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25 - 회개의 순례자

by PAUL posted Nov 02,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특별기고-순례자의 거룩한 길

거룩한 순례자의 길, 같이 걷겠습니다 25

회개의 순례자

이동휘 목사

 

1. 죄송합니다. (류 여호슈아 : 죄송합니다)

 

1)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다. 길가에 서서 신문을 보고 있는 유대인 남자에게 전도지를 전했다. 훑어보더니 굳은 얼굴로 필요 없다면서 돌려주었다. 또 한 사람은 소식지를 보자 크리스천... 신경질적으로 역시 내던지고 가버린다. 그날 밤 전도 회고 모임에 전도자들은 이스라엘인들의 냉랭한 반응에 서로 어두운 얼굴들로 초췌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튿날 이스라엘 역사와 반유대주의 강의를 들은 저들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위안부 문제에 기어코 일본의 사과를 받으려는 우리 민족의 감성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저들에게 사과할 것이 너무 많음을 알았다. 홀로코스트(나치의 600만 유대인 학살. 히브리어로 쇼아)로 인한 비통한 역사를 비롯한 1700년 동안의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의 냉엄한 잔인성을 깨달은 것이다. 150만의 어린아이들마저 죽게 될 위기가 왔을 때였다. 폴란드의 랍비는 절박한 심정으로 교황청에 애원을 했다. "우리가 죽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린 아이들만이라도 죽음을 피하도록 말해주십시오." 애걸했으나 돌아온 답장에는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 아이들의 피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유대인의 피는 모두 악하다. 그들은 죽어야 한다. 그들의 죄(예수를 죽인 죄) 때문에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다."

 "유대인은 가인과 같은 자들이다. 예수님을 죽게 한 처벌로서 끊임없이 방황하게 해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주장이나 "유대인의 살과 핏줄과 뼈와 골수를 톱으로 쓸고 불태워야 한다... 그들의 회당을 불태워라... 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라." 주장한 마르틴 루터의 주장들이다.

 저들에게 사과하지 않고는 복음이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고는 이미 경험 있는 형제의 인도로 사과문을 만들어 다가가기로 하였다. 다음과 같은 사과문이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룻처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사과드리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4세기 이후 기독교와 크리스천들이 유대인들에게 행했던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11세기, 십자군들은 유대인 마을들을 침탈하고 많은 유대인을 살해했습니다. 15,16세기에 교회의 종교재판을 통해서 많은 유대인이 나무에 묶여 화형당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는 당신들을 향하여 매우 가혹한 것들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20세기, 600만 유대인들이 교회의 동조와 침묵 속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우리는 홀리코스트 추모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1700년 동안 기독교 세계에서 당신 유대인들이 겪은 모든 박해와 고난들은 모두 우리들의 죄입니다. 당신들에게 행했던 것들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한 악행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깊은 고난과 상처를 이해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믿는 예슈아는 지난날 기독교 세계에서 유대인 당신들에게 저질렀던 악행을 사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유럽, 미국, 그리고 한국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지난날 교회와 교부들의 잘못은 우리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유대인 여러분!

저희는 당신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믿는 메시야는 바로 유대인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슈아(구원자)는 우리가 당신들에게 사과하기를 바라십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유대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한국 크리스천으로부터."

 

2) 기이한 광경들

사과문을 손에 들고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세 여학생이 이 편지를 받았다. 모퉁이를 지나 돌아가는 듯했는데 다시 와서 전해 준 권사님께 와서 꼭 껴안는다. '고마워요.' 편지를 받은 자마다 뭔가에 꽂힌 듯 한참 동안 읽는 모습들이 진지했다. 다가와 묻는다. 누가 쓴 것이냐? 우리 친구들이요. 그 모습은 붉은 눈시울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디서 왔냐? 한국에서 온 크리스천이요. 왜 한국에서 온 크리스천이 사과하느냐 너희가 그런 것이 아닌데? 우리 한국도 너희들과 같이 고난의 역사를 가졌기에 당신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와 연관이 있기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아주머니는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이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악수를 청해왔다. 자기들의 아픈 속마음만이라도 공감해주기를 그렇게 고대하며 기다렸는가 보다. 돌아가면서도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 주며 정다운 모습을 보였다.

