 올바른 견해라도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면, 자신이 마귀의 병에 걸렸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가 자신과 대등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이런 행동을 한다면 상급자의 책망이 그를 고쳐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기보다 위대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대할 때도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의 병은 고칠 수 없다. 대화 중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행동에서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스승의 업적을 자랑하는 미숙한 제자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수확한 것에서 자신을 위한 영광을 거두려 했지만 모든 사람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나무에서 어떻게 죽은 가지가 자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아버지의 조롱을 참고 견딜 때 인내심이 많다는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참을 때 명성을 얻는다. 사람들의 조롱을 생명수처럼 들이켜야 한다.

 

제 5사다리 : 참회

'감옥'이라는 외딴 수도원에 가서 그곳에 사는 자들의 참회를 보았다. 고통의 무게 때문에 슬퍼하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영혼들을 보았다. 그들의 음성과 하나님께 외치는 소리는 돌들을 움직여 그들을 동정하게 할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소리치며 도움을 간구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을 바라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죄수처럼 두 손을 뒤로 묶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채 기도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말도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빈 영혼과 말 없는 정신만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은 참회의 옷을 입고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서 이마로 땅을 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 생활과 영혼의 상태를 생각하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통곡 소리를 죽이고 내면으로 신음하다가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어 갑자기 소리치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정신이 나간 것 같았고, 말을 잃고 절망의 불 속에서 눈물이 말라버린 것 같았다. 그들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벌하고 내세에서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탄원했다.

 

제 6사다리 : 죽음을 기억하는 것

그리스도는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셨지만(막 14:33) 겁에 질리지는 않으심으로 두 본성의 특성을 나타내셨다. 자연적인 두려움과 그렇지 않은 두려움은 분명히 구분된다.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며 몰두하는 사람은 성인이다. 주님께 진 빚을 완전히 갚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생각하지 않고는 경건하게 하루를 보낼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지 너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절대 죄를 짓지 말아라"(집회서 7:36)

 

제 7사다리 : 애통

애통은 거룩한 슬픔에 의해서 마음을 지키는 황금마차이다. 세례 받은 후에 흘리는 눈물은 세례 자체보다 위대하다. 세례는 예전에 우리 안에 있던 악들을 씻어내며, 세례 후에 범한 죄들은 눈물에 의해 씻겨나간다. 어렸을 때 받은 세례를 더렵혔지만, 눈물로 그것을 깨끗하게 한다. 신음과 비애는 주님께 소리치며, 흘리는 눈물은 우리를 위한 중재이다. 기도하고 탄원할 때는 재판관 앞에 선 죄수처럼 두려워 떨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애통을 결혼 예복처럼 입고 있는 사람은 영혼의 영적 웃음을 알게 된다. 슬프더라도 영혼에 유익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 하나님의 도움은 슬픔으로 고개 숙인 영혼을 소생시킨다. 때로 엄마는 숨어서 아기가 슬퍼하면서 이리저리 엄마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우리는 죽을 때 기적을 행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애통하지 못한 것에는 하나님께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제 8사다리 : 평온과 온유

온유는 칭찬을 받거나 받지 못하거나, 존경을 받거나 받지 못하거나, 영혼이 영향을 받지 않는 영구적인 상태이다. 노염은 감춰진 미움이요, 마음에 품고 있는 불평의 표시이다. 노염은 우리를 성나게 만든 사람을 해치고 싶은 소원을 말한다. 그러나 빛이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겸손의 향기 앞에서 모든 노염과 빈정댐이 사라진다. 모서리가 날타로운 돌을 계속 다른 돌에 문지르거나 두드리면 마침내 그 날카로운 곳이 둥글게 된다. 성난 사람은 간질병자와 같다. 불끈 성내면서 오랫동안 품었던 불평을 이야기 한것처럼 보이지만, 말없이 내면에 원망을 품으면 그 검은 원한 때문에 거룩한 흰 비둘기가 오는 것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향수를 뿌린 사람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향수에 의해 자신이 알려진다. 하나님의 영을 지난 사람은 말과 겸손함 때문에 알려진다.

