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권역 | 모잠비크  / Mozambique

모잠비크

 


 

 

Ⅰ. 국가 개황
• 초록색: 풍요로운 대지  
• 하얀색: 평화
• 검은색: 아프리카  
• 노란색: 광물자원
• 빨간색: 독립을 위한 투쟁
• 노란별: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 소총: 국방  
• 책: 교육  
• 괭이: 농업
• 면적: 801,590 km(세계 35번째, 한반도의 3.6배)
• 정부: 공화제(1975년 6월 25일 포르투갈에서 독립)
• 대통령: 필리페 뉘우지 Filipe Nyusi(2015~)
• 총리: 카를루스 아구스티노 두 로자리우
• 수도: 마푸투(Maputo)  
• 공식 언어: 포르투갈어
• 인구: 2,650만 명(EIU 추정치, 2014년)
• 기대수명: 49.3세(World Bank, 2009년)
• 인종: 아프리카인(99%, 샹간, 쇼크웨, 마니까, 세나, 마꾸아 포함)  
• 종교: 토착 종교 35%, 가톨릭교 20%, 개신교 10%, 자이온이스트 13%, 이슬람교 20%
• 화폐단위: 메티칼(MZN)
• 1인당 국민총소득: $ 1,176(EIU 추정치, 2014년)
• 성인 문해율: 38.7%(UNDP, 2007년)
•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늦음
• 한국대사관: 모잠비크 내 상주 대사관 개관(2013. 10)

 

Ⅱ. 자연 환경

1) 기후

열대해양성 기후로 크게 우기(11~3월)와 건기(4~10월)로 나뉘며, 1월 평균기온은 저지대가 26~30℃, 고지대가 22~25℃, 7월 평균기온은 저지대가 15~20℃, 고지대가 11~15℃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북서부 고지대 1,420㎜에서 남동부 저지대 500~750㎜에 이르며, 남쪽 지방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뭄이 들 때가 많다. 습한 북서쪽 고지대에 열대성 식물(쇠나무·야자수·흑단나무)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건조한 내륙 저지대에서는 풀과 관목 같은 사바나 식물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다. 특히 잠베지 강 삼각주 지대의 해안지역에서는 코코스 야자와 맹그로브를 흔히 볼 수 있다. 동물의 종류가 풍부해 얼룩말·물소·코뿔소·코끼리·기린·사자·얼룩하이에나 등이 있고, 강에는 악어가 서식한다. 수렵 조수 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으며, 고롱고사 국립공원(3,770㎢)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자 남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볼 만한 곳에 속한다.

 

2) 자연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남동 해안에 2,500km에 걸쳐 길게 있다. 북으로는 탄자니아, 북서쪽에는 말라위와 잠비아, 서쪽으로는 짐바브웨, 남서쪽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와질랜드 등과 국경이 접해 있다. 모잠비크 해협 건너편 정동향으로 400km 지점에 마다가스카르 섬이 있다.

모잠비크는 남부 저지와 북부 고지의 두 지형으로 대별되며, 두 지역은 남동쪽으로 흐르는 잠베지 강에 의해 나뉜다. 남부지방은 빙가 산(2,436m)이 있는 치모이우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이 저지 해발 200m 이내이다. 북부는 좁은 해안지대만이 저지이며, 서쪽으로 가면서 해발 200~600m의 내륙대지로 변하다가 산악지대(1,500~2,450m)를 이루며 북서쪽의 말라위와 연결된다. 중부지방을 흐르는 잠베지 강은 배수역의 면적이 22만 5,000㎢가 넘는 이 나라의 대동맥이며, 잠베지 강의 다목적 카호라바사 댐과 발전단지는 아프리카 최대의 수력전기 개발사업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다.

석탄은 가장 중요한 천연 광물자원으로 20세기 후반 매장량이 6억t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주로 북서쪽에 매장되어 있다. 철광석 광산(3억 6,000만t)은 북동쪽에 있으며, 탄탈라이트는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그밖에 천연가스, 망간, 우라늄, 다이아몬드, 석면 등도 매장되어 있다.