 

3) 모녀가 편지를 받아 진지하게 읽는다. 어머니가 말을 꺼낸다. "나는 역사 선생이다. 이 내용이 다 맞다. 너희들은 나이스 한(좋은) 크리스천 같구나." 한다. 그는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우리 유대 민족은 기독교인의 손아귀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해왔다. 그들이 말하는 예슈는(경멸적으로 부르는 예수의 이름) 메시야가 아니다. 미친 사람이고 사기꾼이다. 그들이 본다는 브맅 하댜사(신약성경)는 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읽지 말라. 줘도 받지 말라." 했을 그 선생의 마음에도 진동이 온 것이다.

 

4) 몇 남자로부터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 다 좋은데 이 부분은 빼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지난날 기독교인들이 당신들 유대인들에게 행했던 일들에 대해 우리가 사과하기를 원하십니다."의 대목이다. 예수가 잔인한 일을 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냐는 이론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가르쳤고 저지른 일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용서와 자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라는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면서도 그런 기도를 하신 분이 당신의 민족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시켰을까요. 그런데 당시 교회는,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잊어버렸는지 아니 몰랐는지 용서와 자비를 가르치지 않고 종교적,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잘못 가르치고 반대로 행했습니다." 설명을 들은 그들 대부분은 호의적인 인상을 남기고 갔다. 그렇지 않은 몇 사람들의 격한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편지를 찢어버리며 화내는 사람, 예슈가 와서 사과하라는 사람, 골수에 사무친 한을 풀어주는 일은 여전히 큰 과제였다. 안타깝게도 요즈음 다시 반유대주의 바람이 온 세계에 불고 있음에 초조함을 느낀다.

 

5) 술김에 한 말인데도

 술 취한 유대인에게 편지를 전했다. 너희들 무슨 노래하는지 다 안다 하면서 바짝 다가와서 귓가에 "우리 유대인들 중에는 예슈에게 관심이 있고 기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라고 속삭인다. 술김에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갈급한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6) 히브리어 학원 종강하는 날이다. 14명이 모인 강의 종강 전에 선생에게 손을 들어 학생들에게 읽어줄 것이 있다며 청했다. 허락을 받고 나가 '죄송합니다'를 읽자 숙연해졌다. 읽다가 목멘 소리로 읽어져 갔다. 읽기를 다하자 학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평수 말수가 없는 청년이 다가와서 정말 고마워하면서 허그를 하는 것이다. 가는데 마다 감동을 일으켰다.

 

 예수를 죽인 자가 과연 누구인다.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우리의 죄가 그를 죽였다. 죄인들 인간 모두가 죽인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한국에 오셨다며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죽였을 것이다. 유대인을 정죄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2. 십자군의 만행을 회개합니다.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이라는 대명제를 걸고 십자군 전쟁은 시작되었다.(1095~1270) 제 1차 전쟁에서 5만 명중의 태반을 잃고 겨우 예루살렘을 탈환했으나 유대인 아이와 여자들까지 잔인하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순수한 목적을 점점 잃은 채 7차 원정군까지 보내는 전쟁은 200년간 지속되면서 목적 없는 전쟁이 되었다. 싸움에 능하고 승승장구하던 사라센 제국을 쉽게 무너뜨릴 수 없었다. 결국은 교황권의 약화를 가져왔고 사회적인 불안만 조성되었고 기독교의 깊은 오명을 남겼다. 7차에(혹은 8차) 걸친 60만의 군대가 동원되어 40만 명이 사망했고 탈환했던 예루살렘도 빼앗기고 말았다. 이슬람의 사라센 제국도 그 정도의 희생일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80만 명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이슬람 형제들로 깊은 복수의 칼을 갈게 한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3. 30년 전쟁(1618-1648)을 회개합니다.

