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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해설(7) -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by PAUL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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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8복 해설(7)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마 5:9)
(토마스 왓슨의 팔복해설을 요약 함)
이동휘 목사

 

1. 화평의 마음이 있어야 화평하게 한다.

마음이 성결한 자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화평을 말씀하신다. 성결한 자는 화평의 열매를 가진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약 3:17)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① 인간은 날 때부터 화평의 구조다.
동물들은 공격적이다. 사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다. 멧돼지는 길게 뻗어 나온 이빨을 가졌고 벌은 침을 가지고 있다. 맹렬한 분노로 무장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나올 때부터 벌거벗은 채 아무 무장을 하지 않고 나왔다. 사람은 상냥하고 부드럽게 살아야 하는 구조다. 더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영적 존재다.

 

② 화평함은 영예로운 것이다.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잠 20:3) 고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화평을 사랑하는 자이고 고상한 장식이다.

 

③ 분별력 있는 삶이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 17:14)

 

④ 화평을 좋아하는 마음에 화평이 따라온다.
옹고집의 마음은 그가 가진 것도 즐기지 못하지만, 마음이 평온한 사람은 화평의 달콤한 음악이 그를 따라온다. 화평은 영혼 속에 안정과 조화를 만들어 준다. 연합하여 동거함이 선하고 아름답다 했다.(시 133:1)

 

⑤ 화평을 좋아하는 성품은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다.
성부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라 불려진다.(히 13:20) 자비와 화평이 그의 보좌 주위에 있다. 성자 하나님은 평강의 왕이라 불리 운다.(사 9:6) 그는 화평의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성령님은 화평의 영이시다. 위로자이다. 하나님은 화평을 좋아하시는 마음에 머무신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⑥ 예수님의 기도는 화평을 위한 기도였다.
그의 백성이 하나가 되어 한마음과 한뜻이 되기 위해 기도하셨다.(요 17:11, 21) 아버지와 그리스도와는 어떤 불화도 없다. 하나님이 아들을 품에서는 떠나보내셨지만 마음에서는 언제나 하나였다. 우리가 화평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하는 것이다.

 

⑦ 그리스도는 화평을 위해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화평을 위해 피를 흘리셨다.
“십자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골 1:20)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을 단단히 결합시키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셨다. 그가 화평을 위해 기도하신 것처럼 화평을 위해 값을 치르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평안의 매는 줄로”(엡 4:3) 매시기 위하여 자신이 매이셨다.

 

⑧ 다툼과 분쟁은 은혜가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가시와 찔레밖에 없는 땅에서 좋은 씨가 자랄 수가 있겠는가? 마음이 가시에 찔려 찢기고 할퀴기만 하면 은혜의 씨가 자랄 수가 없다. 여기서는 믿음도 자랄 수가 없다. 쓸개같이 쓴 사람이 성령의 단 열매를 맞을 수 없다. 몸에 독기가 들어오면 독을 몰아내기 전에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이 그럴듯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도 노와 증오의 독을 품을 때에는 아무 영적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다.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들어도 사랑과 화평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지 못한다.

 

⑨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화평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석이다.
그리스도인들 간의 화평의 모습은 비둘기 떼를 창가로 모으는 모이 같은 것이다. 화평과 단합의 모습은 아름다운 돌로 지은 집과 같아서 사람들이 보기 위해 달려오게 된다. 반면 화평하지 못한 마음은 믿던 사람들로 교회를 떠나게 한다.

 

⑩ 화평하게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 9:50) 성도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집이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주님이 분부를 듣지 않고 불화나 화평치 못한 마음을 품으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집에 가까이 오실 수 없으시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서 계시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 화평의 방해요소를 제거하라

① 우리에게 속삭이는 흉한 소식에 붙잡히지 말라.
우리를 성나게 하고 약 올리게 하는 소식이 많다. 말거리를 물어 나르는 마귀의 우편 배달자 가 많다. 불화의 숯불에다 부채질을 한다. 노를 자극하라고 격려하는 마귀의 심부름꾼 하는 자에게 귀를 막아야 한다.

