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요르단 (Hashemite Kingdom of Jordan)

by PAUL posted Mar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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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소개

요르단 Hashemite Kingdom of Jordan

권0배/최0연 선교사/요르단 주재 바울선교회 선교사


요르단은 지리적으로 중동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있어 아랍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주변 여러 나라들의 내전 치안 불안으로 인하여 요르단으로 이동해온 외국인 난민들에게 여러 단체를 통하여 안정을 제공한다.


※요르단은 2014. 10월에서 12월까지 방영된 한국드라마 미생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국기 의미
요르단.jpg

빨강 : 대아랍혁명(1916년)의 아랍의 피를 상징 →
빨간 삼각형 중앙에 그려진 흰색 7각 별은
코란 제1장의 7개 행(行)을 상징

← 검정 : 적과의 싸움
← 흰색 : 순결함과 관용
← 초록 : 비옥한 토지

 

1. 국가개요

캡처.JPG

 

2. 요르단의 역사

성경, 출애굽기(B.C 1500-1200 : 청동기 ~ 철기 시대) “가나안”
이집트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이 이루어지는데, 광야 생활을 지낸 후 가나안에 정착한다. 가나안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어 정착하여 초기 사사들이 활동을 시작한다.


B.C 1300년대 초에 이곳에서 농경 생활을 했던 에돔은 에서의 후손이며, 모압과 암몬(암만의 어원)은 롯으로 비롯된 민족이다. 출애굽기~사사기 중 대부분 사건이 이 시기에 발생한다.

 

페르시아 제국(B.C 549-331) & 헬라 제국(B.C 332-63)
페르시아(바사)왕 고레스는 B.C 539년에 그 영향력은 오늘날의 요르단을 포함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끼쳤다. B.C 323에(알렉산더의 죽음), 제국은 프톨레미와 셀루커스에 의해 분열되고, B.C 3세기에 프톨레미 2세는 랍바를 재건하고 이름을 ‘필라델피아’라 개칭하였다.

 

나바테안 시대(B.C 400-A.D160) : “에돔의 수도 페트라”
“나바테안”이란 B.C 1세기-A.D 1세기,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라비아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나바테안들이 B.C 6세기 초 이곳으로 이동하여 에돔 땅을 점령하자 에돔 사람은 유대의 남부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B.C 4세기에 에돔과 모압에 정착했고 네게브의 남부와 와디 엘 아라바(Wadi El Araba)를 점령했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요새를 그대로 물려받았으며, 처음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점차 독립적인 지위를 얻었으며, 그 같은 상태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나바테아의 역사에서 최초의 분명한 연대는 B.C 169년으로 이해에 야손(Jason)이 아레다(Aretas)의 성전을 차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야손은 유대 대제사장의 직위를 얻으려던 사람 중의 하나였으며, 아레다(아레타스) 왕은 나바테아의 폭군이었다. 아레다 2세는 B.C 96년 통치했던 왕으로 수리아 왕조의 전쟁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요세푸스)
 
이 기간의 대부분은 나바테아 사람과 유대인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들의 공동의 적인 수리아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 협조했으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영토적으로 서로 경쟁자였던  그들은 결국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때로는 유대인들이 승리하고, 때로는 나바테안들이 승리할 때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나바테안들이 유대의 베뢰아와 헬라의 데가볼리의 동부지역, 즉 요단 동편의 북부 지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B.C 85년에는 자유도시 다메섹 시민들이 아레다 3세를 자기들의 통치자로 초청하기도 했다. 나바테안들은 폼페이우스가 그 도시를 점령한 B.C 65년까지는 그곳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A.D 37년경 칼리 굴라(Caligula)가 다시 나바테안들에게 그 도시를 주었으므로 A.D 54년경 네로(Nero)의 통치가 시작될 때까지 그들은 계속 남아 있었다. A.D 106년, 라벨 2세가 죽자 트라야누스(Trajanus)는 모든 나바테 왕국을 합병했다. 이것은 파르티아(Parthians)에 대한 전쟁을 계획하면서 남부 측면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이후로 그들의 번영은 잠시 더 계속되었지만, 이때 합병된 이후 나바테아는 더 이상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다.

