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권역 | 말레이시아  / Malaysia

말레이시아

정리 및 보고 : 송00 

(말레이시아 주재 선교사)

 


 

 

말레이시아 국기

 

말레이시아의 국기는 1963년 9월 16일에 제정되었다. 명칭은 잘루르 그밀랑( Jalur Gemilang)이다. 빨강색과 흰색으로 구성된 14개의 가로 줄무늬는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13개의 주와 말레이시아의 연방 정부를 의미한다. 초승달은 말레이시아의 국교인 이슬람교를, 14줄기의 별은 13개의 주와 연방단결을 의미하며, 노란색은 말레이시아의 국왕을, 파란색은 말레이시아 국민의 단결을 의미한다.

 

국가 개요

국명: 말레이시아(Malaysia)

위치: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

수도: 쿠알라룸푸르 (Kuala Lumpur)

환율: 1링깃(RM)에 322.84원 (2013. 12. 20)

언어: 말레이어(국어), 영어(공용어)

면적: 329,847㎢, 전체순위 67위

인구: 25,715,819명 (2010년), 전체순위 46위

인종: 말레이인 50%, 중국계 25%, 인도계 8%, 원주민 10%

기후: 열대우림성 기후

종교: 불교 19%, 힌두교 6%, 이슬람교 60%, 기독교 9%. 기타

정체: 입헌군주제

의회형태: 양원제

국가원수: 14대 국왕 투안쿠 압둘 할랄 무아드 잠사(Tuanku Abdul Halim Mu'ad zam Shah) 2012년 4월 11일 취임

정부수반: 총리 나집 라작(Dato' Seri Haji Mohd Najib bin Tun Haji Abdul Razak) 2009년 4월 취임

독립일: 1957년 8월 31일

1인당 GDP: 1만428 달러 (2013), 전체순위 72위

시차: 그리니치 표준시 보다는 8시간 빠르고 한국 보다 1시간 늦다.

 

역사

5~6세기 무렵 힌두교와 불교문화가 유입되어 말레이시아 북서부 지역에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14세기 무렵에는 현재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종교로 성장한 이슬람교가 아랍 상인에 의해 전해졌다.

13세기까지 말레이시아를 번성시킨 말레이 반도의 지리적 이점은 16세기 이후 여러 유럽 국가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침공 이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점령을 거쳐 18세기 영국이 페낭을 점령하면서 말레이시아는 20세기 초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한편 보르네오 섬 사라왁 주는 1841년 이후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과 후손들의 통치를 받다가 1888년 북 보르네오(현재 사바 주)와 함께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으로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1963년 동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연방을 이루었다. 말레이시아 연방은 1965년 분리 독립한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헌법상 국가원수(국왕)는 페낭, 말라카, 사바, 사라왁을 뺀 9개 주의 통치자[Sultan] 중에서 선출된다. 말레이시아 국왕은 5년 임기 동안 총리와 내각을 임명할 권리와 국가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통솔권 등을 갖는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과 함께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의 10개 회원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기후 및 자연조건

열대지역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의 기후는 연중 고온 다습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21~32도로 연평균 강우량은 2,000~2,500밀리미터, 평균 습도는 63~80%이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 차이가 섭씨 9~12도 전후여서 낮에는 섭씨 30도를 웃돌다가도 저녁과 밤에는 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건기와 우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우기라도 일시적인 열대성 소나기의 횟수가 증가하는 정도여서 여행에 큰 불편은 없다.

말레이시아는 산과 바다,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국토의 4분의 3은 밀림과 습지로, 원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열대 우림과 동굴 등이 국립공원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다문화

인종, 언어,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관용의 문화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때로는 각자의 방식으로, 혹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말레이시아 특유의 매혹적인 분위기는 지리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오랜 세월 성숙해 온 다문화 전통의 결과다.