 30년 전쟁의 공통적 발생원인은 신교와 구교 사이의 종교적 갈등이다.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에 반발하여 발생한 신교(루터, 칼뱅 등)를 이단으로 판단하고 탄압하고자 하는 종교 갈등과 더불어 각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졌다.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하부에 있던 소농민, 소생산자 층에서 기존의 체제에 반발하게 되었다. 여기에 신교가 힘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독일) 30년 동안 각국의 침입으로 국토는 황폐해졌고,(전쟁의 중심지) 1,600만이었던 인구는 600만으로 크게 줄었다. 네 차례의 큰 전쟁이 있었다. 13세기 이후 북유럽의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세력이었던 한자동맹(13~15세기에 북유럽의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세력)이 무너지고 중산층이 몰락하게 되었다. 결국, 신성로마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 1세의 군대에 의해 문을 닫을 때까지 존재는 남아 있었지만, 실체는 없는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베스트팔렌 조약(종전조약)을 가리켜 '독일 제국의 사망 신고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30년 전쟁은 최대, 최후의 종교 전쟁이며, 최초의 국제 전쟁이라고 불린다. 독일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싸움이었으나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가 개입한 대규모의 전쟁으로 번졌다. 또한, 종교적인 명분으로 인해 일어났지만, 유럽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쟁이었고 전쟁이 진행될수록 종교전쟁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어갔다.

 불란서에서 일어난 위그노(당시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와 가톨릭 사이에서 일어난 위그노 전쟁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살인행위였다.(1582~1598)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 등 수많은 전쟁을 일으킨 기독교 문명국들의 죄를 절실히 자복하며 주님의 자비를 구한다.

 

4. 식민지를 만든 죄를 회개합니다.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 사제가 16세기 하이티 섬에서 자행된 학살의 처참함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순박한 인종들에게 그렇게 잔인을 할 수 있나요. 당신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정의가 인디오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는가요.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랃믈에게 이런 짓을 했는가요. 그들은 인간이 아닌가요. 그들은 이성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중남미의 경우가 대표적 예다. 350년 동안에 유럽의 4배가 넘는 광대한 땅을 빼앗고 1억2천명을 학살하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였다. 살아있는 원주민들은 최하층 천민들로 보호지역에 갇혀있는 셈이다. 학살의 현장을 빠져나와 카누를 타고 다른 무인도로 도피하면 추적하여 살해하였다. 침략자들이 그 땅을 밟을 때는 2,500만의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침략이 시작된 후 100년 동안에 100만 명으로 줄었으니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고 빼앗았는가를 알 수 있다.

1500년대에 페루에서 840~1,350만의 원주민을 죽였다. 그 나라 인구의 94%에 해당한 숫자다. 자기들의 침략행위를 개척과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회개할 기회도 갖지 않았고, 가장 정복을 많이 한 영국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복을 받았다고 경박한 논리를 펴면서 복음을 왜곡하였다. 성직자 가운데에는 원주민을 종교적으로 단순히 이단으로 취급하고 사탄의 아들이라고 매도하여 침략자들의 행위를 오히려 조장했다.

 

5. 인간을 노예로 삼은 죄를 회개합니다.

아프리카 흑인 형제들은 하나님을 믿는 문명국 서구인들에게 물건처럼 취급당했다. 사냥당한 흑인들은 목에 쇠고랑을 차고 채찍을 맞으며 1천 킬로미터가 넘는 해안으로 끌려갔다. 이동 중에 네 명 가운데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안지대에 도달하면 짐승처럼 우리에 갇힌다. 노예 상인들은 그들을 발가벗긴 후 검사로 품질 등급을 정하고 쇠를 달구어 가슴에 표시했다. 10일서 15일이 지난 후 노예 무역선이 도착하면 어둡고 습기 차며, 층 사이가 50cm에 불과한 배 밑창에 차곡차곡 가둔 채 목과 발엔 사슬이 채워졌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신대륙에 도달하기 전에 죽었다.(하워드 진)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간 아프리카 흑인들을 1천만에서 1천오백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노예 상인들은 어김없이 주일은 교회에 나가 자기의 사업이 번창 되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6. 한국의 죄와 한국교회의 죄를 통회합니다.