 

② 자기 자랑과 교만을 허물라.
자기 우상을 세우는 자다. 자신의 세계를 독점하고 울타리를 단단히 친다. 교만한자는 모든 성공을 자기의 것으로 돌린다. 교만과 다툼은 쌍둥이다.

 

③ 시기는 다툼을 일으킨다.
시기는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참지 못한다. 시기심 많은 사람은 남의 곡식이 더 알차든지 장사를 더 잘하면 다투려고 한다.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4) 시기는 피를 빨아먹고 사는 해충이다.

 

④ 교회의 분열을 아파하라.
교회의 화평의 옷이 찢어진 것을 보는 것이 우리를 괴롭힌다. 유리안은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할 때 그들은 서로 찢고 삼키는 호랑이처럼 모여 산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비둘기들이 서로 싸우고 그의 백합화가 가시덩굴이 되는 것은 꼴불견이다. 3세기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두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명령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다툼을 내려놓든지 신자라는 겉옷을 벗어 놓든지 하라. 다툼의 사과나무가 자라는 곳에 복음이 번창하는 일은 드물다. 혓바닥이 엉키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이 방해를 받는다. 분열은 “의와 평강의 열매”(히 12:11)를 벌레처럼 갉아먹고 파괴한다. 교회가 분열할 때마다 사람들이 불신자로 돌아섰다.


3. 그리스도인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

불화를 치유하도록 노력하고 갈라진 틈을 수리하는 사람이 되자. 예수 그리스도는 크게 화평케 하는 자였다. 그는 화평을 만들기 위해 하늘에서 땅까지 긴 여행을 하셨다. 화평과 단합은 하나님의 교회를 확고하게 하는 방법이다. 성도들은 영적 집을 지어가는 산돌이다.(벧전 2:5) 집들을 보면 돌들은 서로를 지탱해주고 도와준다. 만약 돌들이 느슨해지고 한두 개가 빠져나가면 모든 건조물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이었을 때 얼마나 든든하였는가! 화평은 땅 위의 하나님의 교회를 어느 면에서 하늘의 교회를 닮게 만든다. 천사들을 나타내는 성막의 그룹들은 그 얼굴들을 서로 마주 보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화평과 단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천국에 있는 영들 사이에는 알력이나 불화는 없다. 한 천사의 의견이 다른 천사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비록 다른 명령을 받았어도 다른 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스랍들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불탄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싸움의 열로 불타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뜨거움으로 불탄다. 천사들은 청결한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합된 마음으로 섬긴다. 화합된 화평에 의해서 우리는 승리의 교회를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화평을 심는 자는 화평을 거둔다.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 12:20)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자신의 가슴속에 화평을 간직한 것인데 자신의 가슴에서 만들어진 화평만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화평을 누린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와 연합될 것이다. 모두가 그를 존중히 여길 것이다. 그를 일컬어서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사 58:12)라 부를 것이다. 결론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가운데 죽을 것이다. 그는 훌륭한 양심을 지니고 살다가 훌륭한 이름을 남길 것이다.


4.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결코 잘못 부르시는 법이 없다. 그는 자녀가 아닌 자를 자녀라고 부르시지 않는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눅 1:76)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은 그들이 자녀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자녀가 되는 영광이다. 하나님은 많은 자녀를 가지셨다.

 

① 본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우리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아니다. 제롬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낯선 자이며 원래는 마귀가 우리 아버지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며.”(요 8:44) 악인은 지옥에서 그의 가문의 기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② 하나님의 자녀는 양자로 택하심과 은혜로 부어주심으로 자녀가 되었다.

“너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양자된 자는 그의 옛 마귀의 가족과 지옥으로부터 나와 고귀한 가족인 천국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들어간 가족의 권리와 특권을 다 합법적으로 누린다. 죄인의 신분에서 아들이 되고 죄인이 아니고 성도가 된다. 의롭다 하심과 영화롭게 된다. 옛날과는 단절이 된다. 양자가 되는 대가는 예수님의 피 뿌림으로 그 근원을 둔다. 그래서 은혜로 부어주심이 된다.