 

로마 시대(B.C 63-A.D 330)
로마의 폼페이는 셀루커스 왕조(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후, B.C 63년에 팔레스타인을 장악)를 무너뜨린다. 풍부한 로마의 지방 도시들이 현대 요르단의 도시들이 있는 곳에 건설되어 있다.


그들의 대다수가 요르단 지역 안에 위치해 있었으며 필라델피아(현 암만), 게라사(현 제라시), 가다라(현 움 카이스), 펠라, 디온(현 이르비드) 등이 데가볼리의 도시들이다.

 

비잔틴 시대(A.D 324-632)
로마의 황제가 콘스탄틴으로 바뀐 후,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기독교가 중동 지역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A.D 527-565 저스틴(JUSTINIAN) 황제 때에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여러 마을들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다. (현, 요르단 마바다 지역에 모자이크 교회 유적 현존)

 

아랍 왕국(634-1099) “야르묵 전투 :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비잔틴 제국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야르묵 전투에서 아랍 모슬렘 군대가 대승리를 거둔 후 대부분의 중동 지역은 기독교에서 아랍(이슬람)의 통제를 받게 된다.


야르묵 전투란? A.D 635년, 이슬람 군대와 비잔틴군대의 전투에서 이슬람이 전쟁에 승리하게 되므로 중동지역이 기독교의 지배에서 이슬람의 지배로 바뀌게 되는 시점이며, “움 엣 라사스”라는 지역은 요르단 기독교 역사에서 최후의 교회가 있었던 장소이다.

 

십자군 시대(1099-1268)
십자군의 침입으로 중동 지역에는 십자군의 요새가 건설되었다. 카락이나 쇼박(요르단 내 지역의 지명)과 같은 요새들은 이슬람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일조하였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여행하는 자들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

 

마멜룩 시대(1263-1516)
이집트에서 발생한 아유비드(AYYUBIDS)가 일어나 많은 요르단의 요새들을 지배하고 재건하였다.


1400년에 몽골의 타물레인(TAMURLAIN)에 의한 침입이 있었으나 마멜룩에 의해 물러갔다. 이 제국은 점차 쇠퇴하였으며 오토만 제국이 지배하기 전에 분열되었다.


※ 마멜룩 왕조(1250-1517), 노예가 세운 이슬람 왕조이다.
   마멜룩 : 노예가 되어 군인으로 길러져 기회를 얻고 교양을 쌓아 이슬람 사회의 요직에 등용함.

 

오스만 술탄(터어키) 시대(1516-1918)
터어키의 지배권은 4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영국 위임 통치 시대(1919-1946 & 현대의 요르단)
1916년 터어키의 지배하에 샤리프 후세인이 이끄는 아랍 혁명군이 영국의 지원 하에 혁명을 일으키고 독립을 시도한다. 그러나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가 끝난 후에는 영국의 위임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1921년 3월에 압둘라 토후는 “트랜스 요르단 토후국”을 건설하고 1023년 5월, 영국은 요르단의 독립을 인정하나 진정한 독립은 23년이 지난 후인 1946년 5월 22일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진다. 또한 1949년에는 국명을 “트랜스 요르단”에서 “요르단”으로 변경한다.

 

3. 요르단의 정치와 사회

정치
요르단은 입헌군주국이며, 그러므로 최고 행정권은 왕에게 있다. 양원제 국회가 있었으나 1976년 압둘라 이븐 알 후세인 왕의 명령으로 해산되었고 후세인 왕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칙령을 통해 통치했다. 1984년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진 국회가 재소집되었다. 상원은 왕의 임명으로 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하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1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사법
사회적 최고 사법기관으로 대법원이 있다. 그리고 개인의 신분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이슬람 종교재판소(샤리야, Shariah Muslim courts)가 있다.

