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본부장 칼럼
이성춘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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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하다 하거늘.”(행 16:21)
바울이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주 거주민이었던 로마의 퇴역군인들은 바울이 낯선 풍속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했다. 사람들이 이동, 순례하면서 주고받는 많은 것들 가운데에는 문화, 종교, 삶의 모습과 더불어 각종 전염병, 병균도 있음을 본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에 한 질병이 어떻게 신속하게 옮기면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의 이동을 통해 전파되는 것은 본래 의도했던 순기능적인 부분도 있고, 무엇인가 부정적인 것을 남긴 역기능적인 것들도 있다.
2. 거룩함과 경건함을 전파하는 사람들
세상은 분리된 세상이 아니라 이제는 상호 영향을 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은 세상의 한 지역에서 발생하였지만, 그 태풍은 온 세상의 평화, 경제, 에너지, 식량문제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하면서 순례자적인 삶을 사는 선교사의 거룩함과 청결함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게 되었다. 영적인 거룩함은 순전한 복음을, 청결함은 경건한 일상과 위생적인 삶을 이루어가게 한다. 이 거룩함과 청결함은 코로나와 전쟁 등이 세상을 강타할 때에 우리와 세상을 지켜갈 힘이 된다.
우리의 선진들이 어떻게 그 큰 환란과 위기를 대처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1. 루터의 대처
종교개혁 시기에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대중이 모이는 예배를 1527년 7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중단하고 가정예배로 전환시켰다.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글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약을 먹으며 집과 마당과 거리를 소독하라. 사람과 장소를 피하라. 나는 내가 꼭 가야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음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원한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2. 고난을 예배의 축제로 돌파
독일의 뮌헨 근처의 오버암머가우는 1634년부터 10년마다 고난주간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30년 전쟁 중에 1633년에 바이런(뮌헨) 지역에 페스트가 발생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들이 10년 동안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역사를 상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부터 주민이 한 사람도 죽지 않게 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그 다음 해인 1634년에 첫 번 고난극을 상연했고 고난주간 축제를 지속하고 있다. 2020년의 상연이 코로나로 연기되고 있지만, 매 10년마다 공연을 진행하여 전 세계적인 고난주간 축제가 되었다.
1. 안전지대 없는 세상
코로나 발생 초기에 세상은 대응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으로 위생과 보건의 선진국, 가장 안전한 곳이 되었다. 코로나 상황에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다 코로나 영향권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코로나가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여기고 그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 없이 지낼 수가 없었다.
바울선교사는 국내로 귀국하여 보호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현지에 머물면서 상호 돌봄 속에 있었다. 바울선교사들이 더 어렵고 힘든 현지 기독교인들을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한 것이다.
2. 바울선교회의 고난의 현장들
일상이 멈추고 산업활동이 위축되고, 교회 예배에 참여가 어려웠다. 우리는 이 기간에 선교사를 잃어버렸고, 선교지를 잃어버렸다. 바우리의 상처, 아픔들은 다음과 같다.
위기의 때에 더욱 필요한 것은 위기관리 능력과 멤버케어의 활성화였다. 엄격한 행정시행과 규정에 따른 규제가 아니라 용납과 허용과 관용을 베풀어 가고 있다. 위로와 회복 시간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자 했다.
1. 멤버케어의 시간
멤버케어란 선교사들이 파송기관과 후원교회에 의해 돌봄과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공감하게 하며, 효과적인 사역을 위한 자원과 자신과 가족들이 돌봄을 받는데 필요한 자원이 예비되어 있다는 확신을 의식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멤버케어를 해야 하는가? 멤버케어는 선교사를 건강하게 하고, 선교사역을 완주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멤버케어는 복음메시지의 일부이고 가시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계명은 지상명령과 대계명이다. 대계명은 지상명령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마 28:18-20의 지상명령은 결국 요 13:34-35의 대계명을 통해서 실천된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멤버케어는 자기 돌봄, 상호 돌봄, 파송자의 돌봄, 전문가의 돌봄과 네트워크의 돌봄 등을 포함한다. 멤버케어의 기본,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주님의 돌보심이다. 어느 돌봄도 이 하나님의 돌봄을 대체할 수 없다.