 

Ⅲ. 정치 경제

1) 정치

1990년대 초반 모잠비크는 1당제 공화국에서 다당제 정치체제의 국가로 바뀌었다. 1975년 헌법은 권력을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1990년까지 당(Frelimo)과 모잠비크 국민저항당(Renamo) 사이에 빚어진 충돌로 사회주의 경제와 사회·행정정책을 완전히 확립시키고자 했던 정부의 시도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1990년 11월 야당을 합법화하는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 결과 보통선거로 선출된 250명으로 이루어진 단원제 의회가 구성되었고, 5년 임기의 2번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2014년 10월 선거에서 게부자 대통령이 후원을 받은 필리페 뉘우지 국방장관이 5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뉘우지 대통령은 2015년 1월에 공식 취임하였다. 제1야당 Renamo의 들라카마 의장은 36% 지지를 얻어 2위를 기록했으며 MDM의 시망고 총재는 6%를 획득했다. 이로써 들라카마 의장은 모잠비크 독립 이후 치러진 모든 대선에서 출마해 전패를 기록했다.

 

2) 외교관계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 국가공동체의 정회원국이다. 또한, 1995년 영연방 가입 이후 급속도로 영어문화권에 편입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2006년 07월 21일 대통령은 프랑코포니의 참관국 자격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모잠비크는 2006년 09월 28일부터 29일까지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프랑코포니정상회담에서 참관국 자격을 획득하였다.

한국은 북한 단독 수교국이었던 모잠비크와 1993년 8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모잠비크 내 상주 대사관이 2013년 10월에 개관하였다. 모잠비크는 북한과 1975년 6월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주공관을 설치했다.

 

3) 행정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모잠비크의 행정구역입니다.07.png

① 카보델가도(Cabo Delgado)
② 가자(Gaza)
③ 이냠바네(Inhambane)
④ 마니카(Manica)
⑤ 마푸토(수도, Maputo)
⑥ 마푸토(Maputo)
⑦ 남풀라(Nampula)
⑧ 니아사(Niassa)
⑨ 소팔라(Sofala)
⑩ 테테(Tete)
⑪ 잠베지아(Zambezia)

 

4) 경제

(1) 경제 현황

경제성장률은 7%(2014년까지)이며, GDP의 산업별 구성은 농업 23%, 광공업 30.1%, 서비스업 46.8%이다. 인구의 90%가 농민인 전형적인 농업국가이며, 농수산물 수출이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석탄은 가장 중요한 천연 광물자원이며 철광석 광산은 북동쪽에 있고 탄탈라이트는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보유한다. 중부지방을 흐르는 잠베지강에는 아프리카 최대의 수력전기 개발사업의 하나로 이루어진 다목적댐 카보라바사댐과 발전단지가 있다.

모잠비크는 독립 직후 중앙계획경제에 의존하게 되면서 숙련노동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포르투갈 노동자들이 이민하고 토지의 국유화, 국영농장의 설치 등으로 제조업은 물론 농업부문도 침체되었다. 1983년부터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외자도입을 추진하였지만 내전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1994년엔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 이때 900개 이상의 공기업이 사기업화되면서 1997년 이래 연 8% 이상의 고성장을 유지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로 등장하였다. 2000년 2월에 50년 만의 홍수피해로 경제 침체의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이를 잘 극복하였다. 아직도 외국의 원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나 민주주의의 착실한 발전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 성장을 기록 중이다.

주요 수출품은 알루미늄광, 면화, 원당(原糖), 목재, 새우이고 주요 수입품은 기계류, 화학제품, 시료품, 섬유 등이다. 무역 상대국은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포르투갈, 짐바브웨 등이다. 공항은 147개소이며 철도는 3,123km(대부분 협궤), 도로는 30,400km(이 중에서 포장도로는 5,685km)이다. 잠베지강을 따라 내륙 수로 470km가 열려 있다.

