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자녀에 관한 간증
선교사의 청지기 삶과 자녀교육
함용욱 정성자 은퇴 선교사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현장에 파송하시면서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마 10:10) 하셨습니다.
선교사로 출발하기 전 저에게는 부모님이 유산으로 주신 약간의 땅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기로 한 선교지는 필리핀 민다나오 가가얀데오로였습니다. 그 곳은 회교도 게릴라와 공산 게릴라가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들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은 했으나 고기 가마가 생각나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 가려고 했듯이, 나도 만약 민다나오에서 선교하다가 게릴라에 대한 두려움에 실패하면 고국에 다시 돌아와 부모가 주신 그 땅을 의지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 그것을 팔았습니다. 땅을 팔기 전까지는 그 돈을 지니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돈으로 필리핀에 가서 교회를 지을까? 아니면 자동차를 살까? 한 동안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마음 속에 평안이 사라지고 두려운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 속에 “함목사야, 너는 선교지에서 돈을 의지할래? 나를 의지할래?” 하는 성령님의 책망하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한동안 고민 끝에 “주님, 제가 돈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계신 주님을 의지 하겠습니다.” 하고 땅판 돈 모두를 교회에 헌금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이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훌러신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 만큼은 미국에 가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시되 제가 선교사라 돈이 없으니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는 퇴직금도 우리 식구 비행기표만 산 다음 나머지는 모두 헌금하고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선교지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서 비록 나는 어렵게 살더라도 우선 현지의 필요대로 손에 가진 것은 사역비로 투자했습니다. 동서가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 주라고 준 돈도 제가 사치스럽게 생각되어 사역비로 써버렸습니다. 그랬는데 아이들이 컴퓨터도 없이 고생하는 것을 본 동서가 다시 사준 적도 있습니다. 다른 선교사님들은 자동차로 사역할 때 오토바이로 6년 반을 거의 선교 한 텀을 지냈습니다. 그러니 온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함께 오손 도손 어디 나가 보지도 못했고 명절, 생일축하, 외식 한번 제대로 못한 채 선교 한텀을 거의 보냈습니다. 안식년으로 떠나시는 어느 선교사님이 쓰시던 포니 차를 선물로 주셔서 6개월을 사용하다가 안식년을 맞았지요.
어느 날 세 아이가 다니던 학교인 Faith Academy에서 퇴학 경고장이 날라왔습니다. 내용은 ‘당신네 세 자녀가 수업료를 내지 않았는데 1992년 1월 5일까지 내지 않으면 퇴학처분을 할 것이고 전학서류도 안해 줄 것’이라는 편지였습니다. 나는 아내가 수업료를 내준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편지를 받고 보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민다나오에서 팩스로 은실이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은실아, 그 학교 그만두고 내려와라. 디엘 무디는 성경 한 권으로 전도하여 100만명을 구원했단다. 너도 민다나오 섬에 와서 현지 학교는 네가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잘 못 가르치니 아빠가 홈스쿨 방식으로 가르쳐 줄께. 즉시 내려와라” 했더니 즉시 딸 아이에게서 답장이 오기를 “아빠 내가 이 선교사 자녀학교에 들어와 이제야 겨우 적응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고 민다나오로 오라고요? 난 못하겠어요. 나는 무식한 베드로처럼 쓰임 받기보다는 공부해서 바울 사도처럼 쓰임받기를 원해요. 내가 하나님께 공급해 주시라고 기도할래요” 했습니다. 저는 “그래 나도 금식기도 하마. 그러나 공급하시지 않으면 내려 오는거다.” 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 학교 학비가 현지인 학교보다 비싸서 제 양심상 죄책감이 들어 오히려 그 때를 기점으로 퇴학시킬려고 결심했었습니다.
저도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선교사가 사역에만 힘써야지 이런 일로 금식기도하게 하십니까? 이런 기도는 이게 마지막이 되게 하소서. 이번에 공급해 주시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아이들을 그 학교에 그대로 공부하게 하겠고 만약 공급해 주시지 않으면 민다나오로 데리고 오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데려 오겠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께서 아이들이 퇴학당하기 이틀 전인 1992년 1월 3일날 응답을 해주셨는데 그 도움이 한국이나 필리핀, 미국에서가 아닌 상상치도 아니했던 저 멀리 터키에서 온 것입니다.
이동휘 바울선교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바울선교사는 믿음선교하므로 절대로 모금운동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세요. 사람에게나 교회에 가서 구걸하지 마시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 구하세요. 하나님꼐 기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른 통신수단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우리의 사정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저 멀리 있는 터키의 한 후배선교사님을 통해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교사님께 감동하시기를 빨리 민다나오에 있는 함 선교사에게 2000불을 보내라 재촉하셨답니다. 그래서 제게 보내주셨는데 그 편지내용은 “함 선교사님 저는 후배 선교사인데도 후원교회에서 자동차 헌금을 해주셔서 자동차가 있습니다. 제 후원교회에서 자동차 내장을 하도록 헌금을 해주셨는데 제가 2000불을 보내드리니 이 금액에다가 목사님께서 조금 보태서 차를 사세요.” 하며 보낸 금액이 그동안 밀린 학비와 똑 같은 2000불 이었고 퇴학당하기 이틀 전에 도착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제가 우리 아이들이 학비가 비싼 선교사 자녀학교를 그만 두게 하고 민다나오로 내려오게 할려던 제 생각을 깨시고 아이들이 그 학교를 계속 다니도록 허락해 주시므로 확실하게 아이들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지금에 와서 우리 세 아이 모두 목회자 아니면 목회자 부인으로서 온 마음으로 훌타임 사역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은 아이들의 미래를 그런 방법으로 열어주신 것입니다. 확실히 주님의 생각은 제 생각보다 크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 아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하늘로 치솟듯 커졌고 저도 하나님께서 우주적으로 역사하심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크시며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시고 선교사의 자녀들에게 그렇게도 자상하신 배려를 하시는 하나님임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이후로 저는 아이들이 학비가 현지인 학교 보다 비싼 선교사 자녀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이 째째하신 하나님이 아니심을 깨달아 믿음이 아닌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가난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대로 즉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면 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돌보시는 능력을 체험한 우리 아이들은 이후로 가난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손에 돈 한푼 없으면서도 미국유학에 도전했고 모두 믿음대로 장학금을 받으며 Calvin College, Wheaton college,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등 크리스찬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눅 22: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했던 제자들의 고백처럼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주의 은혜를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 19:29)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는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주께서 자기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니 진로를 선택할 때에도 돈이 많이 벌리며 세상적으로 인기있는 학과보다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사역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부해 오니까 주께서 세 아이들 모두 훌 타임으로 목회 사역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