 

사회복지
정부의 연금제도는 노령·장애·사망 시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건시설은 주로 암만을 비롯한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농촌인구의 대부분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 영양부족과 위생시설이 열악할 뿐 아니라 나쁜 기후 탓으로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살모넬라, 간염, 이질 같은 질병이 널리 퍼져 있다. 평균수명은 남자 60세, 여자 64세 정도이다. 주택이 계속 건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택문제가 심각하여 대다수 가구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이로써 사회복지제도는 낙후된 편이라 하겠다.

 

교육
교육 시설로는 공립학교, 사립 또는 종교계 설립 학교, 난민 어린이를 위해 UNRWA에서 운영하는 학교 등 3가지 유형의 학교가 있다. 교육부에서 모든 학교를 감독하며 14세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요르단국립대학교(1962, 암만), 야르무크대학교(1976, 이르비드), 무타대학교(1981, 카락) 등이 대표적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
현재 시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들을 배출하고 있는 나라이며, 요르단에는 약 62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아 외 팔레스타인 이라크의 난민까지 더한다면 현재 요르단에 거주하는 인구 전체의 30%이다. 참고로 난민뿐 아니라 전체 외국인에 대한 수치는 50%라는 조사도 있다.


난민 문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부재정이 항상 부족한 요르단 상황에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단은 ‘요르단은 가난하면서도 난민에 대한 의무와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 보편적 의견이다. 자신들의 국가 자체 경제력도 부요하지는 않지만 이슬람 특유의 ‘무슬림 형제애’ 신앙을 바탕으로 시리아 난민들을 초기부터 근래까지 지속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들 중 하나가 바로 요르단이다.


요르단은 국가재정이 부족해 사회 인프라 구축확장을 미루는 상황인데 시리아 난민까지 받아들이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5년부터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음식 관련 지원을 부분적으로 중단한 바가 있으며 그 이후에는 난민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에 대한 기준을 까다롭게 세웠다.


4. 요르단의 경제, 산업

1980년대 초까지는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급성장하는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슷하며 인구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나 그 후 성장률이 떨어졌다. 중동이라 석유와 연관한 경제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요르단은 중동의 여러 국가 중 유일하게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다.

 

주요 산업 : 성지를 바탕으로 한 관광산업
성경의 무대였던 많은 성지들이 요르단에 위치함에 따라, 관광산업은 요르단의 주요 산업이다. 여러 성지를 찾는 성지 순례객들, 그리고 제라시, 페트라의 유적, 사해 주변의 온천과 광천 등으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노동력의 약 1/2이 정부와 지역, 사회, 개인 단위의 서비스업에 고용되어 있다.


농업, 목축업, 기타 산업
농업이 GNP의 약 1/20을 차지하며,  요르단 강 하곡과 바로 동쪽의 고지대는 관개가 잘되어 있다.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 작물은 토마토, 가지, 호박, 고추 등 채소류이다. 그 외에 밀과 보리를 비롯한 곡류, 편두, 올리브, 수박, 바나나, 오렌지가 생산된다. 국토의 지질이 대부분 광야 지역이기에 전 국토의 1/20만 경작이 가능하다. 


목축업은 요르단에는 목초지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목축을 하기 위하여 대개 우물을 파야 한다. 주요 가축인 양과 염소에서 고기와 젖을 얻으며, 양봉도 이루어진다. 비교적 소규모 지역인 삼림은 주로 시리아와 가까운 동쪽의 고원지대에 분포하며, 연간 국내수요의 약 1/2을 충당할 수 있는 양의 목재를 생산한다. 1967년에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웨스트뱅크(팔레스타인)의 농경지를 잃게 되어, 요르단 정부는 조림계획을 다시 세우고 일부 삼림지를 농경지로 바꾸었다.


그 외, 건설업, 광업과 채석업은 각각 GNP의 1/20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약 1%가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제조업은 암만에 집중되어 있으며, GNP의 1/10을 차지하고 노동력의 1/15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천연인산비료, 채소·과일류, 살아 있는 동물, 화학비료, 의약품, 의류, 섬유, 방적사 등이며, 수출 상대국은 주로 이라크, 인도, 사우디아라비아이다. 무역 적자는 해외에 있는 요르단 노동자들의 송금과 관광 수입, 보조금과 차관 등으로 메워진다.