6.25 전쟁은 지금 66년째 계속된다. 1950년도에 북한의 남침으로 3년간 맞붙어 총칼을 휘두르면서 싸우며 죽였다. 그러다가 협정을 맺어 전쟁을 끝냈다. 분명한 것은 종전(終戰)이 아니고 정전협정(停戰協定)을 맺었다. 휴전협정(休戰協定)이라고도 일반적으로 불렀다. 그 이후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일 날이 없다. 준 전시상태다. 유럽의 100년 전쟁을 따라갈 작정인 것 같다. 전쟁 무기 개발은 날로 더해 간다. 남북 관계는 날로 더 험악해진다. 원자탄 수소폭탄으로 공멸 위기에 놓였다.

교회의 죄는 더욱 크다. 교파는 분열해 그 수가 더해간다. 교회마다 분열의 영이 거세다. 목사와 장로의 갈등, 목사와 교인간의 반목도 심해간다. 기독교의 중심은 사랑인데 정 반대다. 명예싸움이다. 총회장, 감독 회장선거는 완전 성서에서 떠났다. 금품수수는 사회와 똑같다. 가짜박사 학위는 신앙인, 비신앙인 모두에게 충만하다. 한국 목사의 존경도는 중이나 신부보다 밑이다. 따라서 종교 신뢰도도 불교나 가톨릭보다 낮다. 교회는 날로 하향길이다. 성직자의 대형 비행사건이 미디어에 계속 터져 나온다. 기독교인 수가 1,200만에서 800만으로 줄었다. 주일학교가 폐쇄된다. 기독교인의 비리 사건이 세상 인과 아무 차이가 없다. 교회는 세속화되어간다. 번영신학의 재미에 빠져 범사도 잘되고 강건하게 되었으나 영혼은 파리하게 되어 3박자 축복은 결국 한국교회에 저주를 가져왔다.

 

7. 나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합니다(토마스 왓슨: 회개)

1) 우리 주님의 최초의 설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이다. 그리고 승천하시며 남기신 고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눅 24:47) 그래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고 회개가 터지게 되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행 2:37-38) 선포된 말씀은 회개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된다. 말씀은 불과 망치에 비유된다. 성직자들은 피리요 풍금이다. 성령께서 그들 안에 바람을 불어 넣으시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내리신 것이고 성령께서 회개하게 하신 것이다.

 

2) 참된 회개의 본질

① 죄를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죄는 잘도 찾아내면서 자신의 죄는 영 못 본다.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자신이 지옥을 짊어지고 다니는 줄도 모른다. 가리개로 추한 얼굴을 가리고 다닐 뿐이다. 마귀는 그들의 눈을 가리고 두건을 씌워서 지옥에 데리고 간다. 세상눈에는 밝으나 마음의 눈은 멀었다.

② 죄를 슬퍼해야 한다.

암부로시우스는 슬픔을 영혼의 격분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찔러 죽인 자를 바라보면서(슥 12:10) 슬피 울며 십자가의 못이 자신들의 옆구리를 찌른 듯 통곡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깨어진 마음이다.(시 51:17) 머리카락을 쥐어뜯는(스 9:3) 슬픔이다. 죄를 몰아내는 슬픔이다. 아합의 회개는 겉옷은 찢었지만, 마음은 찢지 않은 겉치레였다.(왕상 21:27)

슬퍼한다고 다 회개는 아니다. 도둑도 붙잡히면 슬퍼한다. 도둑질한 죄에 대한 슬픔이 아니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다윗은 내 죄가 내 앞에 있다고 통곡하며 참회개했다. 하나님을 거슬렀음에 대한 슬픔이다. 다윗의 회개의 고통은 밧세바에게서 얻은 위로보다 정녕 컸다. 즐거움을 가져다준 그 죄들을 떠나보낼 정도가 돼야 한다. 동시에 사죄에 대한 믿음의 회개여야 한다. 소망을 가지는 태도다.

참된 슬픔은 습관처럼 지속되어야 한다. 오! 그리스도인들이여, 영혼의 질병은 만성적이어서 빈번히 재발한다. 그러므로 늘 회개함으로써 꾸준히 스스로를 치료해야 한다. 파라셀수스는 춤을 추다 죽는 광란증 환자들이 있다고 보고했다. 죄인들 역시 웃고 떠들며 세월을 보낸다. 그들은 슬픔을 내팽개치고 나가 춤을 추다가 지옥에 떨어진다. 재산이 없어지면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울며 몸부림치지만, 죄로 인해 영혼의 몸부림을 겪는 경우는 전혀 없다.