언젠가 세 명의 수도사들이 동시에 동일한 형태의 모욕을 당했다. 첫째 사람은 아픔을 민감하게 느꼈지만 말하지 않았고, 둘째는 그 상처가 가져다 줄 상을 생각하며 기뻐 하였고, 셋째 사람은 자기에게 모욕을 가한 이웃이 당할 해를 생각하며 심하게 울었다. 노염을 정복하고 해방되어 면류관을 받을 사람들이다.

 

제 9사다리 : 악의

사랑이 많은 사람은 복수심을 몰아내지만, 미움을 품고 있는 사람은 골치 아픈 고역을 스스로 쌓아간다. 오직 마귀에게 악의와 원한을 품을 뿐이다. 육은 감사할 줄 모르고 믿을 수 없는 친구이므로, 육신을 원수처럼 다루어야 한다. 당신을 불쾌하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그에게 선물을 준비하여 주어라. 그에게 재난이 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를 위해 다윗처럼 슬퍼하여라. 악의를 품는 것은 독사를 품고 있는 것과 같음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사람과도 화목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10 사다리 : 비방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시 101:5) 비방의 영을 정복하려면, 실족한 사람을 나무라지 말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부추긴 마귀를 나무라야 한다. 비방하는 말을 들을 때 이렇게 말하라. "형제여 비방을 멈추시오. 나는 매일 그보다 더 나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 사람만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오."(눅 6:37) 비판받는 사람도 은밀하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분별 있는 사람은 비방을 피하고 다른 사람의 덕에 더 주목한다.

 

제 11사다리 : 수다와 침묵

수다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기를 즐기는 허영이요 기도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침묵하는 자는 은밀하게 하나님과 말하고 하나님은 그를 가르쳐 주신다.

 

제 12사다리 : 거짓말

분별이 있는 사람은 거짓말이 작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꾸물거리지 말고 그것을 멀리해야 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기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며 악을 깨끗이 씻어버린 영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제 13사다리 : 권태

권태는 영혼의 마비 상태이다. 완전한 죽음과 같다. 애통하는 사람은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과거의 죄를 기억함으로 영혼의 둔감을 깨닫고 일어서야 한다. 단련된 철은 단련되지 않은 것을 연마할 수 있다. 열성적인 형제는 게으른 형제를 구할 수 있다.

 

제 14사다리 : 탐식

대식가는 음식만 생각하지만, 애통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심판과 형벌을 생각한다. 아담을 타락하게 하고, 에서로 장자권을 뺏겨 멸망하게 한 것, 광야에서 원망한 원인, 노아로 수치를 드러나게 한 것,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의 타락 행위, 이 모든 것들이 탐식에서 나온 것이다. 탐식의 악덕을 정복한 사람은 담대한 사람이다. 음식을 배불리 먹고서 음란의 마귀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름으로 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제 15사다리 : 순결

순결한 사람이란, 거룩한 사랑에 의해서 육적인 사랑을 몰아낸 사람이며, 거룩한 불을 사용하여 육체의 불을 끈 사람이다. 순결은 모든 덕의 공통적인 명칭이다. 순결한 사람은 더렵혀지지 않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영혼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지체(肢體)들을 가진 사람이다. 진정한 순결의 표식은 잠자는 동안에도 꾸는 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악한 생각이 보내는 신호에 쉽게 굴복하는 것은 순결 부족에서다.

열심히 싸움으로 원수를 지배하는 사람이 있고, 겸손으로 지배하는 사람이 있으며, 거룩한 계시를 통하여 지배하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사람은 새벽별과 같고, 둘째 사람은 보름달과 같고, 세 번째 사람은 뜨거운 태양과 같다. 이들은 천국에서 모두 자기 집을 소유한다.

