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칼럼]이집트 교회, 난민사역에서 선교운동으로 | 송유세프 선교사
BY 관리자2022.04.29 11: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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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이집트 교회, 난민사역에서 선교운동으로

송유세프 선교사(중동 E국)

 

Ⅰ. 시작하는 글

고고학자요 이집트학자(Egyptologist) 르얀(Donald P. Ryan, 1957~)1)은 람세스 2세의 치세 관련 그의 저서에서 이집트인에 대해 “그들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며 그들의 통치자는 이 땅에 살아있는 신으로 여긴다”고 말했다.2) 이집트인의 자기중심성과 종교성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집트인은 자신들의 영토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비(非)이집트인에 대해서는 우주 질서를 어지럽히고 혼돈하게 하는 잠재적인 사람들로 이해하는 배타성이 매우 강한 측면을 말한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땅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집트인이 된다는 것은 땅과 우주의 힘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인이 아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안정적인 우주 질서를 어지럽히고 재앙을 촉발시킬 수 있는 혼돈의 잠재적인 주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국경에서 몇 시간 동안 심문받는데 국경수비대가 당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의치 말라. 그는 이집트를 화재, 우박, 메뚜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3) 

 

그들의 이러한 자기 이해는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았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4)  이러한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이집트는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흡수하여 하나의 통일 왕국의 번영에 참여하게 하는 정책을 람세스 2세는 활용했다.5)  람세스 2세는 누비안 용병들과 전쟁 포로들을 그의 군대에 동원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외국 왕비를 얻은 점에서 외국인을 호스트 하는 특징을 오늘의 이집트가 이주민과 난민을 호스트 하는 것으로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이집트는 공식적인 난민촌이 없는데도 난민과 이주민들을 환대하여 약 6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난민들을 얼마든지 환대하고 받아주어 자신의 영토에서 살아가도록 허용은 하되, 이집트를 경유지 삼아 불법적으로 목적국을 향해 떠나는 것은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이집트 대통령 알 시시(Abdel Fattah Saeed Hussein Khalil el-Sisi)는 연설하였다.6)


이주민과 난민을 포함한 600만 중에 유엔난민기구(UNHCR)에 등록된 난민 수는 65개국에서 온 270,000명(대다수가 시리아 사람이고, 수단, 에티오피아, 남수단,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예멘, 소말리아 순)이다.7)  이집트교회는 난민에 대한 기회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필자는 난민 사역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집트교회를 도전하여 난민 사역하는 이집트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사역 방향을 제언하려고 한다.  
 

Ⅱ. 이집트 이주·난민의 현황과 특징

A. 이집트는 이주민과 난민을 환대한다.

  1. 노동으로 개인 사업장을 여는 것에 관대하다. 
  2. 거주비자 연장이 비교적 수월하다.
  3. 난민 자녀 공교육 진입을 허용하고 코로나 백신을 제공함.8) 
  4. 카이로 외곽 신도시(6 October city)에 난민들 위한 빈민가 주택 조성하였다.
  5. 이집트를 경유지로 삼아 불법으로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엄격히 처벌한다.9) 
  6. 이주민과 난민들의 품격 있는 삶을 제공하기를 열망한다.10) 
  7. 이집트교회는 난민 사역이 거의 전무하다.11) 

 

