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이야기  / Mission Story
[칼럼]훈련원을 떠나며... | 양무리 선교사
BY 관리자2020.05.06 15: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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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단상

훈련원을 떠나며...

양무리/주보금 선교사(중동 T국)

 

필자는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달려온 20여 년의 시간 가운데 훈련원 사역으로 12여 년을 보냈다. 선교 현장에서의 시간보다 열방을 향해 선교사로 준비하는 훈련선교사들과 보낸 시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필자를 ‘선교 훈련 전문가’라고 불러준다. 하지만 이렇게 불릴 때마다 왠지 낯설기만 하다. 이는 훈련자의 입장보다는 계속되는 훈련 가운데 살아간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훈련 중에 살아가는 선교사가 필자에게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는 훈련원을 떠나지만 계속되는 훈련 가운데 있는 선교사로 새로운 환경에서 훈련이 이어진다고 본다.

 

새로운 훈련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지난 훈련원 사역을 통하여 배운 훈련에 대한 이해를 간략하게 나누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훈련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소명을 받은 사람이 사명완수를 위해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선교사로 부름 받은 자들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목적에 맞는 커리큘럼에 따라 훈련받으며 선교사로서 필요한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선교훈련을 위해 지난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필자가 오늘 나누고자 하는 훈련에 대한 이야기는 해외선교를 위해 준비하는 선교훈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포함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훈련에 대해서이다. 선교사나 목사로 부름을 받고 일정 기간 훈련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행되는 전생에 훈련 가운데 한 자락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목사이든 선교사이든 장로이든 직분과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전 생애 훈련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매일의 삶이 훈련이며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지속적인 훈련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렇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하는 전 생애 훈련에 대하여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야 할 전 생애 훈련의 첫째는 ‘정체성의 훈련’이라 생각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제자들을 양육하셨다. 특별히 12명의 제자와 긴밀한 관계 가운데 훈련하셨다.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제자들과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셔서 훈련하시는 가운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질문을 던지셨다. 이는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셨지만 제자들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셨다. 베드로는 용케도 주님이 만족하시는 답을 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도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이 주가 되시고 자신은 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믿기에 주님 앞에 종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믿는 자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바른 가치관과 목적을 가질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날마다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바른 정체성은 바른 관계를 맺어간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된 정체성을 갖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매일매일 예수님 앞에 서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때에 이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자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고전 10:31)  주님 앞에서 자신을 각성시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일생에 한두 번이 아니라 일생동안 반복되고 이어지는 훈련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본분을 잊고 타락한 사탄과 같이 오만하고 교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자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으로 살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둘째는 ‘복종의 훈련’이라 생각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시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6-8)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심으로 복종하셨다.(마 26:39)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신 것이 복종이다. 신약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제일 덕목이 된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롬 6:16)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본성대로 살거나 어린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선교회 7대 정신 가운데 절대복종이 있다.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하나님 세운 질서에 복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복종의 훈련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지 않으면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매 순간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훈련이 잘 되어질 때에 복종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

 

셋째는 ‘성화의 훈련’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택하시어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다.(출 19:6)  또한 믿는 자들에게 부르신 하나님처럼 거룩하여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고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거룩하다고 불러주신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살라는 요구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죄악 된 세상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함을 배우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한 삶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성령님과 민감하게 사는 것이 성화의 삶이다. 하지만 인간이 발 딛고 바라보는 것은 죄악이 만연한 세상이기에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 훈련이 필요하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인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망가진 인간의 창조 원형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도전하고 있다. 누군가를 닮는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집중해서 바라보고 부지런히 흉내를 내야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님을 목표로 부지런히 닮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부지런히 훈련받아야 하는 것이 성화의 훈련이라 본다.  

 

넷째는 ‘사랑실천의 훈련’이라 생각한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하였다. 행동을 동반한 믿음이어야 살아 있는 믿음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가지고 행하기 위한 동력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은 행동을 동반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죄인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성령님은 죄인에게 오셔서 내주하시며 사랑으로 오늘도 인내하시며 역사하신다.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행하심으로 사랑을 온전히 드려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성실하게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 결과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하며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물론 시간과 물질의 헌신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는다. 지난 훈련원 생활 가운데 자신의 형편이 어려워도 다른 지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훈련선교사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사랑실천은 한순간에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과 실천으로 가능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바울선교회 QT 시간에 생활에의 적용이 있는데 일일 일선으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랑실천을 기록하게 한다.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훈련이 잘 될 때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기간이 사랑을 실천하는 척도는 아니다. 오직 매일매일 작은 것부터 자신의 것을 희생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훈련이 될 때 더 큰 사랑실천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기 위해 전인격적인 훈련과 전 생애 훈련이 지속적으로 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딤후 3:16)고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 위해 다양하게 끊임없이 훈련되어져야 한다. 말씀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받는 것을 결코 포기하는 순간 사탄은 무섭게 달려들어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깨어 훈련받는 것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는 것이다.(딤후 4:7) 

 

필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바울선교회 훈련원이란 공간을 떠나 주님이 주신 땅 T국으로 나갑니다. 그곳은 필자의 새로운 훈련의 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훈련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성령님과 함께 끝까지 경주하길 간절히 사모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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