 

※ 2019.10월 현재, 실생활의 구체적 품목(평균 가격, 브랜드에 따라 오차 있음)
햄버거 세트(KFC, 맥도날드 등) 5JOD(실제 계산 시 세금 1.6%를 더하여 지불하기에 속거나, 강탈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함 /Ex. 메뉴판에는 3.4JOD라고 표기되어 있음)


아메리카노(스타벅스) 3JOD /캔 콜라 0.33L 0.4JOD /물 0.33L 0.25JOD /1.5L 1.6JOD.
쌀 1kg 1JOD /소고기 150g 1.313JOD /사과 1kg 1.19JOD /바나나 1kg 1.01JOD.
수박1통 약3kg 5JOD /오렌지 1kg 1.04JOD /토마토 1kg 0.61JOD /감자 1kg 0.75JOD.
택시 기본요금 1JOD, 평균 1.5JOD(암만 시내 내 이동) /우버 기본 1.5JOD, 평균 2.5JOD
(미터기에는 0.34JOD부터 시작하나 ‘19.5월부터 기본요금 1JOD를 지불하는 것으로 변경)
가솔린 1리터 평균 0.8JOD (요르단은 중동이지만 한국과 큰 차이 없음)

피트니스(헬스장) 1개월 46JOD / 극장 영화 관람 9JOD


5. 요르단의 종교

온건한 세속주의 무슬림
요르단 무슬림은 “온건한 세속주의 무슬림”이라 말할 수 있다. 요르단 내의 극단주의 세력 무슬림은 다른 아랍 국가들(특히 이라크, 시리아)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적은 수이다.


2015년 초 기준으로 요르단 내에서 지하디스트 또는 ISIS가 약 9,000명 정도 요르단 국적자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지만, 최근(2017년) 요르단 암만 인근의 한 교도소에서 이러한 극단주의자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요르단은 94% 이상이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이나, 기독교(카톨릭, 정교회, 개신교)등 타 종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가 있다. 단, 포교(전도) 활동은 절대 금지되어 있고 종교법을 어길 경우 강경한 조치(최대 추방)를 취한다.(헌법에 명시)  요르단 전 지역 기준, 남부 아카바 지역에 가장 많은 기독교인들의 비율이 자리 잡고 있고, 암만 남쪽 마다바 지역에는 기독교인 마을과 무슬림 마을이 각각 위치하는 것을 볼 때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암만 시내에는 “킹 압둘라 제1모스크(요르단 제일)”와 “패트리아채트 콥틱 정교회”가 도로(4차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암만시내에 위치한 한인교회(3개소)
요르단한인교회(7th Circle, At-Tabashir St.), 열방한인교회(Rabiah St. /079-040-6113), 국제요르단교회(http://ijkc.uk)

 

Arabic Church(현지 개신교회 소개 – 암만 위주)

캡처.JPG

※ Circle: 암만의 도시의 도로 교차 구조는 한국처럼 교차로가 아닌 써클로 이루어져 있다. 택시 탑승상황에서 지역을 말할 때 “몇 번째 써클 주변!” 하면 O.K!
※ Jabal: 아랍어로 산을 뜻하며 암만의 지형이 높낮이가 뚜렷한 산과 같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서 유래한다.
서울로 비유하자면 ‘구’ 정도의 행정구역이나 규모는 ‘동’ 정도의 규모이다.


6. 요르단의 주요 관광지, 성지

제라쉬(JERASH)
암만 서북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한다.
BC 200년 알렉산더 대왕이 기초를 세운 도시로서 시리아 왕에 의해 발전되었고, BC 63년에 POMPEY 로마 왕에 의해 수도로 사용되었다가 나중에 DECAPOLIS(10개 위성도시)로 되었다.

 

느보산(NEBO)
암만 남쪽 약 25Km 지점에 있다.
구약성경 신명기 34장,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 후 이곳에서 120세의 나이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죽었다. 이곳에는 AD 6세기경 지어진 모세 기념 교회가 남아 있으며, 이곳 주변으로 출애굽 관련, 모압에 관한 성지가 많이 있다.  


