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선교자료]팔복 해설(8)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천국이 그들의 것(마 5:12)
BY 관리자2019.10.30 10: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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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8복 해설(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천국이 그들의 것(마 5:12)
(토마스 왓슨의 팔복해설을 요약함)
이동휘 목사

 

신앙생활에는 회개의 눈물과 핍박과 피라는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주님이 지불하신다는 약속이다. 역경의 날에도 약하여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시는 큰 격려도 된다. 현재에도 복을 받고 장래에도 면류관을 쓰게 된다.

 

 

1.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핍박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행 14:22)  신앙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저주를 제거하기 위하여 죽으셨지 우리에게서 십자가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건물에 사용하기 위해 가져온 돌은 다듬고 망치질을 당해야 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가시와 피의 길을 통과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기까지는 독사가 들끓는 광야와 홍해를 건너야 했다. 아브로스는 “거기엔 아벨은 없고 가인만 있다” 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전 15:32)  십자가를 신조 속에 넣어야 한다. 헬라 말로 핍박한다는 말은 “성가시게 굴고 못살게 군다” 란 뜻과 “다른 사람을 고소하다.” “법정에서 규탄한다.” “죽을 때까지 끈질기게 괴롭히다”는 뜻을 나타낸다. “찌르는 가시”이다.(겔 28:24)  그러므로 교회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아 2:2)로 설명한다.

 

2. 핍박의 종류
손으로 하는 핍박과 혀로 받는 핍박이 있다. 손으로 하는 핍박은 피 흘리는 핍박이라 부른다.
“우리가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롬 8:36, 갈 4:29)  10명의 로마 황제에 의한 살벌한 갖은 박해와 각 시대마다 쉬지 않고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진 고문과 감옥과 살육 등이 살벌하게 벌어지고 있다.
혀로 받는 핍박은 갖은 욕설과 중상모략이다. 본문 11절에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이다. “그 말은 뽑힌 칼이로다.”(시 55:21)  사람은 그 몸을 죽이는 것 같이 그의 이름을 죽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치는 것도 핍박이다.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신 예수님에게 귀신 들렸다고 모함을 했다. 성도들의 귀한 이름을 비난과 치욕거리로 만들고 죄인으로 뒤집어쓰는 일이 지속된다.

 

3. 핍박의 이유
1)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어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용광로를 통과하는 믿음을 가졌다. 하나님께로 태어나서 바르게 자라난 그리스도인은 그가 무엇을 잃어버려도 그의 순결을 굳게 지킬 것이다. 감람산까지는 따라가도 갈보리 산까지 따라가는 자는 적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그의 거룩하심에 참례하도록 풀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신다. 십자가는 설사약이다. 그것은 교만, 조급함, 세상사랑 등을 싹 쓸어낸다. 그의 백성에게서 얼룩을 뽑아내고 하얗게 만드시려고 핏물로 씻으신다.

 

2) 교회의 원수들이 주는 핍박도 있다.
공개적인 원수가 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는 적대관계가 있다.(창 3:15)  악인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도둑은 빛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꺼버린다.
감추어진 원수도 있다. 우정을 가장하지만 남몰래 신자를 공격한다. 위선자와 이단자이다. 거짓 형제다.(고후 11:26)  교회의 원수가 집안 식구일 때도 있다. 그리스도의 색깔을 걸치면서도 그리스도와 싸우는 비열한 자가 있다.

 

4. 주의 일꾼으로 뽑힌 사역자들에 대한 핍박이 극심한 이유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12절)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의 그릇들이다. 불을 통과하여야 좋은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황제의 때와 같이 좋을 수만은 없다. 그들은 경고 소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한 번 설교에 3천 명이 회개하는 능력과 성결한 생활에도 핍박으로부터는 예외 될 수 없었다. 거룩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용기로는 강철같이 강하였고 열심히 불탔으나 결박과 환난만이 그를 기다렸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뜨겁고 격렬한 핍박을 받는 것은 이상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박해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행7:52)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익나시우스는 들짐승에게 찢기었다. 주의 종들에게 왜 핍박이 강렬할까?
  첫째,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그들을 태우시려고 함이 아니라 정제하기 위해서다. 인간이기 때문에 부패할 수 있는 본성을 가짐을 아시고 경고를 주심이다.
  둘째,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기를 가지고 다니는 기수다. 주의 종들의 선봉장이다. 따라서 사격의 표적이 된다. 전쟁터에서 최전선에 선 자들이다. 설교자는 죄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며 설교하는데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쾌락과 이별하는 것이 증오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이 정욕을 즐기는데 칼날을 대들며 자기들의 왕인 죄를 십자가에 매다는 행위에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아데미의 신상을 훼방했다 해서 난동을 일으켰다. 쾌락과 이득을 주는 그들을 이별할 수 없었다.
  셋째, 사탄의 악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의 왕국을 파괴하려고 하기 때문에 옛 뱀은 독을 그들에게 뿜어댄다. 우리가 마귀의 머리를 짓밟으면 그들은 우리의 뒤꿈치를 문다, 사역자들은 어두운 곳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어 죄를 들추어냄으로 격분하여 공격한다.

