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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칼럼]성령충만, 말씀충만이 먼저다 | 김문영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24.01.01 15: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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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본부장 칼럼

성령충만, 말씀충만이 먼저다

김문영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지난날의 화려했던 문명을 초라하게 만드는 신 과학기술이 속속 등장하여 새로운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 구호는 마치 안개 속에 희미해진 팻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 우리의 메시지에서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지만, 그 주제를 풍요롭게 하고 실제화시키는 ‘충만’이란 명사의 실종 혹은 변심인 것 같다.

 

구시대의 유물이라도 된 듯, 행사가 끝나버린 플래카드처럼 한쪽 구석에 방치된, 그러나 한때 기독교 부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이 함성은, 세상의 화려하고 멋진 퍼포먼스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그 낡은(?) 구호는 기독교에 생명을 주입시킨 세례요한의 메시지와 같은 파급력을 한국교회에 가져왔으며, 엘리야의 간구로 하늘에서 떨어진 불이 제단 위의 제물을 불살랐던 것처럼 백의민족을 선민으로 탈바꿈시켰던 중심 원동력이었다. 

그 구호에서 시작된 뜨겁고 강렬했던 운동이 한국의 도시와 농·어촌을 가리지 않고 미신과 허상에 찌들었던 우리 민족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게 했고, 희망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했었다. 그 구호는 악인을 겸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숨결이었으며 비록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어도 복음 전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우리에게는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은 선택도 아니고 대안도 아닌, 오직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산소처럼 필수적인 요소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확실하게 경험한 하나님의 손길이었기에 비록 사소한 교리 문제로 잡음이 있었지만, 교회마다 일 년에 최소한 두 차례씩 ‘심령 대부흥성회’를 열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에 하나가 되었었다. 방방곡곡에 세워진 기도원들은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부짖게 하는 집합 장소가 되게 했는데 이는,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을 사모하는 자들의 열기 때문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남에게 한마디 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만만해진 오늘! 누군가 클래식 음악에 심취되어 식사비에 버금가는 최고급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나를 구원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창조주이신 그분의 말씀을 깐족거리며 비아냥거리고 있다면, 그가 아닌 내가! 그의 어리숙한 인생관을 책망한다.

 

‘성령 충만, 말씀 충만 하자’는 주장은, ‘인공 지능’이 ‘사람의 지능’을 압도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는 이 시대에 걸맞지 않은 운동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깨우는 ‘정신 번쩍 봉’임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역사가 매일 증명하고 있다.

 

도포 입은 채로, 갓 쓰고 큰 눈 부릅뜬 채 정면을 응시하며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것보다, 청바지에 선글라스 끼고 헐리우드 배우 폼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사진 찍는 것이 더 매력적인 것처럼,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잔재주에 매료되어 하나님의 마음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교훈 대신 삼빡한 학자들의 이론으로 대체하는 실수를 우리는 종종 범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빈약한 채로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채 영적 전선에 나갔다가 얼마나 지독한 공격에 휘청거렸는지 나는 경험했다. 선교사 개인과 선교회가 무장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차선책으로 밀려나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원리가 무엇인지 선교 현장에서 재점검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점령하기에 앞서서 거대한 장수가 칼을 빼어 든 채로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은 내 편이냐 적의 편이냐?” 물을 수밖에 없었고,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신저라는 말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이끌고 있던 그는 모든 전술 전략을 뒤로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절절히 끓는 마음으로 구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주께서 나에게 주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과 선교사역에서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을 차선책으로 설정해 놓았다면 우리는 알 수 없는 기근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고가의 전기차라도 충전되지 못하면 전쟁통에 파괴되어 나뒹굴고 있는 적군의 장갑차나 다름없고, 긴 가뭄으로 논밭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현실에 망연자실하고 있는 농부를 춤추게 만드는 것은 ‘계단식 논과 만경평야의 비교 분석’ 혹은 “농사에는 장화가 좋을까요? 고무신이 좋을까요?”의 세미나가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 그 자체다! 그것이 대지에 생명을 불러오고, 그것이 농부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면,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다면 우리 마음에 넘치도록 채워져야 할 것은 톡톡 튀는 재치와 잡다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려는 하나님, 그분이시다.

 

하늘에서 소중한 진주처럼 빛나고 있는 선·후배 선교사님들!! 그리고 보내는 선교사로 헌신하시는 교회와 성도님들!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처세술이 성령의 인도하심 보다 우선되는 풍토를 경계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말씀에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일어서서 그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잊혀 가는 그 구호 ‘성령 충만’과 ‘하나님 말씀 충만’이다.

 

영리해지고, 앞서기 위해서 세상 기업체 흉내 내다가 희미해진 것은 성령 충만 아니었나?

제한된 지혜와 얄팍한 지식을 의존하다가 하나님의 말씀 충만이 우리에게 외면당하지 않으셨나?

우리가 묵상하며 매일 진액을 짜 먹어야 할 것은 우릴 늘 소생시키시기에 넉넉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안에서 놀랍도록 새 힘주시는 성령 충만이다.

 

우리는 기독교 태동의 순간에 성령 충만했던 그들의 파워를 기억한다. 그것은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을 위해 주신 하늘의 무장 갑옷이다. 그 하나님의 전술!!! 변경되거나 취소될 리 없다.

 

세상 경쟁에서 앞서가는 자들의 특징은 권모술수에 강하고 비판과 정죄에 능숙하며 주변을 꼼짝 못 하게 구속하는 놀라운 재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재주와 능력은 선교사가 부러워할 달란트가 아니다. 그렇게 뛰어난(?) 자들이 결국 임시 통제권을 얻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무섭게 책망하시고 벌하셨던 대상이 그들이다.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그리고 영혼을 지배하시도록 하자! 그래서 90여 개국, 바우리 선교사들이 나가 있는 곳마다 초대교회의 부흥을 일으키자!”

 

머리를 무겁게 하지 말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본부에서 하나님과 여러분을 섬기는 김문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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