논쟁으로 마귀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본성은 마귀 편이다. 당신의 본성의 연약함을 주님께 바쳐라. 당신의 무능을 인정하라. 순결의 은사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범죄하기 전에는 마귀는 하나님은 관대하시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범죄하고 나면 하나님은 냉혹한 심판자라고 두 가지 말을 바꾸어 말한다. 죄로 이끌기 위한 말과 절망에 빠뜨리기 위한 말을 마음대로 한다. 영원하신 주님은 우리 몸의 깨끗함을 기뻐하신다. 반면, 마귀는 음란과 더러운 냄새와 몸의 더러움을 좋아한다. 몸 안에 거하는 이 적대적이고 민첩한 영적 원수를 대적하여 싸워 참패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이 신속하게 죄 사함을 받는다. 그러나 신속하게 정결을 획득한 사람은 없다. 많은 시간과 수고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제 16사다리 : 탐욕

탐욕을 정복한 사람은 염려를 버리지만, 탐욕의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 동전 두 푼으로도 충분히 천국을 살 수 있었다.(눅 21:2) 두 다리를 결박당한 사람은 걸을 수 없고,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없다.

 

제 17사다리 : 가난

수도사에게 가난은 염려를 베어내는 것이다. 가난한 수도사는 세상의 주인이다. 염려를 하나님께 맡긴다. 자기에게 오는 것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여긴다. 모든 것을 버렸기에 세상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몸을 주님께 바친 사람이 자기의 것이 어디 있겠는가. 경건한 동기로 재산을 포기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지만, 자기의 뜻을 포기한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다. 바다에 항상 파도가 일듯이 인색한 사람은 항상 침울하고 노여워한다. 욥은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마음이 평온했다.

 

제 18사다리 : 무감각

그는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말하지만, 상처가 악화하는 것을 중지시키지 못한다. 나는 잘못 행하고 있다 말하면서도 계속 그렇게 행한다. 일종의 수면 상태로 살아간다. 기도를 찬양하지만 마치 전염병을 피하듯이 기도를 피한다. 그는 온순함을 가르치는 도중에도 화를 낸다. 그는 구제를 찬양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한다. 몸이 비대한 새가 하늘을 날 수 없듯이 육체에 굴복하고 육체를 만족시키는 사람도 하늘나라를 향할 수 없다.

 

제 19사다리 : 잠, 기도, 시편 찬송

잠은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의식의 휴식이다. 그러나 원수들은 우리 침대 곁에 서서 좀 더 자라고 속삭인다. 어떤 원수는 기도하는 자들을 졸게 한다. 어떤 원수는 교회에서 잡담하게 만든다. 악한 생각을 부추기고 우리의 입을 찬송하는데 거의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크게 기뻐한다. 그는 마치 훈련을 마치고 시합을 간절히 기다리는 씨름선수와 같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과 마귀를 몰아내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물이 얼룩을 씻어내듯이 눈물이 죄를 씻어낸다.

 

제 20사다리 : 깨어 경계함

졸음은 영혼을 속박한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좋아, 좋아 말하지만 게으른 사람들은 아이고, 아이고 말한다. 지나친 잠은 게으른 사람에게 인생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훔쳐가는 도둑이다. 농부는 타작마당과 포도즙을 짜는 통에서 부를 얻고, 수도자는 저녁시간과 밤에 서서 기도할 때에 지식과 부를 얻는다. 장사꾼은 하루를 마감하면서 하루의 이익을 계산하지만, 수도사는 시편 찬송을 마치면서 하루 동안 얻은 유익을 계산한다. 잠자는 동안에도 시편을 묵상할 수 있다. 씨를 뿌릴 때, 싹이 나서 자랄 때, 그리고 수확할 때, 어떤 짐승과 새들이 해를 끼치려 하는지 알아내고 적절한 덫을 준비해야 한다.

 

제 21사다리 : 두려움

캄캄한 밤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장소에 가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의 갑옷을 입고 두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들을 채찍질하여라.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주님의 종은 주인이신 주님만 두려워할 것이다. 한편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종종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도 두려워한다. 겸손한 영혼은 천사가 가까이 있으면 크게 기뻐한다.