종교적으로도 서로의 믿음을 존중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슬람 모스크, 불교 사찰, 힌두교 힌두사원, 그리고 교회와 성당까지 여러 종교 시설과 각 종교의 축제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종교 축제 때는 타 종교인을 초대해 즐기는‘오픈 하우스(Open House)’라는 행사를 개최하는데, 여행객들도 함께 참여해 말레이시아 특유의 성숙된 관용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관습

이슬람교국이므로 아래의 몇 가지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집게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슬람교도와 같이 식사할 때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중 앞에서 피부를 노출하지 않는다. 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신을 벗는다. 왼손을 부정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악수를 하거나 물건을 받을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이용한다. 악수하고 난 후에 자기의 오른손을 가슴에 댄다. 식당과 식품에 이슬람식으로 허락되는 음식(할랄 Halal)과 허락되지 않는 음식(하람 Haram)을 구별하는 표시를 붙이고 있다. 하람 음식(돼지고기류)을 계산대로 가져가면 무슬림들은 만지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물품을 들어주어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공휴일

국경일을 제외한 휴일은 각 주마다 다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금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주가 있다. 트렝가누(Terengganu), 클란탄(Kelantan), 케다(Kedah), 펄리스(Perlis) 주에서는 금요일, 토요일을 주말로 정하고 있다. 최근 2013년 11월 23일 조호바루(Johor Baru) 주의 통치자(Sultan Ibrahim Ibni Almarhum Sultan Iskandar)가 2014년 1월 1일부터 공휴일을 금요일. 토요일로 주말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금요일에 조용히 무슬림 금요일기도를 촉진하기 때문에 여러 당사자의 의견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존까지는 서말레이시아와 태국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북단에서 금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왔으나 2014년부터는 서말레이시아 최남단인 싱가포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조호바루 주에서도 금요일이 공휴일로 지정된다는 것이 상기할 만하다.

 

말레이시아의 경제

말레이시아는 전적으로 시장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나라로, 원자재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것이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5, 노동력의 1/4을 차지한다. 1955년 이후 토지개혁이 추진되었지만 농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거의 혜택이 없었다. 많은 수의 말레이인들이 영세농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 빈곤하게 산다. 말레이시아의 주산물인 쌀의 생산량은 국내 수요의 거의 전부를 충당한다. 주요환금작물로서 주로 소규모 농장에서 재배되는 고무는 전세계 생산량의 1/4을 차지한다. 야자유 생산량의 1/2은 개인적인 소자작농들이, 1/3은 소자작농 조직체인 연방토지개발공사가 담당하며 일본·대만·한국·중국 등에 수출되는 통나무가 주요 외화획득원이다. 광범한 조림사업이 1981년에 시작되었다.

광업은 정부가 관장하는 석유 생산 및 수출과 정부가 개발에 참여하는 주석 생산 및 수출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석유와 주석은 말레이시아 제1의 외화획득원이다. 석유는 주로 일본·싱가포르·한국으로 수출되나 주석은 매장량이 고갈되어 생산에 위협을 받고 있다. 구리와 보크사이트도 많은 양을 채광·수출한다.

제조업은 GDP의 약 1/4을 담당하고 노동력의 1/5 이상을 고용한다. 국내 제조업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장려되어 중국을 비롯한 해외이주민들이 대부분의 제조업을 관장한다. 중요한 제품으로는 고무제품과 시멘트, 철강제품, 라디오와 텔레비전 세트 등을 들 수 있다. 전기는 대부분 국내 연료로 발전되고 국가가 주로 관리하는데 1994년에는 발전량이 399억Kwh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 도로 2/3 가량이 포장되어 있다. 서말레이시아에는 몇몇 간선도로가 있지만 사바와 사라와크의 도로 사정은 열악하다. 서말레이시아의 철도망은 잘 발달된 반면 사라와크에는 철도가 없고 사바에는 화물과 승객 수송용 단거리 철도망이 있을 뿐이다. 동말레이시아에서는 내륙수로가 여전히 주요 역할을 담당한다. 쿠알라룸푸르에는 국영 말레이시아 항공사를 비롯, 많은 국제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으며 전국에 걸쳐 5개의 지방공항과 그보다 작은 공항들이 있다.

1949년에 창설된 말레이시아 노동조합협회가 국내의 모든 조합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주요 무역대상국은 일본·싱가포르·미국·영국·독일 등이다.

