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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해설(5)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by PAUL posted Feb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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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8복 해설(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7)
(토마스 왓슨의 팔복해설을 요약 함)

이동휘 목사

 

솔로몬의 성전 계단같이 이 팔복은 지성소로 올라가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무자비한 세대는 어느 때보다 긍휼이 필요하다. 크리스톰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이 긍휼에 대하여 설교하였고 그래서 ‘자선 설교가’ 혹은 ‘긍휼을 위한 설교가’라고 불렀다. 히브리말로 경건하다는 것은 자비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따라서 더 경건한 사람은 더 자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긍휼이 여기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고 긍휼이 없는 사람의 머리에는 저주가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1. 긍휼히 여김의 본질과 원칙

사랑과 자비는 어떻게 다른가? 사랑은 광범위한 것이지만 자비한 자는 곤궁한 사람을 알맞게 고려한다. 사랑은 잘 지내는 사람을 방문하는 친구와도 같다면 자비는 꼭 아픈 사람을 왕진하는 의사와도 같다. 사랑은 애정에서 더 넓게 행동하고 자비는 양심의 원리에만 따라서 행동한다. 자비는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데 사랑은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 이와 같이 둘은 서로 틀리지만, 다음의 점에 있어서는 같다. 둘 다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그 날개 아래에는 치료함이 있다.
어디에서 자비가 샘솟아 나오는가? 그 샘 근원은 본성보다 더 높은 곳에서 흘러내린다. 본성이 우리는 자비로부터 거리가 멀다. 죄인은 단 과일을 맺는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가시덤불이다. 무자비함이 자연적 사람의 성격이고 표이다.(롬1:31) 죄인이 회심하기 전에는 그 잔인성 때문에 늑대에 비유되며 그 난폭함 때문에 사자에 비유되고(사 11:6) 그 찌르는 것 때문에 벌에 비유되며(시 118:12) 그 독 때문에 독사에 비유된다.(시140:3) 본성적으로는 기름을 내놓지 못하고 악의에 찬 독을 내놓는다.
타고난 무자비함 말고도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에 의하여 사로잡혀 악하게 되니 자비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태양이 비칠 때 얼음은 녹는다. 의의 태양이 영혼 위에 은혜의 햇살을 비추면 녹아버린다. 먼저 새사람이 되어질 때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지체를 도울 수 없다.


2. 자비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까지 미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영적 자선이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비 중 으뜸이다. 영혼은 가장 귀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숨으로 불 붙여진 불꽃이고 진흙의 반지에 붙인 값비싼 금강석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피를 흘리셨고 그것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렇게도 높은 출생 연월일을 가졌고 태고로부터 흘러나왔기 때문에 영혼에 부어지는 자비는 가장 훌륭한 것일 필요가 있다. 네 가지의 방면으로 영혼을 불쌍히 여길 수 있다.
① 그들을 동정하는 것
“영혼이 떠난 육체를 위하여도 우는데, 하나님을 떠난 영혼을 위해 어찌 울지 않겠느냐?”(어거스틴)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고 피를 내는 사람을 볼 때 동정심을 가지는데(막 5:5) 죄인이 자신을 찌르고 그의 손을 자신의 피에 적시는 것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안타까움이 솟는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자비를 버렸기 때문에 진노하셨다.
② 영혼을 불쌍히 여길 때에 죄인들을 충고한다.
그들의 위험을 보라. 죽음이 그들을 슬쩍 밀어 넣기만 해도 그들은 그 안으로 떨어질 위기에 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딤후 2:25) 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원수의 당나귀가 짐을 지고 넘어진 것을 보면 도와주어야 한다는 규례를 만드셨다.(출 23:5) 크리소스톰은 “짐승이 짐을 지고 넘어져도 도와주어야 하는데 더 나쁜 짐을 지고 넘어진 사람에게 구출의 손을 뻗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였다.
③ 순종하지 않는 영혼들을 책망하는 것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맹목적인 동정은 잔인함보다 나은 것이 없다.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딛 1:13) 통렬하게 꾸짖으라는 말이다. 외과의사가 살을 자르고 도려내지만 그것은 치료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절개하여 죄의 피가 나오게 함으로써 영적인 수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긍휼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유 1:23) 어떤 사람의 집에 불이 났는데 그것을 보고도 그들의 단잠을 깨우게 될까 하여 고함치지 않는다면 잔인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사람이 죽음의 잠을 자고 있어 진노의 불이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는데 침묵만 하고 있다면 이것이 그들 죽음에 대한 공범이 되지 않겠는가?
④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는 것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마귀에게 영혼을 내주었다가 루터의 기도로 구원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유두고도 높은 다락방에서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바울이 기도하여 살게 되었다.(행 20:9-12) 영혼을 위해 무시로 뜨겁게 기도하면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불러오는 것이다. 목회 사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은 영혼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마귀의 요새를 쳐부수는 강하고 영광스러운 병기이다. 말씀 사역은 빛을 가져올 뿐 아니라 눈에 바르는 안약과 같다. 죄를 죽이고 영혼을 소생시키는 법령 선포이다.


