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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칼럼]십자가(고난)와 부활(영광)의 이중주 | 전형구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15.02.24 19: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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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고난)와 부활(영광)의 이중주

 

전형구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이중주(二重奏, Duo, Duet)는 2개의 악기만으로 구성된 중주이다. 독주에 적합한 멜로디 악기와 피아노 또는 쳄발로와 편성하거나, 2개의 멜로디 악기의 편성이 보통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와 피아노 등은 자주 볼 수 있으며, 또 모차르트의 작품에 있듯이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이중주 같은 것도 있다. 피아노와 쳄발로를 쓰지 않는 이중주에서는 이 바이올린과 비올라처럼 음질이 비슷하고 음역이 다른 2가지의 악기를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

 

 

 

 

1. 십자가와 부활의 이중주

 

우리는 2월 28일(수)부터 그리스도의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사순절(Lent)을 통과하고 있으며 3월 29일 종려주일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된다. 고난주간의 일정을 보면 주일은 예루살렘 입성의 날, 월요일은 성전청결의 날, 화요일은 최후 고별설교의 날, 수요일은 장례준비의 날, 목요일은 최후만찬과 기도의 날, 금요일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장례의 날, 토요일은 침묵의 날, 일요일은 부활의 날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에 잡히시고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면서 금요일을 맞이하신다. 그리고 채찍질, 침 뱉음, 가시관 씌움, 갖가지 희롱과 사형선고를 받으신다. 그리고 오전 9시(막 15:25)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6시간 동안 매달려 계시다가 오후 3시(마 27:46)에 영혼이 떠나신다. 이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들어가시고 토요일 무덤에 계시다가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신다.

 

십자가 형보다 더 처절한 형벌은 없다. 로마인조차도 십자가 형을 보면 두려워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고 한다. 유대의 크라우스는 십자가 형에 대하여 “십자가 형은 인간이 지금까지 고안해 낸 형벌 중에서 가장 잔혹한 방법이다” 라고 말했다. 이 십자가 형의 기원은 페르시아이다. 그 기원을 보면 페르시아의 토지는 그들이 숭배하고 있었던 오르므즈라고 하는 신에게 바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자의 형을 집행할 때에는 신의 땅에 닿지 않도록 높이 들어서 집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십자가 형은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거쳐 로마에 전해졌다. 로마에서의 십자가 형의 대상은 로마 시민권자 이외의 반란자, 도망한 노예, 살인자 등 아주 극악한 죄수들에게만 적용됐다.

 

 

 

 

이렇게 비참한 십자가에서 왜 그리스도는 죽으셔야 했는가?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주요 책임자로 빌라도, 가야바, 유다를 지목했으며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로 제사장, 군중, 군병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실은 “그들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죄악과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다. 흑인 영가인 찬송 147장은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라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그렇다. 우리도 거기에 있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찬송 작사자의 왕이라고 불리었던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 1808-1889)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다.

 

“거룩한 피 내가 흘리게 했네. 내가 그분을 나무에 못 박았네. 내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모욕하는 일에 나도 참여했다네/ 그 소리치던 모든 군중 속에 나도 있었음을 나는 안다네. 그 무례한 외침의 소음 속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네/ 십자가 주위의 군중을 내가 보니 그 고통 받으시는 분의 신음을 비웃도다. 하지만 거기서도 내 목소리가 들리네. 마치 나 혼자서 비웃는 듯이”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있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지 고린도전서 15:12~19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이 헛것이 된다 ②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된다. ③부활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증언은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린다. ④여전히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있게 된다. ⑤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망하고 만다. ⑥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된다.

 

 

 

 

영국의 캠벨 몰간(G.Campbell Morgan)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이중주를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사순절이어야 하지만, 우리의 얼굴은 끊임없이 부활절이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 십자가 없는 부활도 없고 부활 없는 십자가도 없다.

 

 

 

 

2. 고난과 영광의 이중주

 

십자가는 고난이요 부활은 영광이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듯이 고난 없는 영광도 없으며 부활 없는 십자가는 없듯이 영광 없는 고난도 없다. 십자가를 믿는 크리스천은 십자가 같은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고난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고난 후에는 반드시 영광의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성서는 고난과 영광의 이중주를 연주하고 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1873년 프랑스 호화 여객선 빌르 드 아브르(Ville de Havre)호가 뉴욕 항을 떠나 항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서 영국의 철선 로커안(Lochearn) 호와 뜻하지 않은 충돌 사고가 발생하여 선체는 침몰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선객 중에는 스파포드(Spafferd) 여사와 네 자녀도 함께 있었다. 죽음의 순간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스파포드 여사는 두려움과 혼란의 와중에서도 네 아이와 더불어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시여, 이 사랑하는 네 자녀의 생명을 구해 주소서. 그러나 당신의 뜻이옵거든 기꺼이 죽을 수 있도록 도우소서” 수분 후 선체는 완전히 침몰하였고 그녀의 네 자녀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스파포드 여사는 표류 중에 지나가던 항해사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그녀는 곧 시카고에 있는 남편에게 “홀로 구조됨”이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시카고의 사업가요 변호사요 대학 법리학 교수인 남편 H.G.스파포드씨는 즉시 영국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얼마 후 여객선 선장이 그를 부르더니 우리는 지금 당신의 자녀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한 지점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그 비극적인 장소를 목격한 그는 “나에게 어떤 희생이 올지라도 주를 의지하는 것이 기쁘다”라고 고백하면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라는 내용의 시를 써 내려가니 찬송가 413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시를 지었던 것이다.

 

 

 

 

나는 고난과 영광의 이중주로 연주하는 이 찬송을 너무 좋아하여 즐겨 부른다. 이 찬송을 부르노라면 왠지 내 가슴이 훈훈해지면서 때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짓는다. 그러면서 “내가 만일 스파포드의 입장이 된다면 그처럼 고난과 영광의 이중주를 연주할 수 있을까?” 라고 자신에게 묻는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이번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이중주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두 가지를 다짐하자.

 

첫째는, 20세기에 발표된 찬송 가운데 가장 널리 불리어진 찬송가 159장을 통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를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라고, 그리고 남북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우울해진 미국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심어준 부활 찬송가 160장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 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소망을 두며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자.

 

둘째는, 우리의 선교와 삶의 현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고난의 십자가를 만난다 할지라도 영광의 부활의 기쁨을 가지고 고난과 영광의 이중주를 연주하겠다고 굳게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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