2. 멤버케어 현장의 6가지 상황
마 25:31-36의 마지막 심판의 근거가 어려운 사람을 얼마나 도와주었는가, 곧 멤버케어를 잘 했는가에 있음을 보여준다. 형제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에게 한 것이다. 선교사도 가장 작은 자 중에 속한다. 6가지의 어려운 상황들이 선교지에서의 선교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굶주린 상황은 선교비 공급이 중단된 상황을 보여주고, 목마른 상황은 선교지에서 매일 2-3시간 물의 공급이 중단된 상황을 보여주며, 나그네 된 상황은 선교사로서 현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과 현지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입을 옷이 없던 상황은 경제적인 위기 속에서 경제적 지원이 중단된 모습 등을 반영한다. 병들었던 상황은 선교지에서 풍토병으로 인해 쇠약해진 선교사의 모습이다.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은 복음 때문에 유치장에 가고, 비자로 인해 공항에서 거부당하고 구류되는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스스로를 잘 돌보았는가? 동료선교사를 잘 돌보아 주었는가”를 물어보실 것이다.
3. 주님이 정하신 일
이런 6가지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와 같은 일들을 허락하시는가?”라고 질문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존 파이퍼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바른 질문은 아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정하셨는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의 상황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사고가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우리의 삶의 현존이다. 그래서 존 파이퍼는 기독교는 생명을 주기 위해 고통 받는 종교이지 죽기 위해 고통 받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4. 자신의 성찰과 이웃 섬김의 시간
미국의 존 파이퍼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을 행하셨는지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곧 회개와 반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톰 라이터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지기보다는 이 일을 인하여 애통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기독교의 소명이라고 코로나 상황에서의 기독교인의 섬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바울선교회의 현주소를 보면서 우리는 위기와 상실의 때에, 자신에게는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성찰하고 회개와 갱신과 회복의 길을 찾아가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하면서 서로 섬기고 함께 극복해 가야 할 것이다.
멤버케어의 시간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 자신의 감정의 변화에 촛점을 맞춘다. 또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의 관점에서 일어난 변화와 성장에 촛점을 맞추어 간다.
1. 지금 조금 지불할 것인가? 나중에 많이 지불할 것인가?
우리는 조금 지불할 상황을 언제나 더 많이 지불할 상황으로 만들어왔다. 공과금도 기한을 넘기면 연체료가 붙게 된다. 빨리 내면 할인도 해주는 교통법규 벌칙금도 있다. 우리는 조금 지불하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나중에 많이 지불하며 살아왔는가? 우리의 생활 습관, 행동 방식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를 질문해 본다. 관계가 어그러질 때에, 대화 중에 서로 몰이해가 있을 때에, 바로 내가 잘못했노라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크게 지불하게 된다. 건강의 적신호가 오면 빨리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을 무시하고 병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 나아지기 전에 악화되어야 한다는 격언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런 관계가 오면 힘을 얻고 성장하게 되지만, 그 과정은 아픈 근육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은 회복되는 동안 인내를 배워야 한다. 더 많이 지불한 것이다.
윌리암 케리나 허드슨 테일러를 그들의 선교사역 초기 몇 년만을 가지고, 전반부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그들은 실패한 선교사들이다. 윌리암 케리 부인은 남편이 옆방에서 뱅갈어 성경번역을 하고 있을 때에 소리를 지르면서 울부짖었다. 길거리에 나가서 자기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미친듯이 외쳤다. 우울증에 휩싸인 것이다. 그럴 때 윌리암 케리는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지만, 아내가 희생이 되었다. 많은 것을 지불한 것이다. 선교사의 삶은 더 많이 지불하는 삶이 아닌가 여겨진다.
2. 도중하차할 것인가? 완주할 것인가?
