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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칼럼]선교사 자녀(MK) '금수저론' | 김태현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19.02.28 17: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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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본부장 칼럼
선교사 자녀(MK) '금수저론'
김태현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한국 사회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유통된 지 오래되었다. 아직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니 신조어가 틀림없다. 서양속담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말이 신분 사회를 상징하는 '수저론'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 서양의 은수저가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라는 용어로 명칭만 세분되었을 뿐 그 내포하는 의미는 같다. 이 '수저'는 다 같은 수저가 아니다. 금수저는 소득 상위 1%를, 은수저는 상위 3%를, 동수저는 상위 7.5%를, 나머지 여타는 흙수저로 묶어버린다. 한국 사회가 신분 사회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네이버 오픈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금수저란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아주 좋아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한다." "흙수저란 부모의 능력이나 형편이 넉넉지 못한 어려운 상황에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못 받는 자녀를 지칭한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오늘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계층을 반영해주는 언어적 유희라고 본다. 중세 봉건제도와 노예제도의 역사적인 흔적이 21세기 대명천지에 나타난 유영과 같은 사회적 신분을 지칭하는 단어로 떠돌아다니며 사회 저변에 각인되고 있다. 기실, 노력한 만큼 대우받지 못한다면 불의한 사회이다. 단순히 부자 부모 만나서 노력하지 않고도 사회적 혜택을 누리는 분위기도 불공정한 사회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주해야 하는 자들은 경쟁규칙에 대한 사회 구조적 불만을 표시하는 단어로 우리 사회에 퍼져있다.
비록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오늘의 불공정한 사회상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 냉소적인 의미와는 좀 생뚱맞게 나는 MK를 떠올린다. MK는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 부류인가? 아니면 부모 잘 못 만나 물 위에 뜬 부초처럼 이리저리 떠밀려 다녀야 하는 뿌리 없이 노마드(Nomad)적 생을 살아가는 흙수저인가? 우리에게 있는 대부분은 그 성질이 중립적이다. 긍정적인 방면으로 기울어진 표현은 한없는 축복이 되지만, 부정적인 표현에 기울어지면 끝없는 저주가 된다. 그러므로 축복과 저주는 항상 우리 앞에 놓여있고 어떤 것을 선택하여 활용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왕래하게 된다.

 

나는 MK는 부모를 잘 만나 특권을 누리는 금수저라는 표현을 주저 없이 한다. 물론 사회적 계층화된 차별적 의미를 거부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사실 MK만큼 특권을 누리는 부류의 자녀가 어디 있을까? 이 모든 특권은 선교사인 부모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인가?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MK로 자란다는 것은 특권이자 기회이다. 부모 문화, 선교지 문화, 글로벌 문화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 속에 노출된 자들이 어디 흔한가! 한정된 교실 공간과 교과서적인 학습 과정에서 습득할 수 없는 무한한 기회가 MK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소명이 지고의 복이라는 해석의 틀을 지닌 자는 주저 없이 MK의 '금수저론'에 고개를 끄덕일 것으로 믿는다. 단순히 신앙적 소명에서 나온 해석만이 아니고 물리적인 혜택을 고려해도 나의 'MK 금수저'론은 허풍이 아니다.

 

다음은 나의 주장(MK 금수저론)을 뒷받침해주는 순열(順列)이다.
① 해외여행의 기회가 많다.
② 타 문화권에서 다양한 산교육의 기회를 가진다.
③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습득한다.
④ 현지 문화와 융합된 학습의 기회가 많다.
⑤ 고국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여가로 다양한 취미를 가질 수 있다.
⑥ 고국의 고질(痼疾)화된 학습 경쟁에서 시달리지 않는다.
⑦ 국제인으로 자라간다.
⑧ 다중문화에 익숙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⑨ 현대사회에 걸맞은 글로컬 한 안목을 갖출 수 있다.
⑩ 다양한 사회문화에 적응하고 통섭할 수 있는 인력이 된다.
⑪ 다중언어를 학습할 기회가 많다.
⑫ 다문화 적응능력의 맷집을 기른다.
⑬ 글로벌 선교환경 속의 MK들은 선교의 차세대 주자로 배양된다. 등등

 

MK의 특권을 더 많이 열거할 수 있다. 위의 열거한 내용만 가지고도 MK는 부모 잘 만나 특권을 누리는 또 다른 종(kind)의 '금수저'라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참 세월이 빠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속도감은 가중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떠난 지 벌써 27년이 흘렀다. 우리 부부가 두 아이(9살, 8살)를 데리고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전, 당시 말기 암으로 몸져누워 계시는 아이들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필리핀으로 떠나겠다고 집을 나서는 저희의 귓전에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쯧쯧, 제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부모 잘못 만나서."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고국을 떠나보내는 자식과 손주가 너무 안쓰러워 부모의 마음을 드러내는 한탄(恨歎)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두 아이가 결혼하여 각각 두 자녀를 둔 부모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도 여느 MK처럼 산과 골짜기를 지나야 했고, 물과 강을 건너야 했다. 이때마다 주의 손길이 굽이굽이마다 함께하였고, 발자취마다 그분이 우리 가족을 등에 업고 광야를 걸으셨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살았다면 남들 공부할 때 공부해야 하고, 과외공부를 할 때 과외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한국의 교육환경과는 전혀 다른 교육시스템 속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놀 수 있었던 점이 달랐다. 여가에는 필요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으며 지냈다. 그토록 자유롭고 여유로운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늘 만족했다. 만약 선교사로 나오지 않고 고국에서 살았다면 우리 아이들도 입시지옥과 경쟁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이 MK의 특권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고국에서 아침부터 밤늦도록 공부에 매달려 있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부러움보다는 측은한 생각인 든 것은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헬조선'에서 아이들이 출애굽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의적인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선교사인 부모 잘 만나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나는 주저 없이 'MK 금수저론'을 주장하는 좀 생경(生梗)한 신조어를 빌어 칼럼을 써본다. 이러한 특권과 복을 주신 주님께 무한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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