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도를 구원하자
탄트라
탄트라는 일반적으로 밀교라는 용어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정신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tatri 또는 tantri에서 나온 말인데, 본래는 <넓힌다>라는 뜻을 가진 tan이라는 어원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결국 탄트라는 지식을 넓힌다는 뜻이고, 스스로 지식을 전부 몸에 익힌다는 것이다.
탄트라에 의하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푸루샤(puruSa)라는 남성원리와 프라크리티(prakRti) 혹은 샥티($akti ; shakti)라는 여성원리로 이루어진 이원론(二元論)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곳에는 남녀의 교합이 사바신과 샥티와의 창조적인 결합으로까지 고양될 수 있다는 사상에 근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이 쉬바와 샥티는 불처럼 격렬하게 포옹한 결과 최고의 비이원성(非二元性) 즉 해탈(解脫)이라는 무이(無二)의 열락 속에서 이른바 단 하나의 원리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感)인 성을 초월의 매개로 신과의 합일, 궁극으로의 도달을 성(性) 통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본다.
요가가 금욕을 통한 수행이라면 탄트라는 성을 통해 자신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킴으로써 완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초대교회 시대에 있었던 쾌락주의적 영지주의인 카르포크라(Carpocrates)의 사상이다. 이는 참된 나 자신인 영혼이 저급한 물질에 속한 육체에 영혼이 속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참된 나인 영혼의 해방은 중요하지만 참된 내 자신이 아닌 육체는 욕망으로 채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1세기에서 대략 3세기까지 발흥했던 영지주의는 물질과 육체를 부정적으로 보기에 극단적인 금욕주의나 극단적인 쾌락주의로써 초대교회에 침투하여 혼란을 주었었다.
인도인의 우주관에 의하면, 절대자로서의 브라만은 자체 안에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의 양면성을 가지고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창조와 파괴의 순환을 거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상과 현상 즉 근원적인 진리로서 무시간성의 존재와 현실로서의 변화는 각각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로 상징되어 창조와 분열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탄트라는 우주의 본질과 합일을 이루어 우주 본래의 지복으로 초월하려는 방식이다.
탄트라에서는 모든 자연적 본능의 충족을 긍정하고 있다. 육체를 약화시키고 정신적인 긴장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일은 생명의 건강한 성숙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오히려 자연의 저급한 충동으로부터 고상한 충동으로 향상되도록 수련할 것을 주장한다. 모든 자연의 충동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신성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진화의 창조적 에너지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탄트라 사상은 인간의 모든 고뇌나 고통이 욕망이 해결되지 않는데서 나오는 것으로 보며, 모든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고통을 해소하고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요가와 탄트라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의 뉴에이지 추종자들이 록 음악과 마약에 의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고대 탄트라 사상이 가지는 쾌락주의적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섹스에서 탄트라로 거대한 혁명과 전환은 인간에게 가능하다. 섹스 더하기 깨어있음, 그러면 엄청난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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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사람 사이에 진한 사랑이 없을때 아아 그 가르침의 전달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는 깊은 애인의 관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직 그럼으로써만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개화(開花)될 수 있는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오늘날 미국이나 세계에서 유행했던 라즈니쉬 사상은 이 탄트라 사상을 오늘날의 것으로 나타낸 것으로 육체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 완전으로의 추구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탄트라는 철저한 영성 훈련이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신비한 체험이나 무아지경은 특히 성에너지가 그 본질적 핵심을 이루며, 섹스란 우주적이고 신성한 과정에 참여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을 통해 구도자는 시공간을 뛰어 넘고 영혼과 육체의 현상적 이중성을 극복하며, 인간의 근본적 합일성을 체험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신과 여신(시바와 샥티)의 본질적 정체성, 만물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국면에 대한 직관적 깨달음을 얻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탄트라를 비롯해서 다른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고통과 고뇌의 문제로 보았다. 이 고뇌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도의 고행이나 금욕을 통해 벗어나려고 하였으며 이를 더 발전시켜 해탈로 가려하는 것이다. 특히 인도의 종교라 할 수 있는 힌두교는(물론 이는 힌두교만 그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다) 인간쪽에서 신을 정의해 내는 역방향을 취하므로 신이 인간에 의해 정의되고 있다. 이는 참 신으로서의 존재는 상실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후 인간에게 나타나는 현상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없기에 인간은 자신들의 방법에 의해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죄를 지음으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상실되었으나 100% 없어진 것은 아니다. 어렴풋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인간이 체험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짜맞춰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완전하지 않은 오감(五感)으로 하나님을 퍼즐처럼 맞추려 하지만 이미 죄로 인해 상실된 인식능력을 의지하는 인간이 만든 종교들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이나 고뇌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죄에 문제에 초점을 맞추시기를 원하신다. 죄는 인간의 실존으로 볼 때 나타나는 하나님과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의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쉽을 회복하기 위해선 회개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쪽에서 극도의 금욕이나 극도의 쾌락을 통한 구원의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편에서 이루시고 제공하신 구원의 방법과는 다르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