 

③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
우리가 반역하고 배신하였는데도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비를 얻게 된 것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값없는 은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게 되는 것은 믿음이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믿음이 역사하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빨아드려서 그분을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접합시킨다.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5.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의 9가지 표

어거스틴은 모든 인류는 두 가지 종류, 즉 하나님의 자녀 아니면 마귀의 자녀로 나뉜다고 말했다. 자녀 된 자의 표는 무엇일까?

 

① 마음의 부드러움이다.
“내 앞에서 겸손하여… 통곡하여 옷을 찢고.”(대하 34:27) 전에는 부싯돌같이 단단하던 사람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되어 어떤 도장이든지 하나님이 그 위에 찍으실 수 있다.
부드러운 마음은 죄를 몹시 슬퍼한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보시자 그는 죄가 생각나서 어린아이 같이 울어 그 부드러운 마음을 보여 주었다. 알레산드리아의 클리맨트는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아주 작은 티끌이라도 눈에 눈물이 나게 한다. 작은 죄라도 심령이 가책받게 한다. 다윗의 마음은 사울왕의 옷자락을 베었을 때도 가책을 느꼈다.
부드러운 마음은 긍휼로 녹는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의 햇살 아래 있을 때 가장 잘 녹는다. “주님, 제가 무엇입니까? 죄를 섞어 반죽한 진흙덩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찬란한 빛이 제게도 비칩니다. 제가 피투성이가 되어 누웠을 때 당신께서 제게 동정을 베푸시고 긍휼의 황금나래를 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불타오른다.
두려운 마음은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고 떤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시 119:120)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② 하나님에게 동화됨이다.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좆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자녀는 아버지를 닮는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들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닮는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과 인상을 지닌다. 악인들은 하나님과 닮은 점이 너무나도 없다. 사탄을 더 닮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온유하시고 거룩하심을 닮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산 모습니다.

 

③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는 것이다, 성령은 삼중으로 일하신다.
첫째, 거듭나게 하시는 일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 창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하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첫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 출생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본질의 변화다. 새 출생을 믿는 자는 위대한 비밀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웃음이다. 거듭난 성도는 죄를 뿌리부터 알아보는 민감성이 있어서 예민한 반응을 한다. 영적 생활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는 믿음 가운데 살지만,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낸다.

 

둘째, 간구하게 하신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가슴속에서 그 영혼이 숨 쉬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달콤하고도 친근한 교제이다. 성령님이 마음속에 들어오시자마자 그분은 마음을 기도하는 상태로 조정에 놓으신다. 하나님 자녀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기도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성령의 주된 일이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는 믿는 기도이다. 믿음은 그것을 돌리는 손이다. 믿음은 기도의 화살에 방향을 잡는 깃털이 되어 은혜의 보좌에 콱 박히도록 해준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2) 기도하면서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거나 받아드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하나님께 대한 조롱이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믿음이 함축되어 있고 부르짖는다는 것은 뜨거움이 포함되어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가 오지 않지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약 5:17) 헬라어 원문은 “그가 기도 중에 기도를 하였다”라 했다. 격렬하게 기도한 것이다. 기도 중에 마음이 감동의 열로 끓어 올라야 한다. 출산의 산고와도 같다.

 

셋째, 마음에 증거 하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을 뿐만 아니라 증거를 받는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성령은 양심에 성경의 기록을 조사하여 천국의 증거를 찾도록 가르치신다. 성령은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신다.

