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호[03.09~10월] 예수님을 위해서는 퇴보를 두려워 않는 자가 진보하는 자다

by 관리자 posted Sep 0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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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위해서는 퇴보를 두려워 않는 자가 진보하는 자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바보 되기를 결심한 사도였다. 세계적 최대 학문을 미련없이 배설물로 취급하고(빌3:8)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오직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심한 선교사였다(고전2:2). 율법없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야만인으로 스스로 강등시켜 눈높이 선교를 능숙하게 잘해 나갔다(고전9:21). 능력의 샘이 어디서 솟구치는 것을 알았기에 차선의 방책을 한사코 배척한 사역자였다. 아도니람 저드슨은 결혼한 지 7일 만에 신부의 손을 잡고 살기 좋은 미국을 영원히 등에 두고 미얀마 선교사로 길을 떠났다(1812). 34년만에 처음으로 고국에 들렀을 때는 영어를 잊어버려 버마어로 선교보고를 하고 영어로 통역을 해 주어야만 했다. 모국어까지 잊은 선교사였다. 62세로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38년간의 버마사랑의 결실로 한사람의 그리스도인도 없던 땅에 21만명의 천국백성들로 흡족히 채웠다. 세 살때 글을 읽었다는 천재사도는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 자기퇴보를 과감히 용납하므로 톡 튀는 선교의 업적을 쌓은 것이다.

요사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상한 풍조가 검은 구름처럼 떠오르고 있다. 학위우상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현지인의 수준상승과 교인들의 지식수준에 대비해서 더 높은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로 한국선교사 교육수준이 세계선교사 중 최고라는 평점이 나왔다. 잘된 일이다. 이것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 학문도 영성중 하나다. 죽을때까지 꾸준히 배워야 한다. 그러나 큰 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싸움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과의 싸움(엡6:12)" 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학위와 학연의 뿌리 깊은 한국풍토의 병폐를 왜 영적세계까지 답습하느냐이다. 일본은 "학위가 낮은 교수가 실력이 더 있다"는 풍조란다. 실력 있는 교수중에 학사학위만 있는 교수가 많다는 것이다. "박사인플레이션"이 교회나 선교현장에서까지 득세를 한다면 누가 가장 손뼉치고 좋아할까? 마귀나라다. 학위 받는 과정에서 선교사역이 위축되고 현지인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고 기도까지 위축되는 마당에 어찌 하나님나라 손실이 아니겠는가? 독서열은 세계 꼴찌 나라에서 학위욕심이 천정까지 닿은 것이 과연 실력을 위한 면학일까. 며칠 전 가짜 학위자 폭로가 있었다. 성직자가 상당수란 수치를 보았을 때 얼마나 치욕적이었는가.

현대사회에서 지식정보는 막강한 힘으로 추앙 받는다. 한시도 눈치 팔지 말고 실력을 쌓아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에 대한 진단이지 처방은 아니다. 이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지의 미래적 안목을 돋보이게 하는데는 지식의 혜택을 충분히 받아야한다. 그러나 어떻게 유용하느냐는 영적 탁월함에 달려있다. 다윗의 물맷돌이 "여호와의 이름" 으로 사용했을 때 슈퍼맨 골리앗도 그 앞에 굴복되었다. 영적권위를 가져야 한다. 영적감각과 접촉이 뛰어나야만 한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따로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해 사람들로 흥분시키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영적흥분이 있어야만 한다. 아들의 진보를 위해 기꺼이 자기 포기를 사양치 않는 어머니의 퇴보지혜를 배워야 한다.

푸르고 기름진 목장을 만들고 맡겨진 양떼를 윤택케 하기를 원하는가! 뙤약볕에 그슬린 투박한 목동의 성실함을 가져라. 양을 위해 목숨버리는 선한 목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첨단기술에만 집착하지 마라. 몇 달 후엔 구식이 된다. 예수님의 자기비하, 하늘보좌와의 교신, 나의 진보보다는 양들의 풍성함에 우선을 두는 사역자가 현명한 일꾼이다. 예수님을 위한 현명한 바보가 많아야한다. 할렐루야.


이동휘목사(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전주안디옥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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