B. 이집트, 난민들에게 중간 정착지로서 매력 있는 나라

  1.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이집트는 공식적으로 65개국에서 270,000명 이상의 등록된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인 유입된 수는 50만 명이 넘는다.12)  그들의 상당수는 난민 신청을 하지 않고 이주민으로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집트 내에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고(133,568명) 수단(20,240명), 남수단(20,174명), 에리트리아(15,671명), 에티오피아(15,671명), 예멘(9,404명), 이라크(6,771명), 소말리아와 다른 50여 나라 순이다.13) 
  2. 이집트는 언어와 종교적으로 아랍 이슬람 국가이고, 경제적으로 물가가 저렴하며, 정치적으로 이주민과 난민의 유입과 거주가 안정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일자리를 얻고 심지어 부유한 피난민은 사업장을 열고, 그리고 지리적으로 지중해 건너 유럽과 가까워 난민들에게는 매력 있는 나라이다. 
  3. 2012년부터 대량으로 유입되는 시리아 난민들로 인해 2013년 12월 알렉산드리아에도 제2 난민사무소 설치함.14) 난민 집중 거주 지역은 수도 카이로와 델타지역의 알렉산드리아, 모노피야, 샤르키아, 다카흘리야, 다미에타 지역 등이다.    
  4. 지중해 건너 불법 난민 보트로 유럽으로 가기 쉬운 곳은 알렉산드리아와 다미에타 항구지역이다. 
  5. 공교육 등록 시 유엔의 교육지원으로 학비와 교복 그리고 기타 교육재료를 공급받는다. 
  6. 이집트 교회의 공식 난민 사역 프로그램은 요르단, 레바논 교회들처럼 활발하지 않다. 다만 교회의 의료진들과 사역자들이 개별적으로 자체 팀을 구성한다든지 외국 사역 단체와 협력하여 사역하는 경향이 있다. 이집트 교회의 공식적인 난민 사역 도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Ⅲ. 이집트교회, 부흥 운동 경험하다

A. 부흥 운동 경험을 난민 사역으로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이집트인들이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종교적이다”라고 했다.15)  이집트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로마의 네로 황제시기 마가(Mark)에 의해서이다.16)  초기 로마의 박해 시기에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고, 4~6세기의 기독교 번성기를 지나, 640년부터 아랍 이슬람 군대는 차례로 델타, 헬리오폴리스, 카이로(로마의 바벨론 도시)를 점령하고 이집트 전역으로 확대하었다.17)  콥트 기독인들은 딤미로서 고난과 핍박과 순교가 있었다.18)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수도원 운동과 주일학교 운동에 영적 부흥의 시기였다. 이 시기는 교황 키릴루스 6세(1959-1971 재임 기간)에 이집트 수도원 운동과 주일학교 운동의 대부흥을 경험한 것이다.19) 


수도원 운동과 말씀 운동으로 유능한 젊은이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리고 키릴루스 6세에 이어 스누다 3세(Shenudah III)의 교황 재임 기간이 그 부흥기였다. 교황 스누다 3세는 기독론 논쟁에서 콥트교가 이단으로 정죄된 칼케돈 회의(451년) 이후 처음으로 1973년 로마 교황청(교황 파울로 6세) 초청을 받았고 서로 간 공통의 기독론 신앙고백에 서명했다.20)  이어서 1979, 1987, 1999년에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만나 성서관(on the basis of the Scriptures)에 대한 상호 이해를 토론했다.21)  1988년 스누다 3세는 이집트 장로교단과 신학적 대화(the Coptic-Presbyterian theological dialogue)를 주최하여 중동에서 콥트교-장로교회 간 일부 신학적 문제에 대한 화해를 위한 길을 닦았다.22) 


이 외에 스누다 3세는 중동의 다른 종단들과의 회합 같은 종교적 행보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스누다 3세에 대한 오해와 고소들로 인해 1981년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대통령은 그를 성 비쇼이 수도원으로 추방시켰다. 그러나 4년 후 1985년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은 사다트 전(前) 대통령의 추방령을 취소시키고 그를 풀어주었다.23)  이후 콥트교와 이집트 정부와의 관계는 화해 무드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집트 교회는 이런 부흥 경험을 내적 축복으로만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모든 열방을 위한 축복의 통로였던 것(창 12:3)처럼 말이다. 이집트 교회가 경험한 부흥은 이웃과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그 영적인 부흥을 경험하게 할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집트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환대했던 때이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을 통한 그의 가족 전체, 모세, 예레미야(렘 43:6-8)와 아기 예수와 함께 피난 온 그 가족(마 2:14-15, 19)을 이집트 땅은 환대했다. 이것으로 인해 “내 백성 애굽이여”(사 19:25)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집트는 또한 극한 어려움도 경험했다. 로마 박해 시대와 이슬람 점령 시대의 핍박과 순교자의 피24)는 오히려 이집트 교회가 정화되는 기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 위대한 세기에 경험한 순교 신앙으로 이집트의 현 제도와 체제에 굴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난민 선교하는 이집트 교회여야 한다. 부흥 운동의 경험을 난민 사역에 쏟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선교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교회가 아니지 않는가!25)  그래서 뉴비긴(Lessile Newbigin)은 “교회가 선교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그 본질을 상실하는 것”26)이라 했다. 이집트 교회가 난민 사역에 참여하도록 도전하여 함께 선교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B. 난민 사역 경험을 선교 운동으로 