 

④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날, 그의 진리, 그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낸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이 모욕당하시는 것을 참지 못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사건을 일으켰을 때 그는 십계명 돌 판을 깨뜨렸다.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는 그 마음에 분이 일어났다. 격분한 것이다. 다윗은 “주의 전을 위한 열심히 나를 삼키고”(시 69:9) 말했다. 한때 열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상태에 빠진 것을 본다, 무엇이 그 열을 식혀버렸는가? 주님이 모욕받으심을 보고도 어찌 잠잠할 수 있을까? 마음에 거룩한 불이 붙어야 한다. 열심의 불이 없으면 다른 불을 받을 위험이 있다. 순진한 아이가 그 아버지가 비난받는 것을 듣고도 참을 수 있겠는가?

 

⑤ 세상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고 거룩하다.
그들은 위엣 것을 생각한다.(골 3:2) “대저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 하나님의 자녀들은 보다 높은 영역에서 산다. 그들의 숭고함과 천국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독수리에 비유한다.(사 40:31) 그들의 영혼은 높이 피하여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있고(골 1:27) 세상은 그들의 발아래 있다.(계 12:1) 세상 사람들은 깊은 진흙탕 속에 뒹굴고 있다. 성도들은 영이 틀리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대화 가운데 그들의 높은 가계를 나타내 보인다.

 

⑥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면 형제를 사랑(벧전 2:17)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모습들인데 자녀들은 비록 불구자가 있을지라도 서로 사랑한다.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도 흠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시 15:4)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석들이다. 왕의 혈통을 가진 자요 택함 받은 자들이다. 더 나아가 사귐이 서로 있어야 한다.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시 119:63)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를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⑦ 하나님 앞에 있기를 좋아한다.
기도 중에 은밀한 협의를 한다. 말씀 중에 하늘로부터 그의 음성을 듣는다. 성례를 통해 그와 입맞춤이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시 84:10) 가인이 여호와 앞에서 떠나간 것은(창 4:16) 하나님의 교회애서 나갔다는 말이다.

 

⑧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태양에 따라서 열리고 닫히는 어떤 꽃의 움직임과 같다. 그래서 그 마음은 하나님께는 열리고 유혹에는 닫힌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 이것이 새로 태어난 성도의 좌우명이다. 하나님의 명령마다 모두 순종한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부르심에 그들의 생애를 맡긴다.

 

⑨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려고 애쓴다.
은혜의 거룩한 씨는 번식된다. 왕의 씨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친족이 되기를 원한다. 부모는 자녀를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딤후 3:15) 디모데는 젖을 빨듯이 신앙심을 빨아 먹은 것이다. 우리 자녀를 내 자녀로 삼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야 한다. 자녀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산의 수고를 하여야 한다.


6.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12가지 특권

① 그들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애틋한 동정심을 베푸신다. 하나님에게는 죄 없는 아들은 한 분 있지만, 매 없는 아들은 없다, 그 자녀들을 십자가의 학교에 보내어 제일 좋은 것을 배우게 하신다. 고난으로 정결케 하신다. 죄가 닫아버린 눈을 고난이 열어준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흔들기도 하시지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질 수는 있어도 궁창에서 떠나간 적은 없다. 하나님이 그 자녀로부터 얼굴을 숨기실 때에도 그의 마음은 그에게 향하고 있다. 하나님이 심지어 그의 자녀에게 낯선 사람같이 보일 때에도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시다. 모세의 어머니가 그를 갈대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워놓고 좀 떨어져 있었어도 여전히 그의 눈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울 때 엄마도 같이 울었다. 하나님은 그 얼굴 모습을 바꾸실 수 있으나 언약은 깨뜨리지 않으신다. “나는 양자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무엇을 내게 하셔도, 지팡이를 드시든지 막대기를 드시든지 그것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그들의 결점을 참으신다.
우리는 자주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그 친절하심을 악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하물을 보지 않으시며.”(민 23:21)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보시듯 그 자녀들의 죄를 보신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의 악은 주목하면서도 선은 보고도 못 본체한다. 하나님의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실패를 눈감아 주신다. 우리와는 사뭇 반대로 행하신다.