 

제 22사다리 : 허영

허영은 겸손한 모습으로 말하고 행동하여 방문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칭찬받으려 한다. 마귀의 전략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눅 6:26) 자석은 철을 마구잡이로 끌어당긴다. 나쁜 습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썩은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처럼 명예와 영광과 권세를 향한 것도 그렇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구더기가 완전히 성장하면 날개가 생겨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허영이 성장하면 교만을 낳는데, 이것이 모든 악의 시작이요, 또한 마지막이다. 허영에 매이지 않는 사람은 구원에 접근한다.

 

제 23사다리 : 교만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감시하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약 4:6)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10만번 죽는다 해도 진 빚을 다 갚지 못한다. 앞서간 선각자들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의 생각이 아직도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은 석류와 같다. 교만한 사람은 마귀가 필요하지 않다. 그는 이미 원수 마귀로 변했기 때문이다. 도둑이 밝은 곳을 싫어하듯이 교만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을 멸시한다. 그는 죽은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발견한다.

 

제 24사다리 : 온유, 단순, 순진, 그리고 사악함에 대하여

온유란 영예를 얻을 때나 치욕을 받을 때나 한결같은 정신을 말한다. 온유는 밀려오는 파도를 부수면서 흔들림 없이 노염의 파도를 바라보는 바위와 같다. 그래서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신다.(시 25:9)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온유는 순종과 나란히 접하여 일하면서 마귀를 속박하는 굴레도 되고 신랄함을 막는 방패가 된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만(마 5:5) 심술궂은 사람은 땅을 빼앗길 것이다. 주님은 단순한 분이시기에 사악함이 제거된 단순함으로 가는 자는 주님의 환영을 받는다. 멍에를 씌우는 주인에게 말대꾸하지 아니하는 짐승처럼 정직하고 순진한 영혼은 자기를 지도하는 지도자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리함에서 사악함에서 도망쳐야 한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마 11:29)

 

제 25사다리 : 겸손

회개는 우리를 들려 올려주고, 애통은 천국 문을 두드리며, 거룩한 겸손은 그 문을 연다. 겸손이 없는 곳에는 모든 것이 부패한다. 항상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고 항상 남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홀로 지내는 말은 종종 자신이 빨리 달린다고 상상하지만, 무리 속에 있으면 자신이 얼마나 느린지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스스로 죄인이라고 묘사하고 생각도 한다. 그러나 모욕을 받을 때 마음의 참된 상태가 드러난다. 위대한 사람들만이 모욕을 참고 견딜 수 있다. 열매가 달리지 않은 나뭇가지는 하늘을 향해 뻗지만, 열매를 많이 달린 가지는 아래로 휘어진다. 거룩한 겸손은 하나님으로부터 삼십배, 육십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능력을 받는다. 새들이 매를 두려워하듯이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은 논쟁을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 계시, 표적 없이도 구원을 받았지만, 겸손이 없이는 신랑 예수님의 품에 안기지 못한다. 우리 주님은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서 겸손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천사 중 하나는 다스리는 자라는 사실 때문에 교만해졌다. 교만이 천사 중 몇을 마귀로 변화시킨다면 겸손은 귀신 같은 자를 천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악한 세력과 싸우기 원하는가? 겸손과 동맹을 맺으라. 겸손이 사나운 뱀들을 밟을 것이다. 사슴은 눈에 보이는 뱀을 죽이고 겸손은 영의 뱀을 죽인다. 무기가 아니면 사나운 짐승을 죽일 수 없고 겸손하지 않으면 노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 26사다리 : 분별

마귀는 우리가 부주의할 때에 우리 영혼을 공격한다. 언젠가 세 사람의 수도사가 벌을 받았다. 한 사람은 화를 냈고 한 사람은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세번째 사람은 기뻐하여 벌을 받았으므로, 같은 처지에서도 큰 유익을 얻었다. 농부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씨를 뿌렸다. 한 사람은 빚을 갚을 계획으로, 다른 이는 부자 되기 위해, 다른 이는 주님을 영화롭게 할 선물을 거두기 위해서다.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분이심에도 헤롯으로부터 도망치셨다.(마 2:14) 요셉이 복되다 여김 받는 것은 죄의 원인을 피했기 때문이다.(창 39:12) 그늘에서 나오는 것과 서둘러 의의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다 필요하다. 하나님은 동기를 주의 깊게 보신다.