※ 오봇(출애굽 경로에 있는 도시), 이예야바림(출애굽 경로에 있는 도시), 세렛강(에돔과 모압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강), 카락(모압평지, 모압왕국의 수도), 아르논골짜기(모압왕국과 아모리왕 시혼의 국경,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 디반과 아로엘(후기 모압 왕국의 수도이자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정복 전쟁이 시작된 곳), 마다바(요압 장군이 아람군대를 파한 곳, 비잔틴 시대 초기 기독교 유적지, 특히 마다바 성죠지 성당의 바닥에 깔려 있는 모자이크 지도로 유명), 싯딤골짜기(이스라엘 백성의 최종 집결지이자 이곳에서 모압 여인과 음행하다가 벌을 받은 곳), 아담마을(출애굽당시 요단강물이 넘친 곳), 룻의 고향 모압 평지(룻과 보아스)

 

페트라(PETRA)
암만시 남쪽 262Km 지점에 있다. 
PETRA는 바위라는 뜻으로 기원전 약 400년, 나바테안 족에 의해 세워진 교역중심 요새도시이다.


페트라는 암벽을 깎아 만든 각종 신전, 무덤들이 자연소재 그대로의 색상과 구조로서 경이! 이외에도 구약시대의 모세의 형 아론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하였다. 

 

사해(DEAD SEA)
사해는 길이 65Km, 폭 16Km의 규모로 해저 400m 상에 위치하여 보통 바다의 염분 용해율보다 약 5~6배의 염도를 함유하여 생물이 생존하지 않는다. 각종 유기물을 함유하여 피부병 및 류마티스 등에 효험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사해의 남쪽 끝에는 ‘롯의 아내’로 유명한 소금 기둥이 많이 있다. 이곳 근처에는 소돔과 고모라, 롯의 동굴(소알), 소돔에서 심판을 피한 롯이 그의 두 딸과 기거한 동굴, 롯의 처 소금 기둥의 성지가 있다.
 
얍복강 및 야곱의 행적
암만 북쪽 17Km 지점에 있다. 

  • 마하나임 : 하나님의 군대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을 보호하고 있음을 보여준 곳이다.
  • 얍복강 :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 최종적으로 건너야 했던 강이다.
  • 브니엘 : 얍복강을 건너기 전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축복으로 받은 곳이다.
  • 숙곳(동물우릿간) : 얍복강을 건너 에서를 만나고 나서 잠시 야곱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엘리야와 관련된 곳
암만 북부 44km 지점에 있다.

  • 엘리야의 고향 디셉 : 엘리야의 고향으로 엘리야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아합왕에게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그릿시내 : 아합왕을 피해 잠시 숨은 곳,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 준 곳이다.
  • 요단강 :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선이다.

요단강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강으로 표현된다.

병거타고 하늘로 승천한 요단동편 지역 : 요단강을 건너온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곳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고 불마차가 나타나 격리되면서 회리바람타고 엘리야가 승천한 곳이다.


와디 럼(Wadi Rum)
암만 남쪽으로 약 320km 지점에 있다.
아라비아로렌스 촬영지로 근대 아랍혁명의 근원지이며, 1998년에 요르단 정부에 의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약 720㎢이며,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745m의 럼 마운틴(Rum mountain)이며 평지로 보이는 곳도 해발 1,000m 정도이다.


와디 럼을 찾는 여행객들은 트레킹이나 암벽 등반 또는 낙타나 자동차를 이용한 사막투어 등을 할 수 있고 베두윈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베두윈식의 식사와 밸리 댄스 및 아랍전통 음악 연주와 노래를 즐길 수 있다.

 

예수님의 세례터 요단동편 베다니, 암만 북서 65km 이스라엘 국경이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곳,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온 곳이다.


거라사 : 귀신들린 사람, 거라사의 광인을 살리기 위해 돼지 떼(2,000마리)를 수장시킨 곳이다.
안자라 :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고 마리아가 현신한 곳이다.
 