 

(2) 경제 전망

모잠비크 경제는 광업 분야 투자 및 천연가스 개발 붐에 따라 당분간 7%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시설 건설 등 천연가스 개발 투자가 본격화되면 운송, 통신, 제조업, 금융서비스 등 모잠비크 경제 전 분야에 파급효과를 주면서 경제성장이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천연가스 투자지연, 공공부채 증가, 원자재가 하락 등으로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현지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고, 이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불안이 확산되고 있어 2016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5년 1월 모잠비크 중북부에서 발생한 홍수는 잠베지아 주를 비롯해 남폴라 등 중북부 일대를 휩쓸어 모잠비크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도로와 교량,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농경지, 발전시설, 일반 주택 등이 유실됐고 20여만 명의 수재민과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15년 경제성장도 당초 기대를 하회하는 6%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세 둔화 및 원자재 수요 침체가 모잠비크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Ⅳ. 사회 문화

1) 인구·인종

모잠비크 인종은 대부분 반투어를 쓰는 아프리카 흑인이며. 민족언어학상으로 16개 주요 종족이 있다. 가장 중요한 종족은 북부지방의 마꾸아족(Makua, 최대 규모임)이다. 역시 북쪽에 사는 야오족은 이슬람교도로 18~19세기에 아랍인과 내륙지방 부족들 사이에서 노예무역을 중개했다. 그밖에 같은 북부의 마꼰드족(Makonde)은 조각품으로 유명하다. 잠베지 강 북쪽에 살며 이동농경을 하는 종족들은 모계 쪽으로 가계(家系)가 이어지며, 잠베지 강 남쪽에 사는 부족들은 가계가 부계 쪽으로 이어지며 목축이나 농사를 짓고 산다. 그다음으로 중앙의 세나족(Sena), 남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샹간족(Shanagaan) 등이 있다. 포르투갈계의 사람들도 조금 있으며(1% 미만), 유럽과 아시아인들도 약간 있다.

 

2) 언어

모잠비크 내의 각 주요종족은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으나 주로 도회지에서만 사용한다. 남부의 관광지역을 벗어나면 영어는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언어는 에마쿠와어 26.1%, 씨창가나어 11.3%, 엘롬웨어 7.6%, 시세나어 6.8%, 시추와어 5.8%, 기타 부족어 32%, 기타 외국어 0.3% 등이 있다.

 

3) 교육

모든 교육제도는 포르투갈 방식을 모방하였으며, 초등교육을 의무제로 하였다. 12학년 제로 초등학교 7학년, 중등학교 5학년이며, 1년 3학기 제로 운영된다. 중등학교도 학교시설이 부족하여 오전, 오후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간반을 운영하는 학교들도 있다. USAID에 따르면(2009) 모잠비크는 여전히 청소년 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충분한 학교와 교사가 부족한 형편이고, 특히 여성 성인의 약 50%가 여전히 높은 문맹으로 읽고, 쓸 수 없다고 보고했다.

 

4) 역사

2000년 전에, 반투인(그들이 사용하는 연어의 계통을 따서 명명되었다)들이 철제 기구와 무기를 갖고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천 년이 끝나갈 무렵, 모잠비크 해안가의 몇몇 마을이 아프리카 다른 지역과 중동, 인도를 잇는, 반투인들의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이 항구들에 아랍인들은 큰 영향을 끼쳤으며, 스와힐리어는 상용 국제어였다.

