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7 호
결혼 그리고 지참금
우리의 친구 아바카르가 드디어 결혼을 했다. 아바카르는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성경을 나누고 모슬렘에서 예수님께로 발걸음을 옮긴 친구다.
그런데 신부의 나이는 신랑도 잘 모른단다. 이모의 중매로 이루어진 결혼이라 대충 16-17 정도라는 것을 알뿐 정확한 나이도 모른 체 결혼하는 것이다. 사실 나이야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할머니만 아니라면), 얼굴도 잘 모르는 신부를 맞아 들이는 것이다. 이모님의 시력이 좋지 않거나, 취향이 그와 많이 다르면 어쩔려구? 아니 어떻게 그런 큰일 날 모험을 한단 말 인가? 어쩌면 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믿고 있는 순진한 사람들이 이곳 차드에는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아주 먼 옛날까지 거슬러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도 상황도 많이 비슷했다고 들었다. 결혼 당일에야 신랑 신부가 감히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믿기지 않은 일, 그런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단다. 차드는 아직도 과거의 많은 풍습이 생활 속에 남아 있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여기서는 과거를 볼 수가 있다.
결혼을 위해 아바카르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일명 결혼지참금, 그리고 신부와 장인 장모님을 위한 선물, 멀리서 올라올 축하객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하고 음식을 장만하고..... 이 모든 것이 신랑이 해야 할 일이다.
« 신부를 돈을 주고 사온다고? 그런 야만적인 풍습은 빨리 버려야 한다! » 고 외쳐봐야 여기까진 들리지도 않을 테니 괜히 힘 빼지 마시기 바란다.
차드에 언제부터 결혼지참금 풍습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슬람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던지, 아니면 적어도 더욱 굳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하마드는 하디스(그의 언행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 젊은이들아, 혼인 지참금이 있는 자는 누구나 결혼을 해야 하나니 결혼은 너희들을 성숙케 하고 너희들의 생식기를 보다 잘 보호하기 때문이니라." 결혼지참금제도는 이슬람이전부터 가문 또는 부족과 연대를 위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사회가 되면서 무하마드의 말에 따라 그것이 법처럼 된 것이다.
그래서 지참금을 마련하기 힘든 가난한 청년들은 결혼하기 힘들다. 그래서 비교적 싼(?) 신부를 찾기 위해 시골로 사냥을 떠나는 청년들을 여럿 보았다.
결혼 지참금 때문에 301 년 동안이 싸운 사람들도 있단다.
프랑스의 왕 루이 7 세는 귀엔느와 프와투 두 지방을 마지막으로 다스렸던 공작의 딸 엘레나와 결혼했다. 그때 엘레나는 이 두 곳을 신부의 지참금으로 가지고 왔었다. 루이 7 세는 왕비의 눈에 멋진 구레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루이 7 세는 이제 그의 구레나룻을 말끔히 면도하겠다고 말했다. 왕이 구레나룻을 없애자 엘레나는 더 이상 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이혼을 했다. 그리고 영국의 헨리 2 세와 재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두 지방의 소유권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루이 7 세는 헨리에게 선전 포고를 했고, 이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1152__1453)은, 301 년 동안 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차드에도 결혼 지참금 때문에 벌어진 끔찍한 전쟁이 있었으니....