 

5. 복 받지 않게 하는 고통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것을 순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눅 23:41)  강도가 받는 십자가는 죄에 대한 보응이나 옆의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활과 면류관이 약속된 고난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깨끗지 못함이나 범법 행위 등으로 치안판사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은 형 집행일뿐이다. 사람이 자신을 불사르는데, 즉 순교하는 행위가 있을지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않을 때도 역시 하늘의 상이 전혀 없다. 사람들이 성급하고 경솔하게 자신을 곤란 속으로 몰아넣는 것도 자기가 스스로 만든 십자가이지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다.

 

6. 주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이 받는 복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행 28:20)  진리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며 신앙을 위해 싸움을 지지할 때 이것이 의를 위한 고난이고 천국을 얻는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벧전 4:16)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정신으로 고난을 받는 것을 말한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5:41)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는 영예를 기뻐하였다는 말이다. “초대교인들은 그들이 풀려날 때보다 고난을 받고 있을 때 큰 위로를 받았다.”(터틀리안)  어느 왕이 승리로 유명해졌다 해도 그들의 고난으로 유명해진 것만큼 유명해질 수는 없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 이르러야 한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눅 6:28) 한다. 그들은 우리의 상급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7. 핍박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신성함은 고난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참 “성도는 그리스도를 그의 마음에 모시고 십자가를 그의 어깨에 메고 산다.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여기서도, 하늘나라에서도 두 개의 천국을 가지려는 것은 큰 욕심이다. 그리스도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것이다. 땅 위에서의 그리스도 왕국은 십자가의 왕국이다. 핍박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에게 물려주신 유산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리스도의 신부는 가시밭 가운데의 백합화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그의 황금 양털을 잃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믿음 생활에는 고난에 대한 예외규정이 없다. 우리의 머리 되신 분이 가시 면류관을 쓰셨는데 우리는 장미 면류관을 쓰려고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황금들이니 불 속으로 던져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가 에라스무스를 그렸는데 절반은 천국 안에 있고 절반은 천국 밖에 있는 그림이다. 내면 안에 있는 천국 생활과 밖의 핍박을 생각하면 천국 밖에 있는 삶이다. 핍박은 저주의 열매가 아니다. 주안에 죽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는데 주를 위하여 죽는 자들이 복이 없겠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밀을 까부르시는 것은 더 알곡으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 하리라”(마 10:33) 란 말씀을 간직하는 자들이다.

 

8. 고난에 대비하여 스스로 무장하여야 한다
1) 성결에 따라 숨 쉬는 사람이다.
비록 죄는 그의 마음에 달라붙을지라도 그는 죄에 달라붙지 않는다. 비록 죄와 얽혀있을지라도 마음으로 허락한 것은 아니다. 사탄은 선한 사람을 심하게 유혹하여 선한 자가 가장 원하는 그것을 미워하도록 한다. 그는 그의 양심의 순결을 더럽히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열렬히 바라기 때문에 자신이 잃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게 한다. 

 

2) 세상에 대한 사랑을 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쓰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열심을 질식시킨다. 세상을 헐거운 옷이 되게 하여 기꺼이 버릴 수 있게 해두자.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 전에 먼저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애착에 죽어 있으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은 쉬운 일이다.

 

3) 겁쟁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을 화나시게 할까 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싸움터에 나갈 수가 없다. 이런 자들은 무엇이 최선이냐를 따지지 않고 무엇이 가장 안전한가를 따진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잠 29:25)  두려워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실제보다 두 배가 큰 것으로 바라본다. 두려움은 사람을 약화시키고 용기를 녹여 버린다. “이 땅 사람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수 2:9)  두려움은 배교의 원인이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눅 12:4)


4) 고난받는 것을 익혀야 한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야곱은 돌로 베개를 삼았다.(창 28:18)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애 3:27)  가벼운 십자가를 져버릇하면 무거운 십자가도 질 수 있게 된다. 비난을 인내로 견디는 것을 배우면 쇠사슬도 견딜 수 있게 된다. 사도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다. 그는 작은 고난부터 시작하여 순교자가 되기까지 점차 배워 나갔다. 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악인들이 점점 배워서 죄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나약하다. 자신들은 너무나 곱게 부드럽게 다룬다. 육신을 응석받이로 다루는 사람은 십자가의 학교에 적합하지 않다.

