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에 핀 들백합화
꽃 중에서 백합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하얀 백합을 좋아한다. 하얀 백합은 그 모양이 청순하며, 향기가 좋다. 바람에 하늘하늘 날릴 때마다 그 향기는 온 사방으로 퍼져 나아간다. 백합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그 색깔도 다양하다. 흔히 내가 아는 종류로는 카사브랑카가 있는데 꽃잎이 크고 줄기도 굵은 종류로 꽃꽂이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어릴 때부터 앞마당 꽃밭에서 자주 보았던 백합이 있다. 그리고 들백합(야마유리:산백합)도 있다.
올해 교회 옆 꽃밭에 두 그루의 들백합이 피었다. 내가 심은 것도 아닌데 가는 키를 길게 뻗어 피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둘러 쌓여 들백합은 햇볕을 볼 수가 없게 되자, 무리하게 키를 키웠다. 그리고 한 그루에 두 송이씩 하얀 꽃을 피웠다. 소박하고 가냘픈 꽃이었다. 내가 심은 보통의 백합은 올해 피지를 못했다. 주변의 나무들이 자라서 햇빛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돌봐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주변의 각종 나무들 틈을 헤집고 우뚝 자랐다. 대견스럽다.
우리 교회에 이 들백합화와 같은 자매가 있다. 이름이 쿠메후사에(久米房枝)다.
교회개척 후, 첫 번째 선교팀이 왔다. 인천효성교회 브니엘여성합창단 20여명은, 나리타역에 가서 전도지를 주면서 “예수사마 신짓떼 쿠다사이(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사마오 신지루또 텐코쿠니 이끼마스(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로 전도를 했다.
그 때 전도지를 받은 한 자매가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몇 개월이 지나서 찾아 왔다. 예쁘고 지적으로 생긴 이 여인은 약간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예배가 끝나면 전목사에게 머리를 내어 밀며 기도해 달라고 했다. 일본인답지 않았다. 그 때 그녀는 절박한 상황이었다(나중에 알았지만). 가정문제로 신경쇠약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살아 갈 희망도 힘도 없었다고 했다. 예배 후에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시간이면 혼자서 끝도 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기존신자들은 못 마땅하게 여겼다. 심지어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 기색도 보였다.
그녀는 성경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절박한 심경으로 우리 교회를 찾아 왔고, 매달렸다. 그러는 과정에 두 가정이 교회를 떠나 갔다. 이 가정들은 중산층 크리스천 가정으로 선교사에게 기대감을 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 가정과 함께 하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이 우리 곁에 오래있으며 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런데 그들은 필요에 의해서 왔고, 또 필요에 의해 떠났다.
이제 쿠메자매만 남았다. 앞에 두 가정은 자녀들까지 다 나와서 예배를 드렸다. 한 가정이 4명, 5명되니 우리 가정 4명을 합하면 작은 예배실에 가득했다. 그리고 첫 가정은 개척을 시작하는 집을 얻는데 공을 세웠고, 두 번째 가정은 18평의 예배실을 얻는데 공을 세웠다. 선교지에서 현지인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다. 이렇게 능력있는 두 가정은 큰 일을 해주고 교회를 떠났다. 남은 한 여인은 무엇으로 선교사를 도와줄 것인가? 오히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이 병들고 가난하고 힘없는 여인은 선교사의 눈에 큰 존재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우리 곁에 있었고, 큰 부담도 큰 기대도 주지 않는 자매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자매가 교회의 모든 부엌살림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작은 급료를 받으면서, 예쁘고 비싼 커피잔을 사다가 찬장에 넣어 놓았다. 그리고 좋은 것이 보이면 교회를 먼저 생각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사다가 놓았다. 언제 사다가 놓았는지 내가 목격한 적은 없었다. 아주 작은 일 같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교회를 섬겼다.
어느 날, 이온자스코(대형마트)에 갔다가 진열된 커피잔 세트를 보았다. 우리 교회의 것과 같아서 유심히 보았다. 특히 가격표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랬다. 한 세트에 3천엔이 써 있었다. 만약 10세트라고 한다면 3만엔이다. 나는 그 자매의 월수입을 알기에 이렇게 비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에서 손님이 많이 온다고 하면서 오차잔이나 차, 그 외의 것도 틈틈이 사다가 진열해 놓았다.
우리 교회는 1부 일본인 예배, 2부 한국인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끝나면 1, 2부 다 식사를 한다. 일본교회는 예배 후에 대부분 식사를 하지 않는다. 오차 정도 마시는 교회가 많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식사를 준비하여 대접했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으니 부담없이 했다. 차츰 주일에 두 번의 식사준비가 내게 큰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때에 쿠메자매가 1부의 식사를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내심 반가웠지만 몸도 약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데 혹시 시험에 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50세정도의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주일 동안 식단을 짜고, 싸고 신선한 재료를 사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시장을 봤다. 그리고 반찬 3-4가지를 영양과 모양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 후로 10여년을 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일을 해 왔다. 일본 전국 어디에도 우리 교회의 식탁처럼 풍성하고 정성어린 식탁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식사비용을 자비로 했지만 지금은 식사 후에 한 사람이 200엔을 내고 있다.
그녀는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성도로 선교사와 함께 모든 기쁨과 고난을 나눈 동역자가 되었다.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렇게 신실한 성도가 좀 경제가 윤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에 힘이 될 텐데… 그런데 아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다. 만약 그녀가 건강하고 부했다면 앞에 떠났던 사람들처럼 우리의 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약하기에 가진 것이 없기에 오직 주님을 섬기듯 교회를 섬기며, 부족한 선교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올 늦여름에 심지도 않았는데 자생하여 피었던 들백합,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는데도 주변의 장애를 극복하고 피었던 가날픈 들백합, 그 백합은 그녀와 닮았다. 병들고 가난하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자랑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묵묵히 교회와 선교사를 섬겨 왔다. 그래서 지금 우뚝 솟아 올라 최고의 동역자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요즘 들어 왠지 늙어 보이는 그녀의 작고 예쁜 얼굴에서 교회의 역사를 느낀다. 예수님의 발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었던 성경의 여인처럼, 그녀의 삶을 부어 선교사와 함께 교회를 지었고, 그 교회를 지켜나가기 위해, 오늘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할 것이다. 또 주일에는 풍성한 식탁으로 성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기저기 슈퍼를 들랑대며 일주일을 분주히 살고 있을 자매를 “옥합을 깬 여인”이라 부르기를, 나는 기뻐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태 26:13)
일본의 이인숙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