‘나수르’는 ‘갈뤼넹’이라는 한 부자의 아들이다. 이웃의 ‘가에다’라는 종족의 한 딸과 결혼을 하였다. 두 부족이 다 부자였기 때문에, 지참금은 상당했다; 25 마리의 낙타, 30 마리의 암소, 3 마리의 말, 50 마리의 양, 10 벌의 옷, 30 쿠데의 흰 옷감, 3 마리의 소와 6 마리의 양고기, 10 마차와 3 마리의 낙타의 등에 실린 수수. 전통에 따라, 갈뤼넹은 자기 혼자서 다 지참금을 치르지 않았다. 나수르는 단지 다른 모든 젊은이들처럼, 몇 자루의 창과 단검, 그의 옷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는 그의 삼촌들과 사촌들에게 이 지참금을 간청했다. 에이테(Eïé, 그의 정혼 자는 성깔이 있고 이미 그 종족 중 한 사내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수르보다 덜 부자이지만 더 잘난 사내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가 선택한 사위를 얻기 위해 딸과 싸워야 했다. 음식을 금하고 그녀의 다리를 묶어 두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은 아버지가 원하는 사위와 이루어졌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땀땀(북) 소리가 몇 날 몇 일을 울려 퍼졌다. 가족들은 축하연에 만족하였다. 나수르는 에이테를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갔다. 한 번 서로 잠자리를 같이 한 다음, 그녀는 그와 함께하는 잠자리를 거부했다. 그녀의 남편은 윽박지르며 그녀를 때렸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아내가 없는 빈 숙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결혼식 때 선물을 하지 않은 외삼촌 중 한 사람의 집에 은신하여 있었다. 외삼촌은 그녀를 돌려주길 거부하고 싸움을 원했다.
나수르는 장인을 설득하려고 찾았다. 그러나 그의 장인은 이미 지참금중 일부를 청부 살인자에 의해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주어야 할 연체금을 치루기 위해 써버렸다(지참금을 돌려주면 이혼이 성립 될 수 있다). 그는 이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부부 사이에서 중재하여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도 꼼짝하지 않는 딸과 비겁한 사위에게 그는 무기력했다. 사태는 점점 지연되었다. 그러는 동안 에티에는 그녀의 사랑하는 옛 애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늙은 갈뤼렝은 화가나서 비겁한 아들을 불렀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냐? 네가 너에게 준 여자는 우리 가족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네 아버지, 네 삼촌들, 너에게 그녀를 얻어주기 위해 지참금을 낸 모든 사람. 네 사촌 중 하나가 그녀를 죽이는 것을 우리가 지지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네가 내버려 둘 것을 믿느냐? 만약 네가 그를 죽인다 해도 나는 그의 피 값을 치를 만큼 충분히 부자이다.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대신할 자식들이 있다.”
3 일 후 나수르는 그녀의 정부를 죽였다.
(Extrait de Carnets de route d’un méariste au Tchad, Françis Garbit., Le Petit Fute Tchad 에서 재인용.) 아름다워할 결혼이 이렇게 돈과 복수로 얼룩져 버렸다. 그들이 과연 이후에 행복할 수 있었을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이로되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결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고의 축복이라 믿고 싶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해서 감사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난 결혼이라 말하고 싶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에서 좋지 못다하는 말은 점잖게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원문의 내용은 ‘악질’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악질로 보인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운명적으로(?) 혼자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있음을 말씀하셨으니(마19장) 모든 독신자가 다 하나님에게 악질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어쨌든 결혼은 말 그대로 신성(神性)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재정하시고 직접 짝을 만들어 하나로 맺어 주셨다. 창조의 절정은 결혼식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인간 최초의 말은 바로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를 향해 외친 기쁨의 탄성이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짧지만 결혼의 의미를 가장 잘 정의한 주례사가 있었으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창2:24). 최초의 인간(아담과 하와)의 결혼은 최후의 우주적 결혼식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계시록)은 결혼식으로 그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 결혼식 다음에 펼쳐질 신혼 생활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꿈꾸는 아니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가장 행복한 삶인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신혼 여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영원히 눌러 사는 것이다(이사라고 표현, 아니 이민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여 부부관계를 통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삼위 하나님의 연합과 독립의 비밀을 배우며 천국에서의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이제 아바카르가 힘들지만 행복한 항해를 떠났다. 폭풍우 치는 거친 바다에서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 믿음의 닻을 깊게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그 나라를 소망하며, 멋지게 항해하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그리고 주님을 자녀들에게 전하는 아브라함 같은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길 부탁한다.
차드 조00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