모잠비크는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상륙했을 때 환영하며 맞이했다. 그의 목적은 인도로 가는 포르투갈의 항로에 물품 공급 지점을 세우기 위한 것으로, 이 일로 그는 현지에 정착한 아랍 무역상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금과 상아 무역의 성공은 포르투갈인들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700년대 중반, 노예무역이 첨가되었다. 점차 포르투갈인들은 내륙으로 이동해 갔으며 본격적으로 이 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20C 초에 이르러 한 가지 경향이 성립되었다. 나라를 개발하기보다는, 포루투갈인들은 사용 가능한 자원을 빌려 갔다. 여기에는 이웃나라들, 주로 남아공과 로디지어(Rhodesia)에 빌려준 노동력도 포함되며, 따라서 상당한 남자 노동력이 유출되었다. 1932년부터 1968년까지 포르투갈의 파시스트 리더였던 안또니오 살라자르(Ant nio Salazar)의 명령으로 힘든 노동조건이 더 가혹해진 후에는 더 많은 모잠비크 남자들이 이 나라를 떠났다. 살라자르는 목화나 쌀 같은 현금화하기 쉬운 농작물을 도입하였으며, 15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농장에서 반년 동안, 종종 쇠사슬에 묶여 일하도록 명령했다. 환금 작물(코코넛·땅콩·면화·캐슈넛)이 증가하면서 식량 생산의 급격한 감소가 일어나 1940, 50년대에는 기근이 널리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포루투갈은 모잠비크 내에 사회에 대한 투자를 하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있었던 얼마 안 되는 학교와 병원들 대부분은 도시에 편중되어 있었으며 주로 포르투갈인과 다른 백인들, 아프리카계 아지밀라두스(asimilados) 특권층 전용이었다. 이 모든 것이 1960년에 곪기 시작했고, 당시 포르투갈 군인들이 조세 제도에 저항하는 평화시위대에 발포하여 6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모잠비크 해방전선(Mozambique Liberation Front, 또는 프렐리모 Frelimo)이 1962년 결성되었다. 에두아르도 몬들라네(Eduardo Mondlane)가 이끄는 프렐리모는 포르투갈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무력투쟁이 10년간 계속되었으며, 1974년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성공적으로 끝났다. 1975년 6월 25일 모잠비크 공화국이 정식으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그 후 정말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이 나라를 혼란속에 남겨놓고, 실질적으로 하룻밤 사이에 떠나갔다: 전문인력과 사회기반의 부족, 유혈이 낭자한 수도, 추락한 경제상황 등. 정부여당이 된 프렐리모는 구소련과 동독의 사회주의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1980년대 초까지 모잠비크는 거의 파산상태였다. 화폐가치는 떨어졌고 상점들은 텅 비었다. 이러한 불안정으로 각각 자신들의 독립운동의 비밀 은신처로 사용키 위해 모잠비크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애쓰던 로디지어, 남아공과 모잠비크 간에 점차 긴장감이 크게 조성되었다. 모잠비크내의 훈련받은 로디지어 반란세력들은 모잠비크 국민 저항운동(Mozambique National Resistance, 또는 레나모 Renamo)을 결성했으나, 결국 남아공이 이를 인계했다.

그 후에는 전형적인 내전이 잇달았지만, 혹자는 레나모가 전적으로 외국의 앞잡이에 의해 창설되었고 훈련받았으며 필요물품이 조달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레나모의 목표는 모잠비크 사회기반과 통신 시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결국은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1983년의 가뭄과 기근은 이 나라를 무릎 꿇게 했다. 레나모는 구원물자를 실은 트럭을 공격했으며 곡식 창고에 불을 질렀다. 프렐리모는 점차 압력에 굴복, 서방에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서방은 식량 원조로 화답했다. 남아공과의 관계는 1980년대 말까지 조금씩 개선되어 갔지만, 1990년 프렐리모가 마르크스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레나모의 협박이 끝났다. 1992년 양측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교전이 종결되었다. 1994년 선거는 의외로 순조롭고 공정하게 진행되어 프렐리모의 우두머리인 조아낑 시사노(Joaquim Chissano)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모잠비크는 지뢰, 자연재해(가장 최근의 가뭄은 1998년, 2000년에 대홍수가 있었다), 싸이클론 등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그 후로 다시 국가 재건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5) 문화

북부 마꼰드 사람들의 조각품은 아프리카의 가장 세련된 예술형태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1950년대 이래로 재능 있는 화가들이 많이 나타났다. 아마 가장 유명한 화가는 말랑가따나(Malangatana)로 전 세계에서 전시회를 가졌었다. 모잠비크는 벽화가 유명한데, 상당수는 마푸투의 여러 장식벽에 남아있다.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은 공항 근처의 길이 95m짜리로 혁명에 얽힌 이야기와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6) 국경일

•1월 1일 - 설날

•2월 3일 - 영웅 기념일

•4월 7일 - 여성의 날

•5월 1일 - 노동절

•6월 25일 - 독립기념일

•9월 7일 - 전승기념일

•9월 25일 - 혁명기념일

•12월 25일- 가족의 날

 