 

5)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전문가가 돼라.
장님은 늘 두려워한다. 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지식을 풍성케 해야 한다. 나를 의뢰한 자를 알고 나의 의지한 것을 그날까지 지키실 줄 확신하는(딤후 1:12) 사람은 담대하다. 예수님은 눈에 빛이시고 혀에 꿀이시고 마음에 기쁨이시다. 그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질 때 그에 대한 모든 일에 동참할 것이다. 불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를 끌어안을 수 있다.

 

6)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귀중히 여기라.
금은 깎고 남은 부스러기도 귀하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잠 23:23)  하나님이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이 둘이 있는데 그의 영광과 그의 진리다. 살리스베리 감독은 “나는 내 감독직을 부인할 수 있고  내 이름과 내 명성을 부인할 수 있어도 진리는 부인할 수 없다” 하였다.

 

7) 선한 양심을 가지라.
어깨에 종기가 난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없다. 양심의 죄는 종기와 같다. 십자가를 절대 질 수 없다. 배가 튼튼하고 장비를 잘 갖추었으면 물 위로 항해를 할 수 있지만 물이 새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집의 기둥이 썩었으면 폭풍에 견딜 수 없음같이 마음이 썩었으면 핍박의 바다를 항해할 수 없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 3:9)  감옥에 있어도 선한 양심을 가진 자는 새가 되어 이 새장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선한 양심의 낙원이라 불렀다.

 

8) 성경과 친숙하게 되어야 한다.
성경을 묵상하여 잘 소화되면 고난받을 자격이 된다. 그것은 일천 방패를 매달아 놓은 다윗의 망대에 비할 수 있다. 이 성경의 가슴에서 거룩한 힘이 영혼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골 3:16)  제롬은, 성경을 자주자주 연구하여 그의 가슴을 그리스도의 도서관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고 말하였다. 힘을 위한 무기고가 된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무장하기 위하여 성경으로 달려가셨다. 세 번씩이나 그는 “기록하기를”라는 말씀으로 옛 뱀을 상하게 하셨다. 골리앗의 얼굴에 던질 돌멩이를 성경에서 얻으라. 육신이 주춤거리면 성경이 원기를 북돋우어 준다.

 

9) 마음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구조가 되도록 하라.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이렇다. 자기를 부인하는 극기의 구조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믿음생활의 기초이며 이 기초가 무너지면 전체의 집이 무너진다. 만일 우리 영혼에게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어떤 정욕이 있으면 결국에는 그것이 어떤 추문이나 배교로 변할 것이다. 부인이라는 말은 옆으로 치워버린다는 뜻이다. 포기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다 치웠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오니.”(마 19:27)  주를 위해서는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계 12:11)  가장 힘센 장수인 고집도 꺾어 치워야 내 영이 산다. 교만의 깃털 장식이 떨어져야 한다. 베드로는 자기만은 부인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그를 망쳤다.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지 마라. 육신을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그리스도를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해야 예수님을 따르는 원칙 때문이다. 십자가를 잡지 않고 술잔을 잡는 그 당돌함! 지옥에 가서야 항복하겠는가?

 

10) 고난을 참게 하는,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은혜를 받으라.
믿음은 방패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엡 6:16)  방패는 위기에 머리를 보호해주고 생명을 지켜준다.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의지하는 은혜다. 믿음은 사자의 배에서 꿀벌집을 얻어내고 십자가 아래서 보석을 찾아낸다. 그를 불에 던지면 오히려 그 불꽃보다 더 뜨겁게 불탄다. 믿는 자는 고난의 물에 던져도 그는 물 위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고 가라앉지 않는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아 8:6)  순교자들은 먼저 사랑으로 불타고 다음으로 화형 불에 불탔다.
펠리칸이라는 새는 그 어린 것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것들이 뱀에게 물리면 그 자신의 피를 먹인다고 한다. 그와 같이 우리가 옛 뱀에게 물리면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우리에게 먹이시므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사랑은 감옥을 뚫고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을 낸다.
인내는 그리스도인을 무적으로 만든다. 인내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무기가 없는 군인과 같다. 인내는 고난의 결말을 바라본다. 파수꾼이 아침 동트기를 기다리듯이 인내하는 그리스도인은 영광의 날이 동터 올때까지 기다린다. 믿음은 하나님이 오신다고 말하고, 인내는 그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갑옷이다.

 

11) 고난을 견디게 하는 약속을 소중하게 간직하라.
약속들은 믿음이 가라앉지 않게 해주는 공기 주머니이며,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할 때 먹고 살 젖줄이다. 필요할 때에 지혜의 성령을 보내주시어 대적이 대항할 수 없는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눅 21:15)  보호의 약속 역시 용기를 준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행 18:10)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고전 10:13)  베드로의 기도는 하늘 문을 열었고 하나님의 천사는 감옥 문을 열었다. 하나님은 올가미를 막을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다.