3.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자들에 대한 책망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자는 악한 율법사, 악한 목회자로 책망 받는다. 악한 율법사는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도 악을 묵인하여 지나친 자유로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만드는 자다. 묵인하는 자는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가더라도 말리지 않는 자다. 사람들은 죄에 발이 빠른데 또한 악의 길로 속도를 높여주는 이러한 환경 속에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악한 목회자는 양들의 영혼에 동정심을 갖지 아니하는 자다. 그들은 양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재물을 찾는다. 목회자는 빛을 주는 별이어야 한다. 진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구름이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죄를 지적할 때는 크게 외치고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야곱의 집에 그 죄를 고하는 것이 목회자의 의무다.(사 58:1) 이와 같은 열심은 제단의 불과 같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죄짓는 것에 침묵하는 것은 살인행위다. 마귀의 고용인이 되어 사탄과 더불어 영혼을 죽이려고 온 땅을 헤매는 사람도 있다. 약한 자들은 강하게 하고, 영적 방황을 줄이고, 낙심한 자들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4.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이름을 아껴주어야 한다.

형제의 좋은 이름을 짓밟고도 양심의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무자비한 행동이다. 그들의 목구멍은 사람들의 명성을 묻기 위한 열린 무덤이다.(롬3:13) 사람의 이름을 짓밟는 간접행위는 대단히 잔인한 것이다.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져갔도다.”(아 5:7) 아름다운 웃옷과 같은, 그를 덮고 있는 명예와 명성을 벗겨버린 것과 같다.
교만한 자는 자기가 무색하게 되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뭔가 낮아지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좋은 이름을 목 잘라 버린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명성을 끌어내려서 그것이 빛을 잃게 함으로써 자기가 더 빛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자의 숨결은 다른 사람에게 독기를 뿜어내고 곰팡내가 나게 한다.
시기심 많은 사람 역시 그 이름에 해를 입힐 방법을 찾는다. 믿음 생활은 다른 사람이 존경받고 명성이 올라가는 것을 기뻐하도록 가르친다. 좋은 평판은 신앙생활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좋은 이름을 가졌어도 마귀의 자문을 받은 시기심은 다른 사람의 그 좋은 이름을 날려 보내려고 지옥에서 연속적으로 불을 가져온다. 마귀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쓴다.
① 잘못된 소문을 퍼뜨린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출 23:1)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들이 짓지도 않은 많은 죄를 뒤집어씌우는 모함을 받아왔다. 제수잇파의 수리우스는 루터에 대해 그는 마귀 신학을 배웠고 술 취해서 죽었다고 소문을 내었다.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 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시 35:11) 마귀는 중상자를 의미한다. “모함하지 말며”(딤전 3:11)는 “마귀가 되지 말며”란 뜻이다. 다른 사람을 중상하는 것은 마귀와 한 짝이 되어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귀한 이름을 쥐어뜯고 찢는다. 그레고리 교황은 중상하는 사람은 파문되어야 하고 수찬 정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② 중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들은 것을 퍼뜨리는 것도 무자비한 행위다. 우리는 허망한 풍설을 내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말아야 한다. 확인도 없이 전파하는 일 역시 정죄를 면할 수 없다.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레 19:16) 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은 그를 산 채로 매장하는 것이다. 이름의 상처는 금강석의 흠과 같아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의사도 혓바닥의 상처는 고칠 수 없다.
③ 약점을 듣고 그 사람의 인격을 축소시킨다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무자비하게 취급하는 일이다. 대수도원장 이드로는 한 번도 남을 비방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들은 일이 없다는 말을 했다. 어거스틴은 탁자에 앉아 남을 비방하는 사람에게 글을 써 놓았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이름을 깎아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탁자에 앉을 자격이 없으니, 그를 굶게 하라” 이들은 창조할 힘은 갖고 있지 않으면서 멸절시킬 힘은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모방은 못 해도 금방 폐지시킬 힘은 있다. 마귀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희미하게 만들고, 작게 만들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끊어 없애 버린다.
④ 다른 사람이 중상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 결백함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을 때 무자비함이 된다.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중상하는 것처럼 나쁠 수가 있다. 부당하게 비난받을 때 변호하고 옹호해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 하자 술 취했다고 비난받을 때, 베드로는 일어나서 공개적으로 그들의 결백함을 입증하였다.
⑤ 위증하는 것은 거짓 서약을 하는 것이므로 잘못 맹세하는 무자비한 일이다. 하나님은 책임 있는 말을 요구하신다. 쓸데없는 말도 책임져야 하지만 근거 없는 비방도 책임져야 한다.
⑥ 특히 경건한 사람의 이름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 위에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셨는데 그것을 빼앗으려는가? “너희가 어찌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 12:8) 성도를 중상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중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들 위에 그려져 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 천국에 기록된 성도의 이름을 땅에서 지워버리려는가?