주님이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시지 않는 듯 보여도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청원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거나, 합당하지 않거나, 허영심에서 비롯된 청원이거나, 응답을 받으면 자만하게 될까 해서일것이다. 계속해서 하루의 첫 열매를 주님께 바쳐라. 그것에 따라 남은 하루가 결정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첫 생각을 더럽히는 마귀가 있다. 지옥에 가는 길이 많듯이 거룩함에 이르는 길도 많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행동만 요구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면서 진흙과 혼합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그레고리)

 

제 27사다리 : 정적

정적이란 생각들을 배제하는 것, 심지어 합리적인 염려까지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깨끗한 마음을 바치기 원함이다. 기도의 가치를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야성(野性) 당나귀를 피하듯이 북적임을 피하고 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고 예배하는 것이다. 호흡할 때마다 예수님을 기억한다.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과 움직임이 주님의 뜻대로 행해진다면, 주님이 실제로 거기 계시는 것 같은 영적인식과 더불어 주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은 흔들림이 없는 영혼의 자세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멀리 있는 원수와 가까이 있는 원수를 공격하는 방법을 안다. 서 있거나 걸어갈 때, 앉아있거나 일어설 때, 기도하거나 잠잘 때 어느 때든 끊임없이 공격하는 영을 공격해야 한다. 일보 진보한 사람은 깨어 있을 때 뿐 아니라 잠잘 때 접근하는 마귀도 멸시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 16:8) 말씀에 경주해야 한다.

 

제 28사다리 : 기도

기도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결합이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룬다. 시험을 건너는 다리요 고통을 막는 방벽이다. 은밀한 발전이고 영혼의 양식이다. 낙심을 잘라내는 도끼요, 그리스도인의 재산이다. 상처에 바를 향휴다. 세리의 한마디, 십자가 오른편에 달린 강도의 간결하고도 애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참된 기도를 획득하지 않는 한,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경우가 될 것이다.

기도의 출발점은 분심(分心)을 쫓아내는 것이다. 중간 단계는 기도하면서 말과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주님 안에 있는 큰 기쁨이다. 정신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도록 허락한다면 정신을 우리 곁에 두지 못할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이 빗나갈 때 기도가 강탈당한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마귀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의 기도는 더렵혀진다. 기도의 형태를 형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기도의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도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조르는 것이므로(눅 18:5) 혹시 넘어져도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기도를 주시며 의인의 삶을 축복하신다.

 

제 29사다리 : 무 정념

무 정념이란 마음 안에 있는 정신의 천국을 의미하며, 육체에서 부패함을 완전히 씻어 버린 사람, 영혼이 끊임없이 주님 앞에 거하며 힘껏 주님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다. 몸의 부활에 선행하는 영혼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이 거룩한 항구에 들어온 사람은 세상에 사는 동안 천국에 있는 사람들처럼 큰 기쁨을 느낀다. 순결을 무 정념이라고도 한다. "나는 악한 자가 오는 이유와 시간을 알지 못하며 또 어떻게 떠나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는 완전히 하나님과 연합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연합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살고 계시는 단계다.(갈 2:20)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딤후 4:7)

 

제 30사다리 : 사랑과 믿음과 소망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다. 본질상 사랑은,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도까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사랑이 떠나면 두려움이 나타난다. 거룩한 사랑은 무엇인가를 사로잡는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 4:9) 이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번져 나간다. 소망은 사랑의 배후에 있는 능력이다. 소망을 가진 자는 낙담을 죽인다.

믿음은 만물을 만들고 창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