윌리암 케리나 허드슨 테일러는 초기 5-6년 만의 삶을 보면 그들은 실패한 사람들 중에 속한다. 그들이 그때 선교사직을 탈퇴했다면, 잊혀진 무명의 선교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 더 많이 지불하고도 선교사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끝까지 완주해 갔기 때문에 결국 '아무나'의 선교사가 아니라 알려진 선교사가 된 것이다.
선교지에서의 위기는 선교지에 간 지 4년 이내에 많이 발생하고, 위기를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으로는 동역자와의 갈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나 시니어 선교사에게도 발생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425,000명의 선교사들 중에 12,0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매년 선교사직을 떠난 중도 탈락자이다.(Barrett & Johnson, 2001) 최저 수치는 3.1%로 바람직하지 않는 중도 탈락률이다.
또한 선교사들이 사역지에 남아 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역시 좋은 관계들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대인관계는 효과적인 사역의 매개체이다. 알아채고 도와주고 격려의 말을 하고 함께하고 손 내밀고 그룹 내 각 멤버의 특성을 인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돌보는 행위이자 우정의 행위이다.
우리 안에 초기 사역부터 많은 열매를 맺고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완주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를 떠났고, 잊혀진 선교사들이 있다. 부족하고 더디 가는 것 같은 선교사들이 끝까지 그들의 달려갈 길을 달려갔기에 그들은 완주자, 열매 있는 선교사가 되어간 것이다. 우리가 완주할 때 주님의 은혜와 판단, 평가는 달라진다.
사역의 부진이 아니라 관계의 부실을 극복하고, 과업중심이 아니라 관계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주님을 우리들의 무릎아래 두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무릎 앞에 나아가 앉아야 한다.
3. 잃어버린 존재가 될 것인가?
선교사는 잃어버리기에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 소중하고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선교사는 하나의 상품이 아니다. 다 써먹은, 용도 폐기되어야 할 존재는 아니다. 유통기간, 유효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교사는 최대의, 최상의 자원이다. 최고로 존중받고 모든 것으로 돌봄을 받아야 할 분들이다. 우리의 선교지에서의 사역 연수가 오래되어 가면서 노후해진다. 그러나 작동되지 안아 포구에 예인되어가는 노후선이 아니다. 기름과 물을 채우고 다시 점검하여 출항해야 할 배들이다.
사 40:1에서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이 선교사들은 위로 받을 존재이다.
통계에 따르면 일반직장에서 약 65%의 사람들이 칭찬이 부족해서 직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우리의 동료들은 현재 칭찬이 부족해서, 관계가 어려워서, 재정이 어려워서 선교지를 떠난 사람들이다.
우리가 상하고 연약해졌을지라도 우리가 기꺼이 쓰임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다. 시 136편에서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건과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하고 우리 선교사들에게 해당되는 위로이다.
나가기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강한 소명 의식, 태어날 때부터 준비된 삶, 하나님께 받은 말씀, 든든한 인간관계는 우리를 다시 어렵고 힘든 선교지로 이끌어 갈 것이다. 십자가의 성요한의 말씀처럼, 선교사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은 하늘이 정한 것임을 인정하고, 그때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영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럴드 싯처는 음주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아내와 딸을 잃었을 때, 그 고난의 때를 감당하면서, 그의 슬픔은 그 영혼 속에 영원히 자리 잡았음을 보았지만, 그때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영혼을 키웠다고 한다.
이제 바우리가족은 새로운 출발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과 친숙한 관계를 회복하고, 현지에서 우정 선교를 감당하며 영적 돌파력을 만들면서 영적계승과 바톤터치를 선교지에서 이루어가기를 바란다.
차드에서의 유지현 선교사의 긴급상황을 대처한 우리의 모습은 주님께서 이루어주신 하나가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킨 현장이 되었고, 서로 중보기도 하며 힘을 다해 주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동료된 선교사가 병들었을 때 돌보며 서로 사랑하라는 선교 방식을 온몸과 마음, 온 삶을 통해서 실천한 선교 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