5. 긍휼은 다른 사람들의 재산, 괴롭힘 등에 대해서도 베풀어야 한다.

악한 사람은 강탈, 약탈로 빼앗은 먹이를 먹고 사는 짐승에 비유된다.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시 10:9) 빚진 자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는 행위는 잔인한 것이다. 그가 생활할 수 있는 방편은 남겨 두어야 한다. 빚의 얼마라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탕감하여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해롭게 함에 대해서도 긍휼이 있어야 한다.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할 때는 일어섰으나 원수를 위한 기도에는 무릎을 꿇었다. 간절한 간구다.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16세기 크렌머는 그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 그에게 호의를 구하러 오면 그를 위해 줄 수 있는 일을 다 해주었다. 이것이 잠언이 되어 “크렌머에게 해를 입히라. 그러면 그가 살아있는 한 그가 너희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악을 선으로 이기며 또 자비로 대답하는 것은 영웅적인 것이며 영광스러운 생활이다.


6. 궁핍한 자에 대한 사랑

① 가난이 얼마나 슬픈 상태인가를 생각하라.
크리소스톰은 가난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고속도로라고 부르기는 했으나 이 길을 계속 가는 사람은 울면서 가게 된다고 했다. 그들의 눈물, 한숨, 죽어가는 신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외투 대신에 해어진 옷을 입었고 침대 대신에 돌 베개가 있을 뿐이다. 슬픔의 양식을 먹으며 눈물을 마신다.
② 가난은 십자가가 될 뿐 아니라 덫이 된다. 악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아굴이 “나로 가난하게 마옵시고”(잠 30:8)라고 기도한다. 아쉬우면 사람들은 바르지 않은 방법을 쓰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위해서는 자기 영혼에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고 하려 한다. 구제금이 많음은 죄를 막을 수 있다.
③ 지혜의 하나님께서 세상에 불공평한 일이 있도록 하셨을까? 생각해 보라. 그것은 우리에게 긍휼을 훈련시키려는 이유다. 모든 사람이 다 부요하다면 구제가 필요가 없고 자비로운 사람이 잘 알려질 수도 없다.
④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2) 우리에게 언제나 평화로운 날만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룻 1:21) 참 신앙인은 하나님에 대하여 깊은 회개의 눈물로 마음이 녹듯이 사람에 대해서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마음이 녹는다.
⑤ 긍휼은 인색하지 않은 기부에 있다.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그 손을 그에게 펴서.”(신 15:7) 궁핍하고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넉넉한 지불을 하나님은 명하셨다.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레 25:35)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출 23:11) 가난한 자를 위한 십일조도 있다.(신 14:28-29) 신약에서도 같은 교훈을 준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7. 참 교회에 대한 행함의 교리