암몬성 Citadel 암만에 위치해 있다.
암몬족속의 수도, 우리아 장군의 비극적인 최후의 전선이었던 곳(다윗과 바세바)이다. 시타델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시작해 옴미아드 왕조까지 그 역할을 했던 곳이니만큼 여러 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함께하고 있다. 또한 시타델 맞은편에는 로마원형 극장이 있다. 5현제 중 한 사람인 안토니우스 피우스 시대에 지어진 이곳은 6000명 정도가 들어가는 사이즈의 극장이다. 

 

마인 온천 : 헤롯대왕도 즐겨 찾았다는 폭포 유황 온천이다.
‘마인 핫 스프링스’(Ma’in hot springs)  마인 온천은 해발 260m 아래의 화산폭포 온천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살트 : 호세아 선지자의 고향이다.
펠라 :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 디아스포라의 기독교인들이 생활했던 곳이다.
마케루스 : 세례요한의 순교 터(헤롯의 부정을 폭로하다가 세례요한이 순교한 헤롯 궁)이다.
이락 알 아미르 : 토비아 왕조의 성, 바빌론 유수 후 이스라엘 성전건축을 방해하였던 토비아 왕조의 수도다.

 

세례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광야
세례요한이 그의 공생애 기간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곳, 구약 엘리야 승천한 곳이기도 하다.

 

길르앗 야베스(사울, 입다) 그리고 길르앗 산지 마을들이 요르단 북부에 위치한다.


7. 기도제목(영적 상황)

아랍의 심장! 요르단!
아랍의 심장으로서의 땅 요르단, 주변의 중동 국가들에 비해 정세가 안정적인 편이다. 시리아,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 등 이런 주변 국가 난민들은 안정적인 상황을 찾아 요르단에 정착하게 되었다. 
 
본래 요르단에 살던 거주자들은 베두인족이며 이들은 유목민이다. 여전히 그들은 그들의 전통에 따라 환대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기본 세계관은 환대이며, 베두인 관습에 따르면 낯선 사람이 찾아올 경우 최소 3일을 환영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로서 그들이 믿는 신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매우 큰 수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요르단의 경제적인 현실은 그렇게 손님을 접대하기에는 많이 힘든 현실이다.
 
이곳에는 “하리스”라고 하는 신분이 있다, 지킨다는 의미(축구 게임에서 골키퍼의 포지션을 칭할 때도 하리스라고 함)로 다세대 주거 빌딩 상주자로 청소, 시설관리 등(한국의 경비의 확장 개념)의 일을 하는 일꾼인데, 대부분 제 3국 출신자들이다.  최근 이들에 대한 노동비자 발급기준이 까다로워졌고, 심지어 이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일들의 이면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참고 사건으로 ‘19. 09. 06 암만 시내에는 공립교사들의 급여 인상을 위한 대규모시위가 있었다.(공립교사의 월평균 급여는 250JOD)  이후 2~3차례 더 있었다.
 
2019년 현재, 손님에 대한 접대문화의 세계관조차도 힘들고 약한 경제력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1. 요르단 정부가 경제적 성장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자. 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환대와 형제애, 주께서 요르단의 정신에 스며주신 나눔의 세계관이 적극 사용되어 지도록 기도하자. 이로서 이웃의 가난한 나라들이 회복을 경험하는 은혜를 입도록 기도하자.

2. 요르단 정부가 요르단에 사는 많은 난민을 해결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자. 시리아와 이라크, 그 외 피난한 많은 사람들이 보호를 받고 지금 마음이 무너진 이 때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하자. 이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 긍정적이고 유익한 영향을 미치도록 기도하자.

3. 요르단의 기독교인들과 현지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난민들에게 그리고 요르단의 무슬림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담대히 전하도록 기도하자.

주님의 보호로 요르단의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무슬림 배경 신자들 가운데 회심자, 개종자, 일꾼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자. 기독교인이 요르단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도록, 비기독교인뿐 아니라 명목상 기독교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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