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고민을 드리는 효도
성경은 강력하게 부모 공경을 명령했습니다. 계명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불효는 큰 죄가 됩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그러나 부모 공경의 방법에 있어서는 시대마다 변천되어 왔습니다. 끼니걱정이 어려운 가난한 시절에는 자식은 굶기더라도 늙은 부모부터 대접하는 효성이 있었습니다. 장남은 부모를 꼭 모셔야 하고 소고기국에 흰 쌀밥을 드리는 것이 큰 효행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옷을 잘 입혀 드림이 자식의 도리라 생각하여 극빈한 가정 빼놓고는 옷들도 풍성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노인 문제는 가난과 질병 등이 아주 해결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고독이라는 병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옛부터 노인일수록 생명의 애착이 질겨서 자살이 별로 없었지만 요사이는 노인 자살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유는 자식이 주는 용돈과 훌륭한 주거 환경으로 고생이 없는 반면 각박한 사회 환경으로 대화가 끊겼기 때문입니다. 사업하는 아들이 효도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그 동안 우리를 키우시느라 고생을 참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남은 여생을 편하게 지내셔요, 제가 하는 사업이 아주 복잡하니 알 생각도 하지 마시고 텔레비전 보시면서 편한 마음으로 즐기며 사십시오." 효성스런 말 같으나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사람은 생명이 있는 한 듣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고, 말하고 싶어하고, 움직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차단하는 순간 고독병이 생기고 우울증과 치매까지 불러올 수 있습니다. 건전한 고민과 일거리 그리고 부담을 줌으로 긴장감을 가지게 하여 생활에 활력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장사하는 아들이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하는 상투적인 인사보다는 일과를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아버지! 요사이 장사가 잘 안되어요. 아버지가 기도를 해주셔야 하겠어요." 자식의 요청이라면 부모는 무엇이든지 하려 합니다. 며칠 후 안부 드릴 때에는 아버지께서 기도를 해주셔서 수익이 좋아지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면 흥이 날 것 입니다. 불신부모라면 “아버지 이왕 기도 하실 때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로 시작 하지 마시고,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르고 하세요”하는 말을 전해준다면 역시 주님께 다가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더 발전한다면 “마지막 기도 마무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으로 하면 더 좋아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를 격의 없이 말하고 아버지의 조언도 구하고 같이 교제를 나누므로 부모의 마음은 소외된 외곽지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고 생의 기쁨을 가질 것입니다. 현명한 효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구원까지 성취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