③ 죄를 고발하고 고백해야 한다.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하고 자신을 고발해야 한다. 자기 고발로 사탄의 고발을 방지하게 된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참소)하는 자라 불리는 사탄이 제아무리 죄목을 들이대며 우리를 고발해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들은 이미 스스로를 고백했다. 그러므로 사탄아, 너의 소송을 기각한다. 너의 고발은 너무 늦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눅 15:18) 탕자는 죄를 묻기 전에 고백했다. 위선자는 죄를 고백하지만, 여전히 그 죄를 사랑한다. 물건을 훔쳤다고 실토하는 도둑이 여전히 도둑질을 사랑함과 같다. 죄를 멀리 떠나기를 싫어한 것이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고 계속 미루고 있다. 다윗은 태생적인 죄를 인정하며 계속 고백했다.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시 51:5)

고백한 죄를 다시 짓지 말아야 한다. 바로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은 하지만 천둥이 그치자 다시 죄를 짓기 시작했다. 반역을 자백한 뒤 새로이 역모를 꾸미는 자를 어떤 왕이 용서하겠는가. 사람들은 죄를 제거하기보다는 라헬이 자기 아버지의 수호신상을 깔고 앉아 숨기고 있듯 한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를 줄여보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몰고 왔다고 변명을 했다.(삼상 15:21) 아담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 당신이 만든 하와 때문이라 했다.(창 3:12-13) 하와도 역시 죄를 변명하므로 죽음에 이르렀다. 망원경을 반대로 돌려 죄를 보니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사람이 죄를 범할 때 마귀의 종이 되고 죄를 변호할 때는 마귀의 변호사가 된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면 지옥문이 닫히고 낙원의 문이 열린다.(아우구스티누스) 죄는 나쁜 피며 고백은 혈관을 열어 이 나쁜 피를 내보냄과 같다.

④ 죄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들이 온갖 죄악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고.”(겔 43:10) 모든 죄는 죄의식을 만들어내고 죄의식은 부끄러움을 일으킨다. 죄 없는 시절의 아담은 부끄러움을 몰랐다. 영혼을 훼손하는 순간 부끄러움을 알았다. 죄는 우리의 거룩한 흰옷을 벗겼다. 하나님 보시기에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처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우리는 종종 사탄의 능력으로 잉태된다. 죄는 짐승으로 추락시킨다. 느부갓네살 왕이 소처럼 풀을 뜯어 먹으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되었다.(단 4:33) 잔인한 짐승들도 두려움과 고통은 느끼지만 부끄러움은 모른다.

죄에 대한 거룩한 부끄러움이 일어나야 산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스 9:6) 우리가 죄를 많이 부끄러워 할수록 그리스도의 오시는 날에 덜 부끄러워할 것이다.

⑤ 죄를 미워함

죄를 미워해야 주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천국을 그리워한다. 죄에 대한 거룩한 증오가 있어야 한다. 생각으로만 죄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의지와 감정으로 죄를 싫어해야 한다. 죄에 대해 반감을 가져야 하고 증오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모리스 황제는 죽은 뒤에 벌 받지 않도록 세상에 있을 때 자신을 벌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⑥ 죄에서 돌아섬

회개는 도둑이나 무당과 한패로 있던 사람이 거기서 떠남과 같다. 죄를 멀리 집어 던진다는 것이다. 영구적인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다. 눈은 은밀히 쳐다보던 더러운 것들과 단절해야 한다. 귀는 열심히 들어오던 험담과 비방과 단절해야 한다. 혀는 욕설과 단절해야 한다. 두 손은 뇌물과 단절해야 한다. 영혼은 악을 사랑하는 것과 단절해야 한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변화다. 동쪽으로 가던 배를 역풍이 불어 서쪽으로 돌려놓음과 같다. 지옥에서 천국으로다. 니느웨의 혁신이다. 반역자 하나를 숨겨주는 자 역시 왕권에 반역자이듯 죄 하나를 받아주는 것 역시 큰 반역이다. 하나의 죄도 용납할 수 없이 전체가 돌아서야 한다. 마귀의 병영에서 떠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기치 안에 모여 그분의 제복을 입어야 한다. 고향을 떠난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아니함 같다.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부정한 채로 방주에 들어갔다가 부정한 짐승으로 나온 것과 같다.