믿음의 등잔에 자선의 기름을 채워야 한다. 믿음은 자체만으로도 옳은 것이지만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체만으로 안 된다. 믿음에서 행함을 떼 내는 것은 불에서 열을 떼 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선한 행위는 구원의 근거는 되지 않지만 구원받은 증거가 된다. 구원의 기초는 되지 않지만 그 상부구조가 된다는 말이다. 믿음이 행함 위에 세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행함은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은혜이고 행위는 믿음이 낳는 자녀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꽃들이 아름다워도 빛이 올 때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믿음으로 가득 차도 그것은 밤중의 꽃과 같아서 행함이 따르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칠 때에 믿음이 그 본래의 빛깔을 나타낸다.


8. 자비롭지 못한 사람에 대한 제재

자비롭지 못한 사람은 단지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풍부한 재산이 있지만 선한 용도를 위해서 그 손을 뻗칠 수가 없다. 모두를 자신들만을 위해서 가졌지 그리스도를 위해서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들을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삼상 25:11) 아테네에는 자비의 사원이라 부르는 사원이 있다. 자비의 사원에 한 번도 참례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것은 가장 심한 치욕이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너무 아낌으로 그들의 영혼을 잃고 있다. 벌집처럼 단 말을 떨어뜨려도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비의 동정을 미루는 동안은 기독교의 배지(badge)를 달기를 미루는 사람이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 2:13) 하였다. 한 번도 자비를 베푼 적이 없는 사람이 어찌 그리스도의 자비를 받은 생각을 하겠는가? 부자가 나사로에게 빵부스러기를 거절하였기에 그는 한 방울의 물도 거절당했다. 대부분 사람은 어떻게 재산을 모을까? 늘릴까? 어떻게 유지할까? 하는 염려로 자신을 괴롭힌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부자라고 부른다. 당신의 신앙심이 당신의 탐욕을 깨뜨리지 못하면 당신의 탐욕이 당신의 신앙을 깨뜨릴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라”(마 25:42) 호령을 칠 것이다.


9. 긍휼의 권면

성경은 자비를 경건의 정의로 내렸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가난한 자란 말은 텅 빈 자, 바짝 마른 자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는 말라버린 연못과 같이 힘과 아름다움과 재산이 고갈된 사람이다. 그들의 삶의 위로는 묻혀 버렸다. 대제사장 아론은 그 옷에 금방울과 석류를 달았다. 석류는 선행의 상징이다. 동방박사는 그리스도에게 절하고 경배만 한 것이 아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 “당신이 지킬 수 없는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당신이 잃을 수 없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의 말이다. 사람들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눈먼 사람들의 눈이 되고 절름발이의 발이 되어주라. 자비의 손길로 떠받쳐 주지 않으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경우의 사람도 있다.
재산은 나누어 주어도 가난해지지 않는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잠 11:25)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은 해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였을 때는 부유하였으나 주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에 부패하기 시작하였다. 꽃은 꿀벌에게 꿀을 생산해주지만 꽃이 열매 맺는 일에 도움이 된다. 떡을 나누어 주었을 때 더 늘어났고 과부의 기름을 부을수록 불어났다.(마 14:19-20, 왕상 17:16)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만큼 하라. 물질로 할 수 없다면 마음으로 하라. 연보 궤에 넣었던 과부의 적은 두 렙돈도 받아졌다.(눅 21:4) 하나님은 그의 적은 돈을 보신 것이 아니라 가장 큰마음을 보신 것이다. 율법에 보면 어린양을 가져올 수 없는 사람은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도 충분했다. 비록 하찮은 염소 털을 성전 건축을 위해 가져왔어도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사람 중에 발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신은 많은 것을 가졌다. 금을 줄 수 없을지라도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잠 25:11) 같은, 경우에 꼭 맞는 말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동정하고, 기도하고,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 도울만한 재력이 있는 사람을 격려하여 그로 도울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10. 긍휼의 실천을 위한 권면