 

말레이시아의 정치

입헌군주를 명목상 최고통치자로 하는 연방제 국가이다. 연방정부는 외무·국방·치안·사법(이슬람법과 현지법이 지배적인 곳은 제외)·연방시민권·재정·상업·통신·교통을 주관하며 주(州)정부는 이민·행정사무·관세 문제들을 관할한다. 9개 주는 주행정위원회의 자문에 따라 세습 통치자가 다스리고 나머지 4개 주는 연방이 위임한 수장이 통치한다. 연방정부의 명목상 수장인 국왕은 9개 주의 세습통치자들로 구성된 통치자협의회가 5년 임기로 선출한다. 그러나 1957년에 제정된 말레이시아 헌법에 따라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상원(데완 네가라)과 하원(데완 라키아트)으로 구성된 의회가 행사한다. 상원은 총 69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43명은 최고통치자가 임명하고 나머지 26명은 각 주의 입법부에서 선출한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5년 임기의 하원은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된 180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에서 최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고 내각을 구성한다. 내각의 각료들은 총리의 추천을 거쳐 국가최고원수인 국왕이 임명한다. 현재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민족집단을 대표하는 정당 연합인 '국민전선 UMNO 말레이 무슬림당(독립이후 지금까지 집권당임)'이 정권을 잡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슬로건

전 총리인 마하티르가 [Look East] 정책을 추진하여 한국을 비롯해 일본 등 극동아시아의 나라들을 추월하자는 취지로 말레이시아 국민들에게 「와와산2020」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와와산2020은 우리말로 고치면 「2020년에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라는 구상이다.

2009년 4월에 임명된 현재 총리인 나집이 8월의 독립기념일을 기해 발표한 슬로건 ‘원말레이시아’는 새로운 민족일치단결의 슬로건으로 「One Malaysia」(말레이어로는「사뚜 Satu·말레이시아」) 「하나의 말레이시아로서 더 발전하자」는 희망을 담고 있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원 말레이시아」도 와와산2020을 실현하기 위한 캐치플레이다. 원주민을 비롯한 말레이계와 중국 화교, 인도계가 각각 6:3:1 정도인 이 나라에는 세계의 종교가 혼재한다. 총리 산하에 1969년 설치된 국가통합부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라는 구조적 복잡성에 잘 대처해 오고 있으나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종교를 하나로 묶으려는 야심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종교

말레이시아의 무슬림들은 대부분 수니-샤피이(Sunni-Shafii)파이며 수피즘의 신비주의에도 상당히 몰두해 있는 경향을 보인다. 15세기이후 말레이 반도의 이슬람화에는 수피 상인들이 많은 공헌을 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말레이의 토착관행과 문화(이는 근원적으로는 힌두교와 불교에 기인한다)가 이슬람 속으로 융합되어 민속 이슬람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혼합주의적 요소, 즉 인도와 말레이계의 토속 종교적 관행과 주술, 그리고 지역이 사만(말레이어로 보모 Bomoh)들에 의한 지배, 지역의 법과 관습들(말레이어로 아닷 Adat)이 이슬람 속으로 융화되어 오늘날까지도 무슬림 대중들의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부미푸트라 정책으로 인한 이슬람의 성장

종족간의 통합을 위한 움직임은 1953년 Alliance of the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국민전선 UMNO 말레이 무슬림당, 독립이후 지금까지 집권당임), Malaysian Chinese Asso-ciation(MCA), 그리고 Malaysian Indian Congress(MIC)등 세개의 주요 정당들이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당들은 말레이시아의 새헌법을 기초하여 1957년 말라야 연방으로의 독립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표면적인 연합활동의 이면에는 여전히 종족간의 갈등과 반목이 남아 있었다.