 

③ 하나님은 그들의 불완전한 봉사를 받아주신다.
부모는 자녀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게 받아드린다. 우리의 어설픈 기도도 감사로 받아주신다. 그 자녀가 더듬거리는 소리로 말하여도 듣기를 좋아한다. 아들의 편지가 얼룩이 되고 말이 맞지 않아도 그 편지를 좋아한다. 약점이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주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내 자녀이니 더 잘할 것이다!” 하신다.

 

④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신다.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 48:15)이시다. “하나님이 식탁을 준비하실 수 있겠는가?”(78:19) 의문을 표시했지만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는 약속을 지키셨다. 우리가 죽어 영원한 해안에 도달하면 하늘 왕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예비해 주신 바 되었다.

 

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위험을 막아주신다.
현세의 악으로부터 칸막이를 쳐 막으시고 영적인 악에서도 구원하신다. 재난, 우발적 사고가 많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위해 파수꾼과 감시자를 두신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시 7:10)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위해 천사를 번갈아 보내신다. 믿는 자는 그를 지키시는 호위병을 가지고 있다. 그는 때로는 그 날개로 그들을 덮기도 하시고 때로는 나르기도 하신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독수리는 공중에서 아무것도 해하지 못한다, 단 밑에서 쏘는 화살이 위험하다. 그래서 날개 위에 그 새끼를 놓고 나른다. 날개는 상처 당해도 새끼는 안전하다.

 

⑥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의 큰 것을 보여 주신다.

아버지는 자녀를 가르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시 143:10) 주님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사 48:17) 엘리사는 그의 종이 보지 못한 불 말과 불 병거를 보았다.(왕하 6:17)

 

⑦ 기도의 담대함을 주신다.
그의 자녀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기도의 담대함을 주신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아버지가 가지신 모든 것은 그의 자녀를 위한 것이다. 그의 자녀들을 빼놓고 누구를 위하여 그의 긍휼을 비축해 두시겠는가? 어떤 부모들은 무뚝뚝하고 찌푸린 성격을 가진 자도 있는데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다.(고후 1:3) 죄 중에 있을지라도 아픈 아이가 “내 머리야, 내 머리야” 말하듯 “아, 이 마음 아, 이 마음” 하면서 달려가야 한다. 마귀의 공격을 받을 때에도 매 맞고 온 아이가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듯 사탄의 공격을 아뢴다.

 

⑧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의 상태로 이끄신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노예 상태에 있다는 것은 슬픈 불행이다, 정욕의 군대에 지배받는 자다. 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마귀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의 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롬 8:2) 죄가 비록 하나님의 자녀 속에 살아도 세력을 떨치지는 못한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롬 6:14) 비록 죄가 제거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억제를 당하고 있으며 비록 죄를 막아낼 수는 없어도 억제할 수는 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십자가에 목 박았다, 비록 죄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어도 날마다 죽는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산다.(롬 8:14)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⑨ 하나님은 그들을 약속에 명시된 상속자로 만드신다.
자녀들은 약속의 상자를 많이 가졌다. 용서를 원하는가? 용서를 담고 있는 약속이 있다.(렘 31:34) 성결의 은혜를 원하는가? 고치는 약속이 담겨있다.(호 14:4) 성도들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다.(히 6:17) 어마어마한 큰 약속 중에 그리스도와 천국이 있다. 법적인 주장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약속을 우리는 많이 가졌다.

 

⑩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복을 주신다.
악인은 그들의 즐기는 것을 하나님 없이 가지지만, 양자 된 사람은 그 좋은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가진다. 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에, 재산에, 자손에게 복을 내리신다. 복을 주시되 뒤집지는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⑪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들의 유익을 위해 행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좋은 일도 그렇고 나쁜 일도 그렇다. 부를 주시면 선한 일을 더 많이 해서 은혜가 되고 가난은 정욕을 굶어 죽이므로 역시 은혜를 가져온다. 악인은 높아지면 교만심이 자라게 되고 낮아지면 다 잃은 사람으로 처진다.

 

⑫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지키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멸망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그들의 죗값을 다 갚으시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진노를 당할 까닭이 없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신비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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