① 우리를 지으신 큰 목적은 선을 확산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별은 빛나고, 새는 노래하고, 식물 열매를 맺고, 사람의 목적은 섬기는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받았다. 세상에는 오래 머물렀으나 사는 것같이 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땅에 무게만 더해 주는 사람이면 불행하다.
② 긍휼을 실천해야 긍휼의 하나님을 닮는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시 145:9)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지 않고 살 수 없는 피조물은 없다. 숨을 쉴 때 마다 긍휼을 마신다.
③ 긍휼은 제사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고넬료의 기도와 그리고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행 10:4)
④ 우리는 매일 구제를 받고 산다. 태양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고 풍성하게 해준다. 땅은 열매를 가져다준다. 모든 피조물이 유익을 제공하는데 사람만이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가?
⑤ 우리는 한 지체이다.(고전 12:27) 눈과 손, 머리와 발 다 연결되어 서로 돕고 도움받는다.
⑥ 우리는 재산의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이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눅16:2) 다 놓고 떠난다. 재산을 감추는 것은 낭비하는 만큼 위험한 것이다.
⑦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셨다. 트라얀 황제는 자신의 왕복을 찢어서 부상당한 군인의 상처를 싸매었으나 예수님은 그의 살을 찢어 약으로 만들고 그 피로 치료하여 생명을 살렸다. 몰락하는 인간을 구출하셨다. 그 은혜를 온 세계에 베풀 의무가 있다.
⑧ 무자비의 죄. 받은 것 주지 않으면 빼앗긴다.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호 2:9)


11. 자선의 행위에는 보상이 따른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중에 한 것이 내개 한 것이니라.”(마 25:40) 가난한 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손은 그리스도의 금고이어서 거기 넣는 것은 잃지 않는다. 땅에서는 보상을 받게 되고 천국에서는 상급을 받게 된다. 땅에서 받을 보상을 생각해 본다.
① 자신이 복을 받는다. 빈약한 자를 돌보는 자재앙의 날에 저를 건지신다.(시 41:1)
②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잘 된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기억된다.(시 112:5-6)
③ 그의 재산이 복을 받는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풍족하여지고 윤택하게 된다.(잠 11:25)
④ 자손이 복을 받는다.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다.(시 37:26)
⑤ 사업이 복을 받는다. 구제할 것이요네 범사와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신다.(신 15:10)
⑥ 재앙의 날에 건지신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재앙의 날에 건지신다.(시 41:1)
⑦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12. 긍휼의 여섯 가지 법칙

①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신 15:10) 자선은 샘물이 솟아오르듯 해야 한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② 우리 자신의 것으로 주어야 한다.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라.(사 58:7)
③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야 한다. 믿음에서 샘솟지 않은 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소용없다고 하였다.(오리겐, 크리스소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산몸, 그의 성도들에게 향유를 바르자.
④ 겸손하게 행하여야 한다. 벌레는 가장 좋은 열매 속에서 번식한다. 과시하는 교만이 우리들의 가장 좋은 일에 기어들어 오기 쉽다. 향료 상자 속에서 죽음의 파리를 조심하라. 바리새인들은 자선을 행할 때에 나팔을 불었는데 이것이 그들의 죄였다. 칭찬을 사고판 것이다. 성도는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나이까”(마 25:37) 말해야 한다.
⑤ 적당한 대상과 시기를 잡으라.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라. 꺼져가는 등잔부터 기름을 주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집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을 양육하라. 그들이 교회나 국가의 기둥이 될 것이다. 시기도 재빨리 주는 것은 두 배로 주는 것이다. 미루지 말고 시원시원히 손을 놀려라. 부득이한 조처로 주는 것이 되지 않게 하라. 건강할 때 주어라.
⑥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라.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감사해야 한다. 받는 자의 대열에 서지 않고 주는 자의 대열에 섬을 감사하라. 줄 수 있는 풍성한 재물과 마음 주심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