이집트 교회는 난민 사역에 참여함으로써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될 것이다. 알 시시 대통령은 교회에 대해 호의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이집트교회가 선교 사명에 대하여 머뭇거리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이집트교회의 반응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교회적으로 난민을 향한 사역 대응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다만 기독인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그룹으로 외국 단체들과 협력을 통해 사역하고 있기는 하다. 레반트 지역의 레바논과 요르단 교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난민 사역에 참여하는 것과는 많은 대조를 보인다. 


이집트 교회가 이주민과 난민들을 향한 복음적 대응을 하도록 도전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적 활동이 없으면 선교 활동이 생겨나지 않기에 반드시 이집트 교회를 도전해야 한다. 교회들이 난민을 향한 복음적 활동이 일어나도록 요청해야 한다. 그러할 때 이집트 교회는 선교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선교 운동은 이미 받은 축복이 다른 모든 열방에 전달되게 하는 실제적인 움직임이다. 이집트 콥트교회가 초대 교황으로 추대하는 요한이라는 마가(St. Mark the Evangelist)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핍박 가운데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주 후 68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 당했다.27)  그가 전 세계 교회를 향해, 특히 이집트 교회에 남긴 유언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 16:15)이다. 이집트 교회가 자랑으로 여기는 마가의 예언적 유언에 ‘만민’을 향하라는 메시지에 큰 울림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집트 교회가 집중할 ‘만민’은 바로 이주민과 난민이다. 


Ⅳ. 마치는 글 

지금까지 필자는 이집트가 이주민과 난민 포함 약 600만 명을 환대하고 있음을 고찰하면서, 난민촌 없이 난민이 거주하여 일하고 사업장을 열고 자녀들에게 공교육의 기회와 의료적 혜택을 주어 보다 더 품격 있는 삶을 제공하려는 이집트 내 이주민과 난민들의 상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알 시시 대통령은 난민들이 이집트를 불법으로 목적국 향해 떠나는 경유지로 삼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런 불법에 가담하는 자에 대한 엄격히 처벌할 것을 말했다. 이주민과 난민을 환대해주는 정부와는 반대로 이집트 교회는 이들에 대한 사역에 매우 방관자 입장에 있다. 그래서 이집트 교회를 향해 난민 사역에 도전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이집트 교회에 1960년대 강력한 수도원 운동과 주일학교 운동의 부흥을 주셨다. 부흥 운동의 경험을 난민 사역으로 흘려보내는 선교 운동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이집트교회에 처음 복음을 전해주었던 마가의 예언적 유언과도 같은 것이다. 즉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 16:15)는 그 울림이 이집트 교회에 있기를 촉구했다. 이에 필자는 이집트 교회를 향한 제언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1) 이집트 교회가 난민 사역에 참여하도록 교단28)과 교회 지도자와 네트워크 하라.
2) 난민 사역할 수 있는 교회로부터 헌신자를 추천받으라.
3) 헌신자들을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훈련하라.
4) 훈련된 자들을 현지교회와 협력으로 난민 사역하라.
5) 훈련된 자 일부를 해외의 난민 사역 팀에 단기사역자로 파송하라.
6) 이런 과정을 통해 현지교회가 선교 운동으로 나아가게 하라.


※ 송 유세프는 2000년부터 중동에서 사역하고 있다. 요르단 암만의 한 난민센터(레바논, 두로 임마누엘침례교회에 속함)의 디렉터로 섬겼고, 현재 이집트로 자리를 옮겨 현지교회와 협력한다. 본 글은ACTS난민연구소(소방 김요한목사) 주최 2022년 2월 24일 난민선교세미나에 기고한 것이다.


