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특별기고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다 망하리라!"(눅 13:3)
이동휘 목사(전주안디옥교회 선교목사, 사단법인 바울선교회 대표이사)
1. 나약한 인간이여!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유다의 왕 헤롯이 야고보 사도의 목을 칼로 베고, 그 기세를 몰아 베드로 사도까지 잡아 죽이려 투옥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피시키심으로 실패한 그는, 가이사랴에 내려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신이 받는 영광을 누렸다. 신이 된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오만불손한 그를 괘씸하게 여긴 하나님은 그를 벌레에게 먹혀 죽게 했다.(행 12:23) 더 이상 그는 거창한 왕이 아니고 시체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만 풍기는 흉물이 되었다. 그 권력 어디로 갔는가? 하루살이에 무너질 인간임이 증명되었을 뿐이다.(욥 4:1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여!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시 62:9) 사람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병균을 누구나 품고 산다.
14세기 페스트가(흑사병) 퍼져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인 대참사의 원인은 쥐에 붙어있는 벼룩이었다.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역시 중국 우한시에 서식하던 박쥐에 붙었던 병균의 힘 아닌가? 세계는 지금 속수무책이다. 비행기도 날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공장의 문을 닫아버린다. 세계를 박살 낼 기세다. 입마다 마스크로 봉쇄하고 심지어 예배당 문도 닫아버린다. 희망한 2020년의 부활절 예배도 성전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눈물만 삼켰다. 그 뛰어난 과학기술도 이 사망의 독침을 막지 못하고 핵폭탄도 이만한 위력을 갖지 못한다. 박쥐 한 마리가 천하장수처럼 위엄을 부린다. 그 횡포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고, 고비를 넘기고 기억도 사라질 것이지만, 앞으로도 몰려오는 바이러스는 변종이 되어가면서 과학기술을 비웃고 그 공격은 미래 세계를 향하여갈수록 거세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말세의 현상으로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눅 21:11) 예언 된 바다. 무엇을 믿고 그랬는지 그동안 인간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심오한 지식과 탁월함, 굽힐 수 없는 철벽같은 고집과 이론 -예수님 밖에 있는 것이라면- 지옥 가는 길을 비취는 등불에 불과한 것이다. 4월 말 현재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184,187명(2020.4.23. 오전 11시 기준)이다. 1,000명 이상 죽으면 전쟁으로 분류되는데 세계적인 큰 전쟁에 돌입했다고 봐야 한다.
2. 이 재앙은 인재다
연구에 매진한 과학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박쥐가 아니고 인간이 문제다”라고 결론지었다. 로마서 8장에 만물의 탄식이 나온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산림이 마구 훼손될 때 나무들은 탄식한다. 환경 파괴로 이어 오는 지구오염과 재난이 밀려올 것을 아는 이상 왜 탄식하지 않겠는가?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과거 묻혀진 질병까지 다시 활개 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고 한다.
예식장에는 꽃과 화분으로 아름다움과 찬란함이 가득하다. 꽃들도 인간의 아름다운 가정이 태어나는 황홀한 예식에 참여함을 영광으로 알면서 마음껏 향기를 발휘하려고 춤추며 등장한다. 그런데 악취가 가득하다. 남자스러운 청춘 남자와 여자스러운 청순한 처녀 한 쌍이 아니라, 남자만 둘 서 있다. 게이의 결혼식이다. 하나님이 정해주지 아니한 인간 정욕으로 마귀가 맞춰 준 억지 맞춤이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인간의 오기만이 가득하고 벌써 마귀는 씩씩거린다. 그래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롬 8:19)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마다 성령의 탄식과 함께 만물들의 탄식 소리가 깊어진다. 만물이 원상대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인간들이 영광스러운 자세로 새로워지기를 성령님과 함께 만물은 소원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중국 우한시에는 우한폐렴연구소가 몇 년 전 설립되었다.(2016.3.25) 연구실에서 실험용으로 박쥐를 많이 다뤘을 것이다. 실험이 끝난 이 포유류는 숱한 병균을 보유했을 것이므로 살생하거나 단호히 처리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푼이라도 받고 팔면 수입이 될 것이라는 인간의 탐욕이 발동하여 우한의 수산물 시장에 팔았을 것이고, 무엇이나 좋다면 먹어대는 종류의 사람들이 또 있어 분명히 혐오식품인 박쥐를 기호식품이라 이름 붙여 먹었을 것이다. 식사 후 국제비행장에 가서 기분 좋게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면서 그 균을 펼쳤을 것이라는 일부 학자의 주장이다. 옛날 시골에서 먹는 것이 너무 약하여 사람도 못 먹는 시절에 개들 역시 굶주린 상태였다. 새끼를 낳은 어미개가 몸이 허약하다보니 평소는 먹지 않았던, 독약을 먹고 죽은 쥐를 먹고 개들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사 22:13) 탐욕이 세상을 지배한다. 또 성경은 먹어야 할 정결한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될 부정한 음식을 규정했다. 박쥐도 그중 하나다.(신 14:18) 박쥐는 200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모인 ‘저수지’이고, 여기서 흘러넘친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감염을 일으키는 해로운 것으로 밝히고 있다. 에이즈 치료가 예전보다 그 기술이 향상되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통을 겪어야 하는 하나님의 징계로 남아 치료가 힘든 천형인 것처럼, 음란과 패역을 쏟아내는 포악한 지구에 그 악행에 대한 재앙은 하나님의 징벌이 되어 훈계하고 있다.