말레이시아 연방으로의 독립당시 국가 경제의 70%가 외국인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고 나머지 20%는 중국계가 차지하고 있었으며 토착 말레이계는 1%미만의 경제활동에 관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전선(UMNO)당은 토착인종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들에게는 "부미푸트라(Bumiputera, 문자적으로는 "땅의 자손들"을 의미)"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여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특혜를 헌법에서 보장하게 됨으로써 민족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슬람의 세력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다크와 운동

1970년대 이후 다크와(Dakwah 아랍어로 이슬람의 선교를 의미한다) 혹은 다와(Dawah)운동이 진행되면서 타락한 무슬림들을 새롭게 하고 비무슬림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한 모든 선교적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다크와 운동의 특색은 반서구적이다. 이들은 서구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진정한 이슬람 신자임을 외부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중요시하여서 남녀 모두에게 아랍식 복장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특히 여성들은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머리쓰개인 두둥(Tudong) 또는 텔레쿵(Telekung)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이슬람식 식사를 준수하고 비무슬림식 식당에서는 식사를 금하며 하루 다섯 번의 예배를 반드시, 그것도 공개적으로 준수하도록 하였다.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해 서구의 팝 문화를 금지시킬 것을 촉구하였고, 경마와 도박, 알코올 음료의 소비를 허락하는 정부 시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정부가 주도한 기구로는 이슬람 복지와 선교 연합(The Islamic Welfare and Missionary Association, PERKIM)이 있는데 이 기구는 주로 비무슬림들인 중국계와 인도계, 토착부족들을 대상으로 개종활동을 벌이고 있다.

1957년 독립이후 이슬람이 부흥을 이루며 정부와 교육, 경제 속에 그 이념을 확산시켜감으로써 말레이시아 내의 소수 종교 공동체들은 다양한 도전들에 직면하게 되었고 두려움과 염려를 느끼게 되었다.

비무슬림을 차별하는 예로는 도시 계획을 세우면서 종교부지의 분배를 공평히 하지 않는다든가,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슬람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배정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이후부터 도시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슬람 부흥운동의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무슬림이 하루 다섯번 메카를 향해 드리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Adhan)을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을 통하여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후로부터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에게 이슬람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방송들이 정기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교육제도에 있어서는 이슬람적 세계관을 교육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경되어서 이슬람 역사와 이슬람 문명을 반드시 교과과목에 포함하도록 하였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해 놓은 조항

헌법 160조 2항에 보면 "그, 또는 그녀가 이슬람교 신도이며 말레이어를 사용하며, 말레이 관습을 지키며 말라야 연방이나 메르테카데이(독립기념일) 이전에 싱가포르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한 명이 말라야 연방에서 태어났으면 말레이 족으로 간주한다"고 되어 있다.

헌법 3조 1항은 이슬람이 연방의 종교이긴 하나 연방의 모든 지역에서 평화롭고 조화롭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다른 종교 활동들도 실천되어질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11조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강제로 종교적 가르침을 받지 않을 자유, 본인의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예배나 의식에 참여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자유, 그리고 종교 재산을 소유할 권리 등이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들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조항들이 첨부되어 있다.

1. 종교적 자유는 공공질서와 공공의 건강, 도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화롭고 평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2. 18세 이하의 종교 선택은 그들의 부모나 보호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3. 이슬람 종교를 가진 자들에게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신조를 가르치는 것이 위법이다.

헌법에 따르면 이슬람과 관련된 문제는 국가적 사안이고 이것은 오직 정부만이 모든 법적이고 행정적인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말레이 연방에 있는 모든 주는 이슬람과 관련되어 각 주의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주정부 산하 종교 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주 정부들에 의해 설치된 샤리아 법원은 1969년 제정된 무슬림 법률 조치에 따라 이슬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무슬림들에 대해서만 사법권을 갖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우리의 희망

앞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말레이인들과 무슬림들의 정치적 지지를 위해서는 이슬람화를 계속 추진해야겠지만 한편으로는 비말레이계 비무슬림들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만 한다. 그들도 엄연히 말레이시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말레이시아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희망이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뢸 제목

1. 말레이시아를 460년간 식민지 국으로 만든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종교가 기독교였다. 지배국의 종교를 싫어하는 말레이시안들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2. 주일(일요일)을 금요일로 바꾸는 막강한 힘을 가진 각 주의 통치자[Sultan] 권력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3. 이슬람식 선교인 다크와 운동이 힘을 잃게 하옵소서.

4. 이슬람에게만 유리하게 되어있는 헌법 조항들이 바뀌게 하옵소서.

5.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뿌린 씨앗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