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본부  /  Headquarter
[본부장칼럼]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김태현 국제본부장
BY 관리자2016.12.26 19:30:54
16360

국제본부장 칼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김태현 선교사(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나는 해마다 오는 첫날을 설렘으로 맞이한다. 그동안 어쭙잖게 끄적거렸던 종이를 꾸겨버리고 새로운 백지 위에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물론 지나온 세월의 반복된 경험을 통해서 학습된 것은 “새해라고 별거 있을까?” 등의 자조(自嘲) 섞인 생각도 혼재한다. 동시에 새해에는 여전히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고 싶은 일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의 크로노스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2017년의 연대기적 역사에 우리를 훌쩍 가져다 놓는다. 우리 앞에 펼쳐질 새해는 아직 밟아 보지 않은 세계를 향한 미지의 꿈을 꾸게 한다. 이래서 나는 첫날이 좋다. 적어도 소박한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좋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면서 연초의 첫발을 가슴 깊이 설레는 마음으로 내디딘다. 다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유토피아는 문자적으로 ‘없는 좋은 것(EU)의 장소(TOPIA)’라고 한다. 찾을 수 없지만 좋고, 좋지만 발견할 수 없는 형용 모순적 의미가 있다. 인류는 좋은 것을 갈망하지만, 그 좋은 것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던 그 많은 저술가의 꿈도 이젠 빛이 바랜 지 오래되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제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들의 포악성에 전율을 떨었고, 그 잔혹성에 치를 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그 인류의 끝없는 탐욕은 이념과 종교적 외피를 두르고 지구촌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사랑과 긍휼은 지구촌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류에게 이미 각자도생(各自圖生)과 무한경쟁이 존재양식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브레이크 없는 파멸의 질주를 경쟁하고 있다. 이대로 가속페달만 밟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이 점점 함몰되어 가면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방으로 보아도 인류의 상황은 더 어둡고 절망적이다. 글로벌 사회적, 영적 기상도는 대망의 유토피아적 기대는 더 쇠퇴해가고, 그 자리에 절망의 디스토피아적 현상으로 우리의 시야를 채우고 있다. 우리의 사회가 ‘헬조선’으로 압축되듯, 모두 지금 공멸로 향하고 있다는 통렬한 인식이 대세를 이룬다. 사실, 이런 극단적 표현조차 이제는 너무 자주 써서 식상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시 16:6)인 한국선교의 뜰(court)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 선교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 시험대에 서 있다. 작금의 한국 선교가 ‘공생’과 ‘공멸’의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다고 진단한다면 너무 성급한 예단일까? 현재 만연한 각자도생 방식의 해법을 넘어서 공동체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글로벌 선교 부담(Mission Onus)을 ‘미션 보너스(Mission Bonus)로 전환이 시대적 과제이다. 이를 위한 과감한 ‘리셋 선교한국’의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면 너무 급진적일까? 선지자의 애가(哀歌)의 외침이 곳곳에 들린다. 실로 애가(哀歌)가 찬가(讚歌)로 바뀔 희망은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 나라의 지역적 표현이 교회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의 성격인 영광, 거룩 그리고 그의 의가 반영되어야 한다. 영광이란 하나님의 존재적 표현이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본성이다. 의란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다.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통하여 이런 요소의 신성한 콘텐츠가 밖으로 투영되는 게 당연하다. 영광, 거룩, 의가 하나님 나라의 성분으로 온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 그 투사된 빛 속에서 사람들은 길(the way)을 발견하고, 실재(the truth)를 통해, 생명(the life)에 이르게 된다. 이 인격(예수)만이 어두운 세상에 희망이 된다. 아무리 우리 주변이 어둡다고 아우성치지만, 번쩍 비치는 한 줄기의 빛으로도 세상은 일시에 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요한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고 선언한 이유이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들은 그 등불을 말 아래나 침상 아래 감추어 두지 아니하고 꺼내어 불을 밝혀 높은 등경 위에 올려놓아 어두운 밤을 밝히게 된다(막 4:21). 이 빛을 말 아래, 침대 밑에 감추어 놓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 빛을 세상에 비추고 또 비추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선교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시공간적 역사의 흐름은 우리의 마음을 잠시 가다듬게 할 수 있어도 만물을 새롭게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시간이 지나면 때가 묻고 찌꺼기가 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새로움을 기대한다. 여전히 옛것을 가지고 수선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창조자가 새롭게 하면 피조물은 새롭게 된다. 지은 자가 피조물을 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람(아담)은 인간의 새로운 결심이나 새로운 시간으로 새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둘째 아담(예수) 속에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거듭난 자)만이 새로운 자다. 그러므로 주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면 새롭다. 시간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창조자를 찾아 다시 빚음이 필요한 이유이다.

올해 바우리의 나이가 31년이다. 바우리 공생애적 원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예수님의 공생애 원년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회를 포착하여 그 모멘텀을 역동적인 의미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생산적이다.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는 선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 붙들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30년의 바우리는 좋은 일, 궂은일을 경험하였다. 이 모든 우리의 경험들은 우리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로 남게 된다. 이제 우리의 경험의 소중한 가치는 뒤로 저장해 놓고,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한 경주가 요구된다. 31세의 젊은 바우리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우리의 외침으로 더욱더 선명한 그의 나라를 드러내자.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내적 열매는 그의 영광, 그의 거룩, 그의 의를 각처에 표현되기를 희망한다. 31년을 맞이하는 바우리는 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본연의 임무와 위임을 믿음으로 수행하자. 유아적 삶에서 성숙한 혁신적 세계로 나오는 나이가 되었다.

 

주의 재림의 발자국 소리가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들릴 때 우리의 준비도 더 긴급하게 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휘 대표이사는 본회 표지 글을 통해서 피를 토하듯 재림선교의 시급성을 일깨우고 있다(회지 162호). 천국 복음과 온 천하의 확장은 시간적 세상 끝을 가져오는 예수님의 예언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재림 나팔 소리가 더 선명하게 귓전을 때려 우리의 선교를 어서 속히 완성으로 마무리하는 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시간이 새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항상 거기에 머문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노쇠해 가고 있을 뿐이다. 만물이 새로우면 시간도 새롭다. 만물이 새롭지 못하면 시간은 도로 옛것으로 머물고 만다. 만물이 새로우면 모든 시간은 새롭게 다가온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신 분을 근본으로 우리의 희망을 다시 가다듬는다.

국제본부장 김태현

추천 소스보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