Ⅴ. 종교

1) 종교 분포

남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애니미즘은 수천 년간 모잠비크에 존재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된 신앙 못지않게, 이 전통신앙을 지키고 있다. 아랍무역상들은 8세기 초에 해안 왕국에 이슬람교를 전파했으며, 포르투갈 가톨릭 선교사들이 16세기에 기독교를 소개했다. 현재는 인구의 20% 정도가 무슬림으로 주로 북부지역과 해안지역에 퍼져 있으며, 약 25% 정도는 카톨릭 신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애니미즘을 신봉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애니미즘을 신봉하며, 이슬람교는 북쪽에, 기독교는 남쪽에 퍼져 있다.(토착종교 35%, 가톨릭교 20%, 개신교 10%, 자이온이스트 13%, 이슬람교 20%)

 

2) 선교정보

(1) 모잠비크는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의 자유를 확립했다. 포르투갈 지배 아래에서 카톨릭의 독점은 남부 모잠비크 영토의 1/3에서만 유일하게 깨졌다. 개신교의 사역은 심하게 제재받거나 금지되었다. 이따금이긴 하지만 복음주의 신자들에 대한 심한 박해가 일어났다. 마르크스주의 아래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고통을 겪었다. 선교사들은 추방되었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협박받고 투옥되었으며, 많은 교회와 기관들이 파괴되었다. 인가된 교회에서의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제한하고 전도 활동을 막는 차별법이 통과되었다. 1982년 이후 늘어난 자유로 인해 거의 모든 그룹에서 전에 없던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평화가 온전히 이를 때까지 이 상태가 유지되도록 기도하자.

 

(2) 정치적, 군사적, 자연적인 재난의 오랜 연속은 진실에 대한 갈망과 복음에 대한 전에 없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고통과 빈곤의 무시무시한 현실로 인해 변화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 지속적인 평화 정착과 정부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이 그들의 생활을 재건하고 파괴된 경제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도록 기도하자.

 

(3) 과거의 고난이 현재의 영적 추수를 위해 기독교인들을 강건하게 했다. 그러나 교육과 거룩한 삶의 결여로 인해 교회가 분쟁과 피상성, 낮은 도덕 수준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독립 이전에 개신교는 많은 명목상의 교인들이 있는 남부의 세 지방에 주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대규모 인구 이동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의 전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다음의 지역에 있는 신자들과 교회의 계속적인 증가를 위해 기도하자.

① 마푸토와 베이라 : 이곳은 더욱 안정적이고 거대한 난민의 물결이 쇄도하고 있으며, 성공회, 나사렛교, 침례교, 다양한 오순절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② 말라위 난민 캠프 : 이곳에서 말라위인과 모잠비크인 사역자들이 많은 이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있다.

③ 북쪽 잠베지의 롬웨족 : 이 지역에서는 AEF 사역의 열매인 연합침례교회가 주목할 만한 추세로 성장했는데, 1959년의 1,500명에서 오늘날 17만 명으로 증가했다.

④ "베이라 회랑 지대" : 이것은 길 한편으로 280km에 달하는 좁고 긴 땅으로 짐바브웨와 바다를 잇는 철도가 나 있다. 짐바브웨 병력이 이를 지키고 있으며, 이 나라 인구의 20%가 여기에서 보호받으며 식량을 얻고 있다. 짐바브웨인과 모잠비크인 기독교 사역자들이 불행한 이 사람들 가운데 많은 교회를 개척했다.

 

(4) 가톨릭 교회. 오랫동안 식민지의 억압과 연관되었던 가톨릭 교회는 독립 후 특히 심하게 고통을 당했다. 수많은 배교자들, 넓게 퍼진 명목론, 토착민 성직자의 부족과 함께 아프리카화의 결여 등이 수적으로 커다란 감소를 가져왔다. 가톨릭 신자들의 갱신 운동은 어디에서든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5) 교회 지도자의 훈련은 긴박한 당면 문제이다. 약간 혹은 전혀 교육받지 못한 남녀 사역자들이 대부분의 교회를 인도하고 있으며, 어떤 종류이든 신학 훈련을 받은 사람은 소수이며, 이러한 훈련을 제공할 만한 재정이나 적절한 설비도 없다. 정부는 각 그룹에게 지도자를 위한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도록 주장하고 있다. 다음을 위해 기도하자.