1) https://en.wikipedia.org/wiki/Donald_P._Ryan, 2022-1-23, 11:24am 접속함
2) Donald P. Ryan, Egypt 1250 BC: A Traveler’s Companion,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10, 6.
3) 위의 글, 6-7.
4) 위의 글, 7.
5) 위의 글, 7-8.
6) https://english.ahram.org.eg/News/446665.aspx, 2022-1-12 9:12pm 접속함.
7) https://www.unhcr.org/eg/about-us/refugee-context-in-egypt, 2022-2-8, 8:37pm 접속함.
8) https://english.ahram.org.eg/News/446665.aspx, 2022-1-12 9:12pm 접속함.
9) 같은 글
10) 같은 글.
11) 카이로 아즈바키아 장로교회 Hany Mousa 목사와의 대담 중에서.
12) https://www.unhcr.org/eg/about-us/refugee-context-in-egypt, 2022-2-8, 8:37pm 접속함. 
13) 같은 글.
14) 같은 글.
15) Jason Thompson, A History of Egypt: From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19. 154.
16) 위의 글, 153-154.
17) 위의 글, 174.
18) Otto F. A. Meinardus, Christians in Egypt: Orthodox, Catholic, and Protestant Communities Past and Present,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06. 16-19. 
19) Otto F. A. Meinardus, Monks and Monasteries of the Egyptian Deserts,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1992, ix-xii. 그의 다른 책, Two Thousand Years of Coptic Christianity,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1992, 3-9 참조. 
20) Otto F. A. Meinardus, Two Thousand Years of Coptic Christianity, 7.
21) 같은 글.
22) 같은 글.
23) 위의 글, 8
24) Jason Thompson, A History of Egypt: From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158-159. 밀라노 칙령(313) 이전에 콥트교회가 데키우스 황제부터 갈리에누스, 발레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까지 있었던 박해와 순교를 말한다.  
25) Lesslie Newbigin, The Household of God, 홍병룡 역, 『교회란 무엇인가?』, 서울: IVP, 165-186에서, 교회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할 때 사도적인 증인의 삶(선교적인 순종)을 행하는 교회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뉴비긴이 이해한 교회의 본질 즉 선교라는 것이다.   
26) 위의 글, 181.
27) Otto F. A. Meinardus, Two Thousand Years of Coptic Christianity, 28.
28) Otto F. A. Meinardus, Christians in Egypt: Orthodox, Catholic, and Protestant Communities Past and Present,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06. 104-118. 이집트 개신교 선교는 1633년에 26세의 젊은 독일 루터교 선교사 피터 헤일링(Peter Heyling, 1603-1657)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이집트 개신교단에는 콥트 복음주의교단 나일강 노회(장로교), 홀리네스교단(The Holiness Churches), 홀리네스교회(The Holiness Church), 이집트믿음교단(The Church of Faith in Egypt),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 진리교단(The Church of the Standard), 복음주의침례교, 제1성서침례교, 플리머스 형제단, 개방적 형제단(Open Brethren), 오순절교단, 제7일안식교 등이다. 


참고문헌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다문화 사회의 이해』, 파주: 동녘, 2008. 
Georgy, Fathy Saiid, The Flight of the Holy Family, Cairo: Dar Nubar Publishing, 2001.
Kamil, Jill, Christianity in the Land of the Pharaohs: The Coptic Orthodox Church,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1992. 
Meinardus, Otto F. A., Christians in Egypt: Orthodox, Catholic, and Protestant Communities  Past and Present,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06. 
, Monks and Monasteries of the Egyptian Deserts,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1992. 
, Two Thousand Years of Coptic Christianity,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15. 
Ryan, Donald P., Egypt 1250 BC: A Traveler’s Companion,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10.
Thompson, Jason, A History of Egypt: From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Cairo: 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2019.
Newbigin, Lessilie, The Household of God, 홍병룡 역, 『교회란 무엇인가?』, 서울: IVP, 2010. 

인터넷자료
https://english.ahram.org.eg/News/446665.aspx, 2022-1-12 9:12pm 접속함. 이주민과 난민 포함 600만 명을 수용하는 데 대한 긍지와 그들에게 품격 있는 삶을 제공한다는 내용.
https://english.ahram.org.eg/NewsContent/1/1234/455035/Egypt/Foreign-Affairs/Sisi-says-no ninterference-in-other-countries-dome.aspx, 2022-1-12, 9:21pm 접속함.
https://en.wikipedia.org/wiki/Donald_P._Ryan, 2022-1-23, 11:24am 접속함.
https://www.unhcr.org/eg/about-us/refugee-context-in-egypt, 2022-1-12, 8:37pm 접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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