3. 급히 할 일은 회개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의 사람이 죽은 사건을 놓고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비꼬고 있을 때 예수님은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따끔하게 깨우치셨다. 죄에서 떠나라는 경고다. “죄의 값은 사망”(롬 6:23)이어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지을 때에는 반드시 벌을 내리신다고 선포하셨다.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라.”(신 32:24) 코로나19의 재앙과 비슷한 바이러스다. 급히 무릎 꿇어 착수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는 애절한 기도다. 미국은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금년 3월 13일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3월 15일 ‘국가 기도의 날’로 공포했다. 전 국민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날로 삼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도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미국은 해마다 5월 첫째 목요일을 국가 기도의 날로 제정하고(National Day of Prayer) 전국 4만여 지역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배를 드린다. 한국 교회도 지금 두 달 가까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처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징계가 아닐까?
말라기 선지자를 통한 주님의 섭섭함은 민망스러울 정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8, 10) 성전 문을 차라리 걸어 잠그란다. 거짓 예배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헛치레만을 되풀이하는 가증한 예배를 폐기 처분하라신다. 체면의 옷자락으로 죄를 가린 채 하나님을 기만하고 있다. 회개는 하루의 일이 아니라 평생의 일이다. 정욕의 군대에 지배받는 자라면 지옥문에 서 있는 자다.
4. 환난의 날에도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놓지 말고 찾아야 한다
나면서부터 소경 된 사람의 소경 된 이유를 따졌다. 부모의 죄인가? 자신의 죄인가? 라는 물음이다. 그때 예수님의 답변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요 9: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란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평온할 때나, 환란이 왔을 때도 관계없이 감당해야만 그 할당량을 채우기 때문이다.
12세기에 수도사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6만 명으로 늘어났다. 1200년에서 1600년까지 400년간은 수도원 수사들의 등장이 특징을 이룬다. 당시 유럽은 전염병인 페스트가 돌았다. 이 전염병으로 2,500만 명이 죽었다. 이때 독일에서는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2만 명가량 죽었다. 그렇게 많은 수가 죽었던 이유는 페스트가 전염성이 강한 병임을 알았지만,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기로 작정하고 섬기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러한 수사들의 희생적 영성은 전 유럽을 감동시켰다.
중국의 교회는 공안으로부터 끊임없는 간섭과 감시와 불이익을 평소에 당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그 열정은 여전했다. 한 기독교인은 자전거를 이용해 사람들이 모인 약국으로 이동한 뒤 마스크를 사려고 몰려온 군중들에게 휴대용 스피커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도망쳤다. 또 다른 기독교인들은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마스크와 함께 복음이 적힌 홍보용 책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눈에 띄면 체포될 확률이 많으나 비상사태로 거리가 비어있고 당국은 자신들 일에 바쁘기 때문에 감시가 뜸한 때를 이용해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복음전파에 때를 가리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출신들은 코로나 발생으로 후베이성에서 떠나온 이들에게 집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떤 성도는 후베이성이 격리조치를 해제할 때까지 가정을 개방하여 숙소가 없는 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부탁은 지역 교인들이 혼돈과 스트레스,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소원이었다.(선교타임즈 3월호) 중국교인들의 순교적인 헌신과 신앙의 열정에 우리는 부끄러울 뿐이다.
5. 더 나빠지든지, 더 좋아지든지!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지나간다. 그러나 이 일로 우리 사회는 나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사람과 대화할 때나 앉을 때는 2m씩 띄어 앉으라, 택배도 문 앞에 놓고 가라는 등 사람들과의 접촉을 멀리하라는 지시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는 지난 질서에 대한 반대구호다. 이상한 구호가 되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끼리 서로 인사하라는 강조를 평소 해왔고 소통을 중요시하였는데, 사람을 멀리하라는 조치였다. 이 사태가 지나가도 이런 풍조가 습관으로 지속될까 염려스럽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사회로 남는다면 불행스러운 삶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오래 동안 성전예배를 중단한 습관이 무서운 해독으로 남을 수 있다. 10가지 계명 중에서도 5계명은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왔는데 예배 소홀로 인한 신앙의 열정이 무너질까 심히 염려스럽다. 교회가 설립된 후 수천 년간 예배중단은 큰 죄로 알고 생명 바쳐서 주일 성수를 했는데 쉽게도 예배가 무너졌다. 도시교회나 일부는 온라인예배를 드렸으나 시골교회나 세계의 모든 교회가 그렇지 못했다. 예배중단이었다. 새벽기도의 습관도 무너졌고 각종 생산적인 집회도 서먹해졌다. 신천지에서 무더기로 감염자가 나와서 교회에 대한 예배금지를 당돌하게 추진해온 당국자들의 무례한 역할도 한몫을 했다. 우리는 그들을 신천지라고만 불렀는데 집행기관은 ‘신천지 교회’라고 교회이름을 붙여 건전한 교회와 같이 취급되어 악재를 겪었다. 그러나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면 안 된다.(히 10:25) 예배의 열정을 되찾고 교회의 본분에 충실하여 새 힘을 길러야 한다. 경제적 추락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 올 것이다. 믿음으로 이 시련도 극복해야 한다. 그것보다 더 영적 암흑상태가 먹구름처럼 덮을 수도 있다. 점점 거세지는 마귀와 불순한 사상을 몰고 오는 불의의 세력과 대항하려면 더 강력해야 한다. 천 마리 양이 세 마리의 늑대를 이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해야만 이긴다. 하나님의 손을 굳건히 잡아야 한다. “주님은 당신의 힘, 용기, 또는 재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분을 의지하기를 원하신다.”(베네타 리스너) 사도 바울은 바이러스 유포자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소란피우는 일)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 바울은 전염병처럼(죽이는 전염병이 아니고 사람을 살려내는) 복음을 온 땅에 퍼뜨리는 생명의 바람이었다. 말세가 벌써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비상사태에, 비상한 신앙으로 깨어 있어야 승리자가 된다.
“하나님께 제물이 되면, 사단에게는 재앙이 됩니다.”(존 번연)