① 신학교와 성경대학 : 더욱 전통적인 교회들을 위해 모잠비크 기독교 협의회가 운영하는 리카틀라에 있는 한 학교에는 42명의 학생이 있으나 자유주의적인 가르침이 지배적이다. 나사렛교가 세운 학교(40명의 학생)와 United Baptist Colleges(11)는 복음주의적이다. AoG는 140명의 학생이 있는 두 개의 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북부에는 성경학교가 전혀 없다.

② TEE(United Baptists, AEF)와 통신 과정(짐바브웨에 있는 Emmaus Bible School of the Brethren과 Global Literature Lifeline)등의 비공식적인 훈련이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③ 아프리카 독립 교회들 : 이 교회들은 지난 10년간 수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빠른 성장을 보였다. 혼합주의적인 가르침, 율법주의, 잘못된 가르침 등은 도움과 가르침에 대한 대단한 열망과 더불어 이곳 지도자들의 특징이다. 베이라에 있는 AIM과 마푸토에 있는 기타 기관들은 성경에 더 중점을 두는 기관들과 함께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이러한 간격을 메울 방법을 찾고 있다.

 

(6) 모잠비크는 적도 이남의 아프리카에 있는 미전도 종족들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이것은 아직도 사실이지만, 더이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의 복음전파는 모잠비크인들의 용기 있는 활동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메워야 할 커다란 간격이 여전히 남아 있다.

① 북쪽의 두 지방 카보 델까도와 니아싸 : 이들 지방에는 기독교인과 교회가 거의 없다.

② 북부 해안의 회교권 종족들 :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사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므와니족(현재 SIL이 신약을 번역), 마콘데족(일부는 회교도이고 몇몇은 형제교 신자), 코티족과 상가게족 등을 위해 기도하자. AIM이 이 지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③ 니아싸의 야오족 가운에서 사역하고 있는 성공회는 성장하고 있다. 더욱이 6개 단체들이 모잠비크와 말라위에 있는 야오족 가운데서 사역할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훌륭한 팀사역이 되도록 기도하자. 신약 성경이 이제 완성되었다.

④ 마쿠아족 : 이들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정령을 숭배하는 가장 큰 미전도 종족일 것이다. 20% 정도가 회교도, 10%가 가톨릭, 약 5,000명이 신자들(AoG와 United Baptists)이지만, 해안 쪽의 더 많은 이슬람교 지역이 미전도된 상태이다.

⑤ 잠베지 계곡의 종족들(특히 세나, 쿤다, 포드조, 늉웨, 츠와보, 마자로 등) : 겨우 최초 몇 년 동안 세나 교회와 츠와보 교회가 개척되었다. 이 종족들 가운데 많은 수가 난민이다. 이 모든 지역과 종족들이 개척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7) 외국인 선교사들은 1975/76년에 추방되었으나, 1982년 이후 한 번 더 문이 열리고 있다. 선교사들의 활동은 도시와 더 안전한 지역으로 제한되었고 상황은 열악하다. 질병, 기근, 빈곤한 대다수의 절망,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험, 좌절과 낙심 등에 직면해야 한다. 사망률은 높고, 소수만이 포르투갈어와 지역 언어 모두를 겨우 배울 수 있는 실정이다. 선교사들의 생존과 적응, 열매를 위해 기도하자. 선교사를 필요로 하는 사역은 다음과 같다. 즉 지도자 훈련, 청소년과 어린이 사역의 시작, 모잠비크 기독교인과의 협력을 통한 교회개척과 성경 번역, 구제와 복구 사역 등이다

 

(8) 성경 번역과 보급

모잠비크 성서공회는 서점을 갖고 있으며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많이 있으나 성경, 외화와 보급 수단의 부족이 사역을 제한하고 있다. 새로운 번역이나 개정에 대한 계획 또한 방해받고 있다. 정부는 지역 언어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위해 1982년에 언어 정책을 변경했으나 철자법에 대한 전국적인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SIL은 모잠비크어 연구를 증진시키고 성경번역을 돕기 위한 사역자들을 갖고 있다. 특히 마쿠아어, 카이므와니어, 세나어를 비롯하여 적어도 5개에서 10개 언어를 상대로 이러한 사역이 필요하다. 부적절한 신약 성경을 가진 많은 언어를 새롭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 진행 중인 5개의 번역 계획과 롬웨어 구약 성경의 번역을 위해 기도하자.

