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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칼럼]한마당 잔치를 꿈꾸며 | 김태현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17.07.31 18: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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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본부장 칼럼

한마당 잔치를 꿈꾸며

김태현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어릴 적에 부흥회에 참여할 때마다 대표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 워딩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하나님, 우리의 잔치에 성령 충만, 은혜 충만 하게 해주옵소서!" 기도로 부흥 집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떤 특정한 기회에 열리는 행사를 '잔치'로 비유한 것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를 새기곤 한다. 우리네 잔치는 참여자들의 감흥이 있고, 공동체성 축제로 열린다. 잔치에서는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사도행전의 원 교회와 같은 그림자를 상상한다면 너무 과장이 심한가! 어쨌든, 이 잔치의 내용은 먹고 마심이다.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내 것, 네 것 없이 공유하며 즐거운 대화와 흥을 즐긴다. 잔칫상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잔치에 참여하면서도 내 것을 싸 가지고 온다거나, 내가 들고 온 것을 꺼내놓고 우걱우걱 먹는 자를 상상할 수 없다. 모두 공동의 음식을 놓고 마음껏 공유한다. 어릴 적 동네잔치가 벌어지면 마을 구성원 전체가 하나가 되어 흥을 즐겼다. 거기서는 부자도 거지도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만큼 필요한 몫을 누렸다.

 

성경에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19: 9)"고 말한다. 사실 인류 최초의 동산 에덴은 '놀고먹는' 곳이었다. 과수원(orchard)과 동산(garden)이라는 두 단어가 에덴동산의 의미를 설명한다. 여기는 수고로움이 없이 이미 주신 은혜만 먹고 누리면 된다. 인간이 자기 것 확보하기 위하여 피땀 흘릴 필요가 없는 곳이다. 모두가 하늘에서 주신 은혜만 누리는 곳이 에덴이다. 이 잔치는 자기 소유물이 있는 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소유물 관리를 핑계 대고 잔치를 회피한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잔치를 외면할 만큼 자기 소유관리가 우선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그럼 누가 이 잔치에 참여하는가? 자기 것이 없는 자들(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저는 자, 눈먼 자)들이 이 잔치에 참여한다(눅14: 13). 그들은 먼저 주인이 오라고 하기 전에는 감히 이런 잔치에 참여하겠다고 나설 수 없는 자들이다. 잔치에 참여한 후에도 되갚을 수 없는 자들이다. 자기들이 싸 올 수 있는 다른 음식이 없다. 오로지 주인이 배설(排設)한 음식을 탐닉할 수밖에 없다. 주인이 베푼 음식만 그들의 양식이 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참여하여 먹고 누리는 곳이 잔치이다. 그래서 가난(아무것도 없음)은 복이 있다. 아무것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없고 오로지 그분이 차려준 음식만이 양식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만이 주인이 주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이 잔치(수련회)에 와서도 자기가 만든 것을 자랑하거나, 그것을 양식으로 내놓으려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주인이 차려놓은 음식을 온전히 누릴 수 없어 어색한 잔치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기도 만족하지 못하고 주인도 만족할 수 없다.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주인이 차려놓은 것만 실컷 먹고 즐기자. 나의 것은 내려놓고 너와 나를 위한 상 위에서 함께 양식을 취해보자.

 

'바우리 정신'은 무엇인가? 지난 30여 년을 지나오면서 다지고 조성되었던 우리네 정서를 '바우리 정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가풍과 기풍(氣風)에 젖어 그 전통에 따른 문화코드에 맞게 행동하는 것인가? 그간 바우리 역사 가운데 잠재적으로 형성된 우리의 기풍은 무엇인가? 쉬운 대답은 아니다. 메뉴얼화한 것을 암기해서 정신(mindset)을 만들 수 있다면 수학 공식처럼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란 오랜 세월과 함께 형성된 어떤 지형처럼 바우리 정신도 그렇다고 본다. 이것은 반복된 학습과 세뇌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성질과는 다르다. 정신과 사상, 이념이 체화(體化)되어 나타나는 어떤 현상이 바우리 정신이다. 그것은 선교적 삶의 반복적인 자국을 거쳐 나오는 독특한 모형이다. 이론적으로 이것이라고 내놓기 이전에 그 정신에 담겨있는 인격(人格)이다. 이것은 삶의 궤적을 통해 다듬어지고 조성되는 것이다. 이래서 단순한 이론으로 내놓을 수 없다. 이런 인격적 존재가 서로 연(連)하여 하나로 표현하는 유기체적 공동체이다. 이런 바우리 정체성을 수련회 동안 더 짙게 확인하고 싶다. 수련회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 바우리 정신의 재건축이 절실하다.

 

이런 연유를 염두에 두고, 이번 수련회에서는 30여 년 전에 바우리를 심고, 물을 주었던 이동휘 목사님의 강의시간을 더 확대하도록 노력하였다. 이는 바우리 정신을 되찾아 바우리 미래 선교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 앞에 위기로 다가온 교회, 선교회 적 혼돈을 극복하고 정돈하는 일은 향후 우리의 선교를 가름 짓는 잣대가 된다는 판단에서이다. 나아가, 바우리의 방향타(方向舵)는 비교적 연배가 오래된 선배들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들은 바우리를 짊어지고 물을 주어야 할 선도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우리에서 맷집을 키워왔고, 연배가 높은 선교사에게 프레젠테이션의 기회를 주는 이유이다. 프로그램 가운데 다소 아쉬운 점이 있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풍성한 잔치를 기대하자. 배고프면 모든 음식이 맛있듯 우리의 허기진 심령으로 풍성한 은혜의 잔치에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 '먹는다'의 대체어로 '때운다'라는 표현을 쓸 때가 많다. 적당히 그냥 해치운다는 뜻이다. 당장 음식을 정식으로 차려놓고 먹을 만한 충분한 시간과 돈이 없을 때 나오는 표현이다. 또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놓고서 식사 행위를 부수적으로 설정해놓고 하는 말이다. 수련회는 얼른 뚝딱 해치우고 그 밖의 부수적인 데 관심을 둔 행태의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의 '먹고 노는' 이 잔치가 다음 주(主)된 일을 놓고 때우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견지망월(見指忘月)식의 잔치를 우려한다. 사실 이런 수련회 태도로 인하여 2년마다 수련회 개최에 대한 회의가 많았다. 자칫 우리의 수련회가 상투적인 관성의 쳇바퀴(inertial treadmill)에 빠질 개연성을 우려해서이다. 모쪼록, 정성껏 준비한 주인의 상에서 때우는 시간이 아니라, 한 상에 둘러앉아 한 식구 됨을 확인하고 누리는 수련회가 되기를 바란다. 비로소, 우리의 사소한 잡음은 우리 함께 내는 화음 속에 흡수되어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수련회를 총괄하는 본부장의 의례적 언사(言辭)는 "차린 것 없어도 많이 드세요" 이다. 이런 상투어의 진정한 속마음은 "차려놓은 것 실컷 드시면서 놀다 가세요" 이다. 이 잔치에 마음껏 취하시고 누리시는 한 마당 잔치가 되기를!

 

국제본부장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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