 

3) 회개를 강권하는 이유와 경고

회개는 내 뜻대로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행 17:30) 회개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죄인은 친구가 될 수 없다. 회개의 눈물로 이루어진 강물 아니고는 노를 저어 낙원에 갈 수 없다. 사람들은 날마다 사탄의 군대에 지원하고 있다. 누가 더 악한지 다투는 것 같다. 세례의 계약을 취소하고 악마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있다. 반역의 깃발을 내걸고 하늘을 향해 대포라도 날릴 것 같은 기세다. 사람들은 뻔뻔하지 않은 것을 오히려 수치로 알고 있다. 사무엘의 겉옷을 두르고 마귀 노릇을 하는 자들이다. 죄는 하룻밤의 유숙자로 오지 않고 장기투숙자로 왔다.

 

4) 신속한 회개를 권고함

눈물은 네 가지 특징이 있다. 뜨겁고, 축축하고, 짜고, 쓰다.

얼어붙은 양심을 녹일 만큼 뜨겁고, 단단한 마음을 적셔 부드럽게 할 만큼 축축하며, 영혼이 죄로 부패하는 것을 방지할 만큼 짜고, 세상 사랑의 맛을 싹 가시게 할 만큼 써야 한다. 하나 더, 달다.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는 달콤함이다. 그분의 두 손이 못으로 뚫리고 그분의 옆구리가 창에 찔렸을 때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 은혜가 극한 달콤함이지만 그 시간은 오늘이 결정한다.

회개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때를 놓쳐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지옥에 있다. 사람들은 끝끝내 미루다가 죽음에 붙잡힌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흰 깃발을 내걸고 죄인들과 평화교섭에 임하려 하신다. 죄인들에게 사면을 선포하시려 하신다. 때를 잡을 줄 알아야 지혜롭다. 사면장이 없으면, 나를 그렇게도 유혹하던 저 마귀는 도리어 고발자가 되어 나를 공격할 때 나에게 변호자가 없는 것이다. 죄는 독이다. 독을 오랫동안 방치해 둔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적의 막사에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동안 인도 들쥐가 그 악어의 뱃속으로 들어가 파먹는다고 한다.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다가 파 먹힌다. 죄는 위험하지만 즐겁기도 하다는 생각이고, 죄의 위험보다는 즐거움이 크게 작용한다. 삼손은 들릴라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 여자의 무릎은 그의 무덤이 되었다. 회개는 노래를 거두어 가는 것이 아니고, 더 높고 감미로운 노래로 만들어 준다.

 

5) 늙기까지 미루는 자는 가장 미련한 자이다.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리라는 기대는 마귀의 꼬임이다. 인생의 찌꺼기를 드리려는 마음 역시 사악하다. 죽기 전 몇 분에 불과한 짧은 시간에 구원을 걸고 모험을 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지 않을까.

죽음이 언제나 병으로 경고사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누울 틈도 없이 죽음에 붙들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지금 네 생명을 내놓으라고 소환장을 내보낸다면 어찌할 것인가.

다행히 알아 누웠다고 하자. 그 순간 정신을 보존하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중병에 걸리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정신이 온전하다고 하자. 회개할 마음이 생기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중병에 걸린다면 유언조차도 하지 못하는 처지인데 하나님과의 화해는 더욱 어렵지 않을까.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으면 교회의 장로를 부르라(약 5:14) 하였다. 병중에 있는 자는 기도하거나 회개할 능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조바심에 두려워하게 된다.

건강할 때 회개를 무시하는 자들은 병들어서 오히려 강퍅해지는데, 평생 성령을 거부하며 살았는데 그때 주님이 와주시리라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