 

(9) 지원사역

① 문서는 쉽게 수입되지만 공급이 부족한 형편이다. 보급과 높은 비용이 주요 문제이며, 기독교 서점은 수적으로나 재고면에서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기독교 문서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국외 선교기관들은 좋은 복음전도 서적들(All Nations Gospel Publishers, 남아프리카 공화국;Global Literature Lifeline, 짐바브웨; Open Doors; SGM; Frontline Fellowship), 전도지인 CEDO(WEC)를 보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SU는 모잠비크에서 좋은 성경읽기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사역을 시작했다.

② 라디오는 교회개척과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와질란드에 있는 TWR은 포르투갈어, 롬웨어, 쇼나어, 츠와어, 샹가안어로 매주 총 26시간 방송하며, FEBA Seychelles는 포르투갈어, 스와힐리어, 야오어로 16시간 방송하고 있다. 마쿠아어, 세나어, 기타 언어로 된 프로그램이 공급되도록 기도하자. 라디오와 건전지의 부족으로 청취자들이 제한되어 있다. FEBA/TWR 스튜디오가 마푸토에 개설되었다.

③ 영화는 난민들 사이에서 매우 성공적인 전도의 도구이다. 영화 "예수"는 포르투갈어와 쇼나어로 널리 상영되지만 샹가안어, 마쿠아어, 롬웨어 필름은 긴박한 기도제목이다. 야오어 필름은 1992년에 샹영할 수 있게 되었다.

④ GRn은 모잠비크어 가운데 21개 언어로 된 말씀을 준비했다.

⑤ 기독 선교기관들의 구제와 개발 프로그램은 정부에 의해 환영받는데, 이는 널리 퍼져 있는 기아와 빈곤 때문이다. 1992년에는 인구의 반이 생존을 위한 원조에 의존했다. WV와 기타 기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데 참여했다. MAF는 이 프로그램에 관련된 몇 대의 비행기를 가지고 있으나, 비행 조건들은 복잡하다. 이러한 노력들이 강하게 하고 복음전도를 촉진하도록 기도하자.

 

3) 미전도 종족 정보

•구자라티(Gujarati) - 힌두교 30,000명, 기독교인 2%미만, 신구약 완성

• 코티(Koti) - 이슬람교 115,000명, 기독교인 2%미만, 성경 일부분 번역

• 마쿠와(Makwe) - 이슬람교 35,000명, 기독교인 2%미만, 성경 없음

• 스와힐리(Swahili) - 이슬람교 15,000명, 기독교인 2%미만, 신구약 완성

• 브라민(Brahmin) - 힌두교 30,000명, 기독교인 2%미만, 신구약완성

• 마콘데(Makonde) - 이슬람교 499,000명, 기독교인 2%미만, 성경 일부분 번역

• 음와니(Mwani) - 이슬람교 134,000명, 기독교인 2%미만, 성경 일부분 번역

• 야오(Yao) - 이슬람교 605,000명, 기독교 2%미만, 신구약 완성

 

 

4) 기도제목

1) 복음적인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자이온이스트 교회를 포함한 이단이 교회 주류가 되어 영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교회들이 말씀으로 회복되어 복음으로 살아가도록

2)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복음 앞에 전인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3) 외적인 경제성장으로 도시에서는 자본주의의 폐해인 황금만능주의가, 시골에서는 여전히 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진리의 기초위에 균형 있는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4) 교육에 대한 모든 부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교사, 부모, 학생들이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이 부족하다. 교육영역에서 부패의 정도가 깊다. 기독교 교육이 사회에 좋은 본을 만들어 내도록

5) 어린이 말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일학교와 교회 선교원을 통한 말씀 교육의 기회 확대와 이에 헌신할 사역자들이 늘어나도록

6) 이 땅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모든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하도록

 

정리 및 보고

문광훈 정현진 선교사

(모잠비크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