 

12) 하나님은 수난을 당할 때 위안을 주신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행 23:11)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행 7:56)  고난에 보상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난에 보상해주시되 금생에 있어서는 백배를 갚아주시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다.

 

9. 고난받는 자들의 예를 지켜보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아라.”(약 5:10)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육체가 끓는 물에 들어가고 사지가 찢어져도 금강석처럼 단단하여 정복당하지 않고 버티었다. 1555년에 화형당한 순교자 사운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여 어서 오라 내 주님은 더 쓴 잔으로 시작하셨는데 나 어찌 그를 따르지 않으리오. 너 박해자여! 나는 안락한 침대에 누운 것처럼 불 가운데서도 결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라 하였다. 어떤 순교자는 사형 말뚝에 입 맞추면서 “나는 내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으로 바꿀 뿐이다. 석탄 대신에 진주를 갖게 된다.” 또 다른 순교자는 사슬로 그를 묶자 “이 혼례의 허리띠를 매어주신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자”라 했다.

 

10. 고난의 9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누구를 위해 고난을 받는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기까지도 한다. 나를 위해 친히 죽음으로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핍박받는 것은 큰 명예이다.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선발된다는 것은 큰 영예이다. 순교자는 신앙옹호자이다.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일뿐 아니라 그의 흔적을 가진 자이다. 피의 십자가가 자줏빛 왕복보다 더 명예롭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참으신 것을 생각하라.
칼빈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하였다. 여우도 굴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으셨고(마 8:20), 우리들처럼 주님도 비난을 받으셨고 모욕을 받으셨다.(마 27:29)  침을 뱉어 수치스러운 일도 당하셨다.(막14:65)  제자에게 배신도 당하셨다.(눅 22:48)  죄가 없음에도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부당한 처우를 당하셨다.

 

넷째, 우리가 고난받음으로 그리스도와 복음에 가져오는 영예는 크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 아래 많이 기록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바울이 쇠사슬에 매임으로 복음이 금사슬을 매었다. 초대교회에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교회는 피로 기초를 놓았고 피로 성장하였다. 바울이 묶인 것이 진리가 더 커지도록 하였다.

 

다섯째,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누구에게 고용되었는가를 생각하라.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에게 충성할 것을 서약하였다. 자주 받는 성찬식을 통해 역시 그의 깃발 아래서 싸울 것을 다짐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장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이름을 등록하여 놓았다. 그의 군기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는 신분이다.

 

여섯째, 우리의 당하는 고난은 가볍다.
죄에 비하면 가볍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무거운 죄에서 벗어난 자는 그까짓 고난은 가볍게 여긴다. 그는 죄 사슬 때문이 아니라 죄 때문에 부르짖었다. 뿐만 아니라 지옥에 비하면 가볍다. 지옥의 저주에 비하면 핍박은 아무것도 아니다. 죽을 상처에 비하면 적은 가시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영광에 비하면 더욱 아무것도 아니다. 영광의 무게가 핍박을 가볍게 만든다.

 

일곱째, 우리의 고난은 짧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벧전 5:10)  그리스도께서 핍박의 멍에를 지우실 때 그의 팔을 우리 아래에 받쳐 주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 우리가 정복할 때에 면류관을 씌워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복할 수 있도록 하신다.

 

여덟째, 핍박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결코 고난받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못한다. 
주의 뜻을 거절할 때 양심의 파산을 면치 못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불타기를 꺼려하는 사람은 죄 때문에 불타게 된다.

 

아홉째, 핍박은 우리가 복 받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행 23:11)  환난 중에 곁에 계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고난을 극복할 능력도 주시면서 지키신다. 핍박을 당하므로 우리를 더 깨끗케 해주시고 더 하나님과 가까운 자가 된다.

 

11.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항구에 도달하였을 때의 받을 풍성한 보상을 생각하여 현재의 염려를 너무 염려하지 알아야 한다. 십자가는 우리가 타고 천국에 올라갈 황금다리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목숨을 잃을 수는 있어도 상급은 잃지 않는다. 그는 그의 머리는 잃을 수 있어도 그의 면류관은 잃지 않는다.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도 상을 잃지 않는다면 따뜻한 피 한 모금을 주는 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공로로는 아무 보상도 기대할 수도 없고 은혜로서 그것을 받게 된다. 그 상급은 우리의 공적보다 넘쳐 생각을 초월한다. 십자가를 참을성 있게 지는 사람은 면류관을 의기양양하게 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자리, 그의 보좌를 순교자에게 줄 것이다. 하늘의 어떤 천체는 더 높고 더 밝다. 하나님을 위하여 더 많은 해를 받은 사